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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군대를 막 다녀온 당시 스물네 살의 저는 20대의 로망 중 하나인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젊은 시절에 한국을 떠나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구미에 있는 공장에서 몇 달간 일하여 스스로 돈을 모았죠. 그리고 혼자 여권을 만들고, 비자를 발급받고,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며 떠날 채비를 합니다.

그리하여 저는, 부푼 마음을 안고 낯설고도 먼 땅 호주로 떠나게 됩니다. 제 자신에게 선물을 하는 셈이라고 생각하고 말이죠. 작가가 꿈인 저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서 많은 사람들과 풍경들을 만나고, 그 안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며 이야기를 담아오리라 생각하며 떠난 여행이었습니다.

가슴 속이 뻥 뚫리는 경험,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가다

호주를 반 바퀴 정도 돌아본 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어디였느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저는 주저없이 호주 남동부 해안가인 '그레이드 오션 로드'라고 대답할 겁니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Great Ocean Road)는 유네스코가 선정한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세계 10대 절경'에 꼽힐 정도로 그 풍경이 장관인 곳입니다.

더 설명하자면 빅토리아주, 멜버른에서 동쪽 끝 해안부터 남쪽으로 300km나 이르도록 펼쳐진 바닷가인데요. 이 끝없는 해안을 따라서 건설된 도로는 제 1차 세계대전에서 돌아온 호주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주고자 시작된 사업이었다고 합니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로 향하던 호주 남동부 해안가
 그레이트 오션 로드로 향하던 호주 남동부 해안가
ⓒ 김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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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하던 당일 아침, 저는 설레이는 마음에 새벽 내내 뒤척이느라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 때문인지 두통이 몰려왔고, 잔뜩 찌푸린 얼굴로 목적지를 향한 차에 올라탔던 기억이 나요. 그뿐 아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예상치 못했던 먹구름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혹시라도 비가 오면 어쩌나'하는 걱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흐린 날씨 때문에 기대하던 여행 일정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먹구름을 따라서 몰려왔습니다.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하늘은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개기 시작했습니다. 숙소를 떠나서부터 차 안에서 내다보던 차창에 가끔씩 빗방울이 부딪혀 흘러내렸고, 이에 초조해하던 저의 기도를 누군가 들어주기라도 한 것처럼, 먹구름이 서서히 물러가며 밝은 햇살이 나오더군요.

한시간 쯤 차로 이동하던 중간에 잠시 작은 마을에 들러 차를 세우고 쉬었다 가기로 했습니다. 샌드위치를 비롯한 가벼운 먹을 거리와 음료수를 사서 나오던 중에, 마을 근처 해안에 벤치가 마련되어 있는걸 발견하고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평온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죠. 거기에 잠시 앉아서 미네랄워터를 한 모금 마셨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먼 바다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힘든 일상에 지칠 때면, 저 벤치를 마음 속에 떠올리고 거기 앉아서 수평선을 바라보며 조용히 쉬고 있는 제 모습을 떠올리면서 여유를 되찾곤 합니다.

마침내 도착한 그곳, 자연이 만들어낸 수채화 같은 풍경들

해안가 도로를 차로 두시간 삼십분 정도 달린 뒤였을까요. 마침내 그레이트 오션로드의 명물, 12사도(Twelve Apostles)'라고 불리는 바위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파도와 바람이 오랜
세월에 걸쳐서 깎아내어 만든 열 두개의 바위를 12사도라 부르는데요, 시간이 흐르며 풍파에 파괴되어 현재는 7개 가량만이 남아 있습니다.

12사도라고 불리는 바위들.
 12사도라고 불리는 바위들.
ⓒ 김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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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구름이 물러가며 맑게 개인 하늘 아래에서, 저는 상쾌함이란 것이 어떤 기분인지 확실히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침 숙소를 떠날 때부터 줄곧 저를 괴롭히던 두통이 신기할만큼 한 순간에 사라졌거든요. 이 날,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던 기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물감으로 칠해놓은 것처럼 선명한 밝은 푸른색 파도가 끝없이 해안에 와서 닿는 풍경, 그 파도소리, 갈매기들 우는 소리, 새파란 하늘 위에서 구름들을 양 떼처럼 몰며 나를 스쳐가는 바람까지. 사진으로 다시 봐도 두근두근, 가슴이 뛰기 시작하네요.

