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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고등학교 출신 문인들이 펴낸 <경맥문학> 2호의 표지. 표지화는 주태석(54회, 홍익대 교수) 회원의 그림 '나무' 중 일부이다.
 경북고등학교 출신 문인들이 펴낸 <경맥문학> 2호의 표지. 표지화는 주태석(54회, 홍익대 교수) 회원의 그림 '나무' 중 일부이다.
ⓒ 경맥문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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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1일을 기준으로 할 때 우리나라에는 모두 2282개 고등학교가 있다. 이 중에서 선후배끼리 모여 문학회를 결성, 활동하고 있는 학교는 얼마나 될까? 특히 동인지까지 발행하는 모범적인 곳은 몇 학교일까? 그러나 알 수가 없다. 문화부, 교과부, 통계청 홈페이지까지 살펴보았지만 찾아낼 수 없었다

그만큼 우리나라 문화행정의 현주소는 허술하다. 그것은 결국 그만큼 나라의 문화 수준이 낮다는 뜻이다.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재정적, 행정적 지원을 해도 좋을 일인데 현황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않으니 어찌 '국격'이 높아질 수 있을까. 그저 '돈 되는', '유권자의 표를 모을 수 있는' 일에만 몰두하는 정치권력과 행정권력의 저급함을 재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구광역시에는 고등학교 선후배끼리 모여 문학회를 결성하고 동인지까지 펴내는 학교가 두 곳 있다. 예전에는 대여섯 학교였는데 점점 줄어들더니 이제는 두 학교만 남았다. 고교 동문들이 모여 문학동인지를 발간하는 학교 수가 많아지면 그만큼 우리 사회의 문화 수준도 높아질 터인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전통의 명문'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한 문인들의 모임 '경맥문인협회'가 펴낸 <경맥문학> 2호가 출간되었다. 440쪽이나 되는 중량감을 뽐내는 책이다.

권두시는 28회 '대선배'인 손장락 시인이 썼다. 경북고는 28회는 대략 1928년 출생, 50회는 주로 1950년 출생이니 손 시인은 확인해 보지 않아도 74세 안팎의 원로시인이다. 현재도 경북 안동에서 피부과의원을 운영하면서 의술을 펼치고 있는 손 시인은 '내일이 오면'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어둠을 헤치고 여명이 밀려온다
온 세상 모든 등불을 켜라
저기 내일이 오고 있지 않은가
슬픔도 기쁨도 모두 잠 들은 밤
어둠 속에 잠들지 않고
가슴 속에 불타는 내일의 꿈을 보았다
동천을 붉게 물들이며 오고 있는
나의 내일의 꿈을

경북고 교정의 2.28기념탑. 1960년 4월혁명의 도화선이 된 것으로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는 대구2.28학생의거는 경북고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일으켰다. 홍종흠 전 대구매일신문 주필은 <경맥문학>에 기고한 글에서 '경북고생들만이 유일하게 시내 중심부에 있는 자유당 독재의 심장부인 경북도청, 대구시청, 자유당경북도당, 경북지사관사 등을 돌며 불의와 독재를 규탄했던 만큼 핵심적 역할을 했다'면서 자긍심을 표시했다.
 경북고 교정의 2.28기념탑. 1960년 4월혁명의 도화선이 된 것으로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는 대구2.28학생의거는 경북고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일으켰다. 홍종흠 전 대구매일신문 주필은 <경맥문학>에 기고한 글에서 '경북고생들만이 유일하게 시내 중심부에 있는 자유당 독재의 심장부인 경북도청, 대구시청, 자유당경북도당, 경북지사관사 등을 돌며 불의와 독재를 규탄했던 만큼 핵심적 역할을 했다'면서 자긍심을 표시했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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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4연으로 된 '내일이 오면' 중 마지막의 내용이다. '가슴 속에 불타는 내일의 꿈'을 뜨거운 가락으로 노래하고 있다. 물론 <경맥문학> 자체도 경북고 출신 문인들이 가슴 속에 불타는 내일의 꿈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여 글을 쓰고, 책으로 펴낸 결과물이다.

<경맥문학> 2호의 앞 지면은 권두시에 이어 이원락 회장(44회)의 발간사 '작아도 계속되는 아름다운 걸음', 사공일 총동창회장(39회)의 격려사 '문화강국 가꾸기의 터전', 김범일 대구시장(50회)과 경북고교 송춘근 교장의 축사 '문학과 지성의 결정체 경맥문학' 및 '미래형 인재와 경맥문학'으로 채워진다.

