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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치 서핑'? 위험하지 않아?"

카우치 서핑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첫 반응은 대체로 이렇다.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니까 막말로, 모르는 사람 집에서 얻어 자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 1월 4일 교환학생으로서 공부하기 위해 미국에 도착한 순간부터 7월 14일 떠나는 날까지, 나는 자주 카우치 서핑을 했고 그래서 더 많이 행복했다. 평범한 여행자로서는 하기 어려웠을, 피자 만들기나 캠핑카 숙박, 카약 타기, 페이스북 본사 방문 등 놀라운 체험들을 하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빈 소파를 찾는 카우치 서핑

카우치 서핑(Couch Surfing)이란 말 그대로 빈 소파(영어로는 sofa뿐아니라 couch라는 표현도 빈번하게 쓴다)를 찾는 일이다. 웬만한 가정집 거실에 카우치 하나쯤은 으레 있기 마련이고, 경비를 절약하려는 배낭여행자들에게 이 정도면 훌륭한 숙소! 이렇게 카우치를 제공하려는 사람들과 카우치를 찾는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웹사이트가 'couchsurfing.org'다.

카우치 서핑을 하는 방법은 이렇다. 'couchsurfing.org'에 회원가입을 하고 프로필을 작성한 뒤, 자기가 갈 지역의 카우치 제공자(host)들을 검색한다. 그들의 프로필을 살펴보고 느낌 딱 오는 호스트에게 카우치 요청을 보낸다. 수락 답변이 오면 주소와 연락처를 받고 약속한 날짜에 맞춰 연락해서 그 집에 가면 되는 것.

서울 지역의 카우치 제공자를 검색하면 나오는 페이지
 서울 지역의 카우치 제공자를 검색하면 나오는 페이지

이렇게 카우치 서핑을 통해서 연결되는 사람들은 뭐 나와 일면식이라도, 하다못해 페이스북의 '알 수도 있는 친구'처럼 어렴풋한 인연이라도 있는 사이인가? 대답은 노! 만나본 적도 없는 생판 남에게 재워 달라고 부탁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위험하지 않아?"라는 걱정 섞인 질문에서부터 "너 미쳤니?"라는 '절대 이해 못함'의 반응이 나오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특히 한국인들은 카우치 서핑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할 뿐더러, 설명을 해줘도 부정적인 반응이 많은 편이다. 배낭여행의 천국인 유럽에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카우치 서핑이 상당히 대중화됐으며, 미국에서도 많은 여행자들이 이용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반년 동안 미국에 살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분명 문화적 차이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한국에서는 남의 집에서 자는 걸 민폐라고 여긴다. 집으로 손님을 초대하는 일도 드물다. 번거롭기 때문이다. 반면 서양인들은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먹고 마시고, 잠도 재워 보내는, '슬립오버'를 좋아한다. 대부분의 집에 손님방 혹은 소파 침대가 있는 것도 한 몫 한다.

하지만 카우치 서핑은 의외로(!) 안전하다. 미국에서 십여 차례 여자 혼자 몸으로 카우치 서핑을 했던 나도 아무런 사고를 겪지 않았다. 프로필과 레퍼런스라는 장치가 있어서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상당 수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카우치서핑 프로필 화면. 본격적인 서핑을 시작하기도 전에 익사할 지경으로 입력할 내용이 많지만, 성실하게 작성하는 것만이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는 길이다.
 카우치서핑 프로필 화면. 본격적인 서핑을 시작하기도 전에 익사할 지경으로 입력할 내용이 많지만, 성실하게 작성하는 것만이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는 길이다.

카우치 서핑 프로필에는 본인은 어떤 사람인지에서부터 관심사와 철학, 무엇을 가르치고 배우고 공유할 수 있는지, 카우치 서핑에 대한 의견 등 수많은 항목들을 채워넣어야 한다. 또한 레퍼런스는 여행자와 호스트가 서로에 대해서 남기는 참고 사항 같은 것인데, '긍정' '중립' '부정'으로 구분돼 상대가 멀쩡한 사람인지 판단할 수 있게 도와준다.

레퍼런스가 하나도 없거나 프로필을 성의 없게 쓴 사람들에게는 신뢰가 가지 않았다. 그런 이들에게는 초대가 들어와도 정중하게 거절했다. 아무리 잠자리가 필요해도 호스트가 멀쩡한 사람인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시애틀에서 같이 지내기로 한 남자가 있었는데, 가기 전부터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오는 등 자꾸만 수상한 행동을 하는 게 아닌가. 그의 프로필에는 레퍼런스도 하나밖에 없었는데 그나마 남자가 쓴 거였다. 결국은 불안한 나머지 "일정이 갑자기 바뀌었다"고 말하고 다른 곳에 머물렀다.

그 남자가 반드시 이상한 사람이라고 낙인찍을 수는 없지만, 불편한 마음으로 찾아가 불신 속에 상대를 대하느니 차라리 안 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상식적인 판단력만 발휘한다면 카우치 서핑을 하면서 위험한 상황을 겪을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카우치 서핑 왜 해?

아무래도 조금은 불안한 게 사실이지만, 여대생 혼자 몸이라 더 그랬지만, 그럼에도 난 카우치 서핑을 했다. 많이 했다. 미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떠나기 전까지, 함께 지낸 호스트 수만 열 명, 날짜로 세면 근 한 달 가까이 된다.

