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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행 중 바라본 강북구 일대
▲ 서울의 아침 북한산행 중 바라본 강북구 일대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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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잠에서 깨어났다.
고민한다고 풀리지도 않을 고민을 털어내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었다.

"여보, 나 오늘 북한산 대동문에 올라갔다가 출근할게."
"왜 그렇게 잠을 못 자?"
"고민이 많다…."

북한산 계곡물이 오랜만에 맑은 소리를 내며 흐른다.
▲ 북한산계곡 북한산 계곡물이 오랜만에 맑은 소리를 내며 흐른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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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명의 나이가 넘도록 허투루 살지는 않은 것 같은데 삶은 점점 퍽퍽해진다. 중산층이라고 당연히 생각하고 살았는데, 그것도 하나의 계급이라면 중하위층으로 자리이동을 해야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현실처럼 느껴지는 요즘이다.

두 명의 대학생과 중학생을 둔 학부모, 거기에 노부모까지 모시고 있으니 서울생활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고민의 본질은 돈이 아니라 인간적인 삶에 대한 고민이다.

아카데미하우스 탐방로에서 조금 오르니 계곡에서 맑은 물소리가 들려온다. 시계를 보니 5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다. 천천히 올라갔다 와도 충분한 시간이다.

이미 서쪽 하늘엔 맑은 하늘과 흰구름이 햇살에 드러난다.
▲ 서쪽 하늘 이미 서쪽 하늘엔 맑은 하늘과 흰구름이 햇살에 드러난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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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다 서쪽하늘을 보니 푸른 하늘과 흰구름이 드러난다.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변한 것이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곳이 변한 것이다. 어디를 바라보고 살아가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마음에 새기며, 천천히 한 걸음씩 산을 오른다.

수줍은듯 피어나는 꿩의다리, 밤새 촉촉한 기운이 서려있다.
▲ 꿩의다리 수줍은듯 피어나는 꿩의다리, 밤새 촉촉한 기운이 서려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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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빛 꿩의다리, 흔하지 않은 꽃이다. 흰색의 꿩의다리는 지천이고, 착각이긴 하지만 보랏빛꽃처럼 보이는 금꿩의다리를 빼고나면 이렇게 보랏빛이 완연한 꿩의다리는 오랜만에 보는 듯하다.

그냥, 고맙다.
그렇게 피어나 줘서 고맙다.

아침햇살이 그린 그림을 본다.
▲ 아침햇살 아침햇살이 그린 그림을 본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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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이 숲을 파고든다. 여느 햇살보다 숲의 색깔을 선명하게 드러나게 하는 듯하다.
밤새 촉촉하게 젖어있던 숲이 아침햇살이 파고드는 만큼 선명한 제 빛을 드러낸다.

'저것이 아침 햇살의 빛깔이구나!'

아침햇살이 바위에 그려놓은 그림
▲ 그림자 아침햇살이 바위에 그려놓은 그림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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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살은 바위에도 그림을 그린다. 단 한 번, 그 순간, 그 자리에서만 볼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이 아닌가? 모든 삶, 모든 순간이 사실 결정적인 순간인데 어떤 때는 차일피일 하루가 어서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삶을 소비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경쟁을 강요하는 도시의 삶은 철저하게 자기 시간까지도 소비하게 한다. 도시의 속성이란, 끊임없이 소비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소비자', 그것만큼 모욕적인 단어가 또 있을까 싶다. 지구상에 유일한 소비자 인간. 그것은 우월성이 아니라 소비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의 또 다른 이름이다.

절리정돈이 잘 되어 오르기가 편한 등산로
▲ 북한산등산로 절리정돈이 잘 되어 오르기가 편한 등산로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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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을 시작한 지 40여 분이 지나자 숨이 차온다. 아니, 천천히 걸었기에 숨은 차지 않는데 어지럼증이 나타난다. '저질체력'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지천명의 나이가 되도록 나는 내 몸을 소비하고 살아온 것이다. 그 소비의 끝은 육체적인 죽음일 터이다.

초록생명, 애벌레 속에는 하늘을 나는 꿈이 들어있다.
▲ 애벌레 초록생명, 애벌레 속에는 하늘을 나는 꿈이 들어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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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중지 정도는 될 정도로 큰 애벌레를 만났다. 어릴적 많이 보던 친구지만, 나이가 들면서 잊고 살았기에 몇 년 만인지는 가늠이 되질 않는다. 이 세상에 태어나 그를 만났던 세월보다는 훨씬 더 많은 세월이 지났을 것이다.

그 속에 들어 있는 하늘을 나는 꿈, 그 꿈이 헛된 꿈이 아니길 바란다. 그의 꿈을 생각하면서 내 유년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돌아본다. 지금의 나는 아닌 것 같다. 지금의 내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아닌 듯하다.

드디어 목적지인 대동문에 도착했다. 아카데미탐방로에서 1.8km정도 올라가면 나온다.
▲ 대동문 드디어 목적지인 대동문에 도착했다. 아카데미탐방로에서 1.8km정도 올라가면 나온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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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여 산행 끝에 대동문에 올랐다. 빠른 걸음걸이였다면 30분이면 올라왔을 정도의 거리, 그러나 나는 천천히 걷는 것을 택했고, 그 걸음걸이가 내 몸에 알맞았다.

이렇게 알맞은 걸음걸이가 있는 것처럼, 사람들마다 삶의 걸음걸이가 있다. 천천히 걸어가다보면 총총걸음걸이로 걸어가면서 보지 못하는 것들도 만날 수 있는데, 도시는 빠른 걸음걸이를 요구하고, 남들보다 앞서가려면 더 빨리 뛰라고 한다.

'더 빨리 뛰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아요.'

아니, '같아요'가 아니라 '터져버릴 것'이다. 완급조절을 하자.

하나하나 쌓을 때마다 소원을 빌었을 터이다.
▲ 돌탑 하나하나 쌓을 때마다 소원을 빌었을 터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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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문 안에는 작은 돌탑이 있었다. 작은 돌멩이를 쌓으며 빌었을 소망들, 그것을 단지 미신 행위로 치부할 수 있을 것인가? 나도 돌 하나 올려놓는다.

'삶 좀 제대로 살게 해주세요.'

내려오는 길 맑은 계곡에 발도 담그고, 세수도 했다. 여느 날과는 완전히 다른 날, 몸은 피곤해 무거워졌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한 때는 이런 삶의 연속이었다. 하루 동안 하려고 해도 못할 일 만큼을 하며 살았다. 그때가 가장 인간다운 삶의 시간이었다. 물질적으로는 풍족하지 못해도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날이었다.

다시 그런 삶을 살아갈 날을 꿈꾸며, 나는 러시아워 검은 포장도로 위에 서서 앞차의 빨간 후미등을 바라보고 있다. 이 삶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모든 삶, 다 좋다. 단, 자기의 이익을 위해 남을 아프게 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태그:#북한산, #대동문,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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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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