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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아가씨 죠야가 붓으로 난을 칩니다. 맘처럼 예쁘게 난이 그려지지 않네요.
▲ 난을 칩니다. 우크라이나 아가씨 죠야가 붓으로 난을 칩니다. 맘처럼 예쁘게 난이 그려지지 않네요.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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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 눈동자의 외국인이 난(蘭)을 칩니다. 화선지 위로 뻗어나가는 난이 제법 그럴 듯합니다. 처음 잡아보는 붓이라 손끝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화선지에 농담을 주는 일도 쉽지 않고요.

고향에서 쓰던 종이가 아니라서 그런지 힘들어 합니다. 화선지는 조금만 늦게 붓을 움직이면 검은색 물감이 넓게 번집니다. 또 그림을 망쳤나봅니다. 한 여름에 낯선 외국인이 땀을 뻘뻘 흘리며 난을 치고 있습니다.

지난 10일 오후, 형님이 운영하는 화실에 들렀습니다. 며칠 전 우연히 들은 말 때문입니다. 어머니께서 "너희 형 화실에 외국인이 와서 그림 배우는데 기특하다"고 제보해 주시더군요.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두 외국인이 형 화실까지 어떻게 찾아 왔을까요? 한걸음에 형 화실로 달려갔습니다.

화실 문을 황급히 열었습니다. 낯선 외국인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납니다. 저를 보고 놀란 눈치입니다. 먼저 안심을 시켰습니다. 서로 가볍게 인사를 나눴지요. 다음 할 말을 이어가려고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그들은 주변 사물이 신기한 듯 이리저리 고개 돌리기 바쁩니다.

"길 걷다 들른 화방서 동양화가 알게 됐어요"

두 외국인에게 붓 놀리는 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잘 보고 베워요. 두 외국인에게 붓 놀리는 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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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가 붓 놀리는 시범을 보입니다. 죠야가 유심히 바라봅니다. 슥슥 쉽게 움직이는 붓놀림 부럽겠지요?
▲ 안정된 자제 화가가 붓 놀리는 시범을 보입니다. 죠야가 유심히 바라봅니다. 슥슥 쉽게 움직이는 붓놀림 부럽겠지요?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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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그림을 가르쳐 주는 선생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곳에 일보러 가서 조금 늦는답니다. 이때다 싶어 짧은 영어 실력과 몸짓으로 그들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두 사람은 우크라이나에서 왔다고 합니다. 여수 세계박람회 해상쇼 '꽃피는 바다' 공연 팀인데 한국문화를 직접 경험하러 이곳에 왔답니다.

그들은 공연 마치고 남는 시간에 뭘 하면 좋을지 고민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박람회 기간 동안 동양문화를 배우기로 한 것이죠. 그들은 미지의 영역인 동양문화를 찾아 길을 나섰답니다. 특히, 한국문화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었답니다. 결국, 무작정 길을 걷다 우연히 들른 화방에서 동양화가인 제 형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들이 형님께 그림 배운지는 3일이 됐다고 합니다. 짧은 영어 실력 탓에 간단한 대화만 나눈 뒤 헤어졌습니다. 다음날 통역(장우현 팀장)과 함께 박람회장에서 죠야(Zoya)를 만났습니다. 다음은 그녀와 나눈 대화 내용입니다.

그녀의 고향은 여수처럼 아름다운 항구 도시 '오데사'

우크라이나에서 온 죠야가 화선지 위에 붓으로 꽃을 그립니다. 농담을 조절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 연습 우크라이나에서 온 죠야가 화선지 위에 붓으로 꽃을 그립니다. 농담을 조절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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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청년 알렉스가 그림을 그립니다. 처음 잡아보는 붓이 마음대로 움직입니다. '손따로 마음따로'입니다.
▲ 알렉스 우크라이나 청년 알렉스가 그림을 그립니다. 처음 잡아보는 붓이 마음대로 움직입니다. '손따로 마음따로'입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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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을 간단히 소개한다면?
"우크라이나에서 왔어요. 채식주의자고요. 여수 세계박람회 해상쇼 '꽃피는 바다' 공연에서 산호초를 형상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국립예술대학'을 졸업했고요. 그곳에서 미술과 음악(피아노) 그리고 연극을 배웠습니다.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모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우크라이나와 고향 소개를 부탁합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서쪽 흑해 연안에 있어요. 저처럼 미인이 많기로 유명한 나라지요. (웃음) 수도는 키예프(Kiev)인데 저는 수도에서 약 4시간 거리에 있는 '오데사'라는 항구도시에서 왔습니다. 독특한 지방색이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어요. 그곳에도 여수처럼 아름다운 항구가 있어요. 집 생각이 많이 나네요."

- 여수에서 느끼는 한국 문화는 어떤가요?
"우선 음식이 제 입맛에 맞아요. 개인적으로 야채만 먹기 때문에 음식을 조금 가리는 편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야채만 먹어도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어요. 공연 때문에 여수에 머물면서 김치와 김밥을 많이 먹었어요. 특별히 미역국은 제 입에 딱 맞아요. 제 고향에는 미역이 없어요. 여수에 와서 처음으로 입에 대본 음식인데 맛있어요."

