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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머사회
 루머사회
ⓒ 흐름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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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에게 선거는 참으로 안타까운 시간이다. 시대정신으로서 선거의 의미는 당대에 집중된 사회적 문제를 환기하면서 이에 대한 해결 방안을 고르는 정책 마켓이자 인물 마켓이다. 물론 현실에서 이렇게 가는 경우는 드물다. 선거일이 임박하면 그나마 회자되던 정책들이 급격히 실종되고 네거티브가 기승을 부린다. 네거티브 공격을 받은 후보 측은 다시 네거티브로 역공을 한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도 역시 그랬다.
17대 대통령 선거는 참혹한 수준이었다. 선거가 끝날 때까지 BBK 이슈가 거의 모든 '말'들을 이끌었다. 그리고 가히 "지지 천국, 반대 지옥"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한국 사회가 극단적으로 양분된 채로 5년을 보냈다. 이런 불 같은 갈등상황에 '루머'는 기름 역할을 했다.

개인적으로 영국이 참 부럽다. 매니페스토가 활성화돼 있는 영국은 각종 선거에서 정당이 만든 정책공약집이 유권자들에게 1000만 부 이상 유료로 판매된다. 파는 사람도 대단하고 사가는 사람도 대단하다.

최근 반가운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대통령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각 후보들이 자신의 정책이나 비전을 책으로 출간해서 펴내는 문화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정책집은 손학규의 <저녁이 있는 삶>(폴리테이아)이다. 매력적인 시적 비유이면서 시대정신을 잘 담아냈다.

안철수의 <안철수의 생각>(김영사)과 김두관의 <아래에서부터>(비타베아타)는 정책집보다는 '인물론'에 가깝지만, 책을 통해 대중과 합리적인 토론을 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대선에 즈음하여 눈에 띈 책은 <루머사회>(흐름출판)다. 적절한 시기에 출간되었다고 생각하는데, <루머사회>는 루머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통되는지 사회학과 심리학의 관점에서 분석한 책이다다. 지은이인 니콜라스 디폰조 박사(사회 및 조직심리학)는 세계 최고의 루머 전문가로 유명하다. 루머와 관련된 논문만 수십 편에 이를 정도로 루머에 매진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대선이나 지방선거에 대한 루머 사례 분석이 인상적이다.

실질적으로 루머가 선거를 이끌어온 우리 사회에서 중요하게 다뤄질 수밖에 없는 주제다. 루머가 만들어지는 동기와 과정, 그리고 대응 방법까지 담아냈기 때문이다.

루머가 자라나는 최적의 환경 "MB정권"

루머의 관점에서 봤을 때 MB 정권은 처음부터 끝까지 루머와 함께할 수밖에 없었다. 현 정권의 스타일이 루머를 양산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루머는 애매모호하거나 위협적이거나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사회에서 탄생한다. 권위주의적인 정권에서는 각종 루머가 들끓을 수밖에 없다. 루머는 일종의 의심이기 때문에 충분한 설명과 대화가 이루어진다면 자연스레 사라진다. 루머가 이처럼 막강한 힘을 갖는다는 것은 기본적인 대화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소문의 정확성 역시 마찬가지다. <루머사회>에 따르면 소문의 정확성이 결정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진위 여부를 확인하려는 동기가 있고, 소문 확인이 가능한가에 달려 있다고 한다. 거꾸로 말하면 정확성에 대한 동기가 없고, 소문 확인이 불가능한 집단에서 공유하는 소문은 별로 신뢰할 만하지 않다.

천안함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합리적 의심에 대해서 정부는 '애국심'을 문제삼으며 강압적으로 사건을 덮으려고 했다. 합리적 의심을 막으면 비합리적인 의심의 쓰나미를 맞게 된다.

정봉주 전 의원의 구속 수감은 가장 강력한 상징이다. BBK 저격수로 나선 정봉주 전 의원의 문제제기는 근거를 갖추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탄압을 피해갈 수 없었다. 미네르바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이 사건으로 인해 '루머'가 공식석상에서 대거 사라졌지만, 자리를 이동한 것일 뿐 루머는 더욱 강력해졌다. 음해와 중상모략과 합리적인 의심이 구분되지 않고 비공식적인 말의 길을 따라서 대규모로 유포되고 있다.

루머도 메시지다

미디어 이론가인 마셜 매클루언은 <미디어의 이해>에서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루머' 역시 메시지다. 루머를 퍼뜨리는 사람과 이를 퍼뜨리는 사람의 동기가 분명하며, 루머 자체의 존재의 이유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루머라는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다. 루머의 내용 자체에만 몰입하다가는 루머가 주는 진짜 의미를 보지 못할 위험이 있다. 루머에서 중요하게 다뤄할 것은 루머를 실어 나르는 사람들의 감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루머를 지지하지 않는다면, 루머의 대상에 대한 증오를 품지 않는다면 루머는 살아남을 수 없다.

때문에 루머가 사실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부차적인 문제이며, 중요한 것은 루머 안에 해당 문제나 사람에 대해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입장이다. 루머 속에 담긴 의미를 재빨리 파악하는 사람은 루머에게 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만약 자신과 관련된 루머가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루머사회>에서는 루머가 나타나게 된 배경이나 원인 등 복합적인 사정을 뿌리에서 훑어봐야지, 요점만 달랑 살펴보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그때부터 '진짜 루머'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고 경고한다. 즉, 자신의 대응이 담기지 않은 앞의 루머는 무서울 게 없지만, 루머에 대응하고 나서 만들어지는 루머의 후폭풍이 진짜 무서운 것이다.


루머사회 - 솔깃해서 위태로운 소문의 심리학

니콜라스 디폰조 지음, 곽윤정 옮김, 흐름출판(2012)


태그:#루머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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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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