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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초순, 친구들과 당일치기로 영주에 다녀온 이후, 너무 짧게 다녀와서 서운하다는 원성이 생겨 다시 6월 30일~7월 1일에 1박 2일 일정으로 영주를 찾았다. 이번 여행의 시작은 내가 좋아하는 무섬마을을 방문하는 것으로 출발했다.

무섬마을에서 가장 큰 한옥이다.
▲ 무섬마을 해우당 고택 무섬마을에서 가장 큰 한옥이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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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고향을 찾을 때면 영주시 문수면의 무섬마을에 자주 간다. 마을을 끼고 도는 내성천이 좋고, 특히 황금 모래사장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또한 고택과 초가집도 되게 마음에 든다.

사실 내가 아주 사랑하는 곳은 청록파 시인인 지훈 조동탁 선생의 처가와, 그 앞 내성천 모래밭과 외나무다리다. 그곳에 가서 서면 오랜 동안 잠들어 있던 시심(詩心)이 다시 일어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무섬마을에 살고 있는 예안김씨 대종손이며, 문화관광해설사인 김광호 선생, 영주시에서 오랫동안 공무원으로 일했다.
▲ 영주시 문화관광해설사 김광호 선생 무섬마을에 살고 있는 예안김씨 대종손이며, 문화관광해설사인 김광호 선생, 영주시에서 오랫동안 공무원으로 일했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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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무섬마을에 가면 시가 쓰고 싶어진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곳에 민박을 얻어 한 달 정도 무작정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세계적으로도 고운 모래가 아름난 무섬마을의 모래사장
▲ 무섬마을 앞을 흐리는 내성천 세계적으로도 고운 모래가 아름난 무섬마을의 모래사장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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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섬, 사랑을 만나다(김수종)

비가 내린다.
빗방울은 내 가슴속까지 튄다.
그리움에 오늘도 강가에 선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눈물 흘렸던가
외나무다리 앞에서 무작정 그대를 기다린 긴긴 나날들
이별의 아픔, 보고픔에 사무쳐,
내 슬픔의 눈물은 비와 함께 강물 되어 저 멀리 흘러간다.
이젠, 안녕

나는 오늘,
무섬 외나무다리를 건너다가
단발머리 나풀거리는 눈이 맑은 여인을 만났다.

이곳은 언제나 아슬아슬한 추억이 있는 곳이다
▲ 무섬마을 외나무다리 이곳은 언제나 아슬아슬한 추억이 있는 곳이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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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무섬마을에는 3개의 섶다리만이 뭍과의 통로였다. 상여도 가마도 이 섶다리를 통해 들어오고 나갔다. 상류에 있던 다리는 영주로 장을 보러 갈 때, 가운데 것은 아이들이 학교 갈 때, 하류에 있던 것은 농사지으러 갈 때 건너던 다리다.

장마가 지면 다리는 불어난 물에 휩쓸려 떠내려갔고,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다리를 다시 놓았다고 한다. 지금 복원해 놓은 것은 하류에 있던 외나무다리로, 30년 전 방식 그대로 통나무를 자르고 이어서 다리를 만들었다.

무섬마을
▲ 무섬마을의 한옥 무섬마을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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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도착한 일행은 나무솟대를 지표 삼아 외나무다리로 행했다. 건설교통부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 한 곳으로 선정된 이 외나무다리. 영주시에서도 '무섬외나무다리 축제'를 통하여 외나무다리 건너기 체험을 실시하고 있다.

총 길이는 150m인데, 통나무를 반으로 쪼갠 다리의 폭은 20~30㎝ 정도밖에 안 되고 흔들거리기까지 해서 걸음걸음이 조심스러웠다. 튼튼해 보여서 그냥 툭 디뎠다가는 식겁하기 십상이다. 물론 다리에서 떨어져 봤자 강물이 무릎이나 오겠나 싶어 바지나 적시는 정도겠으나, 이게 은근 긴장감 있다. 
예쁜 초가
▲ 무섬마을의 초가 예쁜 초가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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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한 줄로 선 다리 두어 곳에 나란히 붙어 있는 다리가 무슨 뜻인지 몰랐다. 나중에야 그것이 마주 건너던 이들이 피해가도록 배려한 '비껴다리'라는 걸 알았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란 말도 있지만, 여기 무섬마을 사람들은 이곳에서 서로 길을 양보하기도 하고, 때론 그곳에 선 채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정을 쌓았을지도 모르겠다.

