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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해도 괜찮아> 표지
 <욕망해도 괜찮아> 표지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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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춘향 옷을 벗기려 할제 넘놀면서 어른다. 춘향의 가는 허리 후리쳐 담쑥 안고 기지개 아드득 키며, 귀 뺨도 쪽쪽 빨고 입술도 쪽쪽 빨면서, 주홍 같은 혀를 물고 오색 단청 순금장안에 오고 가는 비둘기같이 끄끅 끙끄 으흥거려, 위로 돌려 담쑥 안고 젖을 쥐고 발발 떨며, 저고리 치마 바지 속옷까지 겨노니…. - <춘향전> 일부

영화 <은교>를 보았다. 노시인의 사랑 이야기 속에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이 잘 나타나 있었다. 그 외에 다른 욕망도 있었다. 돈 벌고 싶은 욕망,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 성공하고 싶은 욕망, 죽이고 싶은 욕망. 슬펐던 부분은 가장 강렬하고 순수한 욕망이 '하찮기만 한' 다른 사회적 욕망들에게 갇히는 모습이다. 우리 사회는 욕망을 함부로 드러낼 수 없다. 노시인 이적요가 여고생 은교에 대한 마음을 공표하지 못하는 것처럼.

지난 2년 동안 100명이 넘는 엄마들과 함께 육아와 독서활동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확인한 점은 엄마들이 아이에게 좀처럼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숙제해라", "학원 갔다 와라" 같은 말 속에는 엄마라는 주어도 없고, 엄마의 감정도 없다. 이렇게 욕망과 감정이 감춰진 사회는 매마르고 위험한 사회다.

건강한 몸의 욕망을 계속 억누르다보면 그 욕망이 뇌로 역류되어 '멘탈붕괴'를 불러온다
- <욕망해도 괜찮아>(창비), 146쪽


무감정과 무욕망의 사회에서 빛나는 증언자

작가 김두식의 서식지가 바로 무감정과 무욕망이다. 검사, 변호사, 기업인, 정치인, 교수, 언론인 등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지식인 층의 표정은 매우 근엄하다. 젊었을 적 연애 한 번 안 해봤을 것 같은 표정들을 하고, 감정과 욕망을 철저히 배제한 말들을 사용한다. 그래서 무척 위선적으로 느껴지고 '우습다'.

김두식은 법조인과 교수로서 이들 그룹에 포함돼 있지만 오히려 옆집 아저씨처럼 편안하고 친숙하며 솔직하다(고 인정받으려고 노력한다). <불멸의 신성가족>에서는 사법고시 합격자들과 마담뚜의 혼사 문제 등 '이너서클'의 이면을 다뤘고, <불편해도 괜찮아>는 인권의 문제 중에서 '불편한 부분'만 콕 집어서 일상적으로 풀어냈다.

<욕망해도 괜찮아>는 자신과 가족의 속사정까지 드러내면서 우리 사회의 주축이 된 40대 남성, 일명 '꼰대'들의 욕망 구조를 온전히 드러냈다. 김두식 작가를 볼 때마다 나는 도스토옙스키가 한 말이 생각난다.

법정의 기록은 어느 누구의 소설보다도 스릴이 풍부하다. 왜냐하면 예술이 손을 대기 꺼려하거나, 또는 겉으로밖에 손을 대지 않는 인간 영혼의 암흑면에 빛을 던져 밝혀 주는 것이 바로 그러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 도스토옙스키

법정의 일은 한 개인에게는 인생 전체가 걸린 어마어마한 일이다. 좀처럼 욕망을 드러내지 않는 사회에서 가장 강렬한 욕망이 숨어 있는 곳이 바로 법의 울타리 안이다. <욕망해도 괜찮아>에 나오는 스캔들과 학력위조 등은 법이 보여주지 않았다면 절대 보지 못했을 우리 욕망의 모습이다.

법률가 출신인 김두식의 입장에서 봤을 때 한마디로 '노다지'가 따로 없다. 그만큼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음지에 자생하는 욕망을 양지로 끌어올린 저자에게 칭찬을 해주고 싶다. 정녕 무감정과 무욕망의 사회에서 빛나는 증언자다.

'아저씨 심리학'으로 선을 넓혀보자

김두식 경북대 교수
 김두식 경북대 교수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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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대개 바르고 고운 말이 적혀 있다. 책에 욕을 쓰는 경우는 없잖아. 그래서 책을 오랫동안 읽었던 사람들은 본의 아니게 '위선'이 자라나게 된다(요 귀여운 녀석). 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욕망해도 괜찮아>를 함께 읽은 페이스북 친구들도 힘을 많이 얻었다고 말했다. 김세교씨는 "때론 공감하며 때론 뜨끔하며 읽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책을 "아저씨에 대한 심리학"이라고 이름지었다.

