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나와 비슷한 처지에 괴로워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또 청소년 여러분이 공부에만 전념한 나머지 대중 앞에 나서는 부담감을 갖는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글이 그런 분들께 다소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기자 말>

이렇게 대중 앞에 자신있게 서기까지 참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이렇게 대중 앞에 자신있게 서기까지 참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강사님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강사님께서는 2000년도 신지식으로 선정이 되셨으며, 화천군청 공무원 신분이면서 특이하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도 활동하시는 분입니다. 어렵게 시간을 할애해주신 강사님을 위해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사회자의 화려한 소개에 나는 어색한 자세로 일어섰습니다.

사실 나는 대인 공포증이 심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내게 제일 두려운 것은 소풍이었습니다. 그것도 1년에 봄소풍, 가을소풍 두 번으로 나뉘어 실행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내겐 지옥이었습니다. 시골분교 전교생이라야 고작 20명 남짓한 학교. 소풍 행사 중 빼놓지 않는 프로그램은 개별 노래 부르기입니다. 제발 비가 와서 소풍이 취소되길 바랐지만 단 한 번도 그런 행운(?)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했던 이유는 남들 앞에 나서야하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친구들 앞에만 서면 울먹이는 것도 아닌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이 되고 목소리뿐만 아니라 몸까지 떨림 증세가 심했습니다. 선생님의 강요에 못 이겨 "학교종이 땡땡땡" 하는 노래를 국어책 읽듯 빠르게 불렀는데, 당연하겠지만 박수는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놀릴 것 같다는 불안함. 자신감은 점점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사진, 어린시절 나(원형)는 늘 뒤에 서길 좋아했습니다. 앞에 서면 왠지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졸업사진, 어린시절 나(원형)는 늘 뒤에 서길 좋아했습니다. 앞에 서면 왠지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가난한 환경 탓에 중학교를 진학할 수 없었던 상황. 쾌재를 불렀습니다. 더 이상 사람들 앞에 서는 두려움을 느껴야 하는 부담감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어떤 계기로 인해(<"세상에 가장 무서운 게 뭔지 아나?">)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군에 입대해서도 단체생활을 적응하지 못하는 성격, 그리고 하급병사들에게 자신 있게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성격이 늘 나를 짓눌렀습니다.

그나마 어렵게 군 생활에 적응할 즈음 제대를 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나'라는 고민은 오래하지 않았습니다. 혼자의 생활이 가능한 직업. 스님이 되기로 했습니다. 2년 동안 <반야심경> <천수경> 심지어 <금강경>까지 깡그리 외웠습니다. 불교 광신자였던 사촌누님께 나를 상자로 받아줄 큰 스님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네가 가진 것 다 버렸다고 생각할 때 다시 내게 말해라."
'뭘 버리라는 건가! 결혼도 하면 안 된다는 건가!'

결국 스님이 되기로 한 것도 포기하고 면사무소에서 혼자 열심히 일하던 직원 모습이 떠올라 공무원 시험을 보기로 했습니다.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극복하자

관광객 안내,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분야는 당신이 전문가 입니다.
 관광객 안내,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분야는 당신이 전문가 입니다.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역시 제일 싫었던 것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반상회 날이었습니다. 반상회 날은 반회보를 가지고 마을에 나가 주민들에게 설명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렵게 떨리는 손으로 반상회보를 들고 주민들에게 읽어 주고는 도망치듯이 자리를 피하곤 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말단직원 때는 남들 앞에서 발표할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계장으로 진급하면서 회의 시 사회도 봐야 하고 행사진행도 해야 하는 것이 늘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남들 앞에 나서는 연습을 하자.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이른 아침 아무도 없는 산에 올라 소리 지르기. 이것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즈음 인터넷을 통한 윈앰프 방송을 알게 되었습니다. 윈앰프 방송은 어떤 사이트에 채팅 방을 만들어 음악을 들려주고 멘트도 하는 라디오와 비슷한 일방통신 방송입니다.

