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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선생의 돌베개를 형상화 한 화강석과 어록.
 장준하 선생의 돌베개를 형상화 한 화강석과 어록.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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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아침, 창밖을 보니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가을장마가 시작된 것이다. 일정 조정을 잠시 고민했지만, 강행하기로 했다. 우중(雨中)에도 장준하 추모공원 방문을 강행키로 한 것은 그리움 때문이다. 파주 통일동산에 진입하자 거센 빗줄기는 서서히 잦아들었다. 비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경기도 파주 통일동산 산골짜기 그 산등성 아래 장준하 추모공원에 도착했다.

역사가 무너지면서 선생의 묘지도 무너졌다. 하지만 37년간 침묵했던 선생은 무너진 무덤에서 타살 의혹의 일단을 드러냈다. 박정희 유신독재와 싸웠던 선생이 죽음의 진실을 겨우 드러냈건만 집권 정당은 독재자 딸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고, 그는 역사 앞에서 사죄도 하지 않은 채 통합을 운운한다. 6천 리 대장정을 통해 민족의 축복을 꿈꾸었던 선생의 돌베개가 그립다. 아니나 다를까 불의와 일체 타협지 않았던 선생의 강직한 목소리가 추모공원 돌베개에 새겨져 있었다.

"우리는 무기를 가졌습니다. 조국을 찾아야 한다는 목표물을, 똑바로 겨냥한, 젊음이란 이름의 무기입니다."

역사의 채무자들이 앞장서서 조성한 '장준하 추모공원'

장준하 선생의 흉상부조 앞에서 추모 기도를 하는 군포시민 이상철(77세)씨.
 장준하 선생의 흉상부조 앞에서 추모 기도를 하는 군포시민 이상철(77세)씨.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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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추모공원 조성사업은 <사상계> 독자였던 이인재 파주시장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지난해 8월 17일 파주시 나사렛 천주교공원묘지에서 열린 장준하 선생 36주기 추모행사에 참석한 게 계기였다. 파주시장이 처음으로 추모식에 참석한 사실을 알게 된 이 시장은 가슴이 아프고 부끄러웠다. 하지만 시급한 것은 폭우로 무너진 선생의 묘소였다.

정부는 1991년 장준하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러므로 대전현충원에 안장될 자격이 충분했지만, 유족과 장준하기념사업회는 이장을 거부했다. 친일세력과 반독재자들이 묻힌 국립묘지에 어떻게 함께 묻힐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장과 장준하기념사업회 등은 37주기에 맞춰 파주에 추모공원을 조성하기로 했던 것이다.

이 시장은 파주시 탄원현 성동리 688번지에 3967㎡(1200여평) 시유지에 추모공원 부지를 조성했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추모벽(조형물) 공사비 2억5천만 원을 흔쾌히 지원했다. 그리고 선생의 장남인 장호권씨 등과 장준하기념사업회, 파주 시민으로 구성된 '장준하추모공원추진위원회'가 결성됐다. 민관에 의한 추모공원 조성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된 가운데 지난 8월 17일 추모공원 1단계 사업이 완료됐다.

장준하 추모공원 및 추모관 건립사업은 3단계로 계획됐다. 1단계는 추모벽 등의 조형물 조성공사, 2단계는 추모공원 박석(薄石) 공사, 3단계는 추모관 건립공사다. 추모벽과 추모대 등의 조형물 조성은 경기도의 지원(2억5천만 원)으로 완공됐고, 2단계 추모공원 바닥 박석공사비 1억5천만 원과 추모관(혹은 기념관) 건립비 6억 원은 국민모금 등의 방식으로 마련해서 40주기인 2015년을 완공 목표로 하고 추진할 계획이다.

이준영(47) 장준하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28일 "9월 초순에 운영위원 회의를 열어 향후 사업(박석공사와 추모관 건립)을 어떤 방식으로 추진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며 "가장 유력한 방식은 백범기념관 건립 방식처럼 사회 각계의 인사들이 참여해서 '장준하추모관건립위원회'(가칭)를 구성하고, 거기서 사업방식을 결정하고 추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경형(66·서울신문 전 편집국장·헤이리마을 이사장) 장준하추모공원추진위원회 위원장은 27일 "독립운동과 반독재투쟁뿐만 아니라 통일운동에 헌신하신 선생님을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고 통일전망대의 오두산이 한눈에 보이는 통일동산에 모신 것은 의미가 크다"면서 "추모공원과 추모관 건립을 통해 선생님의 민족정신과 애국정신을 미래의 통일 세대에게 심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더불어 국민의 관심과 참여를 당부했다.

분단의 백두대간을 잇는 추모벽... 정중앙에 청동 흉상부조

장준하 추모공원에 조성된 추모벽의 정중앙. 추모벽은 분단된 산맥을 잇는 백두대간을 형상화했다.
 장준하 추모공원에 조성된 추모벽의 정중앙. 추모벽은 분단된 산맥을 잇는 백두대간을 형상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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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추모공원은 추모벽과 묘역, 추모대로 조성됐다. 추모벽은 40m 길이와 50㎝~2.8m 높이로 팔(八)자 형태의 화강암이다. 추모벽은 행동하는 지성인이었던 선생의 희생정신과 분단된 산맥을 하나로 잇는 선생의 돌베개 정신을 담았다. 그리하여 민족의 눈물과 희망을 품고 달려야 할 백두대간을 형상화한 것이다.

