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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 없었지? 너 어쪄려고 그랬냐. 어이구."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내 어깨를 툭 하고 칩니다. 그 주먹의 파동은 가슴으로 울립니다. 내 얼굴은 웃으면서 가슴 한쪽이 텅 합니다.

"뭐. 어떻게 되겠지."

대답을 해 놓고는 갑자기 답답해집니다. 이는 저와 무촌관계에 있는 이가 뱃속에 '셋째'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인제공자인 제게 힐난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겠지요. 저와 친한 형님이야 편하게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저렇게 대 놓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동생이 막 태어나서. 설레임과 기대감은 형으로서 별로 부모와 다르지 않는 듯.
 동생이 막 태어나서. 설레임과 기대감은 형으로서 별로 부모와 다르지 않는 듯.
ⓒ 임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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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축하해요. 정말 애국자시네" 하지만 뒤에서는 '저 집 무슨 대책 있대? 아님 집안에 돈이 많나?' 하는 이야기들이 돌기 시작합니다. 대책. 없습니다. 돈도 없고요. 보통은 이런 이야기를 듣거나 눈치를 받고서 아이를 앞두거나 계획을 고려하는 부부는 불안하고 답답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특별한 '조절'에 들어간 부부들이 늘고 있습니다. 낳는 집은 여유 있는 중산층이 아니면 아이가 없거나 겨우 하나를 낳는 추세입니다. 주변 친구들 중에서도 결혼해서 둘 이상의 아이를 두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본인은 여섯, 일곱 낳았던 어른들까지도 "대책 없이 그렇게 낳기만 해서 어떻게 하느냐"고 핀잔하기도 합니다. 시대가 달라졌다는 이유지요. 저만 해도 칠남매 할머님, 둘 낳아 기른 어머님으로부터 "하나만 낳아 잘 기르라"는 당부를 받았으니까요.

'묶는 수술을 해야 할까'

고민을 해 봅니다. 내년에 혹시 모를 넷째를 원천봉쇄 하기 위함입니다. 몸에 칼을 대는 것을 극히 싫어하는 나로서는 무서워서 싫습니다. 차라리 '도구'를 이용하는 것 낫겠다는 생각입니다. 그건 그렇고 겨우 셋이 이 정도니 넷이나 다섯을 낳는 이들은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오게 될 날이 머지않은 것 같습니다. 돈이 많이 드니 아이를 적게 낳거나 낳지 말고 살아야 할까요.

하나는 아빠품에. 하나는 주변을 배회하며 식당내의 혼란을 불러오고 있지만 이것이 다 삶이 아닐까.
 하나는 아빠품에. 하나는 주변을 배회하며 식당내의 혼란을 불러오고 있지만 이것이 다 삶이 아닐까.
ⓒ 임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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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아이가 어른의 삶에 짐이 되는 사회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머릿속으로는 절대 아니라고 외쳐봅니다. 이런 생각을 말로 하면 아내에게 '흥, (애보기, 집안일 등)한 일이 없으니 계속 낳아도 관계없겠지' 하며 비난을 받을지 모르나, 전 하나 때보다 둘이 곧 셋이 되는 경험이 그저 좋기만 합니다.

첫째가 태어나던 때를 떠올려봅니다. 생전 처음으로 겪는 아빠가 되는 경험은 기적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막 태어난 작은 아이를 손 위에 올려놓을 때의 느낌. 아이가 자라면서 옹알이를 하고, 뒤집기를 하고, 엉금엉금 기고, 뒤뚱거리며 걷는 단계를 옆에서 경험하는 것은 또 다른 경이로움입니다.

그리고 나서 둘째는 유경험자가 갖는 여유가 또 다른 차원의 육아경험을 가지게 합니다. 아주 작은 반응과 말도 못하는 것과 소통하는 즐거움, 첫째 때는 미처 해보지 못했던 경험을 함께 하면서 겪는 기쁨입니다. 셋째가 기대됩니다. 남자아이 둘을 키우다가 혹시 여자아이가 태어나려나 하는 기대감. 아들 셋이면 아빠와 복식으로 배드민턴이나 탁구를 칠 수 있겠다는, 무척이나 시간이 걸릴 수 있는(?) 기대감 등입니다.

"학교 들어가 봐라. 애들이 돈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데."

정말 뼈 빠지게 벌어도 부족할 것 같습니다. 요즘 국영수 학원비에 모자라는 부분 개인교습에, 창의력을 위한 음악, 체육까지 교습비를 생각하자면 말이죠. 어제 신문에서 보니 초등학생도 11시까지 학원에서 공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참 말세구나'들 하지만 자신의 아들딸이나 손자손녀들에게 자유를 주는 이는 별로 없습니다.

기저귀, 분유 값부터 시작해서 교육비, 문화비, 어학연수 등을 지원하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겠지요. 하지만 구지 그런 짓을 하지 않고 아이를 경쟁에서 벗어나게 하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그 경쟁체제에서 살아남는 것은 기껏 1%에 불과하니 아예 다른 길로 들어가 먹고 살 수 있는 길을 찾게 하는 것이지요. 물론 돈은 들기는 할 겁니다. 악기를 사거나 연장을 사거나 누군가에게서 배움을 청할 때 수업료 정도는 들어가겠지요.

"학교 다니고 싶으면 다니고 아니면 그만두어라."

이웃집 이야기 이지만 우리 집도 그리 다르지 않을 듯합니다. 무리하게 고등학교를 다니고 대학을 목표로 하는 것은 그 부모로서 우리도 결코 행복하지 못할 생각이 드는 겁니다. 물론 극단적이라는 비난도 감수할 겁니다. 아이가 인정한다면 기꺼이 그 비난을 부모로서 막아낼 준비는 해야겠지요.

이럴진대 아이를 낳는다고 해서 내가 불안해하고 답답해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남들 사는 것처럼 좆아 살지 않고자 시골에 내려와서 살면서 아이낳는 것까지 남들 '수준'에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돌아봅니다.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지. 아니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어느 책에선가 읽은 말입니다. 7년 전 도시를 떠나기로 결심하고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마음먹는 데 중심으로 세운 좌우명이기도 합니다. 생각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았는데 잘 되지 않을 때가 훨씬 많습니다.

내년 초에 태어날 셋째는 또 어떤 느낌일까요. 기대됩니다.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 느낌을 온전하게 내 삶에서 담는 곳은 가정입니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혈연관계만큼 사랑에 대한 느낌을 잘 표현하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정의 행복을 가로막는 지금 세태가 아쉬울 따름입니다.

물론, 사회적 합의와 이에 따른 대책이 진행된다면 더 좋겠지요. 이 사회가 더 이상의 생산을 거부한다면 고육지책도 나오게 되겠죠? 여하튼 분명한 것은 출산장려금이나 임산부지원금 등이 하나 더 낳기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죠. 우리 경우는 그것과는 완전히 별개로 사회 변방에서 독립을 외친 경우라고나 할까요.


태그:#셋째아이, #출산장려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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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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