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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에는 연극의 줄거리가 들어 있습니다.

노인 죽음준비교육 현장에서 만난 어르신들 가운데 살아오면서 죽고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는 분은 한 두 분 정도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죽고 싶었던 이유는 얼굴만큼이나 다 달랐지만, 반대로 그 고비를 어렵게나마 넘길 수 있었던 힘은 비슷해서 대부분 아이들과 가족을 꼽으셨다.

2009년 창단돼 이번에 세 번째 작품을 무대에 올린 <웰다잉 극단>의 이번 공연 주제는 노인 자살이다.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청소년 자살과 그에 못지 않은 심각성을 지니고 있는 노인 자살에 대해 드러내 놓고 이야기해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개막 공연장을 찾았다.

주인공 김득천 할아버지
▲ 웰다잉 연극 <소풍가는 날> 주인공 김득천 할아버지
ⓒ 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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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72세인 '김득천 할아버지'. 아내와 사별하고 아들 둘과는 연락이 끊긴 채 혼자 살아가고 있는 '독거노인'이다. 수입은 기초생활 급여 27만원에 일용직으로 버는 16만원이 전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하면서 사람들을 만나 외로움을 달랠 수 있다는 점. 그런데 이제 그 일마저 그만두라는 통보를 받게 되고, 이래 저래 살맛을 잃어버린다.

누구라서 이런 상황에 처해도 생생하고 신나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할아버지는 죽고만 싶다. 마음 속 고민과 갈등은 환청과 환시가 되어 천사와 악마의 모습으로 할아버지에게 나타난다.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할아버지는 끊임 없이 이들의 모습을 보고 목소리를 듣는다.

천사와 악마 사이에서 김득천 할아버지의 선택은?
▲ 웰다잉 연극 <소풍가는 날> 천사와 악마 사이에서 김득천 할아버지의 선택은?
ⓒ 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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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옥상에서 내려다 본 저 아래는 아득한 천길 낭떠러지, 천국과 지옥이 거기에 있을까. 늪 속의 죽은 물고기 같은 처지가 되니 떠난 아내가 몹시 그립다. 아내 없는 세상이 죽기보다 싫어 오열한다. 뛰어 내려 그곳으로 가면 당장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아내와의 마지막 약속이 떠오른다. 정성껏 살다가야 하는데 너무 힘들다.

천사와 악마의 싸움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할아버지는 마지막 결단을 내린다...

포스터
▲ 웰다잉 연극 <소풍가는 날> 포스터
ⓒ 각당복지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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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시작 전 이 연극을 기획한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 홍양희 회장을 만났다. 다음은 홍양희 회장과의 일문일답.

- 웰다잉 연극 3회를 맞으면서 그간의 성과를 정리해 본다면?
어렵고 거부감이 컸던 죽음 이야기를 연극을 통해, 그것도 어르신들 계신 곳에 찾아가 풀어놓음으로써 감성적으로 다가갈 수 있었고, 그것을 통해 웰다잉 문화 확산에 기여했다고 본다.

- 이번 공연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인 노인 우울과 자살을 다루고 있다. 어떤 해결책이 있다고 보는가?
노인 우울과 자살은 결국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서로 손잡고 관심을 가지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보며, 이 연극이 공감을 끌어내기를 기대한다.

- 연극에 참여하는 분들은 웰다잉 교육 강사로 대부분 노년기에 속한 분들이다. 연극에 참여함으로써 그들 자신이 변했을 것 같다.
전문 배우가 아닌, 웰다잉 강사 활동을 하는 분들인데 연극에 참여하면서 스스로 성숙하게 되었다는 고백들을 많이 한다. 앞으로의 공연에서도 무대 위아래가 서로 공감하고 소통하면서 배우와 관객 모두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다. 죽음준비란 우리들 삶의 태도가 좀더 진지해지고 깊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연이 끝난 후 이 연극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장두이 씨를 만났다. 장두이 연출가와의 일문일답.

- 웰다잉 연극 작업이 이번에 세 번째다. 소회를 듣고 싶다.
길이가 짧고, 규모는 작은 연극이지만 웰다잉, 죽음을 잘 준비하고 맞이하는 일에 의미있는 전도자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작품을 통해 어렵지 않게 웰다잉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간접 체험하는 기회가 된다. 보람을 느낀다.

- 개인적으로 다른 연극에 참여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죽음에 대한 생각은 누구가 다 한다. 그런데 이렇게 웰다잉 연극을 하면서 점점 더 강력해 지고, 제대로 잘 준비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 앞으로 연극을 볼 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마음을 열고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여주셨으면 좋겠다. 보는 분들이 대부분 어르신들인데 쉽게 보실 수 있도록 노력했다. 죽음을 무조건 외면하고 등 돌릴 것이 아니라, 누구나 가는 길이니 그냥 한 번 보시면서 옆에 앉은 친구와 두런 두런 이야기를 나누신다면 그것이 바로 죽음준비고, 남은 생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마음의 다짐도 되지 않겠는가.

극중 "어울리고 스치고 부대끼고 다투고" 살고 싶다는 김득천 할아버지의 대사. 배 곯지 않고 밥만 먹는다고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현재 이 땅에서 가족이 있든 없든 홀로 살고 있는 어르신들을 약 111만 명으로 보고 있다. 이분들은 지금 이 순간도 밥 한 숟갈도 중요하지만 누군가와 '어울리고 스치고 부대끼고 다투며' 살고 싶어 눈가를 훔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웰다잉 연극은 말 그대로 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한 길을 찾아보는 연극. 그러나 마무리에 앞서 이 땅에서의 남은 날들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보여주고 있다. 또한 공동체의 한 식구로서 우리가 어떻게 그분들을 챙기고 도와야 할지도 고민하게 해준다. 그런 의미를 찾는다면 아마추어 연극의 부족함은 조금 가려지리라.

앞으로 이 연극이 이 땅의 수없이 많은 '김득천 할아버지'를 찾아가 그분들이 조금이라도 힘을 내 남은 생을 기꺼이 살아내실 수 있기를. 그 일에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갖고 힘을 보탤 수 있기를.   

덧붙이는 글 | 제3회 웰다잉 연극 <소풍가는 날>(장두이 작, 연출 / 홍양희 기획 / 출연 : 각당복지재단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 웰다잉 극단원들) 초청 공연 안내 : 노인 단체, 복지관, 종교시설, 병원, 학교 등 공연 관람을 원하면 신청할 수 있다. kakdang@hanmail.net



태그:#소풍가는 날, #웰다잉, #웰다잉 연극, #죽음준비, #웰다잉 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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