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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내에서 바라본 공산성 금서루
 성 내에서 바라본 공산성 금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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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2일~23일 백제의 영화와 숨결이 느껴지는 충남 공주(公州)시에 다녀왔다. 금강(錦江)을 경계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뉘는 공주시 인구는 약 13만. 규모는 작지만, 도시 곳곳에서 충청도 특유의 느긋한 정감이 묻어났다. 한때 백제의 수도여서 그런지 풍수가 뛰어나고 경관도 수려했다.

초등학교 때는 '백제의 두 번째 수도'. 중·고교 시절에는 '공주사범대', 20대에는 '계룡산(845m) 동학사', 서른 살 넘어서는 MBC TV 드라마 <거부실록-김갑순>(1982)에 출연했던 탤런트 박규채씨 대사 '민나 도로보데스('모두 도둑놈'이란 뜻)'의 공주였다. 그러나 고풍스러운 공산성(사적 제12호) 성곽을 보는 순간 유서 깊은 '사적(史蹟)의 도시'로 바뀌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5시 40분. 약속시각이 한 시간 남짓 남았기에 공용주차장 부근의 공주 관광안내센터를 찾았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서류를 정리하던 김경애 영어통역사가 친절하게 맞아준다. 공산성에 대해 해설을 듣고 싶다니까 시에서 발행한 팸플릿과 공주의 역사가 상세히 기록된 <국역 공산지> 한 권을 내주었다.

'공주' 옛 지명은 '곰나루'와 '고마나루'

공산정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에서 바라본 금서루와 성곽길
 공산정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에서 바라본 금서루와 성곽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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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바라본 금강철교와 금강, 서 있는 자리가 천연요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금강철교와 금강, 서 있는 자리가 천연요새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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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에 의하면, 백제 21대 개로왕(455∼475)이 고구려 장수왕의 침공을 받아 탈출하다가 잡혀 참수당하고 수도 한성(漢城)이 함락되자, 이어 즉위한 문주왕(475~477 개로왕 아들)이 천연적 요새이고, 수륙 교통의 요충지인 지금의 공주로 천도하여 백제가 다시 흥하기를 꾀했다고 전한다.

공주는 외교에 능했던 문주왕(475~477)에 이어 삼근왕(477~479), 정치적 불안정을 수습하고, 웅진 시대 토대를 닦은 동성왕(479~501), 무령왕(501~523)을 계승한 성왕(523∼554)까지 5대 왕(64년)에 걸친 백제의 왕도였다. 그러나 성왕 16년(538) 사비성(부여)으로 천도 후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멸망(660)한 뒤 당나라에 의해 '웅진도독부'가 설치되기도 했다.

삼국시대에는 웅진(熊津)·웅천(熊川), 통일 신라 시대에는 웅주(熊州)로 불리다가, 고려 태조 23년(940) 군현제를 정비하면서 '공주'라는 지명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옛 지명에 곰(熊)과 나루(津)가 들어가서 그런지, 듣기에도 정겨운 '곰나루', '고마나루' 등이 들어간 간판이 자주 눈에 띄었다. 

곰나루란 지명은 수목이 울창한 연미산(燕尾山)으로 약초를 캐러 갔던 한 어부가 암곰에게 잡혀 부부 연을 맺고 두 명의 자식까지 두었으나, 어부가 도망치자 암곰이 비관하여 자식과 함께 금강에 빠져 죽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단다. 곰나루의 다른 지명 고마나루(곰아나루)는 '큰 마을'의 뜻을 지니고 있다고.

영화 <공산성의 혈투> 촬영지였던 공산성

공산성 입구 매표소에서 금서루로 오르는 길
 공산성 입구 매표소에서 금서루로 오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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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다양한 이미지를 '사적의 도시'로 바꿔준 공산성(2660m)은 복원이 잘 되어 있었다. 해발 110m의 공산능선과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천연요새로 백제 시대에는 웅진성, 고려 시대에는 공주산성(공산성), 조선 인조(1595~1649) 이후 쌍수산성으로 불리었다 한다.

웅진(공주)의 보루였던 공산성은 남문인 진남루와 북문인 공북루가 남아 있고, 1993년 동문 터에 영동루, 서문 터에 금서루를 각각 복원했다 한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김헌창의 난(822)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조선 시대 '이괄의 난'(1623)으로 인조대왕이 피란했던 곳이기도 하다.

