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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근리 마을
 노근리 마을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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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 옥천군 청산면을 향해 노근리 평화공원을 출발한다. 여름날에는 아침 일찍 출발, 오전 중 가능한 한 긴 거리를 걸어야 한다. 우리는 쌍굴 다리를 지나 노근리 마을로 들어선다. 노근리는 경부선 철도, 4번 국도, 경부고속국도에 둘러싸인 지역으로 서송원천이 마을 앞을 흐르고 있다. 우리는 냇가를 따라 우천리 방향으로 걸어간다.

길은 경부고속국도 밑을 지나기도 하고 옆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우천리로 가면서 우리는 부지런한 농부들을 만날 수 있다. 논에 비료를 주는 사람도 있고, 포도알을 솎아주고 봉지를 씌우는 사람도 있다. 우천리 마을에서 만난 주민 박철기씨(73세)에게 마을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 물어본다. 그러자 그는 대뜸 마을 이름이 원래는 '쇠내'였다고 말한다.

경부 고속국도 옆으로 이어지는 길
 경부 고속국도 옆으로 이어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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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을 하고 있고 그 앞으로 하천이 흘러 쇠내라는 이름이 생겼고, 그 말이 한자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우천리(牛川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노근리라는 마을 이름의 유래도 궁금하다.

자료를 찾아보니 '노근'은 '녹은(鹿隱)'에서 온 것으로 되어 있다. 사슴이 숨을 정도의 깊은 산골마을로, 사람들은 우록정이라는 정자를 세웠다고 한다. 그런 녹은이 자연스럽게 연음되어 노근이 되었고, 쉬운 한자인 노근(老斤)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조금은 견강부회 같지만, 더 타당한 설명이 없으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쌀아티를 넘으니 말투가 달라지네

회포리를 감싸고 도는 초강천
 회포리를 감싸고 도는 초강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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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천리를 지나면 길은 도동리 독골로 이어지고, 이어서 초강천에 놓인 회포교를 건너게 된다. 회포(回浦)라는 이름은 '물이 돌아가는 물가'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회포리는 물이 굽이쳐 돌아가는 안쪽에 형성된 마을이다. 초강천은 굽이굽이 돌아 흐르고 생태환경이 잘 보전되어 백로들이 노닐고 있다. 그런데 하상에서는 골재채취가 한창이다. 영동군으로부터 공식 허가를 받아 이루어지는 작업이라 뭐라 말하긴 그렇다.

회포교를 건너면 용암리다. 우리는 초강천을 따라 하류로 내려간다. 오른쪽으로 주행봉 높은 봉우리가 보인다. 우리는 514번 지방도를 만난 뒤 용암교를 건너고 용산면 백자전리로 들어선다. 길 왼쪽으로는 경부고속국도가 지나간다. 잠시 고속도로와 나란히 걷다가 우리는 오른쪽으로 길을 틀어 덕진리로 향한다. 덕진리는 19번 국도가 이웃 매금리로 나면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지역이다.

청화리 마을회관의 노인들
 청화리 마을회관의 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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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식물과 과수 등에서 다양성을 찾을 수 있다. 토종 민들레도 보이고, 살구나무도 보이고 고욤나무도 보인다. 또 으름나무도 있다. 덕진리에서 길은 조금씩 경사를 이루며 올라간다. 곧 이어 청화리가 나온다. 청화리는 더 산골이다. 마을회관에는 노인들이 모여 망중한을 즐긴다. 우리에게 수박을 건네며, 무어하는 사람들이냐고 묻는다. 추풍령에서 도담삼봉까지 걷는 사람들인데, 아침에 노근리에서 출발해 여기까지 왔다고 설명해준다.

청화리에서 고개를 넘으면 미전리로 갈 수 있다. 고개를 넘어 잠시 매남 마을을 지나간다. 매남에서 미전리로 가려면 산길을 지나야 한다. 그런데 길이 분명치 않아 산길을 잠시 헤맨다. 논둑 밭둑을 지나 다시 산을 넘으니 저 아래로 미전리가 나타난다. 미전리(米田里)의 원래 이름은 '쌀아티'다. 고개 아래 비교적 넓은 전답에서 쌀이 많이 생산되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 그런데 이 마을 사람들은 '살아티'라 부른다.

쌀아티 쉼터
 쌀아티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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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시옷 발음을 잘 못하는 경상도 사투리의 영향이다. 우리는 마을 입구 쉼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마을 앞에 미전 저수지가 있어 벼농사가 잘될 수밖에 없겠다. 길은 마을을 지나 다시 산길로 접어든다. 우리가 넘어야 할 쌀아티 고개는 해발 300m 정도 된다. 동쪽의 천금산과 서쪽의 천관산으로 이어진 능선을 넘는 고개로 19번 국도 상의 샘터재와 함께 영동과 옥천의 경계를 이룬다.

쌀아티 고갯마루에 이르자 큰 느티나무와 서낭당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갈 길을 조망해본다. 골짜기 아래로 마을이 보인다. 옥천군 청산면 목골이다. 우리는 목골의 전주이씨 덕천군파 사당인 숭덕정사 옆 느티나무 아래서 점심을 먹기로 되어 있다.

