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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캠프에서 바라본 킬리만자로 정상 모습. 가까이 다가서 보면 만삭의 부인이 아이를 낳기 위해 누워있는 모습이다
 시라캠프에서 바라본 킬리만자로 정상 모습. 가까이 다가서 보면 만삭의 부인이 아이를 낳기 위해 누워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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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 등정 도전에 나선 일행은 31명이다. 전국에서 희망자들이 모인 집단이라 직업이 각양각색이다. 산악인, 의사, 교수, 기업인, 대학생, 종교인, 보험회사 직원, 교사, 주부, 직장인 등 다양하다.

그 중 가장 많은 분야가 의료계 종사자다. 6천 미터에 달하는 고산이라 가장 우려했던 일이 고산병이고 혹시 등정 도중 아프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약품과 주사기까지 들고 온 의사들이 있어 한시름 덜었다.

여행 신청할 때의 일이다. 나도 나이가 들었으니 혹시 나이가 제일 많아 일행을 못 따라 가고 뒤쳐져 눈치나 받는 천덕꾸러기가 되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했다. 하지만 자기소개를 듣고는 기우였다는 걸 알았다.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라 도전했다는 60~70대의 도전기

인천공항에서 케냐행 비행기를 타려는데 나이든 분이 내 옆자리다. 일행이라는 걸 알고 통성명을 하면서 나이를 물으니 77세란다.

"그 연세에 킬리만자로 도전이 겁나지 않으세요?"하고 묻자 "꼭 올라가 보고 싶어 도전했다, 못 올라가면 중간에서 기다리다가 합류하겠다"고 말했다. 젊었을 적 세계 여러나라를 돌아다녔던 그분은 3800m의 시라캠프까지 가고 힘들다며 포기했다.

탄자니아의 첫날밤 모시호텔에서 저녁을 먹고 자기소개를 시작하면서 나이도 알려줬다. 70대가 3명, 60대가 6명이다. 엄홍길 대장과 가이드를 제외하면 1/3이다.  요즘 직장 구하기가 힘들고 사는 게 힘들어 미리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헌데 60이 넘은, 아니! 70이 넘은 분들의 킬리만자로 도전은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내가 킬리만자로에 간다고 하니까 주위에서는 "그 나이에 돈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 죽고 싶냐!"고 말하던 사람도 있었다. 용기백배한 나는 그들의 사연을 기록했다.

정상으로 가는 길 도중에는 이렇게 무사 등정을 기원하는 탑들이 자주 보인다.
 정상으로 가는 길 도중에는 이렇게 무사 등정을 기원하는 탑들이 자주 보인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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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까지 올라간 일행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분은 손남호(72)씨다. 손씨가 등산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키가 별로 크지 않은 손씨는 한때 몸무게가 90㎏까지 되어 숨쉬기도 힘들었다. 그때부터 산을 다니면서 68㎏까지 내려갔고 3월에는 네팔에서 5500m의 산을 오르기도 했다.

대한산악연맹 등산학교 1기 졸업생인 윤만근(70)씨는 젊었을 적부터 산을 좋아했다. 포항제철 근무할 당시 포항산악회 총무도 지냈던 그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320m)를 오른 적도 있다.

조의제(69)씨는 이번에 아주 고생을 많이 했다. 첫날 등산 때부터 아주 힘들어해서 "괜찮으시냐?"고 자주 묻곤 했다. 하지만 등산 도중에 살아온 얘기를 들으며 인생에 관한 많은 걸 배웠다.  
60세가 넘어 킬리만자로에 도전한  노익장들.
 60세가 넘어 킬리만자로에 도전한 노익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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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으로 가는 길에 돌탑을 쌓는 이화자씨. 가족의 안위와 정상까지 무사히 올라갈수 있도록 빌었다고 한다
 정상으로 가는 길에 돌탑을 쌓는 이화자씨. 가족의 안위와 정상까지 무사히 올라갈수 있도록 빌었다고 한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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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나이 들었다는 생각이 안 든다"는 그는 20대 중반에 암벽타기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49세가 되던 어느 날 병원에서 진찰을 받다가 폐에서 종양을 발견했다. 수술을 받기 직전 의사가 "모든 걸 정리하라"는 최후통첩을 듣고는 하던 사업을 정리했다.

남아있는 폐 한쪽으로 5300m까지 등정한 후 고산병이 와서 중도에 포기했지만 "어쩔 수 없지 않으냐, 아쉽지만 받아들여야죠"라고 말하는 조씨에게서 인생에 달관한 모습을 보았다.