영화 ‘<공산성의 혈투> 촬영장소’ 기념비
 영화 ‘<공산성의 혈투> 촬영장소’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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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표소를 지나니까 둥그런 동판에 이강천 감독이 만든 영화 '<공산성의 혈투> 촬영장소'라고 새겨진 기념비가 눈에 띈다. 제작 연도는 1968년. 손가락을 꼽아보니 44년 전 영화로, 안내문에 적힌 박노식, 문희, 허장강 등 당대 인기배우 이름들이 옛 고향 친구처럼 정겹게 다가온다.

백제가 고구려 침략을 받아 공주로 도읍을 옮기던 무렵을 배경으로 만든 <공산성의 혈투>는 공산성과 곰나루, 마곡사 등에서 주요 장면을 촬영했으며, 원작은 인기 라디오 드라마 <공산성의 풀피리>로 영화화하면서 바뀌었다 한다. 특히 영화 주인공 '마모'가 '동성왕'이라는 대목은 관심을 끌만 했다.

청렴하고 강직한 목민관으로 이름난 공주 목사 김효성(1585~1665)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순조 28년(1928) 옥룡동에 세웠다는 '牧使 金孝誠 碑'(문화재 자료 제71호)를 비롯해서 공주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 '송덕비', '영세불망비', '유애불망비', '거사비' 등 47기의 비(碑)를 모아놓은 비석군도 지나칠 수 없었다.

특히 순조 17년(1817) 대홍수로 붕괴한 제민천교 재건립(1918년 4월)을 기리는 '제민천교 영세비'(공주시 향토문화유적 기념물 제20호)에는 당시 공사자금 조달방법과 공이 큰 관리, 자금을 지원한 강신환 등 일반 백성 10여 명의 이름도 함께 새겨져 있어 눈길을 끌었다.

아름다운 '공산성' 성곽 완주하지 못해 아쉬워 

성내로 드나드는 통로와 금서루
 성내로 드나드는 통로와 금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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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루에서 내려다본 공주 구시가지
 금서루에서 내려다본 공주 구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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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 3칸 측면 1칸의 금서루(錦西樓)에 오르니까 남쪽으로 안옥하게 자리 잡은 공주 구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구절산(330m)과 철마산(345m) 능선이 도시를 감싸고 있어 '배산임수'를 떠오르게 했다. 동학농민혁명(1894) 때 최후격전지였던 '우금티 전적지'도 아슴하게 보였다.

금서루는 네 개 성문 중 서쪽에 있는 문루로 그동안 터만 확인되면서 성내로 진입하는 통로로 이용되다가 1859년 편찬된 <공산지>의 문헌과 동문 조사자료, 지형적 여건 등을 고려해서 약간 서쪽으로 이동한 자리에 조선시대 양식으로 1993년 복원했다고 한다.

공산정. 유신대·전망대 등으로 불려오다 시민공모(2009)를 통해 공산정으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공산정. 유신대·전망대 등으로 불려오다 시민공모(2009)를 통해 공산정으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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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정(公山亭)은 서북쪽 산마루에 있는 누각으로 금서루와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누각 2층에 오르니까 유유히 흐르는 금강과 금강철교(등록문화제 232호)가 내려다보였으며, 금강 건너로는 아파트단지가 밀집한 공주시 신시가지가 그림처럼 펼쳐졌다.

웅장하고 찬란했던 백제 역사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필사즉생(必死則生)의 각오로 전쟁에 임했던 군사들의 함성이 귓전을 맴도는 듯했다. 일제강점기(1933년)에 준공됐다는 금강교(513m)와 1986년 건설된 공주대교(480m)는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산마루에 걸쳐 노을을 준비하는 태양.
 산마루에 걸쳐 노을을 준비하는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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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산마루로 기운 태양이 노을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6시 40분. 저녁 약속시각이 오후 7시여서 내려와야 했다. 금서루- 쌍수정- 진남루- 영동루- 임류각- 광복루- 연지·만하루- 공복루- 공산정으로 이어지는 공산성을 눈요기만 하고 내려오려니까 아쉬웠다.

공산정에서 내려오는 오솔길 주변은 숲이 우거지고 아름드리나무가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숨을 쉴 때마다 신선함과 상쾌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수령이 500년도 더 되어 보이는 느티나무는 성곽에 기댄 채 수명을 유지하며 백제와 공산성의 유구한 역사를 무언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다음날에는 찬란한 백제 문화가 보관된 공주박물관에 들러 무령왕릉에서 발굴(1971)한 왕비의 '금동 신발'과 '금관', 무령왕릉 지킴이 '진묘수' 등 국보급 유물들을 감상했다. 돌아오는 차에서도 공주는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사까지 역사를 간직한 '사적의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주박물관을 돌아보는 일행
 공주박물관을 돌아보는 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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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공주시, #공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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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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