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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7일, 취임 1주년을 맞아 지역 현안 등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있는 최문순 강원도 도지사.
 지난 4월 27일, 취임 1주년을 맞아 지역 현안 등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있는 최문순 강원도 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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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가 불안하다. 오랜 세월 꾹 눌러 참아온 강원도 민심이 어느 한순간 펑하고 폭발할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기로에 놓여 있다. 오랫동안 공을 들여 실현 가능성을 높여 온 도내 현안들이 최근 들어 또 다시 실현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정황이 감지되면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강원도에는 이른바 '3대 현안'이 있다. 도민들은 이 현안들이 지금까지 침체 일로를 걸어온 강원도 경제를 크게 호전시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최근 들어 이 3대 현안과 관련해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으면서 이 현안들이 또 다시 무기한 연기되거나 아예 무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도민들이 강원도 발전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이 3대 현안은 ▲ 동해안권 경제자유구역 지정 ▲ 춘천~속초간 동서고속화철도 건설 ▲ 설악산 오색 로프웨이 건설 등이다. 이 현안들은 그동안 환경문제, 군사시설 보호 등을 이유로 수십 년에서 수년째 연기에 연기를 거듭해왔다. 그만큼 이 현안들로 인해 강원도민들이 겪어온 소외의식도 매우 강하다.

경제자유구역 지정에 매진해온 강원도 "헛공약은 아니겠지?"

'경제자유구역 지정'은 애초 이달 말 결정이 날 예정이었다. 정부는 강원도와 충청북도, 그리고 경기도와 전라남도를 대상으로 평가를 실시해 4곳 중 1곳을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할 예정이다. 현재 경제자유구역이 없는 지역은 강원도과 충청북도이며, 평가 대상 4곳 중 강원도가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 알려졌다.

강원도는 그동안 동해안권 경제자유구역 지정을 기정사실화하고 외국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하는 데 상당히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강원도에 따르면, 경제자유구역이 지정된다는 전제하에 "17개 외국기업으로부터 1조 2583억 원을 투자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국내 14개 유수기업이 25조 4185억 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강원도는 이로써 "경제자유구역 지정 요건에 부합하는 충분한 개발수요를 확보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정부가 경제자유구역 지정 일자를 다음 달 8일로 연기하자, 강원도는 강하게 반발했다. 정부가 정치적인 고려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5월 말 확정을 강조하다가 갑자기 날짜를 연기한 것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다른 지역의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다. 비판 여론이 비등하자 정부는 날자를 앞당겨 6월 5일 제49차 경제자유구역위원회를 열고 경제자유구역 추가 예비 지역을 발표할 계획이다.

하지만 불안한 조짐은 계속되고 있다. 정부 내 일부 부처에서 경제자유구역을 추가로 지정하는 데 회의적이라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내에서 이런 회의론이 나오는 배경에는 기존의 국내 경제자유구역들이 부진한 실적을 낳고 있는 데다 최근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투자 분위기가 크게 위축돼 있다는 이유들이 있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정부의 이런 신중한 입장은 4·11총선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강원도는 정부가 총선 때와 달리, '다른 지역을 정치적으로 고려하기 위해' 말을 바꾸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강원도 3대 현안은 새누리당의 공약으로, 총선 당시 지역 내 국회의원 후보들의 핵심 공약이었다.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들은 강원도 전 지역에서 당선되는 이변을 낳았다. 그만큼 강원도민들이 새누리당에 거는 기대가 컸다는 얘기다.

