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김진석

관련사진보기

오후 1시, 낮술을 마셨다. 뼈 없는 닭고기볶음을 가운데 놓고 그는 소주를, 나는 맥주를 마셨다. 그는 여전했다.

산적, 이 떠오르는 외모라고 하면 충분한 설명이 될까? 어수선하게 자란 머리에 며칠째 손이 가지 않은 흔적이 역력한 입 언저리의 수염. 오전 6시까지 3천 장의 사진을 정리했다, 며 그는 환하게 웃었다.

그가 가방 지퍼를 열고 한 권의 책을 꺼내 내밀었다. 그가 이번에 새로 낸 사진집이다. 책을 받아들고 펼치다가 어, 하면서 감탄사를 토해냈다. 사진집이라고 했지만 본격적인 사진집일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짜 사진집이네?"

책을 뒤집어 정가를 확인했다. 1만8천 원. 사진집인데 엄청나게 싼 가격이었다. 요즘 출간되는 책값을 생각하면 '너무 착한' 값이 아닐 수 없다. 화려한 색깔의 제대로 된 사진집을 이 가격으로 팔아도 되나? 아니, 이 가격이 가능하긴 한 건가? 물었더니, 중간단계 마진이 없어서 가능했다, 는 대답이 돌아왔다.

책 가격을 낮춰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다는 말로 들렸다. 초판은 1000부를 찍었다고 했다. 이 책을 다 팔아도 남는 건 거의 없을 것이나, 그래도 그는 사진집을 냈다는 사실에 스스로 대견해 했다.

그럼 축배를 들어야지. 덩치가 산만한 그는 소주잔을, 덩치가 작은 나는 맥주잔을 높이 들었다. 그가 원하는 성과를 거두기를 기원하면서.

사진작가 김진석이 사진집을 출간했다. < Falling in Barcelona >는 그가 지난 2010년 바르셀로나에서 머물면서 찍은 바르셀로나의 다양한 풍경을 모은 사진집이다. 당시 그는 산티아고를 걸은 뒤, 잠시 바르셀로나에 머물렀던 것. 사진기를 들고 바르셀로나 구석구석을 샅샅이 훑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단다. 그래서 이 사진집에는 바르셀로나의 일상이 오롯이 담길 수 있었다.

사진을 들여다보면 지금이라도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향해 떠나 그 속살을 헤집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사진집 < Falling in Barcelona >에서
 사진집 < Falling in Barcelona >에서
ⓒ 김진석

관련사진보기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는 이들은 사진집을 출간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현실이 그리 녹록지 않다는 것이 김진석의 푸념이었다. 사진집은 제작비가 만만치 않게 들어가는데다 잘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대박'을 친 사진집도 있지만 극히 미미한 수에 불과하다. 그런 현실에서 김진석은 사진집을 내고 싶었다. 지금까지 몇 권의 사진이 들어간 에세이집을 출간하긴 했지만, 그건 본격적인 사진집이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궁리를 거듭한 그는 1인 출판사를 차렸다. 사진집을 전문으로 내는 출판사를 말이다. 책을 내기 전에 그는 자신의 생각을 주변의 지인들에게 이야기를 했고, 사전예약을 받을 수 있었다. 책이 출간되기 전에 500명의 독자를 확보했다. 이 정도라면 인쇄비는 어느 정도 충당이 되리라, 판단했다.

사진집 < Falling in Barcelona >에서
 사진집 < Falling in Barcelona >에서
ⓒ 김진석

관련사진보기


지명도가 전혀 없는 영세 '1인 출판사'의 한계는 책을 만들어내는 데 있지 않다. 중요한 건 판로다. 마케팅의 시대에 마케팅에 전혀 재능이 없는 사진작가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나갈 것인가? 그는 '바다출판사'와 계약을 맺었다. 바다출판사 이름으로 책을 내면서 판매를 대행하는 방법으로 1인출판사의 한계를 보완하는 일종의 편법이었다. 물론 해당 출판사에서 흔쾌히 수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윈윈전략을 택한 것인데, 어떤 결과가 나올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사진집 < Falling in Barcelona >에서
 사진집 < Falling in Barcelona >에서
ⓒ 김진석

관련사진보기


이번 사진집을 시작으로 그는 계속해서 사진집을 출간할 계획이다. 다음 작품은 < Falling in Wine >이라고 했다. 와인에 관한 모든 것을 사진으로 담을 예정이다. 어떤 작품이 나올까, 궁금해진다. 그리고 10월쯤에 그리스 산토리니로 가서 사진을 찍은 뒤, 그것 역시 사진집으로 엮을 계획이라고 했다. 계획을 세우면, 꼭 실행을 한 뒤 결과물을 갖고 내 앞에 나타나는 사진작가 김진석.

ⓒ 김진석

관련사진보기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01년. 그가 본격적으로 사진기자로 활동을 시작하던 해였다. 당시 그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을 했고, 나는 편집기자였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지금까지 '끈끈하게' 이어져 오고 있다.

10년 넘게 곁에서 지켜본 그의 인생은 상당히 파란만장했다. 사진이 찍고 싶고, 사진기자가 되고 싶었지만 그의 인생은 쉽게 풀리지 않았던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내 사진기를 놓지 않았다. 몇몇 매체를 전전하면서 사진기자로 활동했지만, 오래 하지 못했다. 매체가 문을 닫거나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솔직히 안타까웠다. 그가 누구보다도 잘 풀리기를 바랐으니, 당연하다. 하지만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그의 사진의 세계가 더 많이 깊어지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으니까. 그래서 심산 작가의 추천사가 더 가슴에 생생하게 와 닿는다.

"이제 그는 카메라의 뒤에서 나와 피사체가 있는 풍경 저 너머로 편안하게 스며든다. 길고 고통스러웠던 터널을 지나 이제 비로소 자유의 참맛을 알게 된 그가 우리에게 한 도시와 그 안의 사람들을 넌지시 보여준다. 그것이 '폴링 인 바르셀로나'다. 김진석의 여유로운 시선과 바르셀로나의 꾸미지 않은 쌩얼이 천상의 궁합을 이루었다." - 작가 심산의 추천사에서

이후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 활기가 넘친다. 요즘은 영화 현장에 뛰어 들어 스틸사진을 찍으면서 진가를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 강의도 병행하면서 자신만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그가 이번에 새롭게 시도한 1인 출판사 그리고 사진집이 성공을 거둬 우리나라에서도 사진집이 대중적인 인기를 누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폴링 인 바르셀로나 Falling in Barcelona

김진석 지음, 바다출판사(2012)


태그:#김진석, #바르셀로나, #사진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