추모벽 왼쪽에는 출생과 성장, 구국장정의 길 등의 연보(年譜)가 새겨졌고, 우측 벽에선 선생의 대표 저서인 <돌베개>와 박정희 독재정권의 눈엣가시였던 당대의 <사상계>를 소개했다. 우측 벽 끝자락에는 김수환 추기경이 선생의 영결 미사에서 했던 강론이 이렇게 새겨졌다.

"그의 죽음은 별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죽어서 새로운 빛이 되어 우리의 갈 길을 밝혀 주기 위하여 잠시 숨은 것뿐입니다."

추모벽의 핵심은 정중앙 벽이다. 여기엔 '장준하 선생이 걸어온 길'이란 제목과 함께 연보가 새겨졌고, 가로 50㎝, 세로 70㎝ 크기의 청동으로 제작된 장준하 흉상부조가 새겨졌다. 흉상 앞에서 묵념하고 그 뒤쪽 통로로 나가면 검은 화강암의 돌베개 조형물과 어록이 새겨진 추모벽이 나타나고, 20m 가량의 등산로를 오르면 선생의 유해가 안장된 묘역과 추모대가 나타난다.

검은 화강암 덮개석이 있는 추모대에는 추모객이 헌화한 하얀 국화가 놓였다. 하지만 선생은 온전히 영면해 있지 않다. 지난 1일 선생의 유해를 나사렛 천주교공원묘지에서 장준하 추모공원 묘역으로 이장하는 과정에서 함몰된 유골이 37년 만에 드러났다. 살아서는 만주군 출신인 박정희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선생은 죽어서는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는 나라를 거부하며 죽음의 진실을 규명해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선생의 묘소 축대가 무너지고, 추모공원이 조성되면서 죽음의 실체가 드러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육신은 육탈되어서 흙이 되었지만, 선생은 그냥 잠들지 않았다. 무덤에서 깨어 일어나 역사의 채무자들에게 과업을 부여했다. 그 역사적 과업은 살해음모를 낱낱이 밝히는 진상규명이고, 시대적 과업은 선생의 정신이 올곧게 담긴 추모관 건립을 통해서 평화와 화해의 통일을 일구라는 것이다.

장준하의 6천 리 대장정 그리고 분단과 통일의 갈림길

추모대와 덮개석에 놓여진 국화.
 추모대와 덮개석에 놓여진 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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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조상이 되지 말자!"

일본군에서 탈출한 장준하 선생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는 중국 충칭까지 6천 리 고난의 대장정을 하면서 했던 다짐이다. 한반도 삼천리의 두 배에 이르는 중원 6천 리, 생존조차 불투명한 대륙을 2년간 헤매며 돌베개를 베고 잠을 자면서 꿈꾼 것은 일신의 안위와 출세가 아니다. 선생이 풍찬노숙하며 품었던 베개는 민족 모두가 축복받는 돌베개였다.

그래서 선생은 "나의 사상, 주의, 지위, 재산, 명예가 진실로 민족통일에 보탬이 되지 않는 분단 체제로부터 누리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이를 과감하게 희생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위대한 자기희생 없이는 통일은 결코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고 외쳤다. 민족의 진정한 축복은 평화와 화해의 통일이라고, 민족의 과업을 위해선 자기를 희생해야 한다고…. 하지만 분단이 아닌 통일의 돌베개를 베고 싶었던 선생은 박정희 독재정권과 싸우던 1975년 8월 17일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의 추락사를 당했다.

함몰된 유골도 나타난 장준하 선생은 역사에 눈먼 맹인에게 삶의 갈림길에 서라고 촉구한다. 애국자의 길에 설 것이냐, 매국노의 길에 설 것인가? 민족에 대한 사랑의 길에 설 것이냐, 배신의 길에 설 것이냐? 내가 섰던 곳은 6천 리 대장정의 길이 아닌 분단 조국의 명치인 파주 통일동산, 선생의 삶과 죽음을 망각했던 만인 중의 일인인 나는 그 갈림길에 서서 장준하 추모공원 조성취지문을 새기며 읽는다. 나는 선생의 돌베개를 베고 싶다.

"여기, 자유로 가는 길, 통일로 가는 길목,
우리는 겨레와 나라의 자유와 통일을 찾는 길 위에서
일생을 바친 장준하 선생과 함께 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이자 사상계 발행인
국회의원, 민주통일운동가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셨던 선생님, 황토의 유택은 님을 흠모하는
우리들 마음을 시리게 했습니다.

이제 통일을 염원하는 파주 시민을 비롯한 이 땅의 민초들이
뜻을 모아 장준하 선생 영생의 터를 통일동산으로 모셔왔습니다.
목숨을 바쳐 지켜낸 자유혼, 민족혼, 민주혼은
만민이 우러러 함께 지켜나갈 정신입니다.
암울한 시대, 온몸을 던져 지성과 사상을 계발한 개척혼과
이를 실천한 용기와 성실, 강인함과 헌신을 배우고 꿈꾸면서
우리 모두 어울려 자유와 통일의 대해로 나아갑니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서해 바다로 흘러드는 이곳,
민주-통일의 숭고한 뜻이 천지를 뒤흔드는 함성으로
우리들의 가슴에 메아리 치고 있습니다."

2012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으며 장준하 선생 추모공원 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장호권-이경형

장준하 선생 묘역에 서면 오두산 통일전망대가 한 눈에 보인다.
 장준하 선생 묘역에 서면 오두산 통일전망대가 한 눈에 보인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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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장준하 추모공원, #박정희 독재정권, #살해음모, #장준하 추모관,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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