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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1월 19일 한상률 국세청장 퇴임식 현장을 취재한 <조세일보TV> 화면들. 안원구 당시 서울지방국세청 세원관리국장의 자리가 비어 있다.
 지난 2009년 1월 19일 한상률 국세청장 퇴임식 현장을 취재한 <조세일보TV> 화면들. 안원구 당시 서울지방국세청 세원관리국장의 자리가 비어 있다.
ⓒ 조세일보TV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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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1월 19일 오전 11시. 이날 국세청 2층 대강당에서는 한상률 국세청장의 퇴임식이 열렸다. 한 청장이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과 가까운 강석호 의원 등과 골프치고(경주 성탄절 골프회동 사건), 이명박 대통령의 동서인 신기옥씨 등와 저녁식사(대구저녁회동 사건)를 한 사실이 드러난 데 이어 인사청탁용으로 '학동마을' 그림을 상납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불명예 퇴진'을 하던 터라 분위기는 무거웠다.

이런 자신의 업보를 의식했는지 한 청장은 '내 마음 안의 사랑, 국세청을 떠나며'라는 제목의 퇴임사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나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모든 것은 나의 부덕이고 허물이다. 이 자리를 빌어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다."

이날 퇴임식에는 본청과 서울·중부지방국세청의 과장급 이상 간부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그런데 퇴임식 내내 '국장급 간부'인 안원구 서울지방국세청 세원관리국장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가 앉아 있어야 할 자리에는 '서울청 세원관리국장 안원구'라는 적힌 명찰만 덩그라니 놓여 있었다. 한 청장이 "나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 퇴임사를 읽고 있는 동안 그는 본청 감찰관실에 '감금'돼 있었다.

'안원구 강제연행-불법감금-비리조사' 작전에 총 10명이 동원돼

비망록 <잃어버린 퍼즐>을 펴낸 안원구 전 국세청 국장.
 비망록 <잃어버린 퍼즐>을 펴낸 안원구 전 국세청 국장.
ⓒ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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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국장은 평소처럼 이날 오전 8시 40분께 사무실로 출근했다. 그런데 자리에 앉기도 전에 감찰직원 4명이 들어와 그의 연행을 시도했다.

"당신들 누구냐?"
"감찰에서 나왔습니다."

"조사할 게 있으면 부르면 될 일이지 왜 이렇게 끌고 가려고 하냐? 이게 무슨 짓인지 알고나 하는 거냐?"
"위에서 지시받고 하는 것이니 가셔야 합니다."

감찰직원들은 안 국장을 감찰관실로 끌고간 뒤 휴대전화를 빼앗아갔다. 화장실에 갈 때조차도 2명의 감찰직원이 따라붙었다. 강제연행에 이은 불법감금이었다. 안 국장은 이 전무후무한 사태 앞에서 복잡한 감정이 치솟았다.

'국가기관인 국세청에서 백주대낮에 직원들이 다 출근한 사무실에서 국장을 납치한다? 6, 7급 직원들이 국장을 강제로? 국세청장 퇴임식이 강당에서 열리고 있는데?'

안 국장은 이날 오후 8시 40분께 불법감금 상태에서 풀려났다. 그는 5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11시간 동안 아무 것도 못하고 갇혀 있었다"며 "2명의 직원이 내가 갇힌 방 앞에서 보초까지 섰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나를 끌고간 감찰직원들은 '조사할 게 있다'고 했지만 실제 조사는 하지 않았다"며 "나를 감찰실에 가두어놓고 미술품 강매 비리 의혹과 관련한 단서를 찾으러 간 것 같다"고 말했다.

"수사권도 없는 사람들이 상부의 지시라고 하면서 강제로 끌고가 감금시켜도 되나? 감찰조사할 일이 있으면 통지하고 불러서 조사하면 될 일이다. 세금 매기는 기관인 국세청이 사람을 감금하는 곳인가?"

전창철 전 국세청 특별감찰팀장도 지난 2011년 3월 9일 검찰조사에서 "그게 감금이라고 하면 감금인지 잘 모르겠지만 당시 안원구 국장을 상대로 감찰조사를 시도한 사실은 있다"고 사실상 '강제연행-불법감금'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한상률 전 청장이 국세청장 시절 청장 직속으로 만든 특별감찰팀의 2대 팀장을 맡은 인물이다.

이날 '안원구 강제연행-불법감금-비리조사' 작전에는 총 10명의 직원이 동원됐다. 여기에는 5명의 지방청 직원들이 포함돼 있었다. 이렇게 동원된 10명 가운데 4명은 안 전 국장을 강제연행하고 불법감금했고, 같은 시각 나머지 6명(2인 3조)은 3개 업체를 대상으로 미술품 강매 의혹 조사에 나선 터였다.

좌천성 인사→ 사퇴 압박→ 불법감금... "과거 정권 사람 정리"

안 전 국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지난 2007년 7월부터 대구지방국세청장으로 재직하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2008년 4월 서울지방국세청 세원관리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국세청 내부에서조차 "본인에게 치욕적인 인사였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좌천성 인사'였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오랫동안 '청와대 파견근무'를 했던 경력 때문이었다. 