그러려면 많은 음악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소리바다'라는 사이트에서 무료로 음악파일 다운로드가 가능했습니다. 대략 2만여 곡 다운로드를 해 놓고 방송방을 열었습니다.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 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듣는다는 전제로 마음껏 하고 싶은 이야기를 떠들어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한 명, 두 명이 참여를 하면서 또 말하는 것에 대한 병적인 부담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방송시간 전 1시간 동안 말할 분량을 백지에 빼곡히 써 놓고 읽는 형식으로 방송을 이어나갔습니다. 당시 내 방에 들어오셨던 분들께서 나를 측은하다고 생각하셨는지 매일 내가 방송하는 시간대에 맞추어 참여를 해주시는 게 너무 좋았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굳이 방송 맨트를 미리 써놓지 않아도 날씨 이야기며 당일 주요뉴스 소개 등 소재를 구상할 능력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내친김에 24시간 방송(윈앰프 방송 중 24시간 운영되는 방송으로 시간대별 진행자가 지정됨) 오디션을 봤는데 합격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기술은 배웠지만 과연 대중 앞에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역시 미지수입니다. 시선은 어디에 두어야 할지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어떻게 수습할지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그것은 두려움이었습니다.

그 무렵 부서별로 대표자를 선정해 행정혁신 발표를 해야 하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부서에서 아무도 지원하는 사람도 없다면 주무담당인 내가 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너한테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 하나만 하자." 

바쁘다는 동료 계장을 심각한 일이 있는 척 불러내 술 한 잔 사면서 부탁을 했지만, 역시 답은 "노(No)"입니다. 까짓것 한번 부딪혀보자. 제발 1등은 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1등을 하면 군청 대표선수 자격으로 강원도 대회에 참가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불안한 발표자세보다 내용을 중시했는지 1등을 한 겁니다.

강원도 대회. 일찍 출발해 발표장을 둘러봤더니 조명에 의해 관객은 내 얼굴을 볼 수 있지만 객석은 어둡기 때문에 나는 그들을 볼 수 없는 시스템입니다. 열심히 스크린만 보며 발표를 했는데, 18개 시군에서 3등을 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상금보다 내 스스로가 대견스러워 몇 날을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대인기피증, 극복한 줄 알았는데...

그로부터 며칠 뒤 군수 앞에서 멘토링 선서를 하는 기회가 있었는데, 손이 덜덜 떨리고 목소리마저 기어 들어가 전 직원 앞에서 제대로 망신을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성격은 타고난 것인가 보다, 스스로 좌절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대로 주저앉으면 폐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딸아이가 다니는 중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이 아마 그 시기였을 겁니다. 내용은 학부모 자격으로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와서 지역경제에 대한 강의를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장기출장을 가야 하기 때문에 곤란하다고 적당히 둘러대긴 했지만, 이렇게 살다가는 딸과 아들 앞에서 떳떳한 아빠가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부담감이 심하게 괴롭혔습니다.

대중의 관심과 시선유도는 강의에 앞서 가장 기본적인 사항입니다.
 대중의 관심과 시선유도는 강의에 앞서 가장 기본적인 사항입니다.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다음해에 운이 좋게도 1년간 장기교육 대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교육기간, 분명히 남들 앞에 나서 발표를 해야 할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기가 생겼습니다.

'1년 동안 아무것도 배우지 못해도 좋다. 대중 앞에 나서보는 기회로 삼자.'

남들이 뭐라 하든지 말든지 교육기간 중 분임토의결과 발표에서부터 개별 발표까지 기회가 되면 무조건 나섰습니다. 1년간 발표기회가 많아야 서너 번 정도인데 무려 10여 회를 했으니까 스스로 변화를 위해 무진 애를 썼던 시기였습니다.

교육 이후 발령을 받은 부서는 군정홍보담당. TV나 방송매체를 통한 인터뷰가 많은 자리입니다.

"저기요 말씀하실 때 위아래를 보시지 마시고. 눈동자도 왔다 갔다 하시잖아요, 고정된 시선으로 카메라를 보고 말씀해 주세요,"

단 20초 인터뷰를 하는데 적어도 10번은 반복했을 겁니다. 보다 못한 기자가 "당신 말고 이 내용 좀 아는 계장 없습니까?"라고 할 정도로 말입니다.

