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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품로비·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새누리당 전 의원이 11일 새벽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구치소로 가는 차량에 올라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금품로비·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새누리당 전 의원이 11일 새벽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구치소로 가는 차량에 올라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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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검찰은 이상득 전 의원 구속에 성공했다. 현직 대통령의 친형 구속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검찰은 매우 어려운 수사를 성공하고 있다며 고무된 분위기다. 지난 3일 이 전 의원 소환 조사 당시 대검 저축은행비리 합동수사단(단장 최운식 부장검사) 관계자는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우공이산. 끝이 보이지는 않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산에 흙을 떠넘기다 보면 언젠가는 길이 생기겠지."

하지만 이런 '대단한 사건'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시각은 무덤덤하다. 검찰에 대한 찬사가 쏟아질 법도 하건만, 찾아볼 수가 없다. 국민들은 이상득 전 의원의 구속에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 권세나 세력이 오래가지 못함)을 느낄지언정, 검찰에 박수를 보내지 않는다. 왜 이러는 걸까?

(사)한국입법학회(회장 배병호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가 지난해 12월 18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정책연구개발 용역과제로 제출한 보고서를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한국입법학회는 1998년 설립된 국내 최초 입법학 연구 학술단체로서 학자와 입법 실무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국민들은 검찰이 이 정권에서 한 일을 알고 있다

보고서의 제목은 <이명박 정부 하 검찰의 수사기소권 오남용 사례 및 인사실태>(연구책임자 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연구운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다. 이 보고서는 한마디로 '국민들은 검찰이 이 정권에서 한 일을 알고 있다'로 요약할 수 있다.

보고서는 현 정부에서 일어난 '검찰권력 오남용사례'를 크게 네 가지 범주로 분류해 총 17가지를 꼽았다(아래 표 참고). 핵심적으로 요약하면 ▲정부정책 비판세력 관련 수사에서는 대부분 무죄판결이 나오는 등 무리한 수사와 기소를 했고 ▲반면 검찰·경찰 및 사정기관의 직무 관련 수사에서는 수사에 진척이 전혀 없거나 소극적·면죄부·꼬리자르기식 수사라는 비판을 받았고 ▲야권 및 전 정부 관계자 수사에서는 표적·편파·과잉 수사 의혹으로 권력남용과 자의적 공권력 행사에 대한 비판이 거세졌으며 ▲반대로 집권세력 관련 수사에서는 축소·부실·봐주기 수사 의혹으로 인해 검찰권 행사의 공정성과 엄정성, 정치적 중립성에 대해 국민의 불신을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 오마이뉴스 봉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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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이명박 정부 4년 동안 검찰권의 무리하고 일방적인 행사가 계속되어, 일반 국민들의 계속적인 비판을 불러왔다"면서 "하루바삐 검찰권 행사의 난맥상을 근본적으로 바로 잡고, 검찰조직 자체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검찰개혁을 시도하지 않는 한, 심지어 국가공권력에 의한 법집행의 정당성 자체를 국민들로부터 의심받는 상황에 봉착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개혁의 방향으로 "지금까지 검찰개혁에 대한 논의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의무를 강조하면서 오히려 검찰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 면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검찰의 '초집권적 관료조직'을 문제삼는 것이 새로운 개혁의 방향이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즉, 더 이상 정치와의 관계가 문제가 아니라 '검찰 자체'가 문제라는 뜻이다.

대통령의 아들과 친형이 무슨 차이가 있을까

물론 이 보고서는 이상득 전 의원을 구속시킨 소위 '솔로몬게이트 사건'이 나기 전에 작성된 것이다. 큰 건을 한 검찰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그러면 이후 약 7개월간 상황이 달라졌을까?

이번 사건 수사에 대한 공통된 반응은 '당연하다'와 '오히려 너무 늦었다'와 '과연 이게 다일까?'이다. 19대 국회에서 법사위원장이 된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10일 대법관 인사청문회장에서 전화를 받아 "만시지탄"이라고 짧게 평했다. 판사 출신인 홍일표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지금 검찰이 잘한다고 박수 받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 출신의 금태섭 변호사는 "(헌정사상 처음 대통령의 친형 구속이라고 하는데) 사실 형이라고 해서 별거냐, 마음이 아프기는 아들이 더 아프지 않겠느냐"면서 "아직 수사가 계속되고 있으니 좀더 철저히 하기를 기대하지만, 대통령의 형을 구속시켰다고 해서 성역없이 수사했다고 평가를 받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총선에 불출마한 주성영 전 한나라당 의원은 자유로운 신분이어서 그런지 좀더 적나라하다.

"지금 검찰에 신뢰를 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마 이명박 대통령도 신뢰하지 않고 검찰총장 본인도 신뢰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검찰이 뭐를 하더라도 국민이 안 믿는다."

- 검찰이 임기말에 왜 이런다고 보는가?
"물론 수사하다보면 나오는 경우도 있겠지만, 나는 (검찰이) 다음 정부를 준비하는 의도도 있다고 본다. 다음 정부에서 검찰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서."

- 그 말은, 지금 현재 박근혜 새누리당 전 대표가 차기로 유력한데, 이번 사건 수사가 그쪽과 구체적인 교감이 있다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교감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선수끼리 꼭 전화하고 그래야 하는가. 다음 정권을 누가 맡든 검찰을 지금 이대로 두고는 힘들다고 단언한다. 검찰개혁을 원점에서 다시 봐야 할 것이다."

마지막 기회를 날려버린 검찰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청사 유리문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검찰 깃발이 비치고 있다.
▲ 현직 대통령의 친형을 구속시켰지만...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청사 유리문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검찰 깃발이 비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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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검찰로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마지막 기회는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 의혹 수사와 민간인 불법사찰과 증거인멸 의혹 수사였다. 이 두 사건이 기회였던 이유는, 정권마다 되풀이되는 대통령의 가족이나 친인척, 측근이 아니라 대통령 본인에 대한 수사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진정한 '헌정사상 최초'가 될 수 있었다. 국민의 눈높이는 이미 저만큼 높아져 있다.

금 변호사는 "민간인 불법사찰 수사 같은 경우 어찌보면 검찰의 존재 이유와도 같다"면서 "현직 대통령은 형사상 소추를 당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진상은 밝혀놓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최소한 지금보다는 열심히,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증거가 많이 있는데) 어떤 지시가 어떤 경로로 있었고, 어떤 보고가 있었는지, 전체 모습을 그렸어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은 그 기회를 날려버렸다. 그리고 두 사건은 새누리당에서도 받아들이기 힘들어 각각 특검과 국정조사를 앞두고 있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검찰이 했던 말이다. 지금 검찰이 넘어야할 진짜 태산은 국민의 신뢰 아닐까. 하지만 태산을 넘기에는 이미 날이 너무 어둑어둑해 보인다.


태그:#검찰, #이상득, #검찰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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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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