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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에서 나와 향한 섭지코지. 그 묘한 이름 때문인지 난 괜스레 들떠 있었다. 좁은 땅을 뜻하는 협지의 제주방언 '섭지'와 바다로 돌출한 육지를 뜻하는 곶의 제주방언 '코지'가 합쳐져 섭지코지라 불리게 되었다는 그곳. 도대체 그곳에는 무엇이 있기에 사람들이 섭지코지, 섭지코지 하는 것일까?

우리가 들어간 곳은 섭지코지 내에 지어진 콘도로,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일품이었다. 바다를 따라 해안선이 굽이굽이 펼쳐져 있었고, 바다는 먹구름에 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다만 눈에 거슬리는 것은 해안선을 따라 길게 늘어서있는 인공 돌담이었는데, 콘도가 지어진 사유지와 공유지를 구분하는 경계인 듯했다. 콘도를 지은 휘닉스 아일랜드 측이 섭지코지의 대부분을 소유한 것일까? 에이 설마.

아름다운 풍경
▲ 제주 섭지코지 아름다운 풍경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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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투리만한 공공의 길
▲ 섭지코지 등대 자투리만한 공공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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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간의 휴식 뒤, 우리 식구는 섭지코지를 구경하기 위해 숙소를 나왔다. 까꿍이는 당장 휘닉스 아일랜드 경내를 돌아다니는 미니 열차를 타자고 징징거렸지만 늦은 시간이라 기차운행은 끊긴 지 오래였고, 우리는 대신 그곳을 산책 삼아 천천히 둘러보기로 했다. 그래 봤자 리조트 경내인데 뭐 얼마나 넓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휘닉스 아일랜드는 상상 외로 넓었다. 리조트는 섭지코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게 된 바, 차지하고 있는 부지만 20만 평이라는 것이었다. 도대체 누가 어떤 권한을 갖고 섭지코지라는 특정 지역을 하나의 기업에게 넘긴 것일까? 섭지코지가 단순히 개인의 소유였기에 가능했던 것일까? 아님 국가나 지자체가 단기간의 수익을 위해?

섭지코지 천혜의 풍경 가리는 리조트, 안타깝다

해변가에 조성된 그들만의 마을
▲ 출입금지 해변가에 조성된 그들만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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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으로 섭지코지를 거닐려니 그 모든 것이 가관이었다. 특정인들을 위해 지어졌을 별장 군락은 물론이요, 내가 묵고 있는 숙소의 울타리 자체가 불편했다. 과연 그들은 무슨 권리로 섭지코지를 소유하고 있으며 무슨 이유로 통행권을 징수하는 것인가. 섭지코지의 공공의 영역은 진정 해변에서 등대까지 이르는 좁은 해안선 산책로가 다란 말인가.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섭지코지 그 천혜의 풍경에 대한 그들의 테러였다. 리조트는 홍보물을 통해 경내에 존재하는 모든 건축물들이 세계적인 대가들의 작품으로서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보여준다고 극찬했지만, 그것은 또 하나의 폭력일 뿐이었다. 도대체 그들은 무슨 권리로 제주 자연의 풍경마저 조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작품은 무조건 아름다운 걸까?

가장 아름다운 조망을 방해하는 글래스 하우스
▲ 섭지코지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가장 아름다운 조망을 방해하는 글래스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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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조망의 권리에 있어서 가장 눈에 거슬리는 풍광은 섭지코지의 화룡점정이라고 할 수 있는, 등대께에서 바라보는 성산일출봉 모습이었다. 그곳에는 리조트의 레스토랑이 들어가 있는 '글라스 하우스'라는 건물이 우뚝 솟아 있었는데, 바로 그 건물이 결정적으로 섭지코지에서 바라보는 성산일출봉의 풍경을 방해하고 있었다.

물론 리조트 측은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가 지었다며 호들갑이었지만 어차피 미적 관점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 아니던가. 언제 이 건물이 한낱 흉물로 전락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난 잘 모르겠던데...
▲ 세계적 대가의 걸작 난 잘 모르겠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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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살아있는 역사 '민속오일장'

다음 날 아침, 비가 오는 가운데 우리가 향한 곳은 제주시의 민속오일장이었다. 그 전날 이미 동문시장에서 퇴짜 아닌 퇴짜를 맞은 탓에 혹시 했었지만, 다행히 굵은 빗방울이 제법 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주오일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들, 그리고 구경하는 사람들. 역시나 시장은 그 지역을 파악할 수 있는 최고의 바로미터임이 분명했다.

