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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푸의 대가 이소룡이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뛰어난 무술을 연마하기 위해 무술 수련에만 힘썼을 듯도 하지만 실제로 이소룡은 철학 서적으로 가득한 그의 서재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고 한다. 자신의 무술 제자들과 철학 토론을 즐기기도 했다. 이소룡의 제자이자 영화 <빠삐용>에 출연한 영화배우 스티브 맥퀸은 이소룡과 무술 수련보다 철학 토론을 더 많이 했다고 고백한다. 부상을 당해 쉴 때마저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던 이소룡이 자신의 철학과 연마한 무술을 결합해 만든 무예가 바로 '절권도'다. 

토론은 머리 아닌 '몸'으로 하는 것

70년대 국내에 쌍절곤 열풍을 일으켰던 이소룡.
 70년대 국내에 쌍절곤 열풍을 일으켰던 이소룡.
ⓒ 영화 '사망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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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한국적인 토론 교육의 철학과 방법을 저술한 책 <토론의 전사>(해냄에듀 펴냄) 저자 유동걸(49)씨는 토론이 절권도와 일맥상통한다고 주장한다. 토론은 머리로만 하는 공부가 아니라 철학(머리)과 무예(몸)가 결합된 절권도와 같이 '온몸으로 하는 공부'라는 것이다.

살아 있는 한 우리는 토론을 하지 않고 살아가기 어렵다. 주변의 상황과 사건을 인식·판단하고 타인과 서로 다른 의견을 나누는 일상의 모든 과정에서 토론은 수없이 이루어진다. 결과적으로 토론이란 "머릿속에 있는 지식과 정보 같은 어느 하나의 기술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익힌 다양한 기술들을 활용하는 과정"인 셈이다. 저자는 소통과 창조가 중시되는 오늘날 토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호모 쿵푸스(온몸으로 공부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토론의 전사가 되기 위한 방법

상대적으로 토론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우리 사회에는 디베이트(debate)라는 이름의 서양식 토론 교육이 널리 퍼져 있다. 책에서 저자는 날선 논리의 대립을 통해 읽기, 쓰기, 말하기를 종합적으로 배워나가는 디베이트 토론의 유행이 논리와 비판의 힘이 부족한 우리에게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토론의 목표는 "남을 이기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토론의 과정을 통해 세계와 소통하고 자아를 성찰하면서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데 있어야 한다"고 당부한다.

토론을 잘하기 위해 저자는 무엇보다 '듣기'와 '질문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흔히 토론은 '말하기의 기술'로 인식되지만 토론은 상대방의 주장과 논거를 잘 듣고 그에 대한 반론과 질문을 던지는 작업이므로 상대방의 말을 먼저 제대로 파악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아가 저자는 토론이 일방적 주장에 그치지 않고 상대방과의 상호 소통 과정임을 고려할 때 논거의 타당성과 적절성을 심문하고 확인하는 과정이야말로 '토론의 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저자는 토론의 주체와 상황, 주제에 따라 다르게 운용될 수 있는 다양한 토론 방법을 제시한다. 예컨대, 처음 토론에 접근할 때는 입을 잘 열지 못하는 학생을 배려해 쉽고 재미있는 '참여형 토론'을 활용하도록 권고한다. 책을 읽은 뒤 책의 내용을 심화해 나가면서 진행하는 '이야기식 토론', 극적인 재미와 토론을 적절하게 결합한 '모의재판식 법정 토론', 연극과 결합한 '토론연극' 등을 적용할 수도 있다.

토론의 전사 1,2권
 토론의 전사 1,2권
ⓒ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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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총 1, 2권으로 되어 있는데 1권이 토론에 대한 저자의 철학을 담고 있다면 2권은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토론 방법을 소개한다. 2009년부터 '토론의 전사'라는 토론 공부 모임에서 3년여간 토론에 대해 공부한 저자의 토론을 향한 애정과 열정의 결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문적 토론 현장이 아니더라도 토론에 관심 있는 누구나 따라하고 연습해볼 수 있도록 쉽게 설명돼 있다.

쉽고 재밌지만 한국 토론 현실 더 반영했더라면...

'쉽게 풀어 쓴 토론의 모든 것'이라는 책의 부제목처럼 '토론'이라는 어렵고 딱딱할 것 같은 주제를 가볍게 풀어냈다. 책에서부터 다큐멘터리, 신문 기사, 시민사회포럼, 영화, 동화에 이르기까지 흥미롭고 설득력 있는 사례를 인용해 토론의 어려운 개념과 해법을 설명한다. 책은 온라인 교원 직무연수 기관 교원캠퍼스에서 진행하는 '소통을 꿈꾸는 교사들의 토론 여행' 교재로도 사용될 예정이다.

다만 토론의 철학과 방법을 한국 사회의 토론 현실에 근거해 보여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예컨대, 한국 토론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 방송이나 라디오 등 실제 토론 프로그램에서 벌어진 일부 사례를 가져다 설명했더라면 우리 사회의 토론 문화에 대한 고민이 좀 더 잘 드러나지 않았을까? 토론의 좋은 예나 원칙을 설명하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영화나 소설의 한 장면을 통해 토론의 현실을 이해하는 것보다 우리가 닥친 상황을 통해 문제와 대안을 모색했더라면 좀 더 실용적인 토론 지침서가 되지 않았을까?

덧붙이는 글 | 7일 오후 7시 30분부터 9시까지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토론의 전사> 출간을 기념해 강연회가 열릴 예정이다. 저자 유동걸씨가 '토론공화국과 토론의 전사- 강자들은 토론하지 않는다'는 주제로 직접 강연하고 독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다. 토론공화국을 주창했으나 실패한 노무현 대통령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의 토론 문화에 대한 개관 속에서 바람직한 토론의 방향을 모색한다.



토론의 전사 1 - 토론의 길을 열다

유동걸 지음, 한결하늘(2018)


태그:#토론의 전사, #유동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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