"형부 인터뷰하는 거 봤는데요. 표정과 말하는 게 너무 불안해서 조마조마했어요."

내가 인터뷰한 방송을 본 처제의 말을 듣고 "이젠 죽어도 인터뷰 안 한다"라는 생각은 했지만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 방송사 인터뷰만 있으면 내 업무가 아니더라도 밤새 연찬을 해서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여기 ○○○라디오 방송국인데요. 주민 중에서 지역현황을 좀 알고 일주일에 한 번씩 인터뷰를 할 만한 사람 한 명만 소개해주세요."
"네, 한 명이 있긴 한데 직업이 공무원인 사람은 안 되나요?"
"괜찮습니다. 그런 분이 있어요? 그분이 누구시죠?"
"접니다."  

스스로 음색을 점검해 보고 상황에 따른 목소리 톤 조정을 해 보는 것도 좋을 듯했습니다. 또 지역에 대한 연구를 통해 깊이 있게 아는 기회도 될 것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1년간 라디오를 통해 매주 목요일 지역소식을 전하는 통신원을 하고 있을 즈음 홍보담당에서 관광기획담당으로 인사발령이 난 겁니다. 새로 홍보담당 보직을 받은 직원에게 내가 해오던 일 모두를 인수인계 했지만 통신원 일은 인계하지 않았습니다. 말하는 연습을 좀 더 해보자라는 의도에서였습니다.

강단에 서다

숱한 노력끝에 얻어낸 결과는 수상생들의 표정과 눈빛을 읽는 능력입니다.
 숱한 노력끝에 얻어낸 결과는 수상생들의 표정과 눈빛을 읽는 능력입니다.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SNS를 이용한 홍보를 하신다던데, 방법에 대한 소개를 해주시겠습니까! 대신 강사료는 없습니다."

어느 날 강원도청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강사료가 문제겠습니까! 여러분들 앞에 나설 수 있는 기회를 주셨는데. 역시 자신 있는 분야는 다른가 봅니다. 10여 명 남짓한 직원들 앞에서 개별 반응을 살피며 여유 있는 표정까지 만들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후로 관광기획담당을 하면서 관광해설사로 나섰습니다. 휴일에도 나와서 성실히 일한다고 평가를 하지만, 실은 아닙니다. 씨티투어를 이용한 관광안내는 휴일에만 있기 때문이고 대중(관광객) 앞에 나설 수 있는 기회 또한 휴일뿐이기 때문이란 것은 굳이 말하지 않겠습니다. 역시 지역 관광소관은 내 업무라 그만큼 많이 아는 분야이다 보니 목소리나 표정에 자신감이 생깁니다.

강의자료 표지, 너무 부정적이란 생각에 'SNS를 활용한 홍보 이렇게 하면 됩니다'로 고쳤습니다.
 강의자료 표지, 너무 부정적이란 생각에 'SNS를 활용한 홍보 이렇게 하면 됩니다'로 고쳤습니다.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SNS를 이용한 홍보, 이렇게 하면 망한다' 참 특이한 제목 때문에 그러는데 어떻게 하면 망하는지 강의 좀 부탁드리면 안 될까요?"

역시 내게 자신 있는 분야입니다. 요청이 오면 교육원이나 기업 등 닥치는 대로 강의에 나섰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멋진 강의였다'는 찬사를 듣고 돌아오면서 생각해 보면 '이 중요한 부분을 왜 잊고 말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아쉬움도 밀려옵니다. '산천어축제 성공 방안 또는 트위터를 이용한 홍보기법' 등 가리지 않고 공짜 강의도 나섭니다. 그들은 내 스스로에 대한 발전의 기회를 주는 소중한 고객들이기 때문입니다.


태그:#대인기피증, #SNS, #SNS강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밝고 정직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오마이뉴스...10만인 클럽으로 오십시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