비가 그친 뒤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파도가 공을 들여 깎아 만든 조각품같은 12사도는 실제로 보니 더욱 멋진 예술 작품 같았습니다.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서 비바람과 파도를 버티며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 그 고난과도 같은 시간을 묵묵히 버틴 바위들이 가만히 저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거친 파도와 비바람이 너를 괴롭히더라도, 도망치지마. 힘든 시간을 굳건히 견딘 뒤에는,너는 더욱 멋진 모습으로 우뚝 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바위 같은 사람이 되어 있을 거야.'

바위들 중 하나는 '런던 브릿지(London Bridge)'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는데요. 작은 바위섬에 자연적인 다리가 나있는 모양이었다 합니다. 지금은 다리 부분이 무너져 관광객이 건너서 올라가볼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지금도 바람과 파도가 바위를 깎아내는 침식작용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다음 세대에는 어쩌면 이와 같은 풍경을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내 쪽으로 낮게 날아들던 갈매기들
 내 쪽으로 낮게 날아들던 갈매기들
ⓒ 김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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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상쾌해지니, 갈매기들마저 저를 반겨주는 듯했습니다. 관광객들 사이로 낮게 날아들며 날갯짓하던 갈매기를 그렇게 가까이서 본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던 듯 합니다.

'내게 스스로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시작한 호주로의 워킹홀리데이였는데요. 2년 동안 호주에서 보낸 시간 중 이 여행이 가장 행복한 기억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선물과도 같은 시간'이라 생각될만큼 그 풍경 하나 하나가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푸른 하늘, 그보다 더욱 푸른 바다, 그리고 새하얗게 그 위를 수놓던 구름과 갈매기들의 모습들이요.

12사도 중 다른 바위
 12사도 중 다른 바위
ⓒ 김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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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같은 풍경'이라는 말이 실감났습니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 하늘과바다를 보면서,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습니다. 끝없이 감탄을 연발하며 가까스로 벅차오르는 가슴을 달래었죠.

차로 몇 시간을 더 달려도 끝이 나오지 않을 것처럼 아름다운 바닷가 풍경은 계속되었습니다. 왜 이 곳, 그레이트 오션로드가 '죽기 전에 가봐야 할 10대 명소'로 꼽혔는지 직접 가보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 삶이 끝나는 마지막 날까지 기억될 테니까요.

돌아가는 길에 나를 배웅해준 무지개
 돌아가는 길에 나를 배웅해준 무지개
ⓒ 김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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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에너지 충전소

이곳을 다녀오면서, 저는 세 가지를 가슴 속에 얻어왔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결코 가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세계적인 명소에 내 발로 직접 가보니, 이제 다른 곳 어디든 또 다시 여행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과, 둘째로는 평생 기억될 감동적인 풍경을 두 눈으로 보고 담아온 것. 마지막으로 세번째는, 내 삶을 스스로 이끌어갈 힘을 얻은 것입니다.

여행은 스스로를 찾아 떠나는 것이라고 하던가요. 저는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땅에서, 광활한 대자연 속에 홀로 서있는 나를 발견하고 되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살면서 '나'를 나타내던 것들, 내가 알던 사람들과 풍경들에서 모두 벗어나 맨몸으로 완벽히 혼자가 되어본 경험은 '나는 과연 누구일까'하는 사춘기 시절부터 계속해온 물음에 비록 정확한 답은 아닐지라도, 어렴풋이 나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날 제가 보았던 풍경들은, 지금까지도 제 가슴 속에 남아 돌이켜볼 때마다 저를 꿈꾸게 합니다. 드넓은 하늘과 바다가 푸르른 빛을 쏟아내며, 저를 향해 속삭이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

'보이지? 이 끝없이 뻗어 있는 푸른 대자연의 풍경이. 니 앞에 펼쳐진 이 바다와 하늘처럼, 너에겐 무한한 가능성의 길이 열려 있는 거야. 믿어봐. 너는 할 수 있어.'

그레이트 오션로드는 지금도 제 마음 속에 걸려있는 한 장의 그림으로 남아, 저를 계속 꿈꾸고 살아가도록 해주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여행사연 쓰고 공정여행 가자!' 응모 글입니다.



태그:#그레이트 오션로드, #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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