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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장애아'라고 하면 '불쌍하다' '안 됐다' 등의 말이 따라붙곤 합니다. 하지만 여기, '행복하다' '네 덕분에 산다'며 미소 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입니다. 사회의 편견을 딛고 한 걸음 한 걸음 사랑으로 사는 그들. <오마이뉴스>와 사회복지법인 밀알복지재단(www.miral.org)이 이들을 만나러 갑니다. [편집자말]
사파리의 빨간 자동차 색연필 수채물감 2012
 사파리의 빨간 자동차 색연필 수채물감 2012
ⓒ 박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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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자동차를 탄 사자와 호랑이, 웃음기 가득한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사자와 개구쟁이 같은 표정의 호랑이 그림은 바라보고만 있어도 절로 미소를 짓게 한다.

이처럼 보기만 해도 행복한 이 그림은 밀알학교(장애인 특수학교)에 다니고 있는 자폐성 장애아 세준이(박세준·14)의 작품이다.

"열 살 무렵, 세준이도 저도 아주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때 울며 기도했어요. 세준이를 위해서라면 제 심장이라도 드릴 수 있다고요. 그 후로 그런 기도는 하지 않아요. 세준이와 저의 기도를 들어주셨거든요. 이제는 더 이상 모자란 아이, 부족한 아이, 바보 같은 아이가 아니에요. 그림 잘 그리는 아이, 착한 아이, 행복한 아이가 되었거든요."

서번트증후군은?
자폐성 장애 등 뇌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의 10%에게 나타난다는 서번트 증후군은 음악, 미술, 계산, 암기 등 특정분야에 천재적인 재능을 나타내는 증상이다.

서번트 증후군의 원인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의 영역이지만 전문가들은 뇌의 보상작용 즉, 손상 받지 않은 뇌의 일부분이 손상된 뇌의 기능까지 맡게 됨으로 발휘되는 천재적 능력이라고 말한다.
세준이 엄마(윤혜선·47)는 세준이의 남다른 능력(서번트증후군)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약한 아이, 부족한 아이, 남에게 손가락질받는 아이였던 세준이가 귀한 재능을 선물로 받았다는 것이다.

"천재적 재능, 특별한 능력보다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줄 알았던 세준이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또 그런 작업을 통해 행복을 찾았다는 것이 더 중요하죠."

세준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낀 때는 두세 살 무렵. 병원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선천적 장애라고 했지만, 엄마는 세준이의 장애가 엄마인 자신의 잘못인 것 같아 늘 미안했었다.

"병원에서는 아니라고 하지만 저는 세준이를 출산하는 과정을 의료 사고라고 확신해요. 진통도 없었고 양수도 터지지 않았고 아무런 증상이 없었는데 의사가 촉진제를 맞고 유도분만을 하자고 했어요.

별일이 있겠나 싶어서 의사의 제안에 응했고요. 촉진제를 맞았는데도 진통은 오지 않고 결국 양수가 다 빠지도록 아이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결국, 촉진제 과다로 전신마비까지 온 거예요. 아기도 저도 위험한 상황이었지요."

"아들의 장애는 내 탓"... 늘 미안한 엄마

세준이가 태어나던 날 엄마는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세준이가 태어나던 날 엄마는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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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14년이 흘렀지만, 그날의 충격과 슬픔이 어제처럼 생생한 것이다. 사산에 가까운 위험한 상황에서 기적처럼 살아난 아기. 그러나 힘든 출산의 후유증 때문인지 건강이 좋지 않았다.

"집중치료실에 한 달간 있다가 퇴원했는데 출산 시보다 오히려 몸무게가 줄었더라고요. 작고 새까만 아이가 너무 말라서 살갗에 주름마저 조골조골한 것이 얼마나 안쓰럽고, 애처로운지... 그런 아이를 보니 오히려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그때 아기를 안고 결심했어요. 이 아이를 가장 튼튼하고, 가장 멋있고, 가장 건강한 놈으로 보란 듯 키우고 말 거라고요."