제주오일장은 여러모로 상설시장인 동문시장과 비교되었는데, 그 중 가장 큰 차이점은 판매 대상이었다. 동문시장은 대부분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물건들을 팔고 있었던데 반해, 제주오일장은 그 지역 사람들 간의 매매가 더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듯했다. 뭍의 관점에서는 어차피 같은 섬 사람이지만, 그 내부적으로는 또 얼마나 다른 지역에서 다양한 교류들이 존재하겠는가.

제주 일상의 중심
▲ 제주오일장 제주 일상의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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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제주오일장은 동문시장과 달리 좀 더 인간적인 냄새가 풍겼다. 닳고 닳은 장사꾼과 속지 않고 뭐든지 의심하려는 관광객 간의 흥정이 주된 풍경을 이루는 동문시장과 달리 제주오일장에서는 필요에 의해 물건을 판매하고 구매하는 생활인들 간의 거래가 더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오랜 세월 이와 같은 장을 통해 하나의 정체성을 유지해왔을 제주도의 역사가 바로 그곳에 있었다.

제주오일장에서 서울로 보낼 생선거리를 구매하여 택배로 부친 뒤 서귀포로 향했다. 도중에 '선녀와 나무꾼'이라는 전시관에도 들렸지만 비가 오는 관계로 차마 둘러볼 염두를 내지는 못했다.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장인어른과 유아 둘을 데리고 비를 맞아가며 전시회를 관람하는 것은 분명 무리였다.

동양최대의 법당 약천사

서귀포에 도착하니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고 있었다. 식구들은 아내가 이미 예약해 놓은 숙소에 가서 짐을 풀은 뒤 휴식을 취했고, 나는 오랜만에 서귀포 구경도 할 겸 숙소를 나와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약천사란 간판에 이끌려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동양 최대의 법당이라는 수식어가 마음에 걸린 탓이었다. 제주에 그런 큰 규모의 사찰이 있었던가? 왜 난 이전에 그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것이지?

약천사의 중심 대적광전
▲ 동양 최대의 법당 약천사의 중심 대적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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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보는 사람을 질리게 만드는 규모
▲ 약천사의 위엄 바라보는 사람을 질리게 만드는 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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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도착한 약천사. 사찰은 과연 명성대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한 눈에 담을 수 없을만큼 큰 대적광전이 가운데에 놓여 있었고, 그 앞에는 북각과 종각이 요사채와 연결된 채 아래를 굽어보는 폼이 마치 중국영화에서 볼 수 있는 성채를 연상시켰다. 게다가 사찰 주변에 심어진 나무들은 어떤가. 물론 기후적 특성 때문이겠지만 야자수 나무 같이 커다랗고 긴 나무들이 사찰을 둘러싸고 있어 이국적인 느낌과 함께 어떤 위압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다른 산사에서 느낄 수 있는 호젓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약천사.

의아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 거대한 사찰을 지었을까? 1981년도에 사찰을 지었다고 하니 굳이 산이 아닌 평지를 택했음은 이해할 수 있겠으나, 그 규모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거대한 절을 지으면, 동양최대라는 수식을 붙이면, 정신수양과 중생들을 구제하는 데 있어서 도움을 받는다고 생각한 것인가?

 약천사의 사찰 내부
▲ 기괴한 나무들 약천사의 사찰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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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건대 아마도 그것은 규모의 컴플렉스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려시대 이후 민중의 곁에서 쫓겨나 산에서나 건물을 세울 수 있던 불교가 교세 확장과 함께 도시 한복판에서 대형화 되어가는 교회를 보며 어찌 부럽지 않았겠는가. 아마도 혹자들은 좀 더 크고 화려한 법당을 지어 사람들에게 불교의 찬란한 역사와 위세를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 비록 신자는 아니지만 그런 사찰의 규모는 부담스러울 뿐이었다. 비록 동양최대라는 허울에 현혹되어 그곳까지 찾았지만, 호젓한 산사에서 걸어온 자취를 되돌아보며 사색에 잠기기 좋아하는 나로써는 약천사의 위풍당당한 모습이 낯설기만 했다. 그것은 작은 생명도 소중하기에 MB표 4대강 사업 등을 반대하던 불교와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주위 자연과의 조화는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무조건 크고 화려하기만 하면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 것이라는 세속적인 욕망만 그득한 공간.

해가 질 무렵 약천사를 나와 숙소로 향했다. 뒤로 보이는 무식하게 크게만 느껴지는 약천사의 기괴한 모습. 과연 후손들은 사찰의 대한민국 시대의 양식을 어찌 평가하게 될까? 과연 현대의 사찰양식이 고려시대나 조선시대보다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

그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 사찰
▲ 멀리서 바라본 약천사 그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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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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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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