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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 면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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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세시장에서 벌어졌던 재벌가 딸들의 전쟁을 기억하는가?

전쟁 1라운드는 호텔신라의 포격으로 시작되었다. 호텔신라와 AK글로벌, 호텔롯데 등은 2007년 공개입찰을 통해 각각 인천공항 면세사업자로 선정되었다. 그런데 2009년 말에 호텔롯데가 AK글로벌의 지분 81%를 인수하고는 2010년 초에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를 통과했다.

호텔신라는 이에 대해 "롯데가 AK글로벌 면세점을 운영하는 것은 공항공사가 입찰 조건으로 내건 '중복 낙찰 및 복수사업권 취득불허 방침'에 어긋난다"며 법원에 영업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하지만 인천지법은 2010년 7월 인천공항 내 면세점 운영문제를 놓고 호텔신라가 호텔롯데를 상대로 제기한 영업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호텔신라는 인천공항공사가 면세사업자 입찰 때 내건 제안요청서 상의 '복수사업권 취득 제한' 규정이 임대 계약에 포함된다고 주장하지만 제안요청서는 계약서의 해석자료에 불과할 뿐 구성요소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호텔신라로서는 뼈아픈 패배였다. 그렇다고 쉽게 물러날 호텔신라가 아니었다.

루이비통을 둘러싼 딸들의 전쟁 2라운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장녀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왼쪽)과 롯데그룹 회장의 장녀인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이 인천공항 면세점을 놓고 경쟁을 벌었다.
▲ 딸들의 전쟁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장녀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왼쪽)과 롯데그룹 회장의 장녀인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이 인천공항 면세점을 놓고 경쟁을 벌었다.
ⓒ 오마이뉴스 유성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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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세시장을 둘러싼 재벌가 딸들의 전쟁 2라운드는 루이비통 입점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호텔신라가 인천공항에 명품브랜드 루이비통을 유치하게 된 2010년 유치 경쟁에서 고배를 마신 것으로 보였던 호텔롯데가 계약을 막아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2011년 1월 법원에 제출함으로써 전쟁은 재개되었다. 면세시장 쟁탈을 위한 전쟁 2라운드에서는 호텔롯데가 호텔신라 측에 공격을 가한 셈이다.

당시 호텔롯데는 루이비통 면세점 계약에 대해 "루이비통 매장이 들어설 594㎡ 가운데 기존 신라면세점 공간은 일부이고 상당부분 여객대합실 공간으로 충당되므로 사실상 신규 면세점 사업권 부여"라며 "면세점을 새로 개발하거나 허용하지 않을 의무에 어긋난다"고 지적했었다.

이어 "루이비통에 대한 7∼8%의 낮은 영업요율 적용과 계약기간 10년 보장은 특정 사업자에 대한 특혜 제공"이라며 "특정 면세사업자의 이익을 위해 다른 면세사업자의 불이익을 초래하지 않을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마치 FTA 조항중의 하나인 ISD(투자자 국가소송제도)를 두 재벌가 딸들의 전쟁에서 미리 보는 듯 했다. 결과적으로 루이비통을 둘러싼 전쟁 2라운드는 호텔신라의 승리로 돌아갔다. 호텔롯데로서는 전쟁 1라운드에서의 승리감이 2라운드에서는 굴욕감으로 변한 순간이었다. 1, 2라운드 전적은 각자가 1승 1패를 기록하고 있다. 이제 면세시장을 둘러싼 최종 전쟁으로 볼 수 있는 3라운드가 곧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인천공항 매각과 관련하여 은밀하게 진행되는 또다른 공항민영화 움직임들이 세상에 알려지고 있다. 인천공항 매각이 국민들의 압도적인 반대에 부딪혀 무산될 것으로 예상되자, 정부는 인천공항 내 급유시설과 인천공항 내 면세점 민영화를 조용하지만 발빠르게 진행시키고 있다.

