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저씨가 나타났다. 아침부터 애타게 찾았던 THO 게스트하우스의 사장이자 이곳을 라오스 남부 돈뎃 숙소 중 여행자에게 유명한 게스트하우스라고 소개한 THO 아저씨이다. 그렇게 찾아다녀도 보이지 않던 아저씨는 다름 아닌 내가 머무는 방갈로 바로 옆 방갈로에서 늦게까지 단잠을 즐기고 뒤늦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시원시원한 이마에 멋스럽기보다는 살짝 아쉬운 콧수염. 목이 축 늘어진 빨간 티셔츠에 금방이라도 벗겨질 것 같은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니는, 약간 허술해 보이는 THO 아저씨는 돈뎃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줄곧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라오스 돈뎃에서 만난 능청스러운 THO 아저씨

라오스 돈뎃 THO 게스트 하우스 주인 THO 아저씨.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아 운영중이라고 한다.
 라오스 돈뎃 THO 게스트 하우스 주인 THO 아저씨.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아 운영중이라고 한다.
ⓒ 오상용

관련사진보기


"잘 잤어?"
"네. 근데 아저씨가 더 잘 주무신 것 같은데요?"
"기분 좋은 아침이다."

손님보다 서둘러 하루를 시작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늦잠을 자고 일어난 아저씨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졸린 눈을 비비며 안부 인사를 한다. 마치 학교에서 잘못하고 선생님 앞에서 아무렇지 않다는 듯 행동하는 아이 같은, 넉살스러운 그 표정에 웃음만 나올 뿐이다.

"밥은 먹었어? 우리 집 아침 식사 아주 맛있어."
"여행자들한테 유명한 곳인데 당연히 그렇겠죠? 근데 왜 손님은 우리뿐일까요?"


처음 이곳에 도착해 숙소를 알아보던 중 만난 THO 아저씨는 자신의 숙소가 외국인 여행자한테 아주 유명해 그냥 지나치면 후회할 것이라고 소개했고 아저씨의 허풍에 속아 나는 이곳에서 짐을 풀었다.

물론 개인 방갈로에 시설도 나쁘지 않아 5성급 호텔 못지않게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계속되는 아저씨의 허풍에 기가 차 나도 질 수 없어 말끝마다 작은 불만을 담아 농담을 던졌다.

양파와 토마토를 넣은 계란 부침

양파와 토마토를 넣어 만든 THO 아침. 양파의 씹히는 맛과 토마토의 향이 더해 그 맛이 기가 막히다.
 양파와 토마토를 넣어 만든 THO 아침. 양파의 씹히는 맛과 토마토의 향이 더해 그 맛이 기가 막히다.
ⓒ 오상용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THO 아저씨는 이곳 주인. 그리고 무엇보다 시설 대비 아주 저렴한 하루 숙박비 단돈 2200원으로 머무는 이방인이기에 더는 아저씨의 심기를 건들지 않기로 하고 아저씨가 추천해준 맛있는 아침 식사를 주문한다.

주문한 음식은 양파와 토마토를 넣은 계란부침에 언제 구운 빵인지 알 수 없는 빵 한 조각. 주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테이블에 올려졌다. 단돈 1달러라는 저렴한 가격에 맞춘 음식이라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달걀과 채소가 신선해서 그런지 기대 이상의 맛이 났다. 결국 나는 아저씨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지금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가끔 그때 먹은 계란부침이 생각나 집에서 혹은 여행지에서 종종 해먹는다.

"아저씨 정말 괜찮은 아침이었어요. 고마워요."
"맛있지? 우리 집사람이 음식을 잘해. 근데 오늘은 뭐 할 거야?"
"여기 돌고래 볼 수 있는 곳이 있다는데 어떻게 가요?"
"배 타고 나가서 20분 정도 가야 해. 두 명이니까 15달러면 되겠네. 어때?"
"가이드랑 입장료 포함이죠? 다 포함해서 11 달러면 할게요."

"$11? 음 그래 그렇게 하자, 준비해."

라오스 이와라디 돌고래 만나러 가는 길

오토바이 운전은 물론 한순간 가이드가 되어 버린 라오스 청년.
 오토바이 운전은 물론 한순간 가이드가 되어 버린 라오스 청년.
ⓒ 오상용

관련사진보기


돌고래 투어가 허술한 것인지 아니면 흥정에는 관심이 없는 것인지 첫 숙박 흥정에 이어 돌고래 투어와 폭포를 다녀오는 투어 상품(선박+오토바이+입장료+가이드 포함)을 아주 저렴하게 계약했다. 캄보디아를 지나 라오스에 도착해 처음으로 닿는 관광 명소.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돌고래를 볼 수 있다는 희망에 서둘러 짐을 챙겨 아저씨를 재촉했다.

