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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통합당 임채정 중앙선관위원장이 26일 울산 경선 투표결과를 발표한 뒤 연단을 내려오고 있다. 왼쪽은 이해찬 대표.
 민주통합당 임채정 중앙선관위원장이 26일 울산 경선 투표결과를 발표한 뒤 연단을 내려오고 있다. 왼쪽은 이해찬 대표.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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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순회 경선 개회를 선언합니다."

민주통합당 임채정 선거관리위원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단상 앞은 아수라장이 됐다. 대선 경선에 나선 4명 후보의 합동연설회 없이 대의원 투표를 하겠다는 당 선관위의 방침에 거센 항의가 시작된 것이다. 폭력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울산 지역 경선이 열리던 종하체육관에는 "이해찬 나와라", "이게 선거냐"고 항의하는 이들의 고성으로 가득 찼다. 오직 문재인 후보 지지자들만이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경선 승패에 대한 깨끗한 승복과 다음 경선에서의 선전을 다짐하는 자리여야 할 순회 경선의 제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대선 관리 실패, 민주당 지도부의 무능

민주통합당 임채정 중앙선관위원장이 26일 울산 경선을 강행하자 손학규-김두관-정세균 후보의 지지자들이 연단에 몰려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민주통합당 임채정 중앙선관위원장이 26일 울산 경선을 강행하자 손학규-김두관-정세균 후보의 지지자들이 연단에 몰려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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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경선 관리에서 드러난 지도부의 무능으로 민주당의 대선 레이스가 초반부터 불공정 시비로 얼룩졌다. 대선후보 경선 파행이 현실화하면서 공정한 경선 관리가 최대 임무였던 이해찬 대표의 리더십에도 큰 타격이 불가피하게 됐다. 

민주당이 야심차게 준비한 국민참여경선(오픈 프라이머리)은 모바일 투표가 핵심이었다. 하지만 준비 부족으로 경선이 시작하기도 전에 사고가 발생했다. 박준영 전남지사가 후보에서 사퇴해 총 후보자 수가 4명으로 줄었지만 모바일 투·개표 프로그램을 수정하지 않아 24일 제주지역의 개표 과정에서 오류가 생긴 것이다.

후보자 수를 5에서 4로 줄이면 해결될 단순 실수로 인한 오류로 판명나면서 '해프닝'으로 마무리 됐지만 초보적인 실수로 인해 당의 경선 관리 능력에 대한 신뢰에는 금이 갔다.

모바일 투표 방식의 불공정을 둘러싼 논란도 불거졌다. 본인 인증을 하고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선택했음에도 중간에 전화를 끊으면 '기권'으로 처리되는 투표 방식을 택했으면서도 '주의 사항'에 대한 안내는 부족했던 게 발단이었다.

선관위가 밝힌 자동응답 멘트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누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기호 순으로 불러드리는 후보의 이름을 모두 들으신 후 그중 한 명의 후보만 선택해주시고 투표 결과를 반드시 확인해 주세요"라는 게 전부였다. 그 어디에도 "투효 확인을 하지 않을 경우 투표가 무효가 된다"는 식의 명확한 메세지는 없었다.

선거시행 세칙이 정해진 후 후보자 기호 추첨이 이루어졌지만 공교롭게도 문재인 후보가 기호 4번이 되면서 문제의 씨앗이 뿌려졌다. 모든 후보들이 사활을 걸었던 제주의 투표율이 예상을 밑도는 55.33%를 기록하면서 기호 1번 정세균, 기호 2번 김두관, 기호 3번 손학규 후보를 찍었던 표가 대거 무효처리 됐을 것이라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기호 4번인 문 후보 지지자들은 전화 음성을 끝까지 듣고 투표를 할 수 있었고, 기호 1,2,3번 후보들의 경우 지지 후보가 호명되면 바로 투표를 하고 전화를 종료한 경우가 많아 무효표가 대거 생겼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세 후보가 모바일 투표 방식 수정을 요구하며 경선 불참을 선언해 26일 울산 경선은 후보자 없는 선거로 전락하고 말았다.

경선 준비도 허술, 사태 수습도 오락가락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에 나선 손학규-김두관-정세균 세 후보가 모바일투표 방식을 문제삼으며 불참해 26일 울산 경선은 파행을 빚고 있다.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에 나선 손학규-김두관-정세균 세 후보가 모바일투표 방식을 문제삼으며 불참해 26일 울산 경선은 파행을 빚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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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를 수습하는 당 지도부의 태도도 오락가락했다. 울산 경선이 열리기 3시간 전만해도 당 선관위의 입장은 제주와 울산 지역 모바일 투표에 대한 재투표는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비문' 후보들의 반발이 커지고 경선 불참이 현실화하자 입장을 바꿨다.