좌천성 인사에 이어 '사퇴압박'이 진행됐다. 전창철 전 팀장은 지난 2011년 검찰조사에서 "2008년 11월말께 한상률 국세청장이 당시 특검팀장이던 저를 불러서 '상부에서 안원구를 내보내라고 한다'고 해서 제가 안원구를 내보내는 작업에 착수했다"고 진술했다.  

당시 전창철 전 팀장은 안 전 국장을 서울 인사동의 한정식집에서 만나 "지금은 각 부처마다 과거 정권 사람을 정리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안 국장님도 거기에 해당되는 것 같다"며 자진사퇴를 권유했다. 하지만 안 전 국장은 계속 사퇴를 거부했다. 그러자 국세청은 그와 그의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전 전 팀장도 "당시 스스로 사직하지 않은 안원구를 사직시키기 위해 안원구의 비리정보를 수집했나?"라는 검사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변했다. 그가 수집했다는 '비리정보'란 안 전 국장이 세무조사를 빌미로 부인이 운영하는 갤러리를 통해 미술품을 강매한다는 것이었다(이는 나중에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국세청의 '안원구 뒷캐기'는 지난 2009년 1월 한상률 청장의 퇴임식날 벌어진 강제연행-불법감금으로 이어졌다. 전 전 팀장의 증언이다.

"한상률 청장이 사퇴 의사를 밝힌 이후, 국세청 직원들 사이에 안원구의 처가 인터뷰를 하여 결국 국세청장이 낙마한 것이므로 안원구가 죽일 놈이라는 분위기가 퍼져 있었고, 그런 와중에 퇴임식 전날 허병익 차장이 저를 불러 상부의 승인을 받았다며 내일 안원구를 연행하여 안원구의 비리를 조사하라고 했습니다."

안 전 국장은 "국세청은 한상률 청장이 강석호 의원과 골프치고, 대통령 동서인 신기옥씨와 저녁식사를 하고, '학동마을' 그림을 상납했다는 언론보도의 배후로 나를 지목한 것 같다"며 "불법감금한 이후에는 내가 이 대통령의 BBK와 도곡동 땅을 조사했다며 사퇴를 압박했다"고 주장했다.

전창철 전 팀장은 검찰조사에서 '안원구 강제연행-불법감금-비리조사'를 지시한 인물로 허병익 전 국세청 차장을 지목했다. 허 전 차장은 한상률 청장이 불명예 퇴진 후 국세청장 대행을 맡고 있었다.

허 전 차장이 당시 안 전 국장의 사퇴 압박에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와 관련, 일각에서는 허 전 차장이 후임 국세청장을 욕심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돌았다. 실제로 그는 이현동 당시 서울지방국세청장(현 국세청장)과 함께 유력한 국세청장 후보군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허병익 전 차장이 '상부의 지침이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수송동 국세청 모습.
 서울 종로구 수송동 국세청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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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검찰조사 당시 전창철 전 팀장은 검사 앞에서 "상부"라는 단어를 여러 번 썼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한상률 전 청장은 "상부에서 안원구를 내보내라고 한다"며 안 전 국장의 사퇴를 압박했고, 한 전 청장이 물러난 뒤 대행을 맡았던 허병익 전 차장도 '강제연행-불법감금-비리조사'를 지시했다.

검사 "진술인이 (한상률 청장 퇴임식 날) 허병익 차장실에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전창철 "그 전날 안원구를 조사하라고 했던 허병익이 갑자기 제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 차장실로 오라고 하여 연행하는 도중에 제가 차장실로 가니, 허병익이 '상부에서 연락이 왔으니 아직 연행을 안했으면 중지하고, 데려왔으면 조사도 하지 말고 조용히 데리고 있어라'고 하였습니다."

검사 "그래서 뭐라고 하였나요?"
전창철 "아니 어제 저녁에는 저하고 하이파이브까지 하면서 '직을 걸테니 안원구를 확실히 쳐라'고 하신 분이 이제 와서 무슨 말씀이시냐고 따졌더니 허병익 차장이 휴대폰 통화내역을 보여주면서 '상부에서 중단하라고 연락이 왔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전창철 전 팀장은 '당시 허병익이 말한 상부는 어디인가?'라는 검사의 질문에 "그건 말하기 곤란하다"고 답변을 거부했다. '당시 허병익이 보여준 휴대폰의 통화 상대방이 누구였나?'라는 질문에도 "그것도 말하기 곤란한다'고 말문을 닫았다. 다만 그는 허 전 차장이 언급한 "상부"가 "국세청 외부기관"이라고 말해 '권력층 개입' 의혹을 증폭시켰다.

