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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8일 전남에 있는 해남의 땅끝 마을에서 김두관 전 경남지사가 대선 출마를 공식으로 선언했다. 이로써 흔히 민주통합당에서 3강이라 불리는 문재인, 손학규, 김두관이 본격적으로 대권을 향한 선의의 경쟁을 벌이게 됐다.

 

그의 출마 선언 소식을 들으며 우연히 인터넷에서 그와 관련된 동영상들을 여러 개 보게 됐다. 대부분 2분 이내로 된 짧은 것들인데 내용이 출마 선언하는 현장과 주요 공약들을 나열한 것으로 대동소이했다. 그런데 <TV조선>의 뉴스가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뉴스 제목이 '[12.19대선] 김두관 대선 출마 선언 "평등국가 만들겠다"'인데, 앞부분은 다른 매체의 뉴스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문제는 뒷부분이었다. 기자는 김두관이 극복해야 할 과제가 있다고 하면서 하나씩 거론했는데,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김두관이 가운데 서 있고 그의 머리 위로 큰 바윗돌이 굉음과 함께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그는 그 바윗돌에 짓눌려 몸이 찌부러지고 표정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그 바윗돌에는 '지사직 중도사퇴'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바윗돌은 그것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곧 이어서 그 위로 또 하나의 바윗돌이 앞의 것처럼 굉음과 함께 떨어졌고, 뒤이어서 또 하나의 바윗돌이 똑같은 방법으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김두관은 처음보다는 두 번째, 두 번째 보다는 세 번째에 몸이 더욱 작게 굽혀졌으며 그의 얼굴은 말할 수 없는 괴로움으로 가득했다.

 

두 번째 바윗돌에는 '콘텐츠가 없다'라는 글자가, 세 번째 바윗돌에는 '낮은 지지율'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동안 대선, 총선, 지방선거 등을 치르면서 수많은 보도를 신문과 방송을 통해 접해봤지만 한 후보에 대해 이런 식으로 보도하는 것은 내 기억으로 처음인 것 같다. 대부분 언론들은 출마하는 후보에 대해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시청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후보들의 각종 공약들과 장점, 그리고 부족한 점을 어느 정도 객관성을 갖고 보도해 준다는 것은 유권자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그 정보들을 바탕으로 출마한 후보 가운데 가장 좋은 후보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의 기자가 김두관에 대해서 단점으로 지적한 것들은 나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다만 '콘텐츠가 없다'라는 것에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갖고 있지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그런 식으로 한 사람을 우스꽝스럽게 희화화해서 표현한 것은 잘못됐다고 본다.

 

한 후보에 대해서 장점을 표현하는 방법도, 반대로 단점을 표현하는 방법도 최소한의 금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그 사람에 대해서 인격적인 모멸감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내가 이런 것에 대해서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이렇게 보도하는 것을 처음 봤고, 보면서 당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척 악의적인 느낌을 받았다.

 

위의 기자는 할 말이 있을 것이다. 시청자들에게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해서 정보를 분명하게 제공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다른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아니라고 본다.

 

해당되는 후보의 단점을 그런 부정적인 느낌을 매우 진하게 느끼게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바르게 보도할 수 있는 방법은 많이 있다. 일정한 도표도 좋고, 시민들의 목소리도 좋고, 전문가들의 평가도 좋을 것이다. 이것은 대부분의 방송에서 많은 후보들의 동정과 장·단점을 보도할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방법들이다.

 

김두관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큰 바윗돌 3개, 하나씩 떨어질 때마다 효과음으로 제공한 굉음, 그리고 그 무거운 바윗돌에 짓눌려 점점 굽어지고 작아지는 그의 몸, 그의 고통스러운 표정. 이것 정말 아니다. 이것은 뉴스의 정도가 아니다. 이것은 한 후보의 모든 것을 깡그리 무시하는 태도다.

 

문득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만약 박근혜였다면 그렇게 보도했을까? 문재인, 안철수, 손학규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보도했을까?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흔히 말하는 이장 출신의 촌놈이기에 대통령 감으론 역량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마구 깎아내린 것은 아닐까?

 

앞으로 대선이 4개월 남았다. 그 기간에 대선 후보에 대해 엄청난 정보가 쏟아질 것이다. 그들끼리 경쟁도 치열해지고 여러 정책에 대해 공방도 거세질 것이다. 언론의 자유가 많이 제약을 받는 우리나라 풍토에서 어렵겠지만 바람직하고 공정한 보도를 봤으면 좋겠다. 누가 보더라도 객관성을 바탕에 두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보도를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제발 후보 당사자의 마음과 몸에 씻을 수 없는 창피를 주는 보도만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태그:#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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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즈음 큰 기쁨 한 가지가 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마이뉴스'를 보는 것입니다. 때때로 독자 의견란에 글을 올리다보니 저도 기자가 되어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우리들의 다양한 삶을 솔직하게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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