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전체가 의존하게 될 권력의 향방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선거보도는 공정성, 객관성, 형평성에 입각한 의제설정을 해야 한다. 선거과정에서 언론의 편파·왜곡보도는 회복할 수 없는 정치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거기간 동안 독자와 시청자 등 언론 이용자나 유권자들의 정보욕구 충족이라는 언론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언론이 얼마나 될까?

평상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정치참여 과정에서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선거 때만 되면 언론사들은 편파·왜곡 시비로 얼룩진다. 제18대 대선을 100일도 채 남겨두지 않고 있는 지금 국내 언론들의 선거보도는 어떤가?

불과 5개월 만이다. 지난 4․11 총선 직후 시민사회단체와 학계 등으로부터 "정책보도의 부재 속에 편파·왜곡보도, 네거티브 선거보도, 지역감정·연고주의 조장 등으로 점철된 선거보도였다"는 따가운 질책을 받은 언론사들은 "반성하고 성찰할 것"이라며 부끄러운 자화상을 독자와 시청자들 앞에서 감추려 애쓰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슬그머니 구태를 드러내 보이는 형국이다. 이대로 가다간 또 다시 "언론의 선거보도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는 드센 비판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대선일이 점점 다가올수록 부정주의(네거티브)와 지역주의 보도가 슬금슬금 엿보이기 시작한다. 충분한 취재를 거치지 않은 채 소문이나 주장에 근거한 따옴표에 주로 의존하는 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 인용부호안에 폭로·감성적 주장들을 숨긴 채 피상적으로 보도하는 사례가 자주 목격된다. 그런가하면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지역 연고주의 선거전에 이은 선거보도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지역주의와 네거티브 선거보도는 일차적으로 각 당과 후보들의 선거전략을 그대로 받아쓰는 데서 기인한다. 여기에 기자와 언론사들 간 특종경쟁 또는 판매·시청률 경쟁이 이를 부추기는 모양새다. 문제는 네거티브 또는 지역주의 선거보도는 매우 빠른 반향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선거전이 가열될수록 유권자들의 합리적 의심과 냉철한 판단을 요구하는 선거보도가 넘쳐나고 있다.
 
"뇌물·여자문제 폭로하겠다?"...네거티브 선거전, 언론에 옮겨 붙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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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권의 유력한 대선후보로 주목받고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측 금태섭 변호사가 6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새누리당 공보단 정준길 공보위원이 안 원장의 뇌물비리와 여자문제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며 대선불출마를 종용했다"고 폭로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왼쪽부터 강인철, 조광희, 금태섭 변호사, 송호창 민주통합당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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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기간만 되면 어김없이 등장해 건전한 정보유통 질서를 어지럽히는 통신(?)들이 있다. 진원지가 불투명한 '카더라 통신'이 대표적이다. 몸통은 없고 긴 꼬리만 늘어뜨린 채 실체가 모호한 괴소문들이 이에 속한다. 이른바 '폭로 저널리즘'이다. 선거 때만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폭로 저널리즘'은 선거 분위기를 타락한 모습으로 비추는가 하면, 선거를 부정적으로 알려 유권자에게 불신과 냉소를 선사한다.

대중의 호기심 자극제로 등장하곤 하지만 박빙의 선거상황에서 허위 폭로로 인해 입은 상처를 치유하거나 복원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선거가 끝난 이후까지도 치유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러한 네거티브 폭로전과 이를 잘못 받아 쓴 네거티브 저널리즘이 이번 대선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하고 있다.