한 걸음 한 걸음이 10년인 듯 뭍에 가까워지면서 나는 조금씩 현실로 돌아온다. 다 건너서 바라본 무섬마을은 그저 다시 그림이 되어 내 머리의 액자 속으로 들어갔다.

처음 무섬마을에 들어와 터를 잡은 박수의 집이다. 무섬 제일의 고택이다.
▲ 만죽재고택 처음 무섬마을에 들어와 터를 잡은 박수의 집이다. 무섬 제일의 고택이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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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 하회, 예천의 회룡포처럼 무섬마을도 강물이 마을을 감싸는 마을이다. 우리말 '물섬'에서 연유되었고, 한자 지명도 수도리(水島里)다. 풍수학적으로도 매화나무 가지에 꽃이 핀 형세, 물 위에 연꽃이 뜬 형세라고 하여 기운이 좋은 땅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무섬마을은 뒷산이 태백산 끝자락과 소백산 끝자락이 만나 이루어졌고, 앞쪽은 태백산 내성천 물과 소백산 서천 물이 합쳐져 만들어졌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거창한 설명이 어색하게 오랫동안 가뭄이 계속된 탓인지 강물은 참 수줍게도 흘렀다.

예전에 예천 회룡포 갔을 때도 열심히 데려간 사람 눈치를 보며 속으로만 '용은 커녕 뱀도 안 되겠다'고 생각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땐 숨차게 올라간 게 너무 억울해서 그런 것이긴 했지만 말이다.

무섬에 와서 외나무다리를 보았으니 이번에는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방죽을 내려와 집과 집 사이의 낮은 담장을 따라 마을 안쪽으로 들어섰다. 오롯한 흙길을 두리번거리며 혼자 걷는 맛이란! 마치 나 홀로 조선시대로 돌아가 지금 내 집이 어디쯤인가 찾는 것 같았다.

상단부의 까치구멍은 환기통이며, 까치집이기도 하다.
▲ 무섬마을 까치구멍집 상단부의 까치구멍은 환기통이며, 까치집이기도 하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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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대부분 가옥은 ㅁ자형이며, 까치구멍집이라 불리는 태백산을 중심으로 경상도 북부지역에 분포하는 산간벽촌의 주택 형태다. 까치구멍집이라 함은, 부엌 연기가 자연스럽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지붕마루 양단의 하부에 만든 까치구멍에 의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 구멍들이 어찌나 앙증맞은지 모른다.

영주시에서 지어 민간에 위탁한 식당이다
▲ 무섬골동반 식당 영주시에서 지어 민간에 위탁한 식당이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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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둘러 본 우리들은 마을 입구에 영주시가 새롭게 조성한 조선시대 영주지역 양반들이 즐겨먹던 비빔밥을 현대식으로 재현한 한식집인 '무섬 골동반'으로 이동하여 점심을 먹었다.

영주 비빔밥인 무섬골동반
▲ 조선시대 영주 양반들이 먹던 향토음식 영주 비빔밥인 무섬골동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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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섬골동반' 식당은 영주에서 혼례음식과 향토음식을 연구하는 토속음식연구가 강성숙 선생이 시의 위탁을 받아 운영하는 곳으로 자연건강식으로 주목받고 있는 곳이다.

일행은 아주 맛있게 무섬골동반 비빔밥을 먹었다. 나는 굽지 않고 찐 간 고등어와 3년을 묵힌 된장으로 만든 찌개, 오곡으로 만든 숭늉, 후식으로 나온 수정과가 마음에 쏙 들었다. 


태그:#무섬마을, #무섬골동반, #외나무다리, #영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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