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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전 국회 경제민주화포럼 창립식에 참석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취재진에 둘러싸여 있다.
 5일 오전 국회 경제민주화포럼 창립식에 참석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취재진에 둘러싸여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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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기지는 국가안보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참여정부 때 추진됐던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 원래 추진했던 모양과는 많이 달라져버렸다. 지난 2007년 국회에서 예산안을 처리하면서도 '민군복합형 기항지'로 위상이 설정됐었다. 이는 민항이 중심이고, 군항은 모항이 아니라 필요할 때 임시 기항하는 형태였다. 이명박 정부 들어 말은 민군복합항이라고 하지만 군항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사업의 성격 자체가 변질이 됐다. 제주도민, 강정주민들의 동의를 얻는 민주적 절차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됐기 때문에 일단 공사를 중단하고, 재검토해야 한다."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가운데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의원이 7월 16일 제주에서 밝힌 제주해군기지에 대한 입장이다. 그는 제주해군기지 전면 백지화나 부지 이전과 관련해서도 "제주도민들이 합의해서 제시한다면 적극적으로 검토할 수는 있다고 본다"고도 했다.

"김영삼 정부부터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서로 관점이 다른 4개의 정부가 판단하고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국가안보 관련 정보와 자료들을 근거로 고도의 정책적 판단을 내렸을텐데, 대외정책에 있어서 각자 다른 색깔을 취해온 정부들이 모두 해군기지가 필요하다고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면, 다른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는 그 판단을 받아들이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범야권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7월 19일 출간된 대담집 <안철수의 생각>에서 밝힌 내용이다. 그는 다만 "강정마을의 경우 설명도, 동의를 구하는 절차도 부족했고 대다수 주민들을 소외시킨 채 기지 건설을 강행해서 문제가 커졌다"며 사업 추진 과정에 대해서는 강하게 비판했다.

문재인 의원, 절차적 문제 '원죄' 참여정부에 있다

두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생각은 제주 해군기지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찬성하면서도 절차적으로는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다만 문재인 후보는 '공사 중지 및 재검토'를 문제 해결 방안으로 제시해, 이렇다 할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 않은 안철수 원장보다는 진일보한 모습을 보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문 의원의 발언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우선 민주적 절차를 지키지 않은 이명박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지만, 적어도 절차적 문제의 원죄는 노무현 정부 때 있었다는 사실을 애써 간과하고 있다. 1900여 명의 마을 주민 가운데 불과 87명이 모여 표결도 없이 박수로 해군기지 유치를 결정한 시점은 참여정부 때인 2007년 4월 26일이었다.

제주 해군기지 문제를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할 때, 그 첫 단추를 잘못 꿴 당사자는 바로 참여정부였던 셈이다. 이에 따라 참여정부의 핵심 인사이자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인 문 의원이 MB 정부를 비판하고 공사 중단과 재검토를 주장하려면, 참여정부의 잘못된 결정 방식에 대해 진솔한 사과부터 하는 것이 도리에 맞다. 그래야 여권의 '말 바꾸기' 프레임으로부터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질 수 있고, 또 합리적인 해결책도 마련할 수 있다.

4개 정부 결정했으니 받아들여야?... 유감스러운 안철수 생각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5월 30일 저녁 부산대 강연을 위해 유민영 대변인관 함께 도착하고 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5월 30일 저녁 부산대 강연을 위해 유민영 대변인관 함께 도착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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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다른 색깔을 취해온 (4개) 정부들이 모두 해군기지가 필요하다고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면, 다른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는 그 판단을 받아들이는 게 옳다"는 안철수 원장의 생각도 대단히 유감스럽다.

우선 사실 관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 제주 해군기지 사업이 김영삼 정부 때부터 '검토'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결정'과는 엄연히 다르다. 1993년 합동참모회의에서 신규소요가 결정되어 1995년에는 1997-2001년 국방중기계획에 반영되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군당국이 정부에 요청한 것에 불과했다.

국방중기계획에는 수많은 사업이 포함되지만 정부의 정책결정과 국회의 예산 심의 과정에서 배제되는 사업도 많다. 제주 해군기지 사업도 김대중 정부 말기였던 2002년 12월에 유보 결정이 나왔었다. 군의 요청과 정부의 유보가 반복되었던 이 사업이 정부 차원에서 공식 결정된 시기는 참여정부 말기인 2006~2007년이었다.

안타깝게도 안 원장은 이러한 기초적인 사실 관계조차 파악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4개 정부가 제주 해군기지와 관련해 "어려운 국가안보 관련 정보와 자료들을 근거로 고도의 정책적 판단"을 내린 것으로 단정하고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말았다. 이는 안 원장 스스로 강조해온 '책임'과도 거리가 먼 것이다. 더구나 안 원장 측이 강정마을 주민과의 접촉 등 조금만 성의를 기울였다면 "다른 정보"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

국가안보 위해 왜 해군기지 필요한지 설명해야

제주 해군기지 문제가 첨예한 정치적, 정책적 이슈로 부상하고 있지만,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등 유력 대선 후보군이 공유하고 있는 생각은 있다. 바로 '제주 해군기지가 국가안보를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가안보를 위해 왜 필요하고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필자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제기해온 국익 훼손 가능성에 대해서도 묵묵부답이다.

국가안보를 위해 제주 해군기지가 필요하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대안 마련은 요원해진다. '안보 프레임'을 앞세운 여권의 공세에 적절히 대응하기도 어려워지고, 정권교체에 성공하더라도 문제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 될 수도 있다. 문재인 의원이 강조하고 있는 민군복합항은 가능하지도, 타당하지도 않다는 점은 이미 입증된 바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문 의원과 안 원장은 '제주 해군기지가 국가안보를 위해 필요하다'는 대전제부터 재검토해야 한다. 절차적 문제뿐만 아니라 국익의 관점에서 득실관계를 냉정히 따져볼 수 있는 소통의 정치를 펼쳐야 한다.

끝으로 대안의 공론화도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해군은 기항지로, 강정마을은 세계생태평화마을로'가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가령 화순항에 추진중인 해경전용부두와 제주항에 확장될 예정인 전용부두를 해군이 기항지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중복 투자를 방지해 수조원의 예산 절감을 이루고 해경과 해군의 긴밀한 협조 체계를 구축해 신속하고도 효과적인 남방 해역 안전 확보도 가능해질 수 있다. 미중 패권 경쟁에 한국이 휘말릴 위험성 하나를 원천부터 배제할 수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그리고 강정마을을 세계생태평화마을로 지정해 '세계 평화의 섬' 정신을 실현할 수 있는 거점으로 육성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이미 강정마을은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맞선 많은 사람들의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인 저항으로 세계적인 평화의 성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발상만 전환하면 강정마을을 세계생태평화마을로 만드는 것이 결코 꿈같은 소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포괄안보를 구현할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이기도 하다. 미중 갈등에의 연루라는 불필요한 국가안보상의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면서 안보적 필요를 충족시키고, 환경안보, 인간안보, 경제안보, 국제안보 등 미-소 탈냉전 이후 새롭게 조명받고 있는 21세기형 안보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욱식의 뚜벅뚜벅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강정마을에서는 1만명 참가를 목표로 ‘강정평화대행진’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http://www.gangjeong.com 에서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태그:#제주 해군기지, #강정마을, #문재인, #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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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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