드디어 출발. 라오스 남부에는 멸종 위기 돌고래인 이와라디 돌고래를 만날 수 있는 관광명소가 있는데,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고 반나카상으로 이동, 오토바이 혹은 차량을 빌려 관광지로 가야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거기에서 또 배를 이용해 돌고래를 볼 수 있다는 지점으로 이동해야 한다. 배를 타고 선착장으로 이동해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 THO 아저씨와 친한 녀석인지 익숙한 듯 오토바이 뒷 좌석을 확보해 나를 태우곤 쉬지 않고 국경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약 20분을 달려 도착한 또 다른 선착장. 우리보다 서둘러 도착한 THO 아저씨가 미리 배를 잡아놨는지 젊은 청년이 우리 쪽으로 배를 끌고 와 탑승을 돕는다.

"아저씨 같아 안 가요?"
"응? 나도 가야 해?"
"가이드비 포함이라며..."
"이그, 알았어. 이 녀석 데리고 가."


남쪽 땅은 캄보디아, 북쪽 땅은 라오스

메콩 강을 중심으로 남쪽은 캄보디아 영토, 북쪽으로는 라오스 영토이다. 사진 속 인물은 돌고래 포인트로 안내해준 라오스 청년.
 메콩 강을 중심으로 남쪽은 캄보디아 영토, 북쪽으로는 라오스 영토이다. 사진 속 인물은 돌고래 포인트로 안내해준 라오스 청년.
ⓒ 오상용

관련사진보기


계약 조건으로 가이드 비용이 포함돼 있어 THO 아저씨에게 함께 가자고 제안했지만, 아저씨는 귀찮은 듯 이곳까지 오토바이로 데려다 준 고등학생 나이로 보이는, 영어를 전혀 못하는 녀석을 배 한 쪽으로 태운다. 역시 그러면 그렇지. 녀석을 배에 태우고 잘 다녀오라며 해맑은 미소로 인사를 건네는 아저씨가 어찌나 얄미운지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아저씨를 향해 손으로 물을 뿌리며 인사를 대신했다.

고용한 메콩강을 가로질러 목적지로 가는 길. 넝실넝실 춤을 추는 물길과 강 사이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그야말로 포근한 자연 느낌이다. 배가 그렇게 좋지 않아 가끔 안쪽으로 물이 들어오는 것을 제외하고는 따듯한 햇살과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으로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국경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라오스, 캄보디아 국경. 물 수위가 낮아지면 수심이 낮은 지역은 육로로도 이동이 가능하다고 한다.
 국경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라오스, 캄보디아 국경. 물 수위가 낮아지면 수심이 낮은 지역은 육로로도 이동이 가능하다고 한다.
ⓒ 오상용

관련사진보기


"캄보디아, 캄보디아."
"응? 저쪽이 캄보디아라고?"
"네, 네."


주변 자연경관에 빠져있는데 가이드로 따라온 녀석이 강 맞은 편을 가리키며 저쪽은 캄보디아라고 이야기한다. 배의 위치로 봤을 때는 라오스 육지보다 캄보디아 육지가 더 가까운 위치. 나중에 아저씨를 통해 듣게 된 사실로는 강을 사이로 남쪽 육지는 캄보디아이고 오른쪽 육지는 라오스 땅으로 구별돼 있지만, 현지인들은 아무렇지 않게 배를 이용 두 국가를 왕래한단다. 물론 약 10km 떨어진 곳에 국경이 있어 정식 입출국을 위해서는 국경을 아주 가끔은 국경을 이용한다고 했다.

지난 여행 때 동남아는 물론 남미, 아프리카 일부 나라에도 강 또는 육로로 국경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 것을 여러 번 본 적이 있어 이해할 수 있었지만, 처음 표시 없는 국경을 봤다는 일행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1초만 볼 수 있었던 라오스 돌고래 투어

돌고래 포인트에서 물 위로 올라오는 돌고래를 기다리는 여행자들.
 돌고래 포인트에서 물 위로 올라오는 돌고래를 기다리는 여행자들.
ⓒ 오상용

관련사진보기


어찌 됐든 캄보디아와 라오스 국경을 오가며 도착한 돌고래 관찰 포인트. 포인트라고 해봤자 강 중간에 우뚝 솟아오른 바위가 전부지만, 많은 관광객이 자주 찾는지 이미 발 빠른 여행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고, 배를 몰고 온 청년은 익숙한 듯 바위틈 사이로 배를 고정하고 안전하게 바위 위로 안내를 해줬다.

