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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통로와 에까마이 지역은 강남의 청담동처럼 재즈바·와인바·웨딩숍이 즐비한 거리이다. 특히, 통로 제이에비뉴는 방콕의 대표적인 '라이프스타일 몰(Life style mall)'로서 방콕의 젊은 층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곳 중에 하나다. 또한, 에까마이의 대규모 일본 라이프스타일 쇼핑몰 '게이트웨이'의 준공은 방콕의 멋쟁이들이 많이 이용할 것으로 예상해 쇼핑센터와 레스토랑, 카페 등 여러 상점들이 한꺼번에 입점을 해 있어서 사람을 만나기 위한 최적의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멀지 않은 거리에 클럽들이 모여 있다.

특히, 부유한 태국인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이며 일본인, 한국인, 아랍인을 비롯한 외국의 공관, 상사 직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최신식 콘도와 초호화 아파트가 즐비하다. 또한, 국제학교, 기독교학교, 대사관, 유명한 자동차 매장들이 많은 곳이다.

하지만 부유층이 사는 곳 뒤편, 즉 대로 안쪽에는 도시빈민층이 수로를 따라 밀집되어 살고 있다. 특히, 대부분 빈민층이 시궁창 위에 집을 짓고 살거나 원룸에 보통 4~5명의 가정이 함께 산다.

에까마이 지역의 경우, 한쪽은 클렁딴이라는 수로로 막혀있고 마을 앞쪽은 에까마이와 펫부리를 연결하는 큰 도로로 막혀 있으며 나머지는 벽돌로 "ㄱ"자 모양으로 싸여져 있는데 이 빈민촌에 들어와서 다른 지역으로 가자면 한사람이 지날만한 작은 길이나 문을 지나야 다른 지역으로 갈 수 있다. 또한, 마을 제일 안 쪽에 있는 수로 위에 작은 다리를 통해야 펫부리로 나갈 수 있다. 마을이 수로나 큰 도로 그리고 담으로 둘려 싸여 부촌과 빈촌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있으며, 이 좁고 폐쇄적인 지역 안에 여러 개의 춤촌(마을이 아닌 작은 공동체를 지칭함. 태국은 부자들이 사는 주택 단지들은 집 수가 적어도 "무만" 마을로 간주하지만, 빈민촌은 그 면적이 넓고 사람들이 많아도 마을로 부르지 않는다.)이 형성되어 있다. 약 2500세대가 살고 있다.

그들은 매달 3500~4000 바트 정도 렌트비에 3평의 원룸 공간에 4~5명의 가족이 함께 살기도 하고, 그것도 형편이 안 되면 2.5평도 안 되는 공간에 화장실 부엌 그리고 침실을 같이 쓰는데 매달 2000바트 정도의 집세를 내고 산다. 이 지역은 방콕이 해발 3m 이하의 지역이고 습지다 보니, 습지에 나무를 밖아 나무 집을 짓고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통로 지역은 에까마이보다 환경적으로 더욱 열악하다. 통로 지역의 빈민촌은 통로 경찰서와 경찰관사 지역의 벽과 옆의 호화 개인 아파트 경계 벽 사이에 집을 무허가로 짓고 산다. 경찰관사 쪽으로 세워진 벽을 헐어 문으로 사용하고 있다. 형편이 나은 사람들은 그나마 나무집, 양철 지붕으로 이층을 지어 살기도 하지만, 극히 드물고 깨어진 마룻바닥 밑으로 30cm 아래 시궁창이 흘러서 더러운 물에 서식하는 모기 등이 함께 산다. 낮 시간에는 그 시궁창의 물을 몇 시간 계속 빼내기도 한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은 나무 판자로 2평 정도의 평상을 만들어, 평상 위에 종이 박스를 얹어놓고 현수막으로 지붕을 만들어 집으로 사용한다. 집 안으로 들어가면, 방을 작은 나무 판자 하나로 구분 짓는다. 한 집에 다섯 가정이 3평 정도 남짓한 곳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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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빈민의 발생은 산업혁명 이후 세계적으로 일어난 가장 큰 사회 변화 현상으로 공업화 및 그에 따른 도시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공업화에 따른 도시화로 자본과 인구가 대도시로 집중되었고, 도시성의 외연적 확대를 통해 지역 구조가 크게 바뀌게 되었다. 이러한 도시화와 공업화는 많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걸어왔던 과대화 현상으로서 개발 도상 국가들도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발전 과정 중 한 형태가 됐다.

