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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실업대란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것이 어찌 현 세대를 살아가는 청년들만의 문제겠는가. '일자리'와 '경제'는 지난 몇 세대,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큰 시름이었다.

 

이를 해결하겠다며 지난 대선 당시 '경제 대통령'이란 슬로건을 들고 나왔던 대통령 후보는 '일자리 창출'과 '747공약'으로 압축되는 '느낌표' 가득한 약속을 하며 국민들의 마음을 얻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그로부터 4년이 넘게 지나 임기가 1년도 남지 않은 지금 돌아보며 평가를 해보자면, 국민들이 기대하던 자리엔 그 많던 공약들은 사라지고 '물음표'만이 채워져 있을 뿐이다. 그가 내세웠던 7%의 경제성장과 매년 60만 개의 일자리 창출 등의 공약들은 빛좋은 개살구였다.

 

일자리를 구한 사람들은 그럼 행복할까? 대한민국 노동자들의 근로시간은 OECD 국가들 중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0년 자료를 보면, 대한민국 노동자들의 연간 근로시간은 평균 2193시간으로 OECD 회원국 32개국 중 1위였다. 이 시대 청년들은 '그래도 일하는게 어디냐'며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살인적인 노동시간을 버티고 살아간다. 살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기 위해 산다는 슬픈 농담을 하게 되는 것이 대한민국 서민들의 현실인 것이다.

 

반면, 다른 부문에서 OECD 국가들 중에서 1위를 차지한 국가가 있다. 바로 호주다. 호주는 2011년에 이어 2012년까지 2년 연속 '행복지수'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행복지수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각국의 생활조건과 삶의 질을 조사한 결과물이다. 한국은 조사 대상국 36개국 중 2011년 26위, 2012년에는 24위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더 오랜 시간을 일함에도 호주 사람들의 삶이 질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분명 대한민국이 호주로부터 배울 점이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차이점과 배울점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 또한 충분히 있을 것이다.

 

아무리 최저임금이라지만... 생활 위해 현실적으로 고려돼야

 

지난 6월 30일, 내년도 최저임금은 280원이 오른 4860원으로 결정됐다. 청년유니온을 비롯한 다수 사회단체가 여러 방면으로 노력했지만, 여전히 최저임금은 5000원의 벽을 넘지 못했다.

 

최저임금 인상안이 발표됐음에도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매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물가를 대폭 반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최저임금 6.1% 인상률은 초라해 보이기 때문이다. 인상된 최저임금 4860원은 수치상으로도 적어보일 뿐 아니라, 시급이 280원 오른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삶에 미칠 변화는 작게만 보이기에 좀처럼 와닿지 않는 것이다.

 

요즘 서울 어느 식당에 가든지 밥 한끼 든든하게 먹으려면 5천 원 이상은 있어야 한다. 그보다 적은 돈, 한 시간 일해 벌 수 있는 시급으로는 TV만 켜면 광고가 나오는 흔한 햄버거 세트메뉴 하나 주문하기 버거운 현실이다.

 

반면 호주는 최저임금이 대략 15달러 수준(15.51달러)이다. 이는 현재 환율로 계산해보면 대략 1만8257원 상당의 금액이다. 호주에서 보통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당에 들어가면 대략 8~10달러 내외로 한 끼의 근사한 식사를 맛볼 수 있다. 보다 비교하기 쉽도록 앞서 말했던 햄버거 세트메뉴를 생각해보자. 호주에서 한 시간의 임금이면 맥도날드 빅맥세트(약 6~7달러)를 두 사람이서 하나씩 사 식사를 할 수 있다.