엄마의 결심은 세준이가 열네 살이 된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세준이를 위해 내어 주고도 뭔가 더 해줄 것이 없을까 늘 고민하는 엄마. 왜 그렇게까지 온 인생을 세준이에게 '올인'하느냐고 물으니 모든 것이 엄마인 자신의 잘못 때문에 시작된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단다.  

"아이의 장애에 대해 원인을 모른다면 세준이에게 이렇게까지 제 인생을 '올인'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라고 해도 저는 알아요. 세준이의 장애는 저 때문이거든요. 엄마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우리 아들이 장애인이 되었는데... 그래서 아들을 볼 때마다 너무 미안하고 또 미안한데... 어떻게 제가 세준이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있겠어요."

아들의 장애를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고 단정하는 엄마. 의사의 제안을 거절했더라면 정상적인 출산 과정을 거쳤을 것이고, 세준이 역시 다른 아이들처럼 건강하게 태어나 자라고 있을 것이라는 후회가 '대못'처럼 엄마 가슴에 깊이 박혀있는 듯했다.

"그 후 모든 선택의 기준은 세준이가 되었어요. 내가 편한 방법, 통제가 쉬운 방법, 가족에게 좋은 방식을 선택하지 않고 세준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세준이에게 더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어요.

세준이에게 약을 사용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약을 사용하면 과잉행동이나 과잉충동, 문제행동 등이 줄어들 수 있겠지만, 그에 따르는 부작용도 적지 않거든요. 쉽게 가기보다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더 많은 인내가 필요하겠지만, 세준이가 행복한 쪽을 택하기로 했어요."

바닷속 풍경 색연필 수체물감 2009
 바닷속 풍경 색연필 수체물감 2009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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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준이의 조기교실(발달장애나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사회성, 학습, 정서, 행동을 준비하여 스스로 어린이집, 유치원 등 단체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주는 준비 학습 프로그램)을 중단한 이유도 다르지 않다. 세준 엄마는 마땅히 배워야 할 생활습관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우는 과정이 세준이의 특성에 맞지 않아 스트레스를 가중시켜 아이가 위축되고 우울해진다면 억지로 교육에 아이를 맞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조기교실을 일 년 다니다가 그만뒀어요. 다른 아이들 경우는 잘 모르겠지만, 세준이에게는 맞지 않는 것 같았어요. 선생님들이 행동 수정을 위해 손바닥을 때리기도 하거든요. 물론 세게 때리지는 않았지요. 몇 번 체벌이 반복되니 집에 와서 이상 행동을 하더라고요. 구석에 찾아가 숨는다든지, '주세요'라고 할 때 손 내미는 것도 하지 않는다든지, 자꾸 운다든지... 세준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손에 오는 자극에 유난히 예민했던 거예요. 같은 자폐라도 아이마다 특성이 다 다르니 선생님들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을 거로 생각해요."

세준이에게 스트레스인 조기교실을 그만두고 직접 가르쳐 보겠다고 집으로 데려오긴 했지만, 다른 엄마들처럼 책을 읽어주고 산책하고 끊임없이 대화를 유도하는 것 말고는 특별히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세준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일 중에 엄마도 화를 내지 않고 세준이도 행복한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어요. 제가 음악에는 재주도 없고 흥미도 없지만, 미술은 좋아하거든요. 손으로 만드는 것도 좋아하는 편이고요. 도화지와 색연필만 있으면 충분하니 돈도 많이 들지 않구요. 그래서 미술을 선택하게 됐어요."

세준이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선택한 미술이 우연히도 세준이 속에 잠자고 있던 그림에 대한 천재적 기능을 깨어나게 했다.