서구의 도시화는 일반적으로 공업화에 기초를 두고 이촌 향도의 인구 이동에 의한 비교적 점진적인 발전이었으나 개발 도상 국가들의 도시화 현상은 보다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농촌 인구의 도시 유입과 더불어 도시 자체 인구의 자연적 증가가 주요 요인이 되는 저 성장 속의 단순한 인구성장 및 공간의 확대에 불과하였다.

태국의 경우, 도시화 현상은 1970년대부터 1996년까지 수출지향적 산업 정책과 일본, 미국의 투자 증대에 힘입어 평균 9%의 빠른 경제성장 달성했다. 경제 기반이 농업에서 공업으로 전환되는 가운데 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산업 재편, 수출산업화, SOC 확충, 외국인 투자 촉진 등을 중심으로 한 경제정책을 중점 추진함으로써 1980년대 후반에는 10% 내외의 고도성장을 시현했으며 1990년대 중반까지는 8% 내외의 안정된 경제 성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시기 어려운 생활 여건에서 비롯된 농촌 인구가 도시로 집중되었으며, 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공업화는 도시 산업의 발달로 인하여 도시의 흡인 요인에 의한 인구의 도시 유입이라는 이촌 향도 현상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촌 향도의 영향으로 대규모 도시 주거지 형성에 따른 주택 부족과 이주에 대한 고용기회의 부족으로, 제3차 산업의 서비스업을 주축으로 하는 한계적 고용을 낳아 대규모 도시빈민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대도시 일수록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방콕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이와 함께 1996년에 들어와 주력 수출 품목이었던 노동집약적 상품이 임금상승과 중국 등 신흥 저임국가들의 대두로 인해 가격경쟁력을 상실하여 경상수지 적자가 147억 불을 기록하였으며, 특히 금융기관 등이 그간 무분별하게 차입한 외자가 부동산개발, 주식시장으로 유입됨으로써 경제의 비효율성이 증대 1997년 태국의 외환위기를 초래하였다.

또, 수출 경쟁력 약화에 따른 무역수지 적자의 확대, 금융시장 개방 과정에서의 과도한 외자 유입, 부동산·주식 시장 과열에 따른 거품경제가 급속히 축소되면서, 이에 따른 태국경제의 대외 신뢰도 하락으로 인한 단기 해외자금의 급속한 유출로 발생했으며 도시 빈민의 양산을 가져왔다. 그리하여 노동자와 서비스업에 종사할 수 있는 젊은 층과 일부 여성을 제외하고는 무자본, 저학력, 무 기술의 대중들이 도시 변두리에 거처를 마련하게 된다.

