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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교육감 선거 당시 후보자 매수 혐의로 항소심 공판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 받은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4월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굳은 표정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있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 당시 후보자 매수 혐의로 항소심 공판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 받은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4월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굳은 표정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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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서울시교육감 선거 과정에서 후보자에 대한 사후 매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선고가 오는 27일 내려질 것으로 알려졌다. 1, 2심에서 모두 유죄가 선고된 상황에서 대법원에서 유죄가 그대로 확정된다면 곽 교육감은 교육감직을 잃게 되고, 이번 대통령 선거일인 12월 19일 재선거가 실시된다. 반대로 이 사건이 무죄취지로 파기환송된다면 곽 교육감은 교육감 직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1, 2심 재판부는 모두 사후매수죄를 적용하여 유죄를 선고하였다. 사전매수죄와는 달리 사후매수죄라는 조항 자체가 생소하다. 사실 이 조항은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단 한 번도 적용된 적이 없고, 일본을 제외한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조항이다. 그러니까 곽노현 교육감 사건이 이 조항이 적용된 최초의 사례이다.

곽 교육감은 2011년 11월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 '사후매수'에 대해서 1심 재판부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기각했다. 이에 곽 교육감 측은 지난 1월27일 헌법재판소에 직접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에 대한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이다.

곽노현 교육감 측은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에 대법원이 선고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은 언뜻 들으면 대법원 선고를 마냥 늦추자는 것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교육계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만약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합헌으로 내려진다면 대법원이 유죄 판결을 내린 이후에 헌재의 판결이 나오더라도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만약 대법원이 유죄 판결을 내렸는데 이후에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려버리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우리 헌법은 제3조에서 '형벌불소급의 원칙'을 정하여 행위 시의 법률에 의하여 처벌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형사사건에서 이 형벌불소급의 원칙은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적용될 경우에만 해당한다. 즉, 이후에 법률이 바뀌어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상황이 생기면, 행위 시가 아니라 재판 시 또는 이후에 바뀐 법률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상황이 바뀌는 경우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처벌의 근거가 되었던 조항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판결을 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회에서 해당 법률이 개정되어 구 법률조항이 효력을 상실하는 경우이다.

대법원 유죄 선고 이후에 헌재가 '위헌' 판결 한다면?

항소심 공판에서 징연 1년의 실형을 선고 받은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의 기자회견이 열릴 예정인 4월 18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회견장에 난입해 곽 교육감의 사퇴를 요구하며 항의하고 있다.
 항소심 공판에서 징연 1년의 실형을 선고 받은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의 기자회견이 열릴 예정인 4월 18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회견장에 난입해 곽 교육감의 사퇴를 요구하며 항의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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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헌법재판소법 제47조(위헌결정의 효력)는 "①법률의 위헌결정은 법원과 그밖의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를 기속(羈束)한다. ②위헌으로 결정된 법률 또는 법률의 조항은 그 결정이 있는 날부터 효력을 상실한다. 다만, 형벌에 관한 법률 또는 법률의 조항은 소급하여 그 효력을 상실한다. ③제2항 단서의 경우에 위헌으로 결정된 법률 또는 법률의 조항에 근거한 유죄의 확정판결에 대하여는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어떤 법률 조항에 대해서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 법원과 국가기관은 반드시 그에 따라야 하며, 형벌에 대한 조항(공직선거법의 처벌 조항도 해당)은 소급하여 효력을 상실하며, 이미 유죄판결이 내려진 사건은 재심을 통하여 다시 재판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곽노현 교육감 사건에 대해 대법원에서 유죄선고를 내린 후에 헌법재판소에서 사후매수죄를 위헌으로 결정하면 상황이 매우 복잡해지는 것이다. 대법원이 유죄선고를 내리면 곽교육감의 당선은 무효가 되며, 부교육감의 직무대행 기간을 거쳐 12월 19일에 재선거를 통해 새 교육감을 선출한다. 그런데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이 내려지면 곽 교육감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선고는 무효가 되고, 동시에 당선무효도 무효가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선거에 의해 새로 뽑힌 교육감 당선까지 무효가 되고 곽 교육감이 즉시 교육감으로 복귀하는 것이 아니다. 형법의 조항에 의해 유죄가 확정된 경우 위헌판결을 받았다고 해도 무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재심을 청구하여 재판을 다시 받아야 한다. 곽 교육감의 경우 1심에서부터 유죄가 나왔기 때문에 1심부터, 또는 (2심이 그대로 확정된다면) 최소 2심부터 다시 재판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 기간만 해도 상당히 걸릴 것이다. 이런 재심 재판 절차를 밟아서 무죄가 최종 확정되어야만 다시 교육감으로 복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재선거를 통해 뽑힌 교육감은 뭐가 되고, 돌아온 곽 교육감과의 관계는 또 어떻게 되는가? 사상 초유로 교육감이 두 명이 되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동안 새로운 교육감이 했던 정책은 어떻게 되고, 곽 교육감이 물러나서 실시하지 못했던 정책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렇다고 위헌법률에 의하여 교육감 직을 수행하지 못했던 시간만큼 교육감 임기를 연장해주는 것도 아니다.