바라푸 캠프로 가는 길 70도 경사진 길이라 교통체증을 일으켰다. 발을 잘못 디뎌 굴러떨어지면 큰일난다
 바라푸 캠프로 가는 길 70도 경사진 길이라 교통체증을 일으켰다. 발을 잘못 디뎌 굴러떨어지면 큰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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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지만 20년이나 더 산 비결은 마음을 정리하고, 주변 산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올랐다는 것이다. 그는 산을 정복하려는 자세가 아닌 유유자적 하며 하루종일 산을 돌아다니다 저녁에 집에 돌아온다.

6·25전쟁 후의 험한 세상을 부산에서 지냈던 그는 "포터들이 20㎏ 이상의 짐을 이고 지고 산을 오르는 모습이 40년 전의 우리 모습과 닮았다. 그때 당시 먹을 게 없었던 우리도 일만 있다면 군말 없이 도시락까지 싸들고 와서 일거리를 달라"고 하던 때가 엊그제 같다고 한다.

4600미터의 바라푸 캠프가 가까워 지는 능선에 포터들이 짐을 머리에 이고 나르고 있다. 힘들게 이고 지고 가는 그들을 보면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그들이 없으면 일반인들은 정상 도전이 힘들것 같다.
 4600미터의 바라푸 캠프가 가까워 지는 능선에 포터들이 짐을 머리에 이고 나르고 있다. 힘들게 이고 지고 가는 그들을 보면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그들이 없으면 일반인들은 정상 도전이 힘들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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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지고 나르던 포터가 잠시 쉬는 틈을 타 쓰러져 자고 있다
 짐을 지고 나르던 포터가 잠시 쉬는 틈을 타 쓰러져 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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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엔진 변속기 개발업을 하는 김정규(65)씨는 "결혼하면서 아내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왔다"고 했다. 당시 조용필씨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들으면서 킬리만자로에 보내주기로 약속했다. 그는 아내 이화자(61)씨와 동행해 정상까지 올랐다.

사업 때문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술을 마셨던 그가 산에 빠지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이웃에 사는 동갑내기가 작년에 안나푸르나에 갔다 왔는데 올해는 에베레스트를 가겠다며 떠나기 60일 전에 같이 가자고 통보해 멋모르고 도전했다. 부인 이화자씨의 얘기다.
 
무거운 짐을 이고도 진공관 라디오를 들으며 흥얼거리는 포터. 뒤에 진공관 라디오가 보인다
 무거운 짐을 이고도 진공관 라디오를 들으며 흥얼거리는 포터. 뒤에 진공관 라디오가 보인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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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파타르(5550m)까지 얼떨결에 올라갔어요. 킬리만자로를 성공하면 자신감과 성취감을 느낄 것 같아요. 제 다리는 관절염 수술, 발목수술을 해 성치 않아요. 의사는 3㎏이상을 줄이라고 했는데 아무리 줄이려고 해도 안됐던 체지방이 에베레스트 갔다 오고 나서 한방에 해결됐어요"

여유가 있을 때 여행 가려고 하면 평생 못 가

"이번이 마지막 등산"이라고 부인한테서 협박을 당했다는 유현종(65세)씨는 "트레킹이 좋은 것은 그 기간 동안 자유와 여유, 고독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여행을 시작한 것은 친한 친구가 "시간이 있어서 여행 갈려고 하면 평생 못 간다.  여유자금이 있어서 여행 가려면 평생 못 간다"는 말을 듣고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내 텐트메이트인 황우상(65)씨는 해난사고를 감정해주는 회사에서 근무하다 퇴임해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은 등산을 하지만, 은퇴하고 나니까 건강관리가 더 중요해져 한국트레킹학교를 다니면서 등산화 매는 법, 배낭 매는 법, 스틱 쓰는 법 등의 기초교육을 배웠다.

적도의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자이언트 세네시아. 수명이 120년으로 죽은 잎은 추위로 부터 줄기를 보호하기 위해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다
 적도의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자이언트 세네시아. 수명이 120년으로 죽은 잎은 추위로 부터 줄기를 보호하기 위해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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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암센터 신치료기술개발 사업단장을 맡은 권병세(65)씨는 미국 튜레인(Tulane) 대학 의대에서 면역학 교수로 재직하다 국내에서 근무 중이다. "앞으로 극한 상황에서 봉사활동을 할 계획이라서 아프리카도 미리 보고 배울 겸해서 등정에 동행했다"고 한다.

"한 번의 폭발로 이렇게 거대한 산이 형성되었다, 자연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를 생각했고 교만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그는 "등산을 하면서 많이 배웠다"고 한다.

뒷동산만 바라보고도 "저걸 어떻게 올라가, 차 타고 가지"하는 세태를 거스르는 노장의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과 '문화촌뉴스'에도 송고합니다



태그:#킬리만자로 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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