재검표를 통해 무효로 처리된 선거인단의 재투표를 실시하기로 했다. 모바일 투표 진행시 무효표를 막기 위해 "후보자 이름을 끝까지 듣고 투표한 후 투표 확인을 하지 않으면 무표가 된다"는 문구도 넣기로 했다. 하지만 '비문' 후보들의 요구였던 모바일 투표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는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불과 2시간 후에 모바일 투표 방식도 바꾸기로 또 입장을 바꿨다. 모바일 투표시 후보자의 이름을 호명하는 순서를 기호순으로 하는 게 아니라 무작위(랜덤) 순으로 하기로 했다. 비문 후보들의 요구를 또다시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한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후보자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모습으로 볼 수도 있지만 경선 룰에 대한 지도부의 방침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것은 제대로 된 대응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당 선관위의 과욕도 불공정 시비를 불렀다. 합동연설회 방식을 후보자 연설뿐 아니라 프리젠테이션과 찬조 연설을 허용하는 쪽으로 개선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다가 역풍을 맞았다. 후보자들의 연설로만 채워지는 단조로운 합동연설회를 좀 더 다채롭게 꾸미겠다는 의도였지만 대중 연설에 약한 문재인 후보를 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오해를 샀다.

또 지난 23일 열린 첫 방송토론회에서는 청중과 패널 질의라는 새로운 코너를 도입했지만 유독 손학규 후보에게만 가장 날카로운 질문들이 쏟아져 편파성 논란이 일었다. 결국 잦은 오해와 해프닝이 겹치면서 당 지도부와 선관위의 경선 관리 공정성에 대한 의지가 의심을 받게 됐다.   

신뢰 위기 부른 선관위의 과욕... 당 지도부 책임론 고개

손학규·김두관·정세균 후보 측과 당 선관위는 모바일 투표 룰 결정 과정을 놓고 진실 게임까지 벌이고 있다. 후보들은 모바일 투표 자동응답 안내 멘트에 "끝까지 듣지 않으면 투표가 무효가 된다"는 문구를 넣자는 후보자들의 주장을 당 선관위가 묵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선관위 측은 후보 측 대리인을 모아놓고 투표 시연까지 했고 합의로 룰을 만들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진실은 가려지지 않았지만 경선 룰을 만드는 과정의 관리 부실이 드러나면서 이해찬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지적이 고개를 들고 있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후보자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해 공정한 룰을 만드는 게 대선 관리 임무를 맡은 당 지도부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 아니냐"며 "1차 방어선에서 구멍이 뚫린데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처리과정도 매끄럽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해찬 지도부의 경선 관리는 이미 낙제점을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감동 드라마 만들겠다"던 이해찬, 결과는 막장 드라마?'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에 나선 손학규-김두관-정세균 세 후보가 모바일투표 방식을 문제삼으며 26일 울산 경선이 파행을 빚자, 이해찬 대표가 굳은 표정으로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다.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에 나선 손학규-김두관-정세균 세 후보가 모바일투표 방식을 문제삼으며 26일 울산 경선이 파행을 빚자, 이해찬 대표가 굳은 표정으로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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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선 파행으로 후보자들도 큰 상처를 입었다. 제주·울산에서 2연승으로 기세를 올린 문 후보가 챙긴 것은 상처뿐인 영광이라는 평가다. 경선 보이콧을 주도했던 손학규·김두관 후보는 경선 시작 전에는 경선 룰에 수긍했다가 경선 결과가 불리해지니 말을 바꿨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게다가 손학규·김두관·정세균 후보는 선관위원 교체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경선에 계속 불참하겠다고 버티고 있어 자칫 경선 파행이 장기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해찬 대표는 지난 6월 9일 당 대표에 당선된 직후 기자회견에서 "대선후보 경선을 많은 국민이 참여하는 축제로 만들어 우리 당 후보를 만들고 당 밖의 후보와도 감독적인 드라마를 만드는 경선을 거쳐 본선에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불과 두번의 지역 순회 경선을 치르고 민주당은 '감동 드라마'와 거리가 먼 '막장 드라마'를 만드는 처지가 됐다. 물론 경선 판 자체를 깨자는데 동의할 후보는 없다는 점에서 어떻게든 정치적 합의점 찾을 것이라는 게 당내의 지배적 의견이다. 그러나 경선이 정상화된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경선 흥행 실패, 당 후보 경쟁력 약화는 눈 앞에 닥친 걱정 거리다.

수도권의 한 중진 의원은 "범야권의 대선주자로서 강력한 경쟁력을 가진 안철수 원장을 염두해 둔다면 민주당 대선 경선은 후보들의 경쟁력을 키우는 과정이 돼야 한다는 게 상식 아니냐"며 "안 그래도 우리 후보들이 안 원장에 뒤쳐져 있는데 누가 최종적으로 대선 후보가 되든 모래 주머니를 다리에 차고 쫓아가는 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태그:#민주당, #이해찬, #대선 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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