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산 하나를 두고 서쪽에 법천사가 있고 다른 쪽에 거돈사가 있다. 두 절터는 원주역사문화순례길로 연결되어 있다. 법천사터에서 찻길로 가면 20리 조금 안되고 산으로 넘어가면 10리 길이다. 찻길도 험하여 자작고개라는 큰 고개를 넘어야 당도할 수 있다.

정산리에서 왼쪽으로 물길 따라 10여 분 가면 읍성(邑城)과 같은 축대가 보이고 축대를 비집고 자란 1000년 묵은 느티나무가 이곳이 거돈사터임을 알린다. 포장이 돼서 지금은 쉽게 오가지만 예전 같으면 큰맘 먹고 와야 할 만큼 외진 곳이다. 근처엔 아무도 없다. 어디 먼 곳에 홀로 남겨진 묘한 기분이 든다.

거돈사터에서 법천사는 산 넘어 10리 길이다
▲ 거돈사터와 법천사 길 표지판 거돈사터에서 법천사는 산 넘어 10리 길이다
ⓒ 김정봉

관련사진보기


축대 가운데에 절터로 오르는 계단이 있다. 한 계단 오르면 삼층석탑의 상륜부가 보이고 그다음 오르면 몸돌이, 한걸음 더 옮기면 지대석과 함께 절터가 한 눈에 들어온다. 석탑과 산기슭에 서 있는 부도사이는 절터의 세월만큼이나 아득하다.

너른 터에 남아있는 유물이라곤 삼층석탑, 불대좌, 석축, 부도비 뿐이다
▲ 거돈사터 정경 너른 터에 남아있는 유물이라곤 삼층석탑, 불대좌, 석축, 부도비 뿐이다
ⓒ 김정봉

관련사진보기


석탑 뒤에 바로 금강터가 자리하고 그 위에 상처 입은 큰 바위덩어리기 앉아있다. 대불좌라는데 내 눈에는 그냥 화강암덩어리로 보인다. 심한 열로 일그러졌다고 전하여지는데 돌은 불보다 강한 법, 누군가에 의해 훼손된 게 아닌가 싶다. 절단면이 날카롭게 찍혀나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불대좌라 하나 그냥 화강암덩어리로 보인다. 이 절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 금강터 불대좌 불대좌라 하나 그냥 화강암덩어리로 보인다. 이 절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 김정봉

관련사진보기


금강터 뒤로는 문을 내고 회랑을 두른 흔적이 있고 강당과 전각을 건립한 터가 남아있다. 지대의 높이에 따라 석축을 쌓아 단을 만들고 층간에 계단를 두었다. 석축은 막돌을 허튼층 쌓기로 쌓았다. 잘 다듬은 돌을 바른층으로 쌓은 법천사와는 대우나 격이 좀 달랐을 거라 짐작된다.

발굴작업이 완료되어 그 흔한 풍년대도 자라지 않는다. 축대 맨 꼭대기에는 원공국사 부도의 모사품이 국립중앙박물관 야외 뜰에 있는 진품을 기다리며 애타게 서 있다.

제자리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 원공국사 부도 제자리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 김정봉

관련사진보기


부도는 팔가원당형으로 염거화상 부도의 정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지붕돌이 살짝 치켜 올라 중후한 멋보다는 경쾌한 맛이 난다. 탑신이 기단부의 중대석보다 길게 느껴지면서 위로 치켜진 지붕돌과 잘 어울린다.

부도의 주인인 원공국사는 천태학승으로 알려져 있다. 원공국사가 이 곳 거돈사에 찾아와 열반에 든 점을 감안하면 거돈사는 고려초까지 선문사원이었다가 종파를 바꾸지 않았나 생각된다. 후대 고려 문종의 넷째아들 대각국사의천이 우리나라에 천태종을 창종했을 무렵에는 거돈사는 천태종의 기반이 되는 사찰이 되었다.

거돈사가 언제 창건되었는지 알려진 자료는 없다. 다만 맨 앞에서 절터를 지키고 있는 삼층석탑만이 사력을 말해주고 있다. 상처받지 않고 온전하게 보전된 통일신라 시대의 탑으로 이 절과 거의 역사를 같이 한 것으로 추정된다. 불대좌와 대조적으로 이 석탑은 너무나 온전한 것이어서 이 절에 전쟁의 화마 외에 정치적인 소용돌이가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 보는데, 이 모두 상상에 맡겨야 한다. 

흙으로 단을 만들어 그 위에 탑을 세운 점이 특이하다. 석탑의 웅장함을 강조하기 위해 토단(土壇)위에 세운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토단 가운데엔 석탑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고 탑 앞엔 활짝 핀 연꽃이 조각된 배례석이 놓여있다. 뒷산을 배경으로 솟아있어 제법 당당해 보인다.

