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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주년 광복절인 15일 낮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앞에서 열린 제1,035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을 형상화한 '위안부 소녀상'에 빗물이 '눈물'처럼 고여 있다.
▲ '눈물' 고인 '위안부 소녀상' 제67주년 광복절인 15일 낮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앞에서 열린 제1,035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을 형상화한 '위안부 소녀상'에 빗물이 '눈물'처럼 고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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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는 피켓을 든 여중생들이 폭우속에 맨발로 참석하고 있다.
▲ 맨발의 여중생들 "일본은 사죄하라"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는 피켓을 든 여중생들이 폭우속에 맨발로 참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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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비에 흠뻑 젖었지만 "일본 정부는 사죄하라"고 외치기에는 문제가 없었다. 서울에 호우주의보가 내린 제67주년 광복절은 수요일이었다. 이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1035번째로 서울시 종로구 중학동의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섰다.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대표로 마이크를 잡은 김복동 할머니(87)는 "이런 일은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데, 20년이 넘도록 늙은이들이 거리에서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며 "이명박 대통령에겐 이런 말이 안 들리시겠죠?"라고 물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3·1절 기념사에서 취임 후 최초로 일본 정부에게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광복절 경축사에 이 내용이 포함된 것도 올해가 처음이다.

김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관계자들은 지난 1992년 1월 8일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집회를 열었다. 1995년 일본 고베 대지진 때 딱 한 번 집회를 취소했을 뿐, 20년 동안 할머니들의 수요일 낮 12시 약속장소는 늘 일본대사관 앞이었다. 그 사이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234명에서 60명으로 줄었다. 이날 수요집회는 낮 2시께까지 계속됐다.

하지만 할머니들 곁에 선 사람들은 조금씩 늘어났다.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낮은 목소리>를 만들었던 변영주 감독은 이날 "1992년만 해도 수요집회 참석자는 여성단체 관계자 몇 명이 전부였는데, 지금처럼 젊은 친구들이 많은 모습을 보니 할머니들(의 싸움)은 성공했다"며 웃었다.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기억하게 됐기 때문이다.

수요시위에 참석한 김복동 할머니 주위에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는 피켓을 든 학생들이 둘러 서 있다.
 수요시위에 참석한 김복동 할머니 주위에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는 피켓을 든 학생들이 둘러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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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의 '위안부 소녀상'옆에 신발이 놓여져 있다.
 맨발의 '위안부 소녀상'옆에 신발이 놓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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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생 300여 명 참석... "젊은이들 많아진 걸 보니 할머니들 성공했다"

같은 학교 친구 50명이 함께 집회에 온 김동환(18·경기도 부천시 원종고 2년) 학생은 "집회 현장에 와보니 마음이 찡하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쉼터 '나눔의 집'을 후원하고 있어 수요집회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그가 직접 참가한 것은 이날이 처음이란다. 김동환 학생은 "앞으로도 틈틈이 집회에 참석하겠다"며 "외국인까지 와서 일본에게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는데 한국 정부는 너무 소극적"이라고 비판했다.

서울에 사는 40대 중반의 외국인 선교사 패트릭 커닝햄씨는 "오늘이 한국의 독립기념일(광복절)이어서 수요집회에 나왔다"고 말했다. 평화·반전운동가로도 활동하는 그는 지난 7월 제주 해군기지 반대 캠페인에 참여하기 위해 강정마을에도 다녀왔다. 커닝햄씨는 "제주도에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었다"며 "전쟁에선 늘 성노예 피해자가 발생하는 만큼, 하루빨리 전쟁 없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고 이야기했다.

일본의 사죄를 촉구하는 여학생들.
 일본의 사죄를 촉구하는 여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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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미·장소연(16·서울시 신목중 3년) 학생은 방학 전 학교 역사 선생님에게 '광복절에 수요집회에 나가자'는 제안을 받았다. 방학한 지 3주가 지났는데도 약속을 지키게 된 이유는, 일본 정부가 여전히 할머니들에게 사죄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기사를 읽었기 때문. 이찬미 학생은 "일본 정부가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길 기다리는 것 같아 보인다, 비인간적이다"라며 "일본 정부는 할머니들의 피해를 보장하고 사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집회에는 신목중학교 학생 약 240명이 함께했다.

거센 빗줄기 속에서도 참가자 600여 명(경찰 추산)은 자리를 지키며 ▲ 전쟁범죄 인정 ▲ 진상규명 ▲ 공식사죄 ▲ 법적배상 ▲ 책임자 처벌 ▲ 역사교과서에 기록 ▲ 추모비와 사료관 건립 등 할머니들의 일곱 가지 요구사항을 외쳤다.

같은 날(현지시각) 일본의 도쿄, 미국 워싱턴과 대만 타이베이 등 다른 나라에서도 연대집회가 열렸다. 현지 참가자들은 할머니들에게 지지와 연대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집회가 끝날 때까지 주한일본대사관의 철문은 열리지 않았다.


태그:#수요집회, #일본, #위안부, #정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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