7월 10일에는 공항내 급유시설을 민영화하기 위한 인천공항공사의 이사회가 파행을 겪기도 했었지만, 결국 해당 내용은 이사회를 통과했다. 이제 인천공항내 급유시설은 MB정부의 의도대로 민영화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천공항의 또다른 민영화 수순은 공항면세점으로 예측되고 있다. 따라서 재벌가 딸들의 전쟁 3라운드는 인천공항 내에서 면세점 공간을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한 땅따먹기 싸움이 될 것이다. 관광공사가 운영하는 인천공항면세점이 내년 2월 계약이 종료되면서 정부의 공기업선진화 정책에 따라 인천공항에서 철수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물론 관광공사 노조측에서는 강력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인천공항공사 측에서는 조만간 관광공사 인천공항면세점 자리를 국제경쟁입찰 공고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인천공항공사의 경우 인천공항 민간매각 문제로 지난 4년간 고생해 왔으며, 최근에는 공항내 급유시설 민영화 문제로 이사회가 파행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런데 이제는 거꾸로 같은 공기업인 관광공사가 운영하는 공항면세점을 민영화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모양새가 된 셈이다. 

인천공항면세점에 관광공사가 잘 안보인다?

인천공항을 방문하는 출국객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 있다. '관광공사 면세점이 잘 안보인다'는 점이다. 이유가 있다. 현재 인천공항에서 호텔롯데는 '화장품과 향수'를 뺀 전 품목을 판매하고 있으며, 신라면세점은 '주류와 담배'를 뺀 전 품목을 판매하고 있다. 화장품, 향수, 술, 담배는 공항 면세점 매출의 톱(Top) 4를 차지하는 품목들이다.

호텔롯데는 화장품과 향수에 눈독을 들이고, 신라면세점은 술과 담배에 눈독을 들이며 서로 으르렁대고 있다. 면세시장을 둘러싼 재벌가 딸들의 전쟁 3라운드에서는 판매품목을 뺏어오기 위한 싸움도 벌어질 것이다. 이에 반해 관광공사는 화장품, 향수, 술, 담배를 제외한 기타 품목에 대해서만 판매권을 갖고 있다. 면세점에서 인기상품들을 관광공사가 팔 수 없는 이유는 재벌면세점들의 수익확대를 위한 '취급제한' 조치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사실상 재벌공화국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출국객들이 가장 빈번하게 다니는 곳은 어김없이 롯데와 신라면세점이 위치해 있다. 관광공사 면세점은 출국객들이 붐비지 않는 곳에 배치되곤 했다. 관광공사는 인기품목을 팔 수도 없을 뿐더러 위치도 왕래가 적은 곳에 있다. 바로 이것이 관광공사 면세점이 인천공항 내에서 '잘 안보이는' 이유들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재벌면세점들의 매출은 높을 수밖에 없고, 관광공사의 매출은 낮을 수밖에 없다. 현재 인천공항 면세점 시장점유율은 롯데 50%, 신라 40%, 관광공사 10% 수준이다. 관광공사 면세점이 장사를 잘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 시장점유율이 아니다. 대기업프렌들리를 노골적으로 표방하는 MB정부하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국가는 세금걷기 포기하고, 재벌가 딸들은 웃고

인천공항 면세점 민영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놓다. 사진은 한국관광공사노조의 반대 펼침막.
 인천공항 면세점 민영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놓다. 사진은 한국관광공사노조의 반대 펼침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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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세시장은 재벌가 딸들이 1,2라운드 전쟁을 겪으며 재벌기업들이 장악하여 독과점화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현정부의 공기업민영화가 가세하여 롯데와 신라의 두 재벌가 딸들에게 잔뜩 힘을 실어주었다. 실제로 현재 면세점 업계 1, 2위인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이 차지하는 시장점유율은 이미 80%에 육박해 있다.