네거티브 선거전을 펼치려다 들통이 난 건 여당쪽이다. 지난 6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측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새누리당 정준길 공보위원이 안 원장의 불출마를 종용하고 협박했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졌다. 금태섭 변호사는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4일 오전 7시 57분께 정준길 새누리당 공보위원의 전화를 받았다"며 "(안 원장이 대선에 출마할 경우) 뇌물과 여자문제를 폭로하겠다며 대선 불출마를 종용했다"고 밝혔다.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이 이렇게까지 했다는 것은 차마 상상하기 조차 어려운 일이다. 아직 대선 출마를 공식적으로 선언하지 않은 인물에 대한 대응전략이 고작 네거티브 방식이라는 점에서 놀랍고, 이날 기자회견을 전후로 한 언론보도를 보면 역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네거티브 선거전략', <경향신문>에 '오보' 제공

당사자인 정준길 새누리당 공보위원은 다음날 공보위원직을 사퇴했지만 네거티브 선거전략은 많은 상처와 후유증들을 남겼다. 특히 그가 자신의 차안에서 전화했다는 것도 거짓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초기에는 자신이 직접 차를 몰면서 전화를 했다고 주장했지만 그를 승객으로 태웠다는 택시기사가 나온 데다, 그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CCTV까지 공개돼 그의 발언은 결국 신뢰를 잃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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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준길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대선기획단 공보위원이 6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금태섭 변호사(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측)에게 전화를 걸어서 안 원장의 뇌물비리와과 여자문제 폭로를 협박하며 대선불출마를 종용했다는 금태섭 변호사의 폭로에 대해 해명했단. 기자회견을 마친 정준길 공보위원이 취재진에 둘러싸여 국회를 떠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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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네거티브 선거전은 바로 언론의 네거티브 저널리즘으로 쉽게 옮겨 붙는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하다.  앵무새처럼 폭로전을 그대로 따라 하거나 받아 적는 보도가 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런 네거티브 선거전을 만나면 언론은 흥분하기 일쑤다. 방송과 신문, 보수와 진보진영 구분할 것 없다. 이번에도 그랬다. 대부분 언론들이 안 원장의 신상문제를 일제히 부정적으로 다뤘다. 진보신문인 <경향신문>이 오보를 내는 해프닝을 연출할 정도다. <경향신문>은 6일자 3면에 실은 안철수 원장에 대한 기사 중 새누리당 관계자(당의 한 인사)의 말을 인용해 "안 원장이 상대 여성을 임신시킨 뒤 낙태까지 시켰다는 얘기도 했다"고 보도해 놓고 다음날 "사실 관계가 전혀 확인되지 않은 얘기"라며 오보였음을 시인하고 사과했다.

신문은 또 "언론보도를 인용해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첩보를 전한 것도 현재까지 근거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정정했지만 신뢰도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보수신문도 아닌 진보신문이 확인도 없이 새누리당 관계자의 말대로 보도한 점, 그리고  안 원장측 항의를 받고 정정보도했다는 점이 그렇다.

네거티브 선거전략에 휘말린 꼴이지만, 큼지막하게 보도한 내용을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1-2단으로 작게 편집해 정정보도한다고 엎지러진 물이 과연 되담아질까?

<TV조선>, "안철수 생각, 대학 1학년 수준?"

보수언론의 네거티브 선거보도는 신문과 방송(종편)을 통해 입체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TV조선>은 15일 <8시뉴스 '날'>에서 '"안철수 생각, 대학 1학년 수준"…정치논객들, 잇따른 정면 비판'이란 기사를 내보냈다.  기사는 리드에서 "보수성향 논객들이 안 교수의 비전과 정책을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며 "일부 좌파세력들이 말한 걸 안 교수가 대학 1학년생처럼 따라하고 있다"는 혹평을 여과 없이 전했다.

"안 교수의 화법도 비판대상"이라는 기사는 "각종 현안마다 자신의 일이 아닌 것처럼 제3자 화법을 쓰는데 이런 화법은 자신을 숨기고 무언가를 포장하기 위한 거짓말"이라고 꼬집었다. 이는 누가 봐도 '안 원장 비틀기' 또는 ' 안 원장 때리기'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전형적인 네거티브 기사다. 

<동아일보> 9월 5일자 6면 '모친 돈으로 집 사고 장모 소유 집 거주… '캥거루족 안철수'?'란 제목의 머리기사도 제목 등에서 부정적인 뉘앙스가 물씬 풍긴다. "안철수 원장의 과거 아파트 매매 및 전세 거래를 둘러싼 의혹과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는 기사는 안 원장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전달하기로 작정한 듯 부정적인 글을 가득 썼다.

