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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이 미국 시애틀에 살고 있다. 오랜만에 시애틀을 찾아 떠난다. 친척이나 친구가 찾아오면 반갑지만, 떠나면 더 반갑다는 말이 동포 사회에 떠돌 정도로 외국에서의 삶은 이것저것에 매여 산다. 다행히 친척은 퇴직했기 때문에 조금은 덜 부담스러운 방문이다. 필자는 호주 시민권자이면서 동남아에서 오랜 직장 생활을 해왔다. 동남아에서의 직장 생활을 끝내고 호주로 돌아간다. 호주로 돌아가는 길에 아내의 부모님과 형제가 사는 미국 방문길에 오른다. 

태국을 떠나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시애틀 가는 비행기를 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있다. 밤 비행기를 타고 왔기에 화장실에 들러 세수도 하고 비빔밥도 사 먹으면서 공항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낸다. 면세점도 둘러본다. 정신이 혼미할 정도의 향기로 여행객을 유혹하는 화장품 가게, 면세점의 대표적인 상품이라고 할 수 있는 담배와 주류를 파는 가게 등이 줄을 지어 있다.

친척에게 선물하려고 주류가게에 들린다. 가격표를 유심히 본다. 이상한 것은 가격이 미화로만 표시되어 있다. 왜 한국 공항에 미화로만 가격이 매겨져 있을까? 인천 공항은 한국 땅이 아닌가? 약삭 빠른 상업적으로 계산한 경제적 이유가 있겠지만, 한국 사람으로서 자존심은 상한다.

면세라고 하지만 술값이 비싸다. 동남아의 가난한 나라에서 직장 생활을 해서일까? 내가 번 돈으로 이렇게 비싼 술을 사기는 망설여진다. 그러나 비싼 술을 거침없이 쇼핑백에 담는 한국 여행객도 많다.

술을 조금 더 싼 가격에 파는 가게가 있을까 하는 순진한(?) 생각으로 다른 면세점을 기웃거린다. 모두 같은 재벌 회사의 이름을 가진 주류회사다. 물론 값도 같다. 왜 술을 파는 면세점에는 재벌 기업만 장사하는지, 왜 모든 가게에서 취급하는 술값이 같은지 이해할 수 없다. 아내의 만류에도 용기를 내어 만만하지 않은 가격의 한국 토종 주를 하나 집어 들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들리는 친척인데….

인천 공항은 다른 나라 공항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쾌적한 환경이다. 노트북을 들고 무료로 마음껏 인터넷을 즐길 수 있는 공항을 다른 곳에서 본 적이 없다. 한층 더 올라가니 비행기를 갈아타는 손님을 위해 잠을 잘 수 있는 편안한 의자와 안마 의자까지 비치되어 있다. 오랜 시간을 공항에서 기다려야 하지만 불편함이 없다.

입국 심사에 외국인 줄세우는 시애틀 공항

교포 많이 사는 시애틀에서 재외 국민 투표를 장려하고 있다
 교포 많이 사는 시애틀에서 재외 국민 투표를 장려하고 있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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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미국이라는 나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외국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쓰이다시피 했던 미국이다. 유학은 당연히 미국으로 가는 것이고, 물건도 미제라면 최고라고 여겼던 시절이었다. 미국 하면 '자유의 여신상'과 링컨이 떠오르는 자유의 상징이던 미국이었다. 지금의 미국은 어떠한가? 어느 석학의 말처럼 아직도 미국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비행기 안에서 새우잠을 청한다.

시애틀 공항에 도착해 입국 심사를 받으려고 기다린다. 미국 여권 소지자 줄은 짧은 데 비해 미국 여권이 아닌 방문객의 줄은 꽤 길다. 비행기를 갈아타기에 촉박한 사람이 하소연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기다리라는 것이다.

미국 여권 소지자의 입국 심사를 다 끝낸 직원이 방문객의 입국 심사를 하기 시작한다. 한 시간은 기다렸을 것이다. 오기 싫으면 오지 않아도 좋다는 미국의 자존심일까? 손님을 잘 접대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이 있는 한국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미국이다. 그래도 입국 심사를 하는 친절한 직원과 몇 마디 농담을 주고받으니 미국에 대한 첫인상이 조금은 나아진다.

