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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딸 모두 가습기 살균제로 폐질환을 겪고 있는 이미옥씨. 이씨는 지난해 4월 갑작스런 호흡곤란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현재 폐의 30%가 손상된 상태다.
 자신과 딸 모두 가습기 살균제로 폐질환을 겪고 있는 이미옥씨. 이씨는 지난해 4월 갑작스런 호흡곤란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현재 폐의 30%가 손상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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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들어 이미옥씨의 6살배기 딸아이는 감기를 자주 앓았다. 나은 지 3일 만에 또 다시 감기에 걸리는 일이 반복됐다. 2010년 10월에 폐렴에 걸린 적이 있긴 했지만,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한 해여서 병치레는 자연스러운 일인 줄 알았다.

그리고 4월 29일, 이미옥(39·주부·서울시 광진구 구의동)씨 본인에게 갑작스런 호흡곤란증상이 나타났다. 컴퓨터 단층(CT) 촬영을 하고 조직검사를 받았다. 병명은 '급성 간질성 폐렴'이었고, 의사는 그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라고 진단했다.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 조직검사는 어린 딸의 몸에 무리를 줄 수 있어 CT 촬영만 했지만, 의사는 이미옥씨처럼 딸의 폐질환 역시 가습기 살균제 때문일 것으로 봤다. 그즈음 텔레비전에서는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임산부들이 숨졌다는 뉴스가 연달아 보도되고 있었다.

31일 오전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에 위치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정문 앞에 선 이미옥씨는 계속 콜록콜록거렸다. 그의 폐는 30% 가량 망가졌다. 물렁물렁해야 할 폐포가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진 탓에 숨이 가빠 딸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기도 힘들다.

이씨는 돈이 아니라 건강을 되찾고 싶었다. 정부와 관련 업체들이 아무 조치를 하지 않는 것에 화가 났다.  그는 이날 또 다른 피해자 36명과 함께 옥시싹싹, 와이즐렉·홈플러스·세퓨·아토오가닉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클린업 등을 제조·판매한 회사 10곳의 대표자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딸에게 동화책 못 읽어주는 엄마, 갑작스레 부인 잃은 남편, 그 이유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급성 폐질환에 걸려 세상을 떠난 아내가 쓰던 것과 같은 가습기 살균제를 들고 있는 최주완씨.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급성 폐질환에 걸려 세상을 떠난 아내가 쓰던 것과 같은 가습기 살균제를 들고 있는 최주완씨.
ⓒ 박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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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손해배상소송에 동참한 최주완(59·택시운전수·서울시 양천구 목1동)씨는 이들을 형사고발하기도 했다. 그의 아내 김아무개씨는 2008년 봄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몇 해 전 복강염 수술을 받은 후 몸이 약해진 아내는 가습기를 쓰기 시작했다.

2008년 2월 아내는 감기로 병원을 들락거리다 '급성 폐렴' 진단을 받았다. 입원 당시 의사들은 '우리나라에선 생길 수 없는 병'이라며 아내에게 외국 여행 여부를 묻기도 했다. 결국 아내는 입원 한 달여 만에 사망했다.

최씨 역시 지난해 우연히 가습기 살균제 사망 뉴스를 접했다. 아내가 가습기 살균제를 쓰던 모습이 떠올랐다. 집안 곳곳을 뒤져보니 '옥시싹싹' 1병이 나왔다. 이후 자신처럼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가족을 잃거나 투병 중인 사람들을 만났다.

그에게는 정보를 모으고 소송을 준비하는 모든 과정이 버거웠다. 하지만 아무도 답을 내놓지 않는데, 아내 같은 사람이 또 생길까봐 염려스러웠다. 어린아이나 젊은 산모들이 사망한다는 소식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최씨를 포함, 가습기 살균제로 가족을 잃은 유족 9명은 손해배상을 청구한 업체 10곳의 대표자를 과실치사혐의로도 형사고발했다.

"사망자 52명... 정부가 피해기금 조성 등 대책 마련해야"

8월 31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정문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사건 1년, 형사고발과 집단손배소송' 기자회견에 참석한 피해자들.
 8월 31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정문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사건 1년, 형사고발과 집단손배소송' 기자회견에 참석한 피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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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사건 발생 1주년을 맞이하며 피해자들과 함께 소송을 준비하고, 정부 등에 대책마련을 촉구하고자 꾸려진 가습기살균제피해대책시민위원회(아래 대책위)는 31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1년 동안 환경보건시민센터와 피해자모임에서 확인한 피해사례만 174건이고, 이 가운데 사망자가 52명"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파악한 것은 34건, 10명 사망이다.

대책위는 "제대로 된 피해조사나 대책 마련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 환경부 등은 제각각 이유를 대며 책임을 떠넘긴다"고 비판했다. 대책위는 또 "현대아산병원과 서울대병원에 연구용역을 주고, 올 3월 발표하기로 한 피해조사도 감감무소식"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 가해기업의 사죄를 이끌어내고, 피해기금을 조성할 것 등을 요구하며 지난 5월 21일부터 광화문 1인 시위를 진행 중이다.

윤승기 질병관리본부 감염병관리센터 역학조사과장은 이날 오후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다른 부처에 (책임을) 떠밀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며 "피해조사 연구용역은 4월에 결과를 받았지만 내부적으로 한 번 더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윤 과장은 9월말쯤엔 검토 작업을 마무리할 것으로 내다봤다.

앞서 지난해 11월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동물흡입실험을 실시, 피해자들이 문제 제기한 옥시싹싹 등 가습기 살균제 6종의 수거명령을 내렸다. 같은 달 고시도 개정, 그동안 정부의 관리대상이 아니던 가습기 살균제를 의약외품으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자는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의 허가 및 관리를 받아야 제품 생산과 판매가 가능하다.


태그:#가습기 살균제, #환경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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