합리적 의심과 이성적 설명보다는 폭로와 감성에 의지하는 네거티브 선거보도는 '한방' 효과를 노린다. 그러나 그 '한방'을 맞은 상대 후보는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선거일에 임박해 공격을 당할 경우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고 선거가 끝나는 경우도 있다. 언론이 부정적인 면만을 집중적으로 보도하거나 네거티브 공방에 집중하다보면 유권자들의 정치 혐오를 부추겨 투표 참여 의사를 떨어뜨린다. 이미 많은 연구결과에서도 입증됐다.

그런데 언론이 이를 무시하는 것은 예사다. 대중의 스키마를 쉽게 자극시킬 수 있는 노림수 때문일까? 선거전이 무르익으면 익을수록 출처가 불분명하고 확인되지 내용들이 확인된 사실처럼 꾸며지고 부풀려지기 일쑤다.    

"대통령은 TK, 신공항은 PK"...둘로 갈라진 영남, 왜?

대선이 임박해오면서 네거티브 선거전·선거보도에 이어 지역주의를 자극하는 선거전·선거보도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신공항 건설문제를 놓고 PK(부산경남)와 TK(대구경북) 간 갈등이 다시 고조되는 양상이다. MB정부가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다가 백지화시킨 동남권 신공항을 최근 다시 정부와 정치권이 슬그머니 끄집어 낸 때문이다. 2008년 대선 당시 한반도 동남쪽에 인천공항에 이은 동북아 제2의 허브공항을 짓겠다고 약속해 놓고 2011년 3월 전면 백지화로 결론 내려 호된 역풍을 자초했던 사업이다.

그런데 최근 국토해양부는 "김해공항 등 일부 지방공항들의 수요증가세가 예상보다 빨라 신공항 건설 관련 검토를 당초보다 1년 앞당겨 내년에 착수키로 했다"고 언론에 흘렸다. 이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신공항 건설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과 때를 같이 한 것이어서 의구심을 들게 한다.  

PK와 TK 양 지역을 갈라놓은 신공항 문제를 다시 들고 나선 것은 무엇을 얻고자 하기 위함일까? 답은 뻔하다. 표만 얻으면 된다는 계산이 가득해 보인다. 그러나 언제든지 백지화될 공산이 큰 사업이다. 가뜩이나 흑자 기반에 놓인 인천공항을 매각하려다 거센 비난의 여론에 직면한 MB정부와 여당은 다른 지역의 크고 작은 공항들이 겪고 있는 경영애로를 아는지 모르는지 동남권 신공항 건설 추진을 다시 들고 나섰다니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상식 밖의 정책과 정치로 비쳐진다.      

더욱 기막힌 일은 밀양에 신공항을 짓자는 영남권 4개 광역단체(경남ㆍ대구ㆍ경북ㆍ울산)와 신공항을 가덕도에 지어야 한다는 부산 간 싸움이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는 모양새다. 경남도는 제18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와 정당에 지역 발전을 위한 4개 분야, 24개 과제를 공약으로 채택해 줄 것을 제안하면서 '동남권(남부권) 신공항 건설 재추진'을 포함시켰다. 여기에 대구시도 대구ㆍ경북ㆍ울산ㆍ경남이 참여하는 '신공항 재추진 태스크포스'를 꾸리는 등 대응에 나섰다.

지역언론들도 이에 가세했다. <국제신문> 13일자 3면 머리기사 제목은 지역주의 선거전략과 이를 부추기는 전형적인 선거보도로 손색이 없다. '"대통령은 TK, 신공항은 부산" 새누리 부산시당, 대선공약 못박기'란 기사는 무엇을 말하려는지 제목에서 족히 읽히고도 남는다.

