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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 대개 성인 여성들은 이 네 글자와 친해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몸이 아파 가는 곳임에도,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가 있는 곳임에도 다른 병원과는 다르게 이질감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한국여성민우회가 성인여성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0%가 넘는 여성들이 산부인과를 한마디로 "가기 싫은 곳"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한국여성민우회와 함께 '산부인과 이렇게 바꾸자' 기획 기사를 마련했습니다. 앞으로 네 차례에 걸쳐 산부인과의 문제점과 개선책을 담은 기사를 싣습니다. [편집자말]
산부인과에서 출산하는 장면.
 산부인과에서 출산하는 장면.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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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민우회에서 진행한 설문조사 내용을 보고 산부인과 의사로서 잠시 멘붕(?)에 가까운 충격에 빠졌었다. 산부인과 의사로서 행하는 "환자를 위하는 훌륭하고도 보람찬" 진료행위에 대해 이렇게 불편함과 반감을 가지고 있다니.

의료제공자로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의사들의 말과 행동에 대해 환자들이 상상하지 못한 부분까지 민감하게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여성들의 눈에 비친 산부인과 의사의 모습을 보고 산부인과 의사인 나 자신을 다시 성찰하는 역지사지의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전문적인 의료지식과 경험을 가진 의사와 환자 간 정보의 격차가 크고 의사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더구나 여성의 몸과 건강을 모두 아우르는 특수성이 존재하는 산부인과임에도, 세심하게 살피지 못하고 관행적 진료를 당연시 해 왔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사실 다른 진료과목 전문의들도 마찬가지이지만, 대부분의 산부인과 의사들이 교육받는 의대 6년과 전공의 4, 5년의 과정을 살펴보면, 인문사회학이나 비폭력대화법, 인권교육 등을 접할 기회는 거의 없다. 자신의 개인적인 노력으로 책을 읽거나 의료봉사를 나가거나, 아니면 다른 그룹과의 토론이나 강의로 습득할 기회만 있을 뿐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처럼 가부장제 가족주의가 공고하고 이성애 중심주의,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부족한 환경에서 의사들이 환자들을 대할 때 마음을 열고 귀기울이는 자세를 갖기 어렵다. 더구나 경쟁구도 속에 있는 민간 병원들이 환자들을 상대로 많은 시간을 할애해 자세한 상담을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러나, 과거처럼 진입장벽이 높은 전문의 특허제도의 보호 아래, 자신의 의료전문주의(Medical Professionalism)의 특권을 맘껏 누릴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많은 의료정보들이 인터넷으로 검색이 가능하고, 매우 수준 높은 지식들도 매스 미디어나 SNS 등 다양한 전파매체를 통해 전달되고 있다.

그리고 공공의료가 취약하고 민간의료에 대부분 의존하고 있고 대학병원, 개인병원, 의원 등의 의료전달체계가 잘 정립이 되지 않은 우리나라 의료서비스 상황에서 의사들의 무한경쟁이 일어나고 있다.

"산부인과 진료 행태, 이렇게 바꿉시다"

 SBS 드라마 <산부인과>
ⓒ SBS
그러면, 어떻게 할까? 끊임없는 대화와 소통으로 그 격차를 줄이려고 노력하고 노력해야 할 뿐이다. 이번 여성민우회의 조사가 의료소비자인 여성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그리고 여성의 몸과 건강과 재생산권의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산부인과 의사들도 이 질문에 겸허하게 귀 기울여야 한다. 특히 여성의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진료행위가 집중되는 산부인과에서는 환자의 의료정보의 비밀이 보호돼야 한다.

<산부인과> 전문과목 명칭을 <여성의학과>로 바꾸어보자고 이미 산부인과 개원의 단체인 대한산부인과의사회에서 정책 제안을 한 바 있다. 하지만 내과 등 다른 전문과목 단체들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임신, 출산, 그리고 여성의 생식기에 국한된 산부인과 진료내용을 여성 건강 전체의 진료과목으로 확대·오해될 수 있다는 반론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여성들이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제안한다면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본다.

설문에 답한 여성들의 답변을 보고 반성을 하면서 산부인과 의사들에게 진료실에서의 진료행태를 다음과 같이 바꾸기를 제안해본다.

첫째, 접수할 때, 바로 간호사가 진료 사유를 구두로 물어보면 프라이버시가 보호되지 않아 불편하다. 따라서 처음에는 진료체크 사항이 있는 용지에 내원 사유나 원하는 진료 내용을 체크하거나 쓰도록 한다. 그리고 그 내용을 진료차트와 함께 의사에게 전한다.

둘째, 산부인과 진료대에 올라 부인과 진료 받는 자세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편함이 크다. 이때도 간호사나 의사가 자세히 방법을 미리 설명해주고 부담감을 덜어주도록 노력한다. 특히 진료용 치마나 가운은 한 번 쓰면 바로 세탁을 하도록 해서 위생관리를 철저히 한다.

셋째, 결혼 여부나 자녀 여부 등 산과력을 물어볼 때도 주의를 요한다. 특히 성경험이 있느냐에 대한 질문이 매우 민감할 수 있다. 진료를 위해 꼭 필요한 경우 물어보고, 그 이유에 대해 설명을 잘 해야 한다.

넷째, 성소수자나 트랜스젠더의 경우도 생각 없이 던진 질문이 상처가 될 수 있다. 따라서 환자가 신뢰할 수 있는 분위기와 여건을 만들고 동의를 구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다섯째, 모든 진료행위나 검사에 대해서 미리 필요성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한다. 그 결과에 대해서도 그 의미와 앞으로의 예후, 치료 방침에 대해서도 자세한 설명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산부인과에 오시는 여성분들에게도 부탁드리고 싶다. 환자의 권리에는 진료 받을 권리, 알 권리 및 자기 결정권과 비밀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라.

한편 환자의 의무 중에는 의료인에 대한 신뢰와 존중의 의무도 있다는 것도 기억해 두었으면 한다. 의사에게 정보를 솔직하게 제공하고 의사를 신뢰해주시길 바란다. 그래도 문제가 있다면 바로 말씀을 해주시길 바란다. 그래야 의사들도 깨닫고 고치니까.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고경심씨는 산부인과 프로젝트 자문위원 겸 메이산부인과 원장입니다.



태그:#민우회, #산부인과, #고경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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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회는 1987년 태어나 세상의 색깔들이 다채롭다는 것, 사람들의 생각들이 다양하다는 것, 그 사실이 만들어내는 두근두근한 가능성을 안고, 차별 없이! 평등하게! 공존하는! 세상을 향해 걸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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