검사 "허병익으로부터 한상률과 상의했다는 취지의 말을 들었나요?
전창철 "아닙니다. 허병익은 한상률이 아닌 상부의 지침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검사 "그 상부는 국세청 외부의 기관을 말하나요?"
전창철 "예. 그렇습니다."

전창철 전 팀장이 "국세청 외부기관"이라는 표현한 '상부'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이라는 설과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이라는 설로 엇갈린다. 다만 전창철 전 팀장이 국세청보다 윗선인 기관을 '상부'라고 표현했다는 점에서 권력층 인사들이 '안원구 사건'에 깊숙히 개입했을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

검찰은 한상률 게이트 수사 당시 전창철 전 팀장으로부터 "허병익 전 차장이 안 전 국장의 강제연행-불법감금-비리조사를 지시했다"는 진술을 확보했지만 허 전 차장을 조사하지 않았다. 민주통합당 등 야당은 오는 10월 시작되는 국정감사에서 국세청을 상대로 '안원구 11시간 불법감금' 등을 강도높게 추궁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허병익 전 차장이 60여 년 국세청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고위공무원 강제연행-불법감금-비리조사'를 벌였지만 후임 국세청장은 백용호 당시 공정거래위원장에게 돌아갔다. 특히 국세청장 자리가 이례적으로 6개월간 공석이었던 배경에는 안 전 국장 처리를 둘러싼 권부와 국세청의 복잡한 내부사정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의 '안원구 표적감찰'과 관련된 상황일지
▲ 2007년
- 7월-8월 대구지방국세청(청장 안원구), 포스코건설 정기세무조사 / '강남 도곡동 땅 실소유주=MB' 문건 입수 보고받음
- 12월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 대통령 당선

▲ 2008년
- 1월-2월 한상률 국세청장, 안원구 대구지방국세청장을 통해 '유임청탁' 로비
- 3월 한상률 국세청장 유임 결정
- 4월 1일 서울지방국세청 세원관리국장으로 발령
- 가을 한상률 국세청장, "청와대가 전 정부 사람으로 생각" 사퇴 종용, 협박과 회유 / 국세청장 직속 특별감찰팀, 안원구 국장 주변 내사
- 12월 한상률 국세청장, 강석호 한나라당 의원과 골프회동 / 이명박 대통령 동서인 신기옥씨, 이상득 의원 측근과 저녁식사(일명 경주골프-대구저녁회동사건)

▲ 2009년
- 1월 12일 한상률 국세청장의 '학동마을 그림로비사건' 터짐
- 1월 19일 한상률 국세청장 퇴임 / 감찰팀, 11시간 불법감금
- 1월-9월 국세청 감찰팀, 부인 거래업체들에 특별세무조사 협박  '그림강매 사실확인서' 작성 요구
- 1월 21일 미국 국세청 교육파견 대상자로 발령
- 6월 국세청, "청와대에서 MB 뒷조사한 사람으로 분류" 명예퇴직 권유
- 6월 국세청 감찰팀, 장승우 전 대구지방국세청 조사국장과 면담해 '강남 도곡동 땅 실소유주 문건' 관련내용 사실로 확인
- 7월 16일 백용호 국세청장 취임
- 7월-8월 국세청, '삼화왕관 사장' 자리 제안했으나 '거부'
- 8월 말 예정된 미국 국세청 파견자리 없앰(TO상실)
- 9월 백승구 <월간조선> 기자, '단독취재-백주대낮에 벌어지는 국세청 탈법행위' 기사 보도 불발
- 10월 백승구 <월간조선> 기자, '단독취재-2007년 대선 당시 태풍의 눈이었던 도곡동 땅의 진실' 기사 보도 불발
- 11월 2일 검찰, 자택과 부인이 운영하는 화랑 압수수색
- 11월 18일 검찰, 자정에 서울 서초동 변호사 사무실이 입주한 건물에서 전격 체포
- 11월 20일 검찰, '미술품 강매 혐의'로 구속
- 12월 8일 검찰, '미술품 강매 혐의'에다 '뇌물 수수 혐의' 추가해 기소

▲ 2010년
- 1월 국세청, 중앙징계위에 징계('파면') 요청
- 1월 21일 부인 화랑과 개인 전격 세무조사
- 2월 23일 중앙징계위, 징계 보류
- 6월 4일 1심 선고, 7가지 공소사실 중 5개의 주요 공소사실에는 '무죄', 2개의 추가 공소사실에는 '유죄'(징역 2년과 추징금 4억 원) / 중앙징계위, '파면' 징계 확정‧통보
- 10월 8일 2심 선고, 1심과 동일(징역 2년과 추징금 4억 원)

▲ 2011년
- 5월 13일 대법원 확정 판결(1.2심과 동일)
- 7월 27일 소청심사위, 파면과 관련한 소청 기각
- 10월 국세청장 상대로 파면취소 청구 행정소송 제기
- 11월 만기출소

▲ 2012년
- 9월 비망록 <잃어버린 퍼즐> 출간 


태그:#안원구, #한상률, #허병익, #잃어버린 퍼즐, #전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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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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