미국은 내가 사는 호주와 비교해 씀씀이가 커 보인다. 휘발유값이 호주보다 저렴해서 그런지 호주보다 큰 자동차가 주를 이룬다. 집도 대체로 큼지막하다. 심지어는 식당에서 주는 음식의 양도 많아 남기기 일쑤다. 미국에서는 음식의 40퍼센트가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실감이 난다.

또 한가지 호주와 다른 점은 미국 국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호주에서는 가정집에 국기 단 것을 거의 볼 수 없다. 심지어는 국경일에도 국기를 거의 달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가정집은 물론 자동차에까지 미국 국기를 달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도 평일에…, 그만큼 애국심이 강한 것일까?   

'피가 물보다 진하다'고 하는데...

시애틀 야구장을 찾은 사람들, 휠체어를 타고 온 사람을 위해 좌석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시애틀 야구장을 찾은 사람들, 휠체어를 타고 온 사람을 위해 좌석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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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에 한국 사람이 많다는 것은 식품점에 가면 알 수 있다. 시드니와 비교하면 식품점 규모도 크고 물건 종류도 많다. 두툼하게 매주 발행되는 한국 사람을 위한 잡지도 몇 가지나 있다. 식품점 광고판에는 이런저런 광고지로 빈틈이 없다. 교회에 대한 포스터가 주를 이루지만 개인적인 광고도 많다.

식품점에 재외 국민 투표를 독려하고 등록하는 곳이 있다. 젊은 여성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들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직원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어 본다. 영사관에서 파견되었지만 자원봉사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곳에는 미국 시민권자가 많아 투표에 대한 문의는 많지 않다는 말도 덧붙인다.

미국이 호주보다 좋은 점 중의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스포츠가 있다는 것이다. 호주에는 나에게 생소한 럭비와 크리켓이 주를 이루지만 미국 사람은 우리에게 친숙한 야구와 농구를 즐긴다.   

동포 신문을 보니 클리블랜드팀의 원정 경기가 시애틀에서 있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표를 사려고 알아보니 13불부터 시작해서 몇백 불까지 가격이 다양하다. 야구장에 가서 알아보기로 하고 수요일 오후 경기를 보러 경기장을 찾아 떠난다. 시내가 무척 복잡할 것이라는 친척의 조언을 받아들여 버스를 타고 시애틀 야구장을 찾는다.
 
버스에서 내려 야구장 찾는 사람 뒤를 따라 야구장에 도착한다. 4만9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큰 야구장이다. 평일 오후라 그런지 아니면 야구장이 커서 그런지 관중석은 생각보다 많이 비어 있다.

추신수 선수의 사진이 전광판에 나오고 안타를 칠 때면 나도 모르게 어린아이처럼 일어나 손뼉을 친다. 추신수의 활약이 두드러진 경기다. 베이스를 밟는 추신수 선수가 자랑스럽다. 안타깝게도 3대 1로 클리블랜드가 지긴 했지만, 외국에서 한국 선수의 활약을 보며 흐뭇한 시간을 지냈다.

동포 신문을 보니 추신수 선수의 활약이 소개된다. 클리블랜드를 떠나면 시애틀로 이적하고 싶다는 기사도 있다. 추신수에 대한 한국 교포의 애정이 느껴진다. 그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나 보다.

동포 신문을 뒤적거리다 큼직하게 나온 광고가 눈을 끈다. 금강산과 백두산 관광객을 모집하는 광고다. 중국을 통해 금강산 관광을 하는 상품이다. 중국을 통해서라도 금강산 구경을 하는 한국의 현실이 안쓰럽다. 어쩌다 남북은 이렇게 되었을까?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남북한에는 통하지 않는 것인가?

미국 교포에게 북한 관광을 소개하는 광고
 미국 교포에게 북한 관광을 소개하는 광고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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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계속해서 자동차로 돌아본 미국 여행에 대해 쓰겠습니다.



태그:#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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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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