면세시장 운영시스템을 이해하고 있는 학계 전문가들이 재벌면세점들의 행태를 공통적으로 비판하는 지점이 하나 있다. 면세사업은 말 그대로 국가재정의 근간인 징세권을 국가가 자발적으로 포기한 예외적인 시장인데, 지금 상황은 세금을 면제해 주고 있는 특혜사업의 수익이 고스란히 1, 2위 재벌들로만 돌아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반해 공기업인 관광공사가 운영하는 면세점에서 나오는 수익금은 외래관광객 유치를 위해 재투자되는 선순환구조이다.

또한 재벌가 딸들이 운영하는 재벌면세점에서 발생하고 있는 국산품 홀대 현상에 대해 국산품을 납품하는 업체들이 입을 모아 비판하고 있다. 전체 면세시장에서 국산품 판매비율은 지난 1~2년 기준으로 약 9%(국산담배 포함시 약 18%), 외제품은 약 91%로 알려져 있다. 특히 토산기념품 등을 면세점에 납품하고 있는 업체들은 거의 고사직전이라고 아우성들이다. 공항은 외국인들이 한국관광을 마치고 출국전 마지막으로 방문하게 되는 공간이다. 한국을 상징하거나 홍보할 수 있는 토산기념품들이 약육강식의 시장논리에 따라 공항 면세점 진열대에서 사라질 운명에 처한 것이다.

해외브랜드는 곧 명품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국내 소비문화를 재벌면세점들이 이용하여 재벌면세점들은 외산수입품 위주의 편안한 장사를 하고 싶어한다. 재벌면세점들이 외산에 집착한 결과 지난해에는 약 2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면세점에서 판매할 외산구입을 위해 해외상품대금으로 해외에 지급되었다. 학계에서는 이 현상을 국부유출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반면에 인천공항내 관광공사 면세점이 판매한 국산품 판매 비중은 롯데나 신라 등 대기업면세점들에 견주어 월등히 높은 45%(2010년 기준) 수준이다. 

그럼 재벌가의 딸들은 특혜시비 와중에도 왜 이리 면세시장에 집착하고 있는 것일까? 통상 재벌가에서는 그룹 경영권은 아들에게 주지만, 딸들의 품위유지를 위해서 호텔경영을 맡기곤 한다. 그런데 재벌가 딸들은 품위유지를 떠나 본격적으로 경영이란 것을 해보고 싶어하고, 유통업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면세점과 같은 유통업에서 본인의 경영능력을 입증해 보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들에서 작년에는 재벌가 딸들이 식품분야에서 '빵가게 전투'를 벌였던 것이고, 이번에는 면세시장 쟁탈전을 위해 재벌가 딸들이 구두끈을 조이고 있는 중이다.

공기업 면세사업 철수가 관광선진화인가?

한국관광공사 인천공항면세점 한류관 매장.
 한국관광공사 인천공항면세점 한류관 매장.
ⓒ 한국관광공사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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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관광공사 측은 인천공항 면세점을 국산품 전문매장으로 계속 존치시켜 재벌기업들의 면세시장 독과점도 막고, 면세시장내 우수 국산품 판매 등 면세시장에서 공적인 역할을 계속하게 해달라고 정부쪽에 제안하고 있다. 실제로 관광공사 인천공항 면세점은 국산품 보호 및 육성이라는 공적인 역할을 외산품이 판치는 인천공항 면세점 내에서 훌륭하게 수행해 왔다.

면세점 민영화는 분명 득보다 실이 많다. 정부는 면세점 민영화에 대한 논리로 '공기업 선진화'만 내세웠지 합리적인 논리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면세점 민영화의 이익은 일부 재벌면세점들의 사주와 대주주로 돌아가서 사유화되지만, 면세점 민영화의 폐해는 면세점에 국산품을 납품하는 업체들의 경영난과 국산품을 팔던 여직원들이 일자리를 잃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도 공기업선진화라는 주술에 사로잡힌 현 정부에게는 '소 귀에 경읽기'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래 저래 부자감세로 비판받고 있는 MB정부가 면세시장을 둘러싼 재벌가 딸들의 전쟁 3라운드에서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한국관광공사 노조위원장입니다.



태그:#민영화, #호텔신라, #호텔롯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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