지원단에서 마침 김밥을 준비했다. 그랬더니 동네 노인분이 국이라도 갖다주겠다고 성화다. 나는 잠시 그 어른에게 우리가 넘어온 고개 이름을 물어본다. 분명히 쌀아티라고 발음한다.

쌀아티 고개 넘어 목골의 느티나무
 쌀아티 고개 넘어 목골의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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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점심을 먹고 마을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눠봤다. '쌀아티' 발음뿐만 아니라 어투가 영동 쪽과는 완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이룰 통해 쌀아티 고개를 경계로 경상도 사투리와 충청도 사투리가 나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처럼 말이 바뀌는 지점을 연결한 선을 등어선(等語線)이라 한다. 영동군에서 황간면, 추풍령면, 매곡면, 상촌면이 경상도 사투리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목골 느티나무 아래서 점심을 즐기다

느티나무의 둘레를 측정하는 대원들
 느티나무의 둘레를 측정하는 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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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골의 행정리명은 효목리 목동이다. 효목리라는 이름은 효림과 목동에서 한자씩 따 만들어졌다. 목골은 현재 삼사십 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이다. 목골의 느티나무는 마을의 정자목으로 1994년 보호수가 되었다. 우리 회원은 모두 느티나무 주위에 모여 팔을 벌려 나무를 감싼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느티나무의 둘레가 얼마나 되는지 측정하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무와 사랑을 나누기 위함이다.

이 느티나무는 높이가 25m에, 둘레가 8m는 되는 것 같다. 느티나무 아래서 느긋하게 점심을 즐긴 우리는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본다. 동네에는 노인들만 있다. 옥천군으로 넘어오자 포도와 감 등 과수작물이 보이지 않는다.

이곳은 산골이라 밭농사 위주지만 벼농사도 꽤나 짓는 것 같다. 그것은 마을에 물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마을 아래에 목동 저수지가 있다. 이 저수지는 목동에서 내려간 물을 가두어 만든 것으로 효목리에 농업용수를 공급한다.

목동저수지에서 바라 본 청산 들판과 면소재지
 목동저수지에서 바라 본 청산 들판과 면소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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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골의 원래 이름이 '못골'이었다고 한다. 현재 저수지가 만들어진 곳에 못이 있었고, 그 때문에 못골이라는 마을 이름이 생겨났다. 그런데 못골이라는 발음이 어려워 자연스럽게 '목골'로 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목골을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목동(木洞)'이 되었고, 행정명칭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목동저수지는 1981년에 만들어졌는데, 높이가 18.4m이고, 길이는 114m나 된다. 저수량은 46만㎥이다.

이곳 목동저수지에서는 앞으로 갈 청산면이 한눈에 들어온다. 골짜기 사이로 논이 보이고 그 너머 넓은 들에 청산면 소재지가 위치한다. 면소재지 뒤로는 비교적 높은 산자락이 감싸고 있는데, 그것이 도덕봉과 만월봉이다.

저수지 아래로 이어진 길은 계속해서 내리막이다. 한참을 내려오니 목동 마을회관도 보이고 마을자랑비도 보인다. 목동 마을자랑비 앞으로는 19번 국도가 지나간다. 그러나 우리는 19번 도로를 따라가지 않고, 옛길을 따라 판수리 방향으로 걸어간다.

청동초등학교에 야적된 폐기물

폐교된 청동초등학교
 폐교된 청동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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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수리는 녹동저수지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만드는 작은 시내를 끼고 형성되어 있다. 자연 마을로 대개, 양지말, 부르실, 음지말이 있다. '수(藪 : 늪)'나 '개(浦 : 물가)'와 같은 글자가 들어간 마을 이름을 보니, 물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판수리 개울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학교가 하나 보인다. 청동초등학교다. 청산의 동쪽에 있다 해서 청동초등학교라는 이름을 얻었다.

청동초등학교는 1969년 설립되었다가 1999년 3월 폐교되었다. 폐교된 지 10년을 넘어선지라 학교 운동장에는 망촛대와 잡초만 무성하다. 그런데 운동장에 검은 덮개를 씌운 야적물이 보인다. 우리 회원 중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이 있어, 야적물을 확인해본다. 스티로폼이다. 냉장고 세탁기 등 폐가전제품에서 나온 스티로폼이란다. 이것은 팔 수도 재활용할 수도 없어서 잘게 부순 다음 이렇게 가마니에 넣어 야적한 모양이다.

청동초등학교 운동장에 야적된 폐기물
 청동초등학교 운동장에 야적된 폐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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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곳에 있는 한 폐기물 처리업체가 폐기물을 이렇게 야적해 놓았다고 이웃 주민이 귀뜸해준다. 폐기물 처리업체가 청동초등학교를 임대해 폐기물 야적장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을 주민들이 여러 번 진정서를 내고 했지만, 해결되지 않는다고 불만이다.

우리는 이번 탐사를 통해 곳곳에서 이와 같은 환경문제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러나 신고 외에 별다른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게 안타까웠다. 청동초등학교의 적치물, 언제나 치우려는지 걱정이다.


태그:#노근리, #우천리, #미전리, #쌀아티 고개, #목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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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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