"세준이가 그림을 그릴 때 저는 옆에서 감탄하고 칭찬해 주면 돼요. '정말 잘 그렸네', '멋지다', '대단하다', '최고다' 등으로 칭찬해주면 세준이도 으쓱해져서 더 열심히 하고요. 세준이가 말을 하지 못하니까 제가 그림에 대해 설명을 하지요. 이건 이런 거지? 저건 저런 거지? 하면서요."

단 한 번도 그림을 배워본 적 없는 세준이. 누구도 가르친 적 없지만, 세준이 그림에는 '세준이풍'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그만의 독특함이 담겨 있다. 패턴화된 동물과 사람들, 밝고 선명한 색감이 대표적이다. 감정을 얼굴로 표시하는 방법을 모르는 세준이. 하지만 놀라운 것은 세준이의 그림에 등장하는 동물과 사람들은 다양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준이는 엄마라는 사실을 너무나 확실하게 알게 해주는 아이"

사인을 해달라다는 부탁에 진지하게 이름을 쓰고 있는 세준이
 사인을 해달라다는 부탁에 진지하게 이름을 쓰고 있는 세준이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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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준이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재미있어요. 모든 그림은 코부터 시작하고요. 지우개는 절대 사용하지 않고 한 번에 완성해요. 시작하면 3~4시간씩 집중하는데 완성하지 못하면 불안해서 잠도 이루지 못해요. 자라고 야단치면 자는 척하고 있다가 몰래 나와 다시 그림을 그릴 정도예요. 그림을 그리고 있는 동안 세준이는 장애아가 아니에요. 장애는 사라지고 재능만 드러나는 순간이죠."   

장애와 재능을 동시에 가진 아이. 재능을 이해하는 것보다 우선인 것이 아이의 장애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세준이는 집착이 특히 심한 아이였어요. 뭐든 했던 대로 하지 않으면 화를 내고 고집을 부리죠. 신발도 같은 것 한 가지만 신어야 하고, 길도 늘 같은 길로만 가야 하고. 그게 안 되면 화내고 소리 지르고 행패 부리고... 어떤 때는 다른 길로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려 대여섯 시간을 길에서 씨름하기도 했고요. 새 신발을 안 신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집까지 맨발로 온 일도 있어요."   

한 번씩 아이와 실랑이를 하고 나면 엄마는 그만 '파김치'가 돼 버리고 만다. 체력적인 한계와 우울감, 실패감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족한 엄마라는 자괴감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나쁜 마음을 먹게 했다. 엄마는 세준이와 함께 살기 위해(정말 죽지 않고 살기 위해) 공부를 했다. 어차피 아이의 장애를 받아들여야 한다면 좀 더 잘 이해하고 가르칠 수 있도록 엄마에게도 공부가 필요했다.

"공부를 하다 보니 세준이의 장애를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이전에는 너무나 화가 나던 아이의 행동도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요. 그러다 보니 위험하거나 남에게 큰 피해가 되지 않는다면 어떤 것을 해도 통제하거나 구속하지 않기로 했어요. 특히 그림을 그리거나 놀이를 할 때는 마음껏 어지르도록 했어요. 블록을 하든, 그림을 그리든 아무런 제재도 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만큼 충분히 상상력과 창의력을 펼칠 수 있게 내버려두었어요."

세준이와 엄마 윤혜선씨
 세준이와 엄마 윤혜선씨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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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세준이를 타고난 천재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사실 세준이는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지 못한다. 엄마의 세심한 관심과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이 재능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세준이는 제가 엄마라는 사실을 너무나 확실하게 알게 해주는 아이예요. 엄마의 무진장한 노력을 원하는 아이고, 그런 노력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아이죠. 내가 이 아이의 엄마가 아니면 안 되는 이유, 엄마의 존재감을 확실히 인지시켜주는 아이예요. 순간이지만, 엄마를 기대할 때 보이는 세준이의 반짝이는 눈빛, 행복해하는 모습, 처음 입을 열어 '어머니'를 불렀을 때의 기쁨, 또 다른 뭔가를 해냈을 때의 성취감. 이런 것들이 저를 움직이게 해요."