이어 수록된 글들은 대구경북의 역사와 미래를 점검하는 특집형의 '특별초대석'이다. 하오명 죽순문학회장(36회)의 '그래도 대구가 좋다', 김원길 안동지례예술촌장(41회)의 '안동의 해학', 홍종흠 전 대구매일신문 주필(42회)의 '왜 아직 2.28정신을 새겨야 하나', 곽대훈 대구시 달서구청장(54회)의 '다문화사회, 더불어 함께 가야', 우창호 경북고등학교 교감(56회)의 '새 학기를 맞이하면서' 등이다.

일반적으로, 이제는 회원들의 작품이 나올 차례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경지를 뛰어넘어 참신한 편집을 보여준다. 회원들의 작품이 아니라 '경맥 동문 가족의 방'을 앞서 배치한 것이다. 회원의 부인, 어머니, 딸의 글들을 읽는 재미가 색다르기도 하지만 사뭇 감동적이다.

회원 작품 앞서 회원가족의 글 먼저 수록 '참신'

김광태(44회) 회원의 부인 정숙 시인, 김인정(69회) 회원의 어머니 김분옥 시인, 윤창준(46회) 회원의 부인 김황희 시인의 시작들, 그리고 배정한(54회) 회원의 딸 배진아 작가의 희곡이 실려 있다. 그 중 문화예술부문 신지식인으로 선정된 바도 있는 김황희 시인은 고인으로, 초등학교 음악교과서에 실려 있는 '지구가 아프대요', '환경을 깨끗이' 등을 남긴 '환경'시인이다.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의 제현사에 세워져 있는 김황희 시인의 시비와 공적비. 비 뒤로 천연기념물 제1호 '도동측백수림'으로 뒤덮인 향산이 보인다.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의 제현사에 세워져 있는 김황희 시인의 시비와 공적비. 비 뒤로 천연기념물 제1호 '도동측백수림'으로 뒤덮인 향산이 보인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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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아프대요


지구가 아프대요
우리가 돌보지 읺아서
울고 있네요
우리가 버린 쓰레기로
화가 났어요

지구는 끙끙 앓고 있어요
오오 불쌍하여라 
지구가 아프대요
죽어가고 있어요

자연도 아프대요
우리가 돌보지 않아서
울고 있네요
우리가 버린 쓰레기로
병이 났어요

강산이 끙끙 앓고 있어요
오오 불쌍하여라
자연도 아프대요
죽어가고 있어요

이어서 회원들의 작품이 발표된다. 손장락(28회)의 시, 이규직(36회)의 수필, 박준억(37회)의 수필, 권원순(39회)의 수필, 김중강(40회)의 시, 송영목(40회)의 수필과 문학평론, 하청호(43회)의 시와 수필, 김상진(44회)의 시, 송경호(44회)의 수필, 윤영민(44회)의 수필, 이원락(44회)의 수필, 김범선(44회)의 단편소설, 김광수(45회)의 단편소설, 이정우(46회)의 시, 윤창준(46회)의 수필, 권영재(46회)의 수필, 김해권(47회)의 단편소설, 이하석(48회)의 시, 문태현(49회)의 수필, 배효전(51회)의 시, 안중은(54회)의 시와 레포트, 박철희(54회)의 수필, 김성태(54회)의 문화평론과 희곡, 엄원태(55회)의 시와 수필, 신평(55회)의 시와 수필, 김두기(59회)의 시조, 가사, 영시, 한시, 수필, 박진관(65회)의 명사 탐방, 하용준(66회)의 시, 조진우(87회)의 레포트 들이다.

회원 작품을 다 읽고 나면 '재학생' 코너'를 방문하게 된다. 곽지환, 전상하, 한선영, 여도영 학생의 글들이다. 그 외에도 책 맨 앞에 실려 있는 '경맥 갤러리'의 박희제(54회), 주태석(54회), 이무형(54회), 공성환(55회) 회원의 미술작품들 및 박순국(49회), 안중은(54회), 박진관(65회) 회원의 사진작품들, 그리고 책 끝에 수록되어 있는 회원들의 저서 표지 일람도 재미와 의미를 던져주는 볼거리들이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갈래의 작품을 발표한 김두기 회원의 시조 '눈 오는 밤'을 다시 한번 읽어본다.

부엉이 우는 산골 식구들 옹기종기
호롱불 등잔 밑에 가마니 한창 칠 때
살짝궁 문풍지 사이 함빡 눈이 쌓였네

경북고등학교 정문의 풍경. 국립대구박물관 정문과 마주보고 있다.
 경북고등학교 정문의 풍경. 국립대구박물관 정문과 마주보고 있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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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경맥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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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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