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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 심겨진 못 가득 연잎이 피어났다. 이제 곧 연꽃이 피어날 터이다.
▲ 연잎 연이 심겨진 못 가득 연잎이 피어났다. 이제 곧 연꽃이 피어날 터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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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잎이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엄청나게 예뻐. 한 번 꼭 보러와."

안성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이제 머지않아 꽃이 필 듯 꽃대도 올라왔는데 연 이파리가 볼만하며, 연밥을 만들어 먹었는데 기가 막힌단다. 이런저런 핑계 삼아 친구 보고 싶다는 것이리라.

주말에 막내와 함께 텐트를 가지고 가서 친구 집 근처의 산자락에서 1박을 하고 들른다고 했더니 좋다고 한다. 그런데 막내에게 급작스런 약속이 생겨 취소 나중에 소식을 알렸더니만 여간 서운한 게 아닌가 보다.

"온다고 해서 연밥 만들 준비도 하고, 가마솥도 연잎으로 닦아 놓았구먼. 연잎 삼겹살로 해주려고 했는데..."
"내일 나 혼자라도 갈게."

연잎 가득한 연밭, 넓은 이파리들이 그늘을 만들어 준다.
▲ 연잎 연잎 가득한 연밭, 넓은 이파리들이 그늘을 만들어 준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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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으로 가는 길, 강원도로 향하는 차량행렬로 영동고속도로가 빽빽하고, 그 여파로 영동고속도로와 이어진 호법분기점 근처도 거북이걸음이다. 가뭄에 뙤약볕까지 더해지니 좀 더 일찍 바다로 향하는 이들이 많아진 탓인가 보다.

일죽 톨게이트를 나와 친구의 집으로 향하는 길에 있는 용설 저수지는 물이 있는 곳보다 바닥을 드러낸 곳이 더 많다. 극심한 가뭄이다. 그래도 연이 자라고 있는 곳엔 다행스럽게도 마르지는 않았다.

불려두었던 쌀과 잡곡을 연잎에 싼 뒤 찜통에 올려 찐다.
▲ 연밥 불려두었던 쌀과 잡곡을 연잎에 싼 뒤 찜통에 올려 찐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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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연밥을 준비하고 있었다. 불린 쌀과 잡곡을 넣어 연잎에 정성껏 싸서는 찜통에 올려놓고 불을 켠다.

"우리 산에 올라가 볼까?"
"가물어서 뭐가 있긴 할까 몰라."

산에 올라가는 길, 달걀프라이를 닮은 하얀 개망초가 흐드러지고 군데군데 노오란 좁이 피어있다. 땅두릅이 제법 자랐지만 군데군데 여전히 새순이 올라온다. 점심상에 올릴 것 몇 개를 꺾는다. 하늘말나리가 가물에도 화들짝 피어났다.

"생명은 참으로 오묘한 것이야."
"그러게. 우리가 그 생명을 먹고 사는 것이니 엄벙덤벙 살아선 안 되겠지."
"자네는 잘살고 있지 않는가?"
"힘들어, 의미는 있지만 힘들어..."


연잎의 향기가 진하게 풍긴다.
▲ 연밥 연잎의 향기가 진하게 풍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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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그 친구와 나는 중학교 동창이고, 대학교와 대학원까지 함께 공부했다. 한때는 함께 성남 공단지역에서 노동자들을 위한 탁아소와 공부방을 하기도 했고, 이후에 그는 그 일을 지속하면서 대안학교를 만들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대안학교뿐 아니라 지천명의 나이가 되도록 늘 청년처럼 새로운 일들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실하고, 정직하게, 역사에 부끄럼 없이 살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대학을 졸업한 이후만 계산해도 25년이 다 되어가는데, 여전히 힘들고 버겁다. 그 일에서 벗어나 있는 나 역시도 여전히 버겁고 힘들다.

'인생이 별건가? 이제 남은 인생 좀 더 자주 만나자고...'

그것이 우리가 이전보다 자주 만나고 연락하는 이유다.

연잎의 향기뿐 아니라 낟알들의 향기까지 더해진 맛의 표현을 할 수 없다.
▲ 연밥 연잎의 향기뿐 아니라 낟알들의 향기까지 더해진 맛의 표현을 할 수 없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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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밥의 맛은 쌉쌀하기도 했고, 달기도 했다. 땅두릅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달콤씁쓰름 깊었다. 그 친구의 삶의 향기를 닮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은 정직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추상적인 말로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그들은 드러나지 않는다. 자기를 드러내는 일이 크게 의미 없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론 그것 때문에 속이 상하기도 하다. 정작 필요한 순간에 정직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으면서도 세상에 그럴듯하게 드러난 이들이 자신들에게 돌아와야 할 몫까지도 채가기 때문이다.

그게 인생이지 뭐. 우리 인생에 향을 더하자. 그런 생각을 하며 밥을 두어 숟가락 남겨두고 잠시 밖으로 나왔다. 산자락에서 봐둔 산초이파리를 몇 개 뜯기 위해서다. 부드러운 산초이파리 두어 개를 따서 연밥에 얹어 먹는다. 독특한 향이 더해진다.

연잎, 땅두릅, 산초 그리고 이런저런 잡곡들 모두가 어루어져 독특한 향을 내는데 그 맛이 달콤씁쓰름깊음이다. 그 친구의 인생의 맛이 이런 맛일까? 깊다. 맛나다.


태그:#연, #연밥, #채식, #자연,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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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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