 

물론 햄버거 가격 하나만으로 비교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일 수 있다. 호주도 결코 물가가 싼 국가는 아니다. 하지만 호주는 그만큼 임금이 최소한의 생활을 꾸려나갈 수준을 넘어 취미를 비롯한 여가생활까지 즐기기에 부담이 없도록 책정돼 있다. 반드시 호주 만큼의 임금을 우리도 당장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최소한 지금보다 조금은 더 현실적인 임금 수준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호주는 주급으로 일주일에 한번씩 임금을 지급하면, 반드시 임금명세서를 고용주가 직원에게 지급하도록 법으로 규정돼 있다. 이를 지키지 않을 시에는 처벌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노동자는 자신이 일한 만큼 제대로 된 임금이 들어왔는지 확인해볼 수 있다. 최저임금이 확실하게 지켜지는 이유는 이런 법적 제도가 뒷받침돼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노동 시간 줄이면 삶의 질이 달라진다

 

서두에서 거론했던 것처럼, 지나치게 긴 시간이 노동에 소요되는 것 또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임금이 적다보니 장시간의 노동을 회사에서 요구하더라도,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한 수입이 필요하다보니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해야만 하는 근무를 위해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며 일에 치여서 사는 삶을 사는 현대인의 일상은 행복과 거리가 멀어보인다. 물론 열정적으로 일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은 아름답다. 성실하게 일에 매달려온 한국인들은 전쟁 직후 폐허가 된 조국을 반세기 만에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룩한 국가로 탈바꿈하는데 분명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21세기가 된 지금, 야근이 잦은 대한민국에서 직장인으로서의 하루는 일상이 실종된 채 회사에서 하루를 꼬박 보내는 꼴이다. 일을 제외하면 개인의 삶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것으로부터 최근 민주통합당 손학규 고문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를 선언하며 내건 슬로건 '저녁이 있는 삶'이 우리에게 와닿는 이유도 찾을 수 있다. 일에 지친 국민들에게 감성적으로 호소력을 가질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원하는 우리의 삶을 꿰뚫어 본 듯한 단어들의 조합이기 때문이리라.

 

호주는 주 5일에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근무가 보편화돼 있다. 물론 야근도 있다. 하지만 야근수당은 1.5배, 일요일 근무는 2배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법적으로 정해져 있다. 또한 이를 철저히 지키려는 의지가 노사를 불문하고 지배적이기에, 호주는 되레 '고용주가 야근을 기피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리고 만약 직원들의 초과근무가 많아 임금이 고용주가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을 넘어서게 되면, 초과한 근무시간을 휴가로 적립해 차후에 긴 휴가를 쓸 수 있는 방안도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노동시간을 줄이자고 하면 몇몇 사람들은 '그러면 임금이 줄어들지 않겠는가'라는 걱정을 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임금의 감소는 되도록 피하면서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 이는 단순히 어느 한 쪽의 강요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이 아닌 노사 합의와 각자의 양보가 필요한 일이다.

 

걱정만큼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미 시행하고 있는 회사들이 국내에도 있다. '9시 출근, 4시 퇴근'을 시행하고 있는 '보리출판사'는 임금 삭감없이 이를 시행했다. 협동조합 방식으로 만들어진 회사라는 점이 실현을 가능하게 했다.

 

또 다른 예도 있다. 기저귀용 통기성 필름을 만드는 회사 '한스인테크'는 24시간 쉬지 않고 가동되던 공장이었다. 그러나 노사발전 재단의 '근로시간 줄이기' 컨설팅을 통해 기존 2조 2교대를 3조 2교대로 변경했고, 노동 시간을 주 66시간에서 주 51.3시간으로 줄였다. 처음에는 대폭의 임금 삭감을 우려한 직원들이 반대했지만, 회사 측에서 기존 임금의 90% 지급을 약속하자 이를 받아들였다.

 

근로 시간이 줄어들면서 덩달아 줄어들 것이라 예상됐던 생산량은 되레 18% 증가했다. 노동시간이 감축되며 피로가 쌓이지 않아 집중력 및 업무효율성이 향상된 것이 원인으로 분석됐다. 또한 휴일 중 일부는 직원들의 업무교육을 위해 사용하면서 업무 이해도를 증진시킨 것도 생산성을 더욱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근무시간 감소의 결과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근무조가 늘어나면서 신규 채용도 늘었고, 이는 지역사회에 일자리 창출의 효과도 가져왔다.   

