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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역사가 반드시 심판해 줄 것이다!"

내가 가장 가소롭게 생각하는 굴절된 역사 인식의 하나이다. 이는 정치·사법적 결정의 부담함에 항거하는 희생자들이 '역사라는 엄숙하고도 휘황찬란한 이름'을 빌려 항변할 때 흔히 사용하는 말이다.

유감스럽지만, 정의의 칼날을 휘둘려 줄 역사의 '보이지 않는 손'이나 과거의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는 불완전하게 가매장된 '그 무엇'이며, 무덤 위에 새겨질 묘비명을 둘러싼 논쟁과 알리바이가 반복될 뿐이다. 말하자면, 역사는 자신에게 유리한 형식과 내용으로 과거 기억을 채집, 구성, 유포, 기념, 공식화 하려는 세력들 사이의 투쟁이다.

기억·망각 투쟁에서 승리하여 현재를 호령할 목적으로 지배자들은 역사서술의 각종 공식 혹은 꼼수를 발명한다. 불편한 인물이나 사건 그 자체를 역사리스트에서 아예 삭제하거나, 하찮거나 실패한 이야기로 각색하여 기각시키거나, 구별하기(정상-비정상)나 등급나누기(선진국-개발도상국-후진국 따위)로 혼내주기 등의 전략이 동원된다.

예를 들면, 프랑스대혁명의 자유·평등·우애의 함성에 힘입어 카리브 해 생도맹그에서 발생했던 흑인노예들의 봉기와 아이티 혁명은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건방진) 역사'로 강제 망각되었고, 이들이 탄생시킨 세계최초의 식민지해방 유색인 공화국(1804년)은 오랫동안 서양문화사에서 유령취급을 받았다.

또한, '검은 인권'의 신체와 영혼에 가해진 고통의 시간은 은폐되고 서구중심세계관으로 대체되었다. 절대정신(자유)이 발전(자기인식)되는 과정으로 세계사를 규정했던 헤겔은 "인간을 먹는 것은 아프리카 원리에 합치하고, 흑인들의 운명은 노예제도이다"라고 <역사철학강의>에서 기록했다.

과거에 대한 기억·망각을 조정하고 통제하려는 '기억의 정치학'은 현재진행형으로 작동 중이다. 냉전체제와 반민주적 근대화 과정에서 억압되고 왜곡되었던 기억들과 목소리들이 침묵의 철판을 뚫고 다시 돌아와서 위로부터 주입된 '단 하나의 국가 기억'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일상생활에 각인된 대항기억을 만들고 있다.

한국전쟁 때 발생했던 '거창양민학살사건'은 국가와 유가족 사이의 협상을 걸쳐 '거창사건'으로 추모되었으며, '박정희기념도서관'은 '마포-상암동 공립도서관'과 경합을 벌리고 있다.

구로동 벌집, 가발공장 기숙사... 첨단적인 디지털로 감출 수 있나

청계천 보세공장에서 새벽마다 터졌던 코피는 전력으로 돌리는 인공 시냇물로 씻을 수 없고, 구로동 벌집과 가발공장 기숙사를 점령했던 산업먼지가 각혈했던 노동의 쓰라린 기억은 첨단적인 디지털 분칠로 감출 수 없다. 이처럼 '기억의 장소'를 거점으로 펼쳐지는 다른 기억들의 갈등과 쟁탈전이야말로 역사를 생물처럼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생명력이다.

다른 한편, 기억·망각 투쟁의 결과가 미래 역사의 씨앗을 잉태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잘 알려진 통속적인 사례를 들자면, 조카 루이 나폴레옹이 국민투표라는 합법적인 절차를 걸쳐 1852년에 프랑스 황제가 된 것은 삼촌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대한 대중의 기억·망각의 힘 덕분이었다.

당시 프랑스 시민들이 자신들의 과거를 특정한 양식—나폴레옹은 프랑스혁명의 계승자이며 강력한 지도자의 표상이다―으로 기억했기 때문에, 혹은 그들이 어리석게도 과거의 나쁜 기억―나폴레옹은 언론과 노동권의 탄압자이며 전쟁광이다―을 망각했기 때문에, '빛나는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삼촌의 대를 이은 조카에게 통치권이 주어진 농담 같은 역사극이 연출되었다.

이런 루이 나폴레옹의 등장을 시대착오적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던 프루동 ("사유재산이란 도적질 한 것이다!"라는 급진적인 발언을 했던 사회주의-아나키스트)은 해외로 망명해야만 했고, 나폴레옹 3세가 건설했던 제2제정은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파리코뮌의 내란으로 붕괴되었다.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 (자료사진)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 (자료사진)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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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새벽을 견디는 이 땅에서도 미래를 담보로 한 기억과 망각의 또 다른 큰 싸움이 전개되고 있다. 식민시대 일본육사졸업생이며 해방공간의 '좌빨' 청년장교 신분으로 군사쿠데타를 주도하여 스스로를 구제했던 야심찬 한 장군의 딸이 아버지에 대한 대중의 기억(혹은 망각)에 기대어 대권의 꿈을 엿보고 있다.

제3공화국 대통령이며 유신정권의 창출자였던 박정희의 맨 얼굴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분단국가의 한계 속에서 총과 삽을 들고 조국 근대화를 완수했던 불굴의 영웅인가 아니면 인권을 탄압하고 민주화운동을 냉동시켰던 겨울공화국의 독재자인가? '가난한 농부의 아들' 박정희의 실존적 정체가 정녕 무엇이었는지가 아니라, 대중이 그를 과연 어떤 '역사적 모습'으로 기억·망각하고 있는지의 여부에 그 딸의 내일이 달려있을 것이다.

포항제철과 새마을운동, 월남파병과 남산 중앙정보부, 각하의 모심기 시범행사에 끌려나온 막걸리와 최후의 만찬장에서의 노래반주에 곁들여 마신 양주 시바스 리갈 사이의 모순되고도 풍부한 기억과 이미지를 누가 어떻게 조합, 각색, 은폐, 짜깁기하여 박정희에 대한 역사적 초상을 완성할 것인가?

다시 말하지만, 아무리 눈물로 호소해도 "역사적 심판은 제 발로 찾아오지 않는다!" 다만, 전쟁과 배고픔의 악몽, 4·19와 5·16의 숫자가 엮는 기억·망각의 숨바꼭질, 제주도 4·3, '대구 폭동' 찍고, 광주민주화운동, 6월 항쟁, 촛불시위, 작금의 종북(從北) 올가미 씌우기 등에 이르는 우리 현대사의 숨 가쁜 고비와 행진을 어떤 빛깔과 용어로 덧칠(전문용어로 뽀샵^^)하고 (기억의 쓰레기통에서 끄집어내서) 재활용 할 것인가를 둘러싼 첨예한 기억투쟁이 계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2012년 후반의 대선을 준비하는 역사무대가 온갖 저질스러운 역사 기억의 막장 드라마로 퇴행할 것인지, 아니면 지난 반세기 동안 혼란스럽게 뒤엉켰던 기억과 망각의 실타래를 (재)정렬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인지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

그 중요한 미완성의 역사를 스스로 서술하려는 당신을 위해 덧붙이자면, "기억은 항상 개인에서 출발하여 개인에게서 완료된다"며 일상 생활 정치의 올바름과 역사적 책무는 '그 딸'이 자동적으로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나와 새롭고도 즐거운 공적 기억 다시 만들기에 달려있음을 잊지 말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육영수 씨는 현재 중앙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기억의 정치학, #공적 기억, #6월 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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