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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의장풀(달개비)의 꽃술, 곤충을 유인할만큼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 닭의장풀 꽃술 닭의장풀(달개비)의 꽃술, 곤충을 유인할만큼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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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온다고 합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다가 이내 그치고 잠시 소강상태입니다. 뜰에 나가보니 작은 꽃들의 분주한 소리가 들립니다. 폭우를 동반한 태풍이 오기 전에 이런저런 준비할 것들이 많은가 봅니다. 가녀린 꽃잎이라 비가 오면 짓물러버리는 닭의장풀, 비가 오지 않아도 아침나절 잠시 활짝 피었다가 꽃을 닫아버리는 닭의장풀, 그래서 꽃말도 '짧은 즐거움'입니다.

물론, 그의 생명력은 아주 강력합니다. 뜨거운 여름날 뿌리째 뽑혀 내동댕이질 쳐도 이내 여기저기 뿌리를 내면서 자라니까요. 노란 꽃술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아기자기 모여있는 모습을 보니 맛난 과자 혹은 젤리를 보는 듯합니다.

고봉밥을 보는 듯한 제비꽃의 씨앗, 개미들이 제비꽃 씨앗을 감싸고 있는 엘라이오솜아주 좋아한다고 합니다.
▲ 제비꽃의 씨앗 고봉밥을 보는 듯한 제비꽃의 씨앗, 개미들이 제비꽃 씨앗을 감싸고 있는 엘라이오솜아주 좋아한다고 합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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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깨 잘 익은 것을 잔뜩 올려놓은 듯한 제비꽃의 씨방이 화들짝 몸을 열었습니다. 비가 오면 빗방울의 힘을 빌려 멀리 여행을 하려는 것입니다. 물방울이 '툭!' 치면, 그 힘을 이용해서 날개 없이도 멀리 날아가지요.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개미들이 좋아하는 엘라이오솜이라는 물질이 씨앗을 감싸고 있다는 것입니다. 개미들은 제비꽃 씨앗을 집으로 옮기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엘라이오솜을 간식처럼 먹습니다. 남은 것은 음식물 쓰레기니 어쩌겠습니까? 당연히 집 밖으로 버립니다. 그러면 거기서 발아가 되는 것이지요. 날개가 없이도 멀리멀리 여행하는 비결입니다.

꽃인가 싶지만, 잔디꽃이 맞습니다.
▲ 잔디꽃 꽃인가 싶지만, 잔디꽃이 맞습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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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같지는 않지만, 잔디 꽃입니다. 잔디밭엔 요즘 잔디 꽃이 피어납니다. 어떤 꽃이든 피어나면 수정을 해야 합니다. 매개체가 곤충이든 바람이든 그 무엇이든 모든 식물은 꽃을 피우고, 저마다 가장 지혜로운 방법으로 수정합니다.

사초과의 꽃들은 거반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그들은 꽃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꽃보다는 열매 쪽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이지요.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만 열중하는 세상을 향해 그들이 낮은 곳에서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하는듯합니다. 잔디, 늘 밟히면서도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도 꽃 피워내는 삶을 살아가니 기특합니다.

작은 종기그릇에 소담하게 담긴 밥을 닮았습니다.
▲ 너도개미자리의 씨앗 작은 종기그릇에 소담하게 담긴 밥을 닮았습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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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 사이에 너도개미자리들이 하나 둘 비집고 들어옵니다. 잔디를 관리하는 처지에서는 여간 성가신 녀석이 아닐 수 없지만, 꽃이 진자리에 맺혀있는 수많은 씨앗을 보니 매몰차게 뽑아버릴 수도 없습니다.

'그래, 그냥 그렇게 너희끼리 더불어 지내라.'

빗방울 한 방울이면 그들은 기꺼이 품고 있던 모든 씨앗을 내보내고 빗방울을 담을 것입니다. 자기가 내어놓은 것이로되 끝까지 소유하지 않고 그냥 놓아버림으로써 대를 잇고, 하늘에서 내려온 빗방울을 잠시라도 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비움의 미학을 이 작은 들꽃의 씨앗에서 보는 것입니다.

익으면 보라색이 되지요. 토마토 같기도 하고, 사과 같기도 합니다.
▲ 미국자리공열매 익으면 보라색이 되지요. 토마토 같기도 하고, 사과 같기도 합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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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자리공 열매를 뻥튀기를 튀긴 듯 확대해놓으니 덜 익은 토마토, 아니면 사과인 듯도 합니다. 열매가 줄기의 색깔을 닮아 보라색으로 변할 즈음이면 다 익어 떨어집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자기가 떨어진 영역 이상으로 퍼진다는 것입니다.

누가 그들을 날라 주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지난해 한 그루 정도가 열매를 맺은 것 같았는데 올해는 지천입니다. 그것도 한꺼번에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시차를 두고 피어나니 어른 키보다 더 큰 것에서부터 막 발아된 싹까지 다양합니다.

그것도 생명인데 어찌해야 할까 싶습니다. 태풍이 오고 있긴 한지 하늘은 온통 먹구름이 가득합니다. 맨몸으로 태풍을 맞이하고 보내야 하는 것들은 태풍이 오기 전에 준비해야 할 일들이 많은가 봅니다. 그들을 가만가만 바라보니 꽃이며 열매며 꽃술 모두 모두 신비스럽습니다.

세상이 삭막합니다. 이렇게 소소한 것들 바라보면서 감사하고 행복해하는 것도 사치인듯하니 말입니다.


태그:#닭의장풀, #제비꽃, #미국자리공, #너도개미자리, #잔디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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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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