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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지난 6월 7일 의약품 재분류안 발표 이후 의견수렴 및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재분류 결과를 발표했다. 29일 서울 보건복지부 브리핑룸에서 열린 의약품 재분류 브리핑에서 김원종(왼쪽) 보건의료정책관과 식약청 조기원 의약품안전국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지난 6월 7일 의약품 재분류안 발표 이후 의견수렴 및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재분류 결과를 발표했다. 29일 서울 보건복지부 브리핑룸에서 열린 의약품 재분류 브리핑에서 김원종(왼쪽) 보건의료정책관과 식약청 조기원 의약품안전국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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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의약품 재분류안 발표 후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던 피임약 분류법이 당분간 현행대로 유지된다.

29일 보건복지부와 식약청은 의약품 재분류 최종결과를 발표하며 "피임약의 경우 (최초 안대로) 사전피임약은 전문의약품으로, 긴급피임약은 일반의약품으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하나 여러 여건을 고려, 현 분류 체계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단 앞으로 3년 동안 모니터링·실태조사 등을 실시한 후 재논의하겠다는 조건이 붙었다.

정부는 당초 어린이 키미테 패치와 우루사, 여드름 치료제, 습진약 등 262개 약품은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 구입할 수 있는 전문의약품으로, 속쓰림·무좀 치료제 등 200개 약품은 누구나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또 인공눈물과 변비약 등 42개 약품은 같은 제품이어도 효능·효과에 따라 구분하기로 했다. 29일 최종발표에서 모두 원안 유지된 내용이다.

문제는 피임약이었다. 정부는 최초 안 발표 때 현재 일반의약품인 사전피임약은 전문의약품으로, 사후피임약은 정반대로 분류법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피임약 전쟁'의 시작이었다. 식약청은 피임약 분류기준을 바꾼 이유로 '부작용 가능성'을 들었다. 사후피임약 속 여성호르몬 성분 함량은 사전피임약의 10배 이상이지만, 단 한 번 복용하므로 부작용이 거의 없는 반면 사전피임약은 복용기간이 길다는 것이었다.

'사전피임약→전문의약품, 사후피임약→일반의약품' 계획에 여론 엇갈려

하지만 지난달 남윤인순 민주통합당 의원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이인영 홍익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는 "피임은 여성이 임신·출산을 조절할 수 있게 해주고, 성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는 기본 인권"이라며 "피임약 재분류 정책은 과학적 접근만이 아니라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 프라이버시권을 보장하는 범위에서 판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단체들은 '여성의 결정권과 건강권을 위한 피임약 정책 촉구 긴급행동'이라는 연대체를 결정해 피임약 재분류안 반대목소리를 내왔다.

생명윤리를 중시하는 단체들은 다른 이유로 반발했다. 6월 식약청이 주최한 공청회에서 강인숙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 생명위원은 "사후피임약은 낙태약이나 다름없다"며 "여성과 청소년들의 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철 낙태방지운동협회장은 "스웨덴은 사후피임약을 일반의약품으로 바꾼 뒤에 낙태율이 20% 증가했다"며 "사후피임약이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도한 셈"이라고 주장했다.

'피임약 분류법 현행유지' 결정에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는 29일 "의약품 분류를 결정하는 중앙약사심의위원회(아래 약심위) 위원들도 사전피임약은 의·과학적 논리를 토대로 전문의약품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이었지만, 사회적 조건이 성숙되어야 한다는 쪽으로 정리했다"고 밝혔다. 이어 "사후피임약도 원안대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하지만 이 경우 오남용이 있을 것이란 우려가 워낙 심해 '아직은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하기 이르다'고 결정했다"며 "약심위원들이 피임약에 관심이 높아 매우 열띤 토론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부 "모니터링 실시 등 보완책 마련" - 시민단체 "동의하지만... 아쉽다"

다만 "한국의 사전피임약 보급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만큼, 국민들의 피임제 관련 인식 변화를 꾀하는 한편, 올바른 피임약 사용을 위해 교육·홍보활동을 진행하겠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모든 피임약 구입자에게 복용법, 주의사항 등이 적힌 복약안내서를 반드시 제공하고, 피임약 광고에 '의사의 진료나 상담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반영하도록 추진할 계획이다. 아직 국내에서 피임약 부작용 연구가 충분히 진행되지 않았고, 실태 파악도 이뤄지지 않은 부분을 보완할 방법도 찾고 있다.

배경은 제각각이었지만 시민단체들은 대부분 정부의 결정에 동의하는 모습이었다. 김인숙 한국여성민우회 대표는 "(복지부가) 최악의 결정은 면했다"며 "사회문화적 환경을 고려한 노력은 긍정적으로 보지만, 앞으로 여성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고, 현실을 반영한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주교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는 "복지부가 생명과 건강을 우선적으로 고려, 최종 결정한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며 "청소년의 성교육, 미혼모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 개선, 여성의 출산환경 조성 등에 모두 힘을 합해야 한다"고 성명서를 냈다.

대한산부인과학회와 대한산부인과개원의협회는 "응급(사후)피임약의 전문약 유지는 적극 환영하는 바"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하지만 "사전피임약은 여러 부작용 보고가 나오고 있고, 지금도 제대로 안전 관리되고 있지 않다"며 "일반의약품으로 되돌아간 것이 아쉽다"고 밝혔다.

이날 복지부는 일반의약품으로 바꾸려했던 히알루론산나트륨 0.3% 점안제(인공눈물)도 전문의약품으로 유지하겠다고 알렸다. 낮은 농도로 투여했다가 효과가 불충분하면, 전문가의 상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종 확정된 의약품 재분류안은 6개월 후인 2013년 3월 1일부터 시행된다.


태그:#피임약, #여성, #임신, #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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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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