토단위에 세워진 점이 특이한데 너른 터에 왜소해 보이지 않기 위함이다
▲ 삼층석탑 토단위에 세워진 점이 특이한데 너른 터에 왜소해 보이지 않기 위함이다
ⓒ 김정봉

관련사진보기


석탑 옆에는 느티나무와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의자가 있다. 석탑과 부도비, 불대좌, 석축 그리고 멀리 부도탑까지 한 눈에 들어오니 이 의자에 앉아 절터를 감상하는 맛이 제일이다. 느티나무는 용이 용트림하듯 굵은 줄기가 뻗어 올랐다. 1000년 묵었다는데 석탑과 거의 나이가 같다. 살아있는 것과 생명력이 없는 석물이 온갖 시련을 견디며 공생한 점이 마음을 찡하게 한다. 석탑은 더 이상 죽은 석물이 아니라 살아서 스스로 생활해 가는 생물로 여겨진다.

1000세의 느티나무, 통일신라 적 삼층석탑, 모두 살아있는 생물체로 느껴진다
▲ 삼층석탑과 느티나무 1000세의 느티나무, 통일신라 적 삼층석탑, 모두 살아있는 생물체로 느껴진다
ⓒ 김정봉

관련사진보기


느티나무 아래 의자에 앉아 쉬고 있으면 눈길이 자연스럽게  멀리 있는 부도비로 향한다. 원공국사부도비다. 귀부의 거북등엔 이중으로 테를 두룬 육각형 안에 '卍'자와 우측으로 도는(右旋) '卍'자, '王'자와 연꽃무늬를 새겨놓았는데 무척 선명하다.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 원공국사 부도비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 김정봉

관련사진보기


좌선(左旋)하는 '卍'자와 우선하는 '卍'는 모두 길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좌선하는 것과 우선하는 '卍'이 동시에 나타난 것은 드문 경우다. 이 부도비에는 모두 좌선하는 '卍'자인데 한 개만 거꾸로 우선하는 '卍'가 있다. 고성 건봉사 홍예다리에 있는 돌기둥에 범어가 새겨져 있는데 여기에도 우선하는 것과 좌선하는 卍는자가 동시에 새겨져 있다. 건봉사와 원공국사부도비의 귀부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귀부의 등에는 王자와 좌선(左旋)하는 卍자가 새겨져 있는데 한 곳만 우선(右旋)하는 卍자가 새겨져 있다
▲ 원공국사 부도비 귀부 귀부의 등에는 王자와 좌선(左旋)하는 卍자가 새겨져 있는데 한 곳만 우선(右旋)하는 卍자가 새겨져 있다
ⓒ 김정봉

관련사진보기


탑비는 가늘고 탑몸이 이고 있는 이수는 다소 무거워 보인다. 이수부분은 두 마리의 용이 서로 견주고 있는 모습을 생생하게 조각해 놓았다. 거북의 용머리는 다른 귀부와는 확연히 다르다. 무섭고 용맹스럽게 보이는 다른 귀부와 달리 이 귀부의 용머리는 보는 방향에 따라 용으로도 보이고 양 혹은 원숭이로도 보인다.

용머리라 하나 양 같기도 하고 원숭이 같기도 하여 우습게 보인다
▲ 원공국사 귀부 용머리 용머리라 하나 양 같기도 하고 원숭이 같기도 하여 우습게 보인다
ⓒ 김정봉

관련사진보기


귀는 물고기 비늘모양으로 크게 조각해 놓았다. 전체적으로 귀엽게도 보이고 순하게 보인다. 원공국사의 성품이 그렇지 않았나 싶다. 불교의 대중화에 힘쓰는 한편 선불교를 배척하지 않은 채 천태학을 계승한 원공국사는 성품이 온화하고 배려심이 많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느티나무의자의 주인이 되어 다녀온 폐사지의 흥망성쇠를 상상해 본다
▲ 거돈사터 느티나무와 의자 느티나무의자의 주인이 되어 다녀온 폐사지의 흥망성쇠를 상상해 본다
ⓒ 김정봉

관련사진보기


다시 돌아와 느티나무 의자에 앉았다. 느티나무에서는 금강터 기단 위에 무심히 놓여있는 화강석불대좌가 한눈에 들어온다. 방금 다녀온 흥법사, 법천사와 거돈사를 함께 머릿속에 떠올려본다. 선종사찰의 색채가 진하게 남은 흥법사, 중앙집권화가 되면서 법상종의 사찰로 화려하게 변모한 법천사, 선종에서 천태종으로 변모한 거돈사, 모두 권력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존재한 절들은 아니었다. 권력투쟁은 때론 외침이나 전쟁보다 더 참담한 결과를 초래한다. 문득 날카롭게 잘려나간 불대좌를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태그:#거돈사터, #원공국사, #원공국사부도비, #원공국사부도, #불대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