빈민은 소득이 극히 적은 가난한 사람을 뜻한다. 빈민촌은 이러한 빈민이 사는 곳으로 도시 빈민의 집단 거주지, 일명 도시 무허가 정착지다. 이런 불량주거지와 재개발 사업은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불량 주거지를 없애는 재개발 사업은 도시공간의 효율적 이용이나 도시 미화 또는 주택의 대량 공급이라는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도시 빈민의 생활 조건의 악화나 도시 빈민의 재생산 구조에 대한 관심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조명되어야 한다. 그리고 재개발 사업이 지역주민의 생활 상태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관심에서 더 나아가 도시 빈곤층의 확대와 지속의 구조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통로와 에까마이 지역은 무허가 판자촌이 많다. 못 살던 시절, 허가 없이 판자로 집을 지어 살았었다. 하지만 아무리 무허가라 하더라도 오랜 세월 거주하였기 때문에 쉽게 쫒아낼 수 없다. 이곳 주민들도 오랜 세월 살았는데 나가라고 하면 순순히 나갈 수도 없다. 그래서 이곳 주민들은 보내려면 살 공간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법대로 하면 내 보낼 수 있지만, 사는 주민 중에 개인소유 토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들을 빼고는 보상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무허가지만, 그들의 생존권이 달려있는 문제다. 그래서 주민들에게 어느 정도 보상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처음에는 살 곳이 없어서 살고 물론 아직도 살 곳이 없어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보상을 원해서 계속 눌러 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태국의 종교는 불교로 전국민의 94.6%가 불교를 신봉하고 있다. 하지만 통로와 에까마이 지역의 빈민촌은 종교적으로 두 지역 다 이슬람교가 60~70% 이상이다. 이슬람교의 빈민구제 정책과 도움때문에 그들은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 태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중들도 이곳에는 거의 없으며, 나머지 30~40%는 불교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경제적 형편으로는 대부분 일용직 근로자들이나 유흥업소 종사자, 오토바이 운전사 또는 집 앞에 음식을 만들어 놓고 판다. 가정적으론 부모가 이혼한 결손가정들이 많고, 심한 경우 아이가 3명일 경우 엄마나 아버지가 3인인 경우도 있다. 대부분 부모들의 학력은 학력이 없는 경우가 많고, 자연히 가정경제 형편상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이라 자녀의 교육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다. 간혹 학생들 중에 대학을 다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마을 안에 있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그것도 안되는 아이들은 자퇴하여 취업을 하는 편이다.

이런 열악하고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 여러 가지 사회문제가 발생한다. 어른의 마약판매와 복용, 청소년의 마약과 본드 흡입, 청소년 가출과 매춘 문제, 미혼모 등 온갖 청소년 문제와 사회문제가 생기고 있다.

이곳 아이들은 동남아에서 국가적 위상이 높은 태국이란 나라에 살고 있지만, 소외된 빈부의 차이가 뚜렷이 구분된 태국 사회 내부의 밑바닥에 사는 아이들이기에 사랑받을 권리, 초등학교 의무교육을 받을 권리를 저학년 교육조차 박탈당한 체 살아간다.

이곳에서 빈민촌 학생 사역를 하고 있는 선교사 부부가 있다. 정혁구, 최인숙 부부 선교사가 그들이다. 이들의 소망은 빈민촌 태국 학생들이 기독교 안에서 장래에 꿈과 소망을 가지고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건강한 태국 청소년으로 사회에 한 몫을 담당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학생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교육적 프로그램을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에까마이에 타이비젼 센터와 통로 지역에 방과 후 학생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에까마이 타이비젼 센터는 말 그대로 그들 부부의 꿈과 소망을 담아 전체 프로그램을 조직, 운영, 평가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학생들을 위한 청소년 쉼터 형식으로 운영되는데, 학생들이 방과 후 센터에 와서 탁구나 컴퓨터 또는 악기를 통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준비돼 있다. 또, 매주 2~3회 음악수업이 진행 중이다.

매주일 오전 10시~12시까지 기독교 예배가 진행된다. 통로 공부방 운영은 주중 매주 화요일~금요일까지 매일 오후 2시부터 저녁 7시까지 공부방 형식으로 운영되며, 아이들에게 태국 글자 읽기, 숙제 도와주기 그리고 주 2~3회 음악교육으로 바이올린과 플룻 등을 한다. 또한 미술 수업이 있으며, 매주 토요일 기독교 예배가 있다.

두 지역 다 기독교 프로그램과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외에 구제사역과 장학사역들 필요시마다 진행되고 있다. 빈민촌에서 일어나는 여러 청소년 문제를 조금이나 가볍게 해주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태국 <교민광장>에도 게재되었습니다.



태그:#방콕 빈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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