"하이, 돌고래 보여?"
"하이, 아직 못 봤어."


강 중간 우뚝 올라선 바위에 자리를 잡고 모두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 사이로 조심히 비집고 들어가 낚시를 하러 가면 이곳에 고기가 많은 지 물어보듯 먼저 온 여행자들에게 상황을 물어보는데 대답이 영 시원치가 않다.

한참을 바라보는데 돌고래는커녕 강물에 빛이 반사돼 눈을 뜨고 있기도 어렵다. 정말 이 포인트에서 돌고래는 보이는 것이 맞는지 의심이 들 때쯤 다른 방향을 보고 있던 여행자들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서둘러 고개를 돌렸을 때는 아쉽게도 이미 상황은 끝난 상태였다. 

저 곳 어딘가로 돌고래가 나타난다. 쉽게 볼 수 없지만, 그곳에서 바라본 메콩강의 풍경은 정말 아름답다.
 저 곳 어딘가로 돌고래가 나타난다. 쉽게 볼 수 없지만, 그곳에서 바라본 메콩강의 풍경은 정말 아름답다.
ⓒ 오상용

관련사진보기


작은 희망이라도 있으면 포기하지 않는 한국인의 근성. 오늘 기필도 보고 말겠다는 다짐을 하고 눈을 좌우로 돌려가며 최대한 많은 범위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몇 번이나 내가 본 반대 방향에서 돌고래를 보았다는 여행자의 함성은 계속 터져 나왔다.

같은 곳에 있으면서 계속 실패만 하는 것이 안타까웠는지 이곳으로 안내해준 청년이 다가와 유심히 강을 살펴보고 한쪽을 가리키며 예상 포인트를 지목해줬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곳만을 바라보는 것뿐. 이후에도 몇 차례 여행자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지만 나는 모든 것을 한곳에 집중하고 단 1초도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오, 봤어? 봤어?"
"엥? 저게 돌고래야?"

눈이 빠질 정도로 함께 한 곳을 응시하던 동행이 영화 속 물 위로 점프를 하는 돌고래를 본 듯 난리가 났다. 내 눈에 보인 것이라고는 돌고래인지 아니면 물고기인지 알 수 없는 해양 생물체가 물 위로 살짝 올라왔다 1초 만에 사라진 것이 전부인데 말이다.

돌아가는 길. 아쉽게도 돌고래 전체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돌고래가 살고 있는 메콩강의 아름다움은 가슴 가득 세겨놓았다.
 돌아가는 길. 아쉽게도 돌고래 전체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돌고래가 살고 있는 메콩강의 아름다움은 가슴 가득 세겨놓았다.
ⓒ 오상용

관련사진보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 여행자들에게 물어보니 내가 본 것이 멸종 위기에 처한 이와라디 돌고래가 맞다는 것이다. 내가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들이 돌고래라고 믿고 싶은 건지 정답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물살을 가로지르며 헤엄을 치고 물 위로 고개를 내밀며 인사를 건네는 이와라디 돌고래는 나만의 상상속에서만 볼 수 있었던 모습이었던 것이다.

이후 20분 정도를 더 그곳에 머무르며 눈과 사진으로 이와라디 돌고래를 담고 싶었지만, 결국 실패를 하고 말았다. 배를 타고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길. 혹시나 카메라에 이와라디 돌고래가 찍었을지 몰라 사진을 살펴 보았지만 그곳에도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자세히 보지 못한 아쉬움으로 더욱 기억에 남는 이와라디 돌고래. 결국, 라오스 여행이 끝난 뒤 인터넷을 통해 보게 됐지만, 재미있게도 이와라디 돌고래는 실제로 본 것보다 더 실감 나게 내 마음에 담아놓은 메콩강을 헤엄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2009년 10월 02일부터 10월 14일, 2011년 6월 10부터 6월 21일까지 다녀온 여행입니다. 이 기사는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라오스여행, #여행, #돌고래, #국경, #추천여행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