김성훈씨는 한마디로 "도대체 내게 왜 이러세요?"라는 농담으로 독서 후의 '대략 난감함'을 표현했다. 서정호씨는 <욕망해도 괜찮아>와 같은 책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우리 사회가 근엄함을 덜어낼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황순원의 <소나기>에 나오는 소년소녀와 같아야 한다는 '계'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자문에는 나도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특히 독자들을 매료시킨 한 구절은 "자신의 선을 넘는 것보다 넓히라"는 책의 메시지였다. 독자들로부터 '복음'처럼 다가왔다는 간증이 이어졌다. 이것을 통해서 자신의 감정이 훨씬 자유로워졌다고 평이다. 이 책을 통해 뉴스에 나오는 일에 대해서 통찰을 갖게 되었다는 사샤 김(Sasha Kim)씨는 "인생 즐겁게 살아야 하는데, 내가 만든 규범(계)에 갇혀 산다면 얼마나 재미없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김은자씨는 "내면의 색과 외면의 계가 잘 이루어져야 할 것 같아요"라는 말로 색과 계의 조화를 이루지 않고 쏠려 있지 않은 우리들의 모습을 짚었다. 내면의 색은 계속 억압당하고, 외면의 계는 거짓말을 강요당한 결과다. 직장인 이민규씨는 이 책을 통해 용기를 얻었다며 이렇게 느낌을 표현했다.

"내공이 부족해 넓게 생각은 못하지만 색이라는 민감한 부분을 아주 쉽고 솔직하게 표현해준 작가의 글에 후련함을 느꼈다. 나도 선 넘어볼까? 용기를 얻어봅니다."

김두식 지지자(?)들에게는 '실망해도 괜찮아?'

주변에 김두식 마니아들이 많이 있다. 그들에게 <욕망해도 괜찮아>를 읽고 난 느낌을 물었을 때는 실망스러운 반응이었다. 대개 '<불편해도 괜찮아>까지는 괜찮았는데, 그 다음에는 좀 약하다'는 느낌이다. 장재호씨는 자못 냉정한 평을 내놓았다.

"읽자마자 느낀 소감은 김두식 교수님의 독특함이 많이 무뎌졌다는 느낌입니다. 책 한 권 전체에 흐르던 전작들(영화를 통한 인권해석, 법조계의 비판)에 비해 이번 책은 다 읽고 나서 마땅히 떠오르는 주제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난잡(?)하다고 해야 할까요."

작가 김두식이 저변을 넓히는 과정에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성장통일 수도 있다. 이제는 대중의 김두식이 되었으니 지지자들도 슬슬 마음의 정리를 할 때가 되었을까. 이민규씨는 이 책을 중간까지 읽었을 때 "솔직히 뚜껑이 열릴 뻔했다"는 느낌을 전했다.

<욕망해도 괜찮아>는 욕망을 다룬 책이다 보니 저자의 이야기가 많이 들어 있다. 김두식은 자신을 '중간쯤 가는 가정'이라고 표현했는데, 독자들이 볼 때 모두 '잘나가는 사람들'이라는 게 이민규씨의 생각이다. 그는 "돈이 없어 대학도 못 가고 사회에서도 별 볼일 없는 일반 사람으로서는 이 내용이 그냥 자랑으로만 들렸다"라고 말했다. 구유리씨는 저자가 다루는 주제에 비해서 저자의 태생적 한계가 보인다는 점을 지적했다.

"어쩔 수 없는 '계' 안의 사람의 눈높이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여러 가지 사례와 경험담(어찌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가족사)이 조금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뭐 한 권의 책이 모든 이를 만족시켜줄 수는 없는 거니까. 이렇게 얘기해볼 수는 있겠다. 잘사는 집안이고, 제도권이라 말이 가지는 태생적 한계도 분명히 있는데 김두식은 왜 썼을까? 이야기는 맨 앞으로 다시 돌아간다. 우리 사회가 위선과 거짓말이 너무 만연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사회의 제도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위선적인 모습은 위험 수준을 넘어섰다.

나는 저자가 이 부분에서 위기의식을 느꼈을 거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이 책은 '윗물'의 이야기이지, '아랫물'의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윗물'을 각성시키고, '아랫물'에게 사정을 설명하는 역할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을 몸소 표현하려고 저자는 '감행'을 하지 않았을까? 저자에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오랫동안 저자를 읽어 온 '지지자'들을 잘 챙겨주기 바란다는 점이다.

덧붙이는 글 | * <욕망해도 괜찮아> 김두식 씀, 창비 펴냄, 2012년 5월, 312쪽, 1만3500원
* 이 글은 페이스북 소셜북스(www.facebook.com/socialbooks) 독자들과 함께 댓글놀이를 한 내용을 담은 '소셜리뷰(social review)'입니다.



욕망해도 괜찮아 - 나와 세상을 바꾸는 유쾌한 탈선 프로젝트

김두식 지음, 창비(2012)


태그:#김두식, #욕망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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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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