이런 사태는 곽노현 교육감뿐 아니라 서울시 학생, 학부모 모두의 불행이 될 수 있다. 결국 헌법재판소가 위헌여부에 대한 결정을 대법원 선고보다 먼저 하기만 하면 되는데, 왜 대법원이 먼저 선고를 하여 이런 초유의 사태를 초래할 가능성을 만드는 것인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교육계 대혼란 막기 위한 '간단한' 방법... 왜 안 하나?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 받고 석방된 뒤 업무에 복귀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1월 20일 오후 서울시의회를 방문해 허광태 의장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 받고 석방된 뒤 업무에 복귀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1월 20일 오후 서울시의회를 방문해 허광태 의장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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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가능성도 있다. 법률가 출신인 민주통합당의 최재천 의원과 천정배 전 의원 등은 이 조항의 위헌성을 주장하며 지난 6월 공직선거법 제232조 1항 2호 '사후매수죄'에 대한 학술 토론회를 개최하였으며 법 개정안도 제출하였다.

최재천 의원 등 20인의 발의로 지난 7월 제출된 이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매수죄로 처벌할 수 있는 행위 시점을 해당 선거가 종료되기 전으로 규정하여, 선거가 종료된 후 정치적 탄압으로 악용될 수 있는 소지를 없애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신법 우선의 원칙(같은 문제에 대하여 구법과 신법이 서로 어긋나는 경우에는 신법을 우선적으로 적용한다는 원칙)'에 따라서 곽노현 교육감은 면소 결정 또는 무죄 판결을 받게 된다. 물론 새누리당이 이 개정안에 당장 찬성해줄 가능성은 별로 없어 조속한 시기에 통과될 가능성이 높지는 않아 보인다. 어쨌든 이 법 개정이 이루어지면 형 집행은 면제된다.

물론 곽 교육감이 대법원에서 유죄 선고를 받고, 헌법재판소에서도 합헌 결정이 내려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교육계의 대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가장 현명한 방법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여부에 대한 결정을 먼저 내리고, 대법원은 그에 따라서 결정하는 길로 보인다.

헌법에 의하여 그 독립성이 엄격하게 보장되어 있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게 '정치적'이라는 수사(修辭)만큼 치욕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유신시대의 인혁당 사건과 군사독재 시절의 간첩조작 사건들은 사법부가 '권력의 시녀'였던 불행한 시대의 상징들이다.

현재 대법원에게 가장 '정치적'인 것은 곽노현 교육감의 선고를 헌법재판소 결정 이전에 내리는 것이다. 또한, 헌법재판소에게 가장 '정치적'인 것은 사후매수죄의 위헌 여부에 대한 결정을 계속 미루는 것이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로 대표되는 사법부가 정치권력의 시녀라는 비난을 듣던 구태는 이제 끝나야 할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서둘러 위헌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 곽노현 교육감 사건에 관한 한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아주 간단해 보인다.


태그:#곽노현, #대법원, #헌법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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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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