- 여수는 낯선 땅일 텐데 한국문화를 배우기 위해 무작정 거리로 나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제가 호기심이 많아요. 대학에서 예술을 전공한 탓도 있겠지요. 어딜 가든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합니다. 여수에 온 지 두 달이 지났는데 그동안 영화와 텔레비전으로만 한국문화를 봤거든요. 뭔가 겉만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기서 우크라이나에서 온 친구 알렉스를 알게 됐는데 그를 꾀였죠.

'이곳 거리를 걸으면서 한국문화를 직접 느껴보자'고 제안했어요. 공연 마치고 남는 시간에 여수 거리를 걷다 우연히 그림 재료 파는 가게에 들어갔어요. 가게서 화선지라는 종이를 처음 봤어요. 붓도 만져봤는데 제가 다뤄본 붓과 조금 다르더군요. 신기했죠. 그곳 사장님께서 한국화 그리는 선생님을 소개해 줬어요."

태어나서 처음 접한 화법... "정말 신기해요"

해상쇼를 준비하는 출연진입니다. 10일은 비가와서 엑스포디지털갤러리에서 공연을 펼쳤습니다.
▲ 해상쇼 해상쇼를 준비하는 출연진입니다. 10일은 비가와서 엑스포디지털갤러리에서 공연을 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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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엑스포디지털갤러리에서 화려한 해상쇼 '꽃피는 바다' 공연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비가 많이 오면 이곳에서 공연합니다.
▲ 엑스포디지털갤러리 지난 10일, 엑스포디지털갤러리에서 화려한 해상쇼 '꽃피는 바다' 공연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비가 많이 오면 이곳에서 공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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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아가씨 죠야가 산호초를 형상화한 옷을 입고 관람객들에게 손을 흔듭니다.
▲ 죠야 우크라이나 아가씨 죠야가 산호초를 형상화한 옷을 입고 관람객들에게 손을 흔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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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선지에 그림을 그려 본 느낌은 어떤가?
"색깔이 화려하지 않은데 종이에 번지는 회색빛이 맘에 들어요. 선생님 말을 들으니 검은색보다 얕은 색으로 입체감을 준다고 해요. 그 점이 신기해요. 제가 배운 화법에는 이런 방식이 없거든요. 중요한 점은 단 한 번의 붓질로 그림을 이어가야 해요. 이런 화법은 오랜 연습이 필요해 보여요.

저는 조금만 붓을 움직여도 그림이 엉터리가 돼요. 종이에 그림이 번지고 잘못 그린 곳은 다시 손을 댈 수 없어서 힘들어요. 그래도 처음보다는 많이 좋아졌어요. 시간을 더 투입하면 좋아지겠죠? 그림 그리는 도구를 샀으니 집에 돌아가서도 열심히 연습해야죠."  

"우크라이나에 돌아가면... 한국화 자랑할 겁니다"

1부 공연을 마치고 잠시 의자에 앉았습니다.
▲ 휴식 1부 공연을 마치고 잠시 의자에 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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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잘 마쳤습니다. 저녁에는 그림 배우러 가야합니다.
▲ 마무리 공연을 잘 마쳤습니다. 저녁에는 그림 배우러 가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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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람회 해상쇼 '꽃피는 바다'에서 맡은 역할을 간단히 소개한다면?
"이번 박람회 주제가 '살아있는 바다, 숨 쉬는 연안'이잖아요. 그 주제를 한국 전통 마당놀이로 표현한 바다놀이 공연입니다. 눈에 띄는 등장 인물로는 '바다꽃소녀'와 높이 11m의 대형 마리오네트 '연안이'가 있어요. 이 공연에서 저는 바다생물 캐릭터 중 산호초를 형상화한 역할을 맡았어요.

공연은 이 지역(여수)에 전해지는 설화(오돌이 설화·신지께 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더군요. 공연은 매일 오후 2시부터 1시간 동안 Big-O 해상무대에서 펼쳐져요. 비오면 엑스포디지털갤러리에서 공연하고요. 이 공연 재밌으니 꼭 와서 보세요."

- 박람회 폐막이 한 달 정도 남았어요. 행사가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갈 텐데... 뭘 할지 계획은 세웠어요?
"우선 쉬어야죠. 고향 음식도 맛보면서요. 100일 동안 열심히 공연했으니까 제 몸도 휴식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 다음에 여유를 가지고 계획을 세울 겁니다. 지금은 박람회 공연에 집중하고 있어요. 아참, 여수에서 배운 그림 솜씨 잘 기억해야죠. 친구들에게 제가 그린 한국화 보여주며 자랑하려면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어요."

죠야가 그린 '난'입니다. 그런대로 모양은 나왔나요?
▲ 작품 죠야가 그린 '난'입니다. 그런대로 모양은 나왔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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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마치고 대기실에서 우크라이나 아가씨 죠야에게 간단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통역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자세히 듣는군요.
▲ 질문 공연을 마치고 대기실에서 우크라이나 아가씨 죠야에게 간단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통역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자세히 듣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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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통역을 도와준 장우현 팀장과 제일기획컨소시엄 (주) 맨테크 김태형 이사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박람회가 한 달 정도 남았습니다. 두 외국인은 짧은 시간이지만 한국문화를 알차게 접하겠지요? 젊고 아름다운 아가씨가 먼 이국땅에서 두려움 없이 한국을 알고자 거리로 나선 점이 대단합니다. 이 호기심 많은 젊은이들이 한국과 여수에서 좋은 기억을 품고 돌아가길 빕니다.
- 이 기사는 여수넷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여수세계박람회, #우크라이나, #꽃피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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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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