"새누리당 부산시당이 '김해공항의 가덕도 확장 이전'(가덕신공항) 공약을 중앙당 대선 공약에 포함하도록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에게 강력하게 요청하기로 했다"는 기사는 "그동안 신공항 입지에 관해 공개적인 입장 표명을 꺼리던 부산 정치권의 태도 변화는 흔들리는 부산·경남(PK) 민심을 추스르기 위한 카드이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해묵은 단골 공약, 부화뇌동하는 언론...깊어가는 '지역주의'

신공항 건설이 또 실패하면 양 지역 민심이 모두 이반될 것은 자명하다. 지난해 백지화 과정에서 거대한 역풍을 우리는 똑똑히 보았다. 그럼에도 신공항 문제를 달콤한 선거전략으로 들고 나선 모양새가 영 볼썽사납다. 그러면 그럴수록 양 지역 언론들은 필사적으로 지역주의 저널리즘을 향해 돌진하는 분위기다. 

<경남매일>은 13일 '상대적 경남 홀대 어디까지 PK(부산ㆍ경남) 민심이 올 대선 승패 가른다는 데…'란 제목의 기사에서 "오는 12월 19일 실시되는 대통령 선거가 TK(새누리당 : 박근혜 후보)와 PK(야권 : 문재인 또는 안철수)의 대결인 신 지역주의 구도로 형성되면서 경남의 민심이반도 이에 직결되는 양상"이라며 지역·연고주의를 부추겼다.

<부산일보>도 최근 실시한 오피니언 여론조사결과를 보도하면서 "'부산 최대 현안'으로 '신공항 건설'을 꼽았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신문은 "부산의 여론주도층 사이에서는 부산 최대 현안으로 '신공항 건설'을 꼽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조사돼 신공항 건설 문제가 이번 대선에서 주요 쟁점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강조했다. 14일 <부산일보>의 ''신공항 입지' 대선이슈로 부상… 박근혜 입장 언제 밝히나'란 제목의 기사도 같은 맥락에서 다뤄졌다.

대구경북 언론들도 지역주의 선거전략 앞에서 흥분부터 하기는 마찬가지다. <매일신문>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13일 한국지방신문협회 소속 9개 언론사와의 공동인터뷰에서 밝힌 '신공항 재추진'과 관련한 내용을 크게 부각시켰다. 신문은 지난 8월 14일 사설 '남부권 신공항 재추진은 지방 살리기와 직결'에서도 이 문제를 짚었다. 사설은 "수도권 언론들은 남부권 신공항의 필요성을 깎아내리기 위해 실패한 무안공항이나 양양공항의 사례를 들먹이고 있다"며 "남부권 신공항에 '실패한 공항'을 견주는 것은 견강부회"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은근히 대구경북지역 추진 논리를 앞세웠다.

<영남일보>는 더욱 노골적으로 지역주의를 드러냈다. 11일 4면 머리기사 "TK정권 중심지였지만 뭐가 좋아졌나"란 기사와 14일 사설 '새누리당, 대선·신공항 모두 잃을 텐가'에서 지역주의를 한껏 조장했다. 신문은 이에 앞선 7일 사설 ''박근혜표 지역균형정책'을 기대한다'에서도 "원론적으로라도 남부권 신공항 건설 일정을 제시할 것"을 촉구했다. 정부와 여당의 대선후보가 지역 표심을 쫓아 다시 꺼내 든 해묵은 단골 공약에 언론이 부화뇌동하는 형국이다.

그동안 신공항 건설 공약이 선거 때마다 남발됐지만 성사된 것은 없지 않았던가. 김영삼·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산 신공항' 공약을 내세웠으나 실현되지 않았고, 이명박 대통령은 동남권 신공항을 공약했다가 백지화하면서 된서리를 맞았다. 그런데 박근혜 후보가 또 다시 신공항 카드를 꺼내 들었다. 실제로 추진할 경우 경남 밀양과 부산 가덕도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게 될 지역갈등을 이번엔 또 어떻게 잠재울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그때도 백지화로 무마시킬 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