시애틀의 케빈 집에서 다른 카우치서퍼들과 함께. 여행자들을 맞아 함께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던 케빈의 집에는 내가 있던 날만 해도 일곱 명의 여행자들이 묵고 있었다.
 시애틀의 케빈 집에서 다른 카우치서퍼들과 함께. 여행자들을 맞아 함께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던 케빈의 집에는 내가 있던 날만 해도 일곱 명의 여행자들이 묵고 있었다.
ⓒ S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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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카우치 서핑에 대해서 알게 된 계기는 조금 독특하게도 소설책을 통해서였다. 2008년의 촛불집회를 배경으로 한 김선우 작가의 <캔들 플라워>에는 한국에서 카우치 서핑을 하는 캐나다 소녀의 이야기가 나온다. 재미있는 여행법이라고 생각해서 메모를 해 두었는데, 나중에 블로그 등을 통해서 자세히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한 번 시도해 본 적이 있지만, 본격적으로 카우치 서핑을 하게 된 건 올해 초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가면서였다. 반 년간 그곳에서 자리를 잡고 지내야 하는데, 아는 이 하나 없는 타향만리에서 그저 막연하기만 했다. 게다가 내가 있었던 학교에서는 교환학생 기숙사를 제공하지 않아 개인적으로 집을 알아봐야 했는데, 집을 실제로 보지도 않고 계약할 수는 없는 일이라 당장 도착해서 머물 곳이 없었다.

대부분의 교환학생들은 이삼 일 정도 숙박업소에 예약을 해서 지내다가 집을 구해 이사하곤 하지만 나는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싸늘한 호텔 침대에서 홀로 잠들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미국에 도착한 다음 날은 내 생일이어서, 생일을 홀로 맞이하는 것도 외롭고 싫었다. 경비를 절약할 수 있다는 점도 솔깃하지만, 나에게는 친구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더 큰 매력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해서 시작하게 된 나의 카우치 서핑 USA. 미국에서의 첫 호스트는 나와 같은 학교를 다니던 미술사학도인 마리아나였다. 여덟 살짜리 딸을 키우고 있는 싱글맘인 마리아나는 장시간 비행에 지친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었고, 너무나 특별하고 감동적인 생일을 맞이하게 해 주었다. 다음날 휴대전화를 개통하고 집을 보러 다니는 일 역시 마리아나의 도움으로 훨씬 수월하게 해낼 수 있었다.

단순한 무료 숙박이 아니라...

카우치 서핑은 단순한 무료 숙박이 아니라 문화 교류 네트워크로 보는 게 맞다. 호스트가 여행자를 재워주는 이유는 그 역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고, 여행자들이 들려주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싶기 때문이다. 아무리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계속해서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카우치에 앉아서 전 세계의 여행자들을 만나는 신개념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행자 입장에서는 숙박비를 아낄 뿐더러 현지 사정을 잘 아는 호스트의 도움을 받아 더욱 알찬 여행을 할 수 있다. 현지인이 아니면 절대 알기 어려운 숨은 명소나 맛집, 혼자 여행하다 보면 하기 어려운 밤문화 탐방도 함께하며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포틀랜드의 레즈비언 커플 조니, 제넬과 함께
 포틀랜드의 레즈비언 커플 조니, 제넬과 함께
ⓒ Ma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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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팔로의 해변에서 마시멜로를 구워먹는 미국식 캠프파이어를 즐겼다.
 버팔로의 해변에서 마시멜로를 구워먹는 미국식 캠프파이어를 즐겼다.
ⓒ An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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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치 서핑의 최대 장점은 역시 '사람'에 있다고 하겠다. 사실 카우치 서핑이 늘 환상적이라고만 할 수는 없는데, 모든 게 여행자와 호스트 서로의 상호작용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긍정적인 레퍼런스가 많은 호스트라도 나와 성격이 안 맞을 수 있고, 하필 내가 갔을 때 호스트가 바빠서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없을 수도 있다. 그때그때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동적인 사람과 상황에 대해 유연한 자세가 요구된다.

하지만 여행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나로서는 카우치 서핑을 통해서 정말 끝내주는 추억들을 만들고 왔다. 페이스북에 근무하는 카우치 호스트를 따라 회사를 구경했고, 레즈비언 커플과 함께 피자를 만들었고, 해변에서 불을 피우고 마시멜로를 구워먹는 정통 미국식 캠프 파이어를 해본 것도 모두 카우치 서핑을 통해서였다. 남자 혼자 사는 집에 가도 알아서 자리 잡고 쿨쿨 잘 수 있는 담력이 생긴 것도(!) 수확이라면 수확일 것이다.

올 여름 휴가는 카우치 서핑 어떨까

뉴스를 보니 올 여름 휴가를 포기하는 직장인들이 그렇게 많단다. 돈도 없고 시간도 없어서 그렇단다. 하지만 카우치 서핑을 활용하면 여행 경비의 상당액을 차지하는 숙박비를 대폭 아낄 수 있을 뿐 아니라, 비행기표 살 돈이 없어도 심지어는 휴가를 떠날 시간조차 없더라도 전세계의 여행자들을 맞이하며 특별한 여름 휴가를 보낼 수 있다.

때맞춰 <카우치서핑으로 여행하기(김은지·김종현 공저, 이야기나무)>라는 책도 나왔으니 참고하면 더욱 도움이 되겠다.

덧붙이는 글 | 박솔희 기자는 여름 동안 <대학내일>에 'CouchSurfing USA'라는 제목의 카우치서핑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http://www.naeilshot.co.kr/Articles/RecentView.aspx?p=3KBPc0gc7lq3KJ7lk19hfObUOKz6mieiLTrn0G9DngsLNXlph9153A%3D%3D



태그:#카우치서핑, #COUCHSURFING, #여름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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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된다고 믿는 사람. 2011년 <청춘, 내일로>로 데뷔해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을 몇 권의 여행서를 썼다. 2016년 탈-서울. 2021년 10월 아기 호두를 낳고 기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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