경제자유구역 지정에 실패할 경우, 그동안 강원도가 벌여온 투자 유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 건 불문가지다. 지금까지 동해안권 경제자유구역 예정지에 투자하기로 되어 있는 외국자본이 다른 국가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다. 이런 까닭에 강원도는 정부에 경제자유구역을 하루 빨리 지정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지정이 늦어지면 대선 정국에 휘말려 결국 도루묵이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강원도는 '2023년까지 사업비 2조여 원을 들여 강릉과 동해, 삼척시 일원 5개 지구 14.67㎢(약 445만 평)를 동해안권 경제자유구역으로 만들어 환동해 경제권을 선점하고 강원도 동해안권의 지역경제 자생력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정부에 경제자유구역 지정을 신청했다. 강원도는 동해안권 경제자유구역 지정이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뿐만 아니라, 국토를 균형 있게 발전시킬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지난 4월 23일, 4.11총선 당시 강원도에서 완승을 거둔 후, 강원도 총선공약 실천본부를 구성해 총선 당시 내건 공약을 반드시 실천에 옮길 것을 다짐하는 박근혜 비대위원장과 새누리당 국회의원 당선자들.
 지난 4월 23일, 4.11총선 당시 강원도에서 완승을 거둔 후, 강원도 총선공약 실천본부를 구성해 총선 당시 내건 공약을 반드시 실천에 옮길 것을 다짐하는 박근혜 비대위원장과 새누리당 국회의원 당선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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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논리에 좌지우지되는 지역 현안들, "더 이상 못 참아"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 건설'은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부터 말이 나온, 그야말로 해묵은 대선 공약이다. 대선을 치를 때마다 강원도 민심을 꼬드겨온 단골 공약 중에 하나다. 이명박 대통령도 이 철도 건설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런데 공약화한 이후 25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르도록 아직까지 이렇다 할 진전이 없다.

강원도는 이 현안 역시 해결이 매우 절실하다.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다. 속초시는 지난 해 12월 31일 정기국회에서 춘천∼속초 동서고속화 철도(92.8km) 기본설계용역비로 50억 원의 정부 예산이 책정되면서 "국가 균형발전 촉진과 설악권 관광발전, 그리고 속초항과 연계된 환동해권 물류선점 등이 가시화"되었다며 "큰 기대와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이 현안은 올해도 정치인들이 강원도 표를 얻기 위해 되새김질만 하다만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짙다. 속초시는 총선이 끝난 직후인 지난 4월 18일 "기본용역설계비 50억 원이 반영되었지만 사업비 부족 등으로 실시 설계용역 착수가 어렵고 공사비가 원활히 확보되지 않아 사업추진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지역 여론 악화가 심히 우려되는 실정"이라고 밝히고 있다(강원도 도시군 주요현안 보고서. 2012.4.18).

'설악산 오색 로프웨이 건설' 역시 강원도민을 강하게 자극하는 현안 중에 하나다. 정부는 6월 중 설악산(양양군 1개소), 지리산(구례, 남원, 산청, 함양군 4개소), 월출산(영암군 1개소) 등 6개 지역을 종합검토한 후 시범사업 대상지를 확정할 예정이다. 강원도는 '금강산 관광 중단 등으로 강원 영북 지역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 오색 로프웨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양양군은 현재 오색 집단시설지구에서 대청봉 인근까지 4.67km 거리를 케이블카로 연결해 새로운 관광 자원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 계획에도 불길한 조짐이 일고 있다. 환경부에서 '오색 로프웨이가 경제성이 낮고 상부 정류장 예정지가 대청봉과 지나치게 가까워 주변 환경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오색 로프웨이 역시 정부가 다른 지자체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사안 중에 하나다.

이에 양양군은 "상부 정류장 예정지는 과거 야영장으로 사용되던 곳으로 이미 훼손된 지역"인데다 "대청봉과의 거리는 약 500m로 충분히 떨어져 있는 상태"여서 환경에 문제가 없다는 반론을 펼쳤다. 그리고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는 "케이블카 설치로 인한 신규 관광 수요 등을 반영하지 않은 채 추정 탐방객을 근거 없이 지나치게 적게 예측했다"고 비판했다.

지난 4월 19일, 총선 직후 강원도 18개 시군 자치단체장들로부터 지역 현안을 보고받고 있는 4.11총선 국회의원 당선자들. 자치단체장들은 당선자들에게 현안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힘써 줄 것을 부탁했다.
 지난 4월 19일, 총선 직후 강원도 18개 시군 자치단체장들로부터 지역 현안을 보고받고 있는 4.11총선 국회의원 당선자들. 자치단체장들은 당선자들에게 현안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힘써 줄 것을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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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민심 폭발 일보 직전 "3대 현안이 무산된다면..."

