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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아들을 둔 직장맘입니다. 앞으로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다양한 일상들을 전하려고 합니다. 아들이 커서 기억할 오늘의 장면들을 앨범 속에 차곡차곡 모아두겠다는 마음입니다. <기자말>

"날씨가 더우니까 한결이 아이스크림 먹을래." 한결군의 협상기술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날씨가 더우니까 한결이 아이스크림 먹을래." 한결군의 협상기술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 낮은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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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예쁜 말을 하는 사람은? 난센스 퀴즈는 아니다. 순전히 주관적으로 답을 하자면 정답은 '아이들'이다. 아이가 아기새처럼 동그랗게 입을 모으고 "음마, 빠빠"라고 말하기 시작했을 때 남들은 못하는 걸 해낸 양 자랑하기 바빴다. 두 돌이 안 돼 "한결이가 스티커 붙였어여"라며 문장을 구사할 땐 수많은 엄마들이 앓는 고질병, '우리 아이가 천재인가봐' 병이 들 뻔도 했다. 착각도 잠시, 아들과 동갑인 친구네 딸이 "노는 게 제일 좋아, 친구들 모여라~" 뽀로로 노래를 완창하는 걸 보면서 '보통사람 한결'의 현실을 직시했다.

그러자 한결군은 무생물과 대화하기 신공을 펴면서 보통사람이길 거부했다. 버스만 타면 내리면서 "3번 버스, 즐거웠어. 다음에 또 만나"라고 인사하는 걸 빼먹지 않았다. 지난해 가을,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내려서도 "비행기야, 수고했어"라며 비행기를 치하했다. 거기서 멈추면 귀엽게 넘어갔겠지만 창밖에 보이는 삐뽀차, 비행장 내 버스, 화물차 등 보이는 차마다 "모두모두 수고했어"라고 인사를 하느라 한참을 공항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꽃, 나무들과의 대화도 일상이다. 밖에 나왔다가 쉬가 마려운 한결군이 (아직까지 한결군은 아주 급해져야 쉬 얘기를 한다) 피치 못하게 근처 화단 등에 실례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오줌을 누면서 "나무야, 한결이 쉬야 먹고 쑥쑥 자라라"라고 노래를 불러준다.

밤이 되면 밤하늘에 떠 있는 달과 별도 꼭 챙긴다. 오늘은 초승달인지 보름달인지 달의 종류를 가늠하길 좋아한다. 달이 안 보이는 날이면 "엄마, 오늘은 달님이 구름 아저씨랑 얘기하고 있나봐"라며 아쉬워한다. 유아도서의 스테디셀러 <달님 안녕>을 보면 달님과 구름 아저씨가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들에겐 그 역시도 상상의 세계가 아닌, 바로 눈 앞에 펼쳐지는 현실로 다가오나 보다.

이렇게 달달한 모습만 보여주면 더 바랄나위 없겠지만 아이들도 큰다. 세속에 젖는다. 부모를 뛰어 넘으려 한다. 생생한 사례 몇 개만 소개한다. 생후 28개월이던 지난해 3월의 어느 저녁이었다. 이미 한결군이 스마트폰을 능숙하게 터치해 다양한 놀이를 즐길 때다. 엄마는 잠깐 컴퓨터 작업을 하고 아들은 옆에서 엄마 핸드폰을 갖고 놀고 있었다. 잠시 후 아들 손에 들린 핸드폰을 얼핏 보니 좀 이상하다. 초기화면이 달라진 것 같아 아들에게 달라고 했다. 사달이 나버렸다. 핸드폰 속 모든 연락처와 다운받았던 각종 어플, 저장돼 있던 문자 메시지까지 모두 사라져 있었다.

속으로 열은 받는데 핸드폰 갖고 노는 걸 제재하지 않은 내 잘못도 크니 화도 못 내고 한 마디 했다. "한결이가 엄마꺼 망가뜨려서 엄마 엄청 속상해. '미안해'라고 해줘." 아들은 이내 "미안해~" 했다. 아들의 사과로도 속은 누그러지지 않았다. 사라진 데이터를 어떻게 복구할까 아픈 머리를 붙들고 뚱해 있었더니 아들이 천진한 얼굴로 말한다. "엄마, '미안해' 했잖아." 그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 그래 엄마가 속이 좁아 미안하다.

아이가 커갈수록 엄마의 잔소리만큼 아들의 잔소리도 늘어난다.
 아이가 커갈수록 엄마의 잔소리만큼 아들의 잔소리도 늘어난다.
ⓒ 낮은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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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일이다. 휴일의 마지막을 맥주 한 잔으로 끝내려고 한결군이 잠들기만을 기다렸다. 아들은 엄마 마음도 모르고 장난감 놀이에 푹 빠져 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도저히 못 기다리고 상을 차리다가 실수로 컵 하나를 와장창 깨버렸다. 그 소리를 듣고 주방으로 달려온 한결군, "엄마 때문에 한결이 깜짝 놀랐잖아. 조심해야지. 급하게 하면 어떻게. 다음부터는 안 그럴 거지?" 폭풍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동안 엄마한테 들었던 잔소리를 되갚아 주겠다는 심사인 양. 아들 덕분에 남편은 한 마디도 못했다. 이제 잔소리도 아들 눈치 보며 해야 하나 보다.

아들이 다섯 살이 되니 자기 주관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뭐든지 "한결이가" 한다고 나선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떼를 부리기도 한다. 특히 아들이 좋아하는 만화를 보거나 '맛있는 거'(주로 과자 등 군것질류를 통칭함) 사달라는 요구를 할 때는 고집스러운 면을 보이기도 한다. 언젠가도 집에 오는데 아들이 맛있는 걸 사달라고 했다. 엄마는 돈이 많지 않아서 매일매일 맛있는 걸 사줄 수 없으니 내일 먹자고 타일렀다. 아들은 길거리에서 꼼짝을 안 했다.

"한결이가 자꾸 떼를 쓰면 엄마 화날 것 같아"라고 속마음을 표현하자, 아들은 "엄마가 안 사주면 한결이도 속상해질 것 같아"라고 되받아친다. 점점 고단수가 돼 가는 한결군이다. 그에 맞게 한결군과 엄마의 사랑의 줄다리기는 계속 진화해갈 전망이다. 끌고 끌리는 줄다리기의 묘미를 어떻게 잘 발휘할 수 있을지, 엄마는 오늘도 아들과 입씨름하면서 머리를 굴리고 있다.


태그:#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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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엔 이야기가 있다는 믿음으로 삶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는 기록자. 스키마언어교육연구소 연구원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책을 읽고 글쓰는 법도 찾고 있다. 제21회 전태일문학상 생활/기록문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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