세준이가 무엇을 원할까. 무엇을 해주면 행복해할까. 무엇을 즐거워할까. 세준이가 태어난 이후 거의 모든 시간을 세준이를 위해 내어준 엄마지만, 지금도 여전히 엄마의 삶은 세준이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세준이를 운동시키기 위해 좋아하는 동물원까지 서너 시간을 걸어가고 세준이를 따라 그 넓은 동물원을 몇 바퀴씩 돌아도. 저녁 10시에 땀에 절어 집에 도착해도 세준이와 엄마는 그 시간이 너무나 가슴 벅차고 행복하다.

"세준이가 '어머니 예뻐요'라고 말해 줄 때 엄마는 너무 행복해요. 세준이는 이미 저에게 해준 것이 너무 많아요. 세준이로 인해 기쁘고 행복한 순간들이 정말 많았거든요. 세준이가 나를 '어머니, 어머니'하고 불러주는 것만도 얼마나 감사한지요. 저에게는 세준이의 존재 자체가 행복이에요."

세준이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본 일이 있느냐는 질문에 세준이 엄마는 그것도 많이 생각해 보았다고 답한다. 머릿속에 이미 세준이의 행복한 미래까지 그려두었다는 것이다.

"세준이가 지금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자리에 있지만, 어른이 된 후에는 남을 돕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원해요. 장애인이 보호를 받아야 하고 배려를 받아야 하고 도움을 받아야 하는 부담스러운 존재라는 시선이 바뀌길 바라요. 장애가 있지만, 기회와 복지만 허용된다면 얼마든지 능력을 발휘하고 그것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이 있을 거라 생각하거든요."

엄마는 세준이가 혼자 설 수 있는 아이로 자라길 원한다. 그래서 혼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매일 가르치고 또 가르친다.

행복한 꼬마화가와 그의 엄마, 힘내시라! 

학교에서 자전거타기 수업을 받고 있는 세준이
 학교에서 자전거타기 수업을 받고 있는 세준이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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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준이가 훗날 좋은 배우자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다면 더 바랄 것 없이 좋겠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지금처럼 끊임없이 도전하고 그것을 이루는 세준이가 되길 바라요. 부모가 없더라도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한다면 시설에 들어가야 하는 처지는 되지 않을 거라 믿거든요. 세준이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 있잖아요. 그 귀한 재능으로 자신도 행복하고,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길 바라요. 또 그렇게 될 거라 믿고 있어요."

인터뷰 중에 수시로 시간을 확인하던 세준이 엄마. 이제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세준이가 수업을 마치는 시간에 가 있어야 하는데, 이미 3분이나 지났다는 것이다.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엄마는 숨이 차도록 아들에게로 달려갔다.

"세준아~ 엄마가 좀 늦었네. 기다렸지?"

기다리던 엄마가 보이지 않아 불안했던 것일까. 잠시 굳어있던 세준이의 표정이 엄마를 보자 밝게 펴진다. 이제 안심이 되는 것이다. 그런 세준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표정이 한없이 행복해 보인다. 세준이의 그림 '사자가족의 나들이'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다.  

'행복한 꼬마화가'라는 별명을 가진 세준이. 아직은 어려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지만, 엄마의 바람 대로 재능으로 남을 돕는 사람으로 살게 될 날도 머지 않아 보인다. 그날까지 행복한 꼬마화가 세준이도, 세준이의 영원한 팬 엄마도 힘내시라!

덧붙이는 글 | 장애인가족에게 격려와 사랑을 전달해 주세요. 이 기사를 읽고 장애인과 그 가족들에게 후원하고 싶은 분들은 밀알복지재단 누리집(www.miral.org)을 통해 사랑을 실천하실 수 있습니다.



태그:#서번트신드롬, #자폐성장애, #박세준, #밀알복지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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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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