 

고용주와 직원의 상하적인 관계도... 개선할 필요 있다

 

호주에서는 특유의 사내 문화 역시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말조심'이었다. 호주에서는 고용주라고 해도 직원들에게 함부로 '명령조'로 말하지 않는다. 'Can you'로 시작되는 청유형의 어투로 직원들에게 일을 하도록 '강요'가 아닌 '유도'를 하는 것이다.

 

"지금 이 것 좀 해줄 수 있겠어요?" 

"괜찮으면 저것 좀 가져다 주겠어요?"

"지금 이것부터 먼저 해준다면 훨씬 더 좋을 겁니다."

 

이러한 말투는 서로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며, '직원은 사장, 혹은 직장 상사보다 아랫사람'이라는 사고 방식은 과거 노예시절의 산물이라는 것이 호주 사람들의 생각인 것이다. 이는 일전에 안철수 원장이 "회사 내에서 내가 CEO일지라도, 직원과 나는 각자 다른 역할을 할 뿐 똑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막말 문화, 서로 무시하는 관행이 사라지고 '서로 같이 일하는 이웃'이라는 사고방식이 자리 잡힌다면,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훨씬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이는 보다 나은 근무환경 조성을 만드는 길이 될 것이다(필요하다면 회사 내에서 사규를 통해 이를 장려한다면 조금 더 사람들의 실천의지를 자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호주와 한국 사이에는 물론 큰 차이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 차이점은 단순하게 비교하기엔 너무나 다양하다. 호주는 한국에 비해 국토가 훨씬 광대하며, 인구는 그에 비해서 대한민국의 절반 정도이기에 일자리 경쟁이 치열하지 않다. 각종 자원도 풍부하고 부유한 나라이기에 복지를 하기에 수월하다는 점도 있다. 그래서 호주 사람들은 느긋한 반면, 한국인들은 성격이 비교적 급하고 '빨리빨리' 문화가 고착돼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빨리빨리'만 외치면서 살 것인가. 대한민국이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갖게 된 것이 우연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지나친 노동과 업무스트레스도 이를 부추기고 있는 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이제는 바꿔야 할 때가 왔다고 느끼고 있지 않은가. 이제는 조금 더 천천히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다. 그러는 사이에 뒤쳐질지 모른다는 불안도 조금은 덜어놓을 때다. 우리는 너무 오랜시간 전력으로 달리는 것만 배우고 해왔다.

 

그래서 나는 이와 같은 변화를 우리가 호주에게서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지금 당장 우리가 호주와 동등한 수준의 임금과 복지제도를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노동자들이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간다고 하기에 아직 턱없이 부족한 근로조건 상태가 많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다 같이 조금씩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법적인 제도 마련도 필요하다. 노사간의 일정 부분 양보와 타협도 필요하지만, 확실하게 시행돼 사회적으로 자리잡기 위해 법 제정이 뒷받침돼야 하며 이를 위해 정치인들이 노동계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노력도 수반돼야 한다.

 

또한 정치인들에게는 그러한 관심 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저녁이 있는 여유로운 삶'을 돌려주기 위한 실천 의지, 법과 제도를 마련하기 위한 지식 또한 필요하다. 국민들은 더 이상 공약을 당선 이후에 잊어버리는 건망증 정치인을 원하지 않으며, 국민들의 삶에 직접적 변화를 가져다 줄 능력을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정치인이 다가오는 12월 대선이 되기 전에 나타난다면, 대통령 선거에서 노동에 지친 국민들의 마음을 확실히 휘어잡을 수 있으리라 감히 예상해본다.


태그:#한국, #호주, #근로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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