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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목걸이 만들어 고추 말리기
▲ 고추목걸이 고추목걸이 만들어 고추 말리기
ⓒ 김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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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 30여 개의 고추 모종을 주말농장에 심어놓고 주말마다 농장으로 향했다. 5cm 정도 되는 어린 모종을 감귤농장 자투리 땅에 심을 즈음 봄 가뭄이 계속됐다. 심은지 일주일 후, 고추밭에 가보나 벌써 서너 개는 말라 죽어 가고 있었다.

때문에 아침 출근길에 8km나 되는 주말농장을 가서 고추밭에 물을 주고 출근하곤 했다. 남편은 "30개 심어놓고 얼마나 수확을 하겠느냐"고 핀잔을 줬다. 사실 두 식구 사는데 풋고추는 얼마나 먹을 것이며, 또 과연 빨간 고추를 얼마나 수확할 수 있을까.

더욱이 지난해 고추를 심어 놓고 탄저병 걸리고 벌레들한테 빼앗겨 모조리 말라죽었으니, 올해 고추를 도전 한다는 것은 무리다. 올해도 고추를 수확하기는 장잠하지 못할 것을 뻔히 알고 있는 사실.

하지만 내 열정에 하늘도 도왔는지, 고추 모종은 그럭저럭 자랐다. 한 달이 지나니 하얀 고추꽃이 폈다. 일주일 후 주말농장에 가니 손가락만하게 자라나는 풋고추가 나를 반겼다. 행복했다. 너무 성급한 나머지 나는 풋내 나는 고추를 따서 된장에 찍어먹기도 했다.

2번의 태풍으로 쓰러진 고춧대
▲ 태풍에 쓰러진 고춧대 2번의 태풍으로 쓰러진 고춧대
ⓒ 김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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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갈수록 고추는 쑥쑥 자랐다. 그런데 아뿔싸! 지난 달엔 두 번의 태풍이 몰아쳤다. 물론 고춧대는 모조리 쓰러져 이파리는 바람에 날라갔다.  이른 새벽 출근길에 달려가서 고춧대를 세워 주곤 했다. 이파리는 바람에 날라갔지만, 그 와중에도 익은 고추가 있었다.

하지만 맘 고생은 이게 끝이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붉게 익어가는 고추는 탄저병에 걸려 반은 물러 떨어지고, 반은 벌레가 먹어버렸다. 얼마나 수확을 할 수 있을지 보람보다 걱정이 앞섰다. 이런 걱정하려고 주말농장에 고추 심은 건 아닌데... 돈으로 치면 얼마 되지도 않는데 애간장만 태웠다.

그런데도 태풍에도 이겨낸 익은 고추가 남아 있었다. 요놈들 벌겋게 익어가는 것을 보니  내 마음은 흥분상태. 심장이 뛰었다.

고추를 따니 바구니에 한가득이다. 모기가 달려 드는지도 모르고 고추 수확을 했더니 팔이며 다리며 고추처럼 빨갛게 물들었다. 초보 고추 농삿꾼의 고통이다.

주말농장하는 사람들은 부지런해 한다. 고추를 따긴 했는데 말리는 일이 걱정. 아파트에 사는 내가 어디에 고추를 말려야 할지 걱정이다. 하는 수 없이 반은 카터기로 갈아서 생고추가루로 먹기 위해 냉동실에 보관했다. 올해에는 이 갈은 고추 넣고 열무김치를 담가먹을 요량이다.

태풍 이겨낸 고추들은 건고추가 될 수 있을까

실에 꿰어 베란다에서 말리기
▲ 실에 꿰맨 고추 실에 꿰어 베란다에서 말리기
ⓒ 김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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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고추말리기
▲ 고추목걸이 나만의 고추말리기
ⓒ 김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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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반은 고추를 실에 꿰어 배란다에 매달아 놓고 말릴 계획이다. 베란다 빨랫대에 대롱대롱 달려 있는 고추를 보니 한 폭의 그림 같다.

첫 수확인 만큼 애착이 가고, 고추를 물로 세척하고 물기를 행주로 닦아내고, 실에 하나씩 꿰는 작업도 만만치 않다. 자식 기를 때 이만큼 정성을 들였나 싶기도 하다.

가을 초입, 발코니 창문으로 바람이 솔솔 불어온다. 실에 매달린 고추들도 덩달아 춤춘다. 일주일후면 건고추로 변할 수 있을까. 기대된다. 이 풍경, 바라만봐도 행복하다.

두 번의 큰 태풍을 맞고 쓰러진 고춧대의 고통이 있었지만, '고추 목걸이'에는 희망이 보인다.


태그:#고추말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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