3대 현안에 적신호가 켜지자 강원도에서는 현재 정부를 비난하는 목소리와 함께, 비극적인 사태가 벌어질 경우 물리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는 말까지 터져 나오고 있다. 비난 여론이 비등한 가운데 지난 23일 최문순 도지사를 비롯해 10개 시군의 시장과 군수 등 자치단체장들이 간담회를 갖고 정부를 강하게 압박했다. 이들 자치단체장들은 이날 '3대 현안 해결을 촉구하는 대정부 건의문'을 채택했다.

자치단체장들은 이날 건의문을 통해 "최근 정부가 강원도의 미래를 좌우할 현안 처리를 앞두고 그동안 지역 발전에 족쇄가 되었던 경제성을 이유로 또 다시 도민의 희망과 기대를 저버리는 결정을 할 수 있다는 데 심각한 우려와 절박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며 "강원도 3대 주요 현안 해결을 도민의 여망과 의지를 담아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강원도는 환경, 군사시설 등 중첩된 규제와 정부의 성장거점 정책으로 국토개발과 경제성장에서 소외돼 왔고 이로 인해 SOC 등 지역개발사업은 경제성 시비를 불러왔다"며 "정부가 도민들의 기대를 저버린다면 도민들이 좌시하지 않을 것이고 도민으로부터 권한과 책임을 위임받은 도지사와 시장·군수들은 주민의 뜻과 요구에 충실할 것"이라는 의지를 밝혔다.

이와 더불어 최문순 도지사는 강원도 3대 현안과 관련해 부정적인 의견이 나돌기 시작하자 청와대와 정부 각 부처를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고 있다. 도내에 촉각이 곤두서 있는 3대 현안을 시급히 해결해줄 것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최 지사는 또 31일 국회 의원식당에서 강원도 지역구 국회의원들과 간담회를 갖는다. 최 지사는 이 자리에서 3대 현안을 해결하는 데 국회의원과의 협조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발등에 떨어진 불 끄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정치인들

3대 현안을 해결하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민주당 소속 도지사나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들 모두 한 배를 타고 있는 셈이다. 강원도 내에 지역구를 둔 새누리당 국회의원들 역시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3대 현안은 4·11 총선 당시 가장 많이 거론이 된 강원도 핵심 공약이다.

새누리당 국회의원들로서는 큰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3대 현안과 관련해 도민들에게 내건 약속을 지켜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다.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 올해 12월에 있을 대선과 곧 이어서 다가올 지자체 선거에서 후폭풍을 맞을 게 뻔하다. 동해안권 경제자유구역 지정에 비관적인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도내에서는 벌써부터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이기기 위해 선심성 공약을 남발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를 압박하는 목소리는 정치인들에게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동해상공회의소와 동해시번영회는 29일 동해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와 국회, 그리고 지식경제부 등 관련 부처에 동해안권 경제자유구역을 조기에 지정해줄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동해안권 경제자유구역 지정에 미온적인 태도를 일관한다면 지난해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때보다 더한 동해안 주민들의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태는 심각하다. 3대 현안이 강원도민이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결론이 나게 될 경우, 도내에 상당히 큰 혼란이 일어날 것이 점점 더 확연해지고 있다. 도내 시군 지자체장들은 물론, 경제계 인사들까지 실력 행사에 들어갈 것을 예고하고 있다. 강원도에서 이런 일은 극히 드물다. 그 후유증은 상당히 오래 갈 것이다.

동해시번영회 홍희표 회장은 29일 기자회견에서 "동해안권 주민들의 기대가 무산되면 대정부 상경투쟁도 불사하겠다(강원일보 5.30)"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지자체장들 중 황종국 고성군수는 지난 23일 간담회 당시 "3대 현안이 무산된다면 여름철에 동해안으로 오는 길을 막아서라도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강원일보 5.23)"는 말을 남겼다.

강원도 민심은 지금 폭발 일보 직전이다. 오는 6월 5일 발표를 앞두고 있는 경제자유구역 지정이 기폭제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태그:#동해안권 경제자유구역, #강원도 3대 현안, #최문순, #동서고속화철도, #오색 로프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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