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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MB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정책에 대해 어느 언론이나 우호적인 기사를 싣고 또 국민들은 이에 환호했던 적이 있다. 공기업은 비효율의 상징이었고 자신들의 이득만 챙기는 '철밥통'으로 각인된 데 따른 결과다. 민영화만이 공기업 문제를 풀 수 있는 정답이었다. 그렇게 4년이 흘렀다.

 

'일부'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와 경영부실 해결을 위해 민영화가 해법이라면 과감히 적용해야 한다. 하지만 이제 차근히 되짚어봐야 한다. 혹시 우리가 정부에 호도된 것은 없는지, 어떻게 각기 다른 성격의 공기업들이 민영화라는 단 하나의 정책으로 수렴될 수 있으며 과연 공기업 선진화 정책만이 능사인지 말이다.

 

면세사업도 공기업 선진화 정책이 휩쓸고 간 대표적인 업종이다. 공기업 선진화 정책에 따라 한때 두 번째로 큰 시장점유율인 13%를 차지했던 한국관광공사 면세점이 모두 민간으로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57.4% → 79.2%, 18% vs 82%. 이 두 가지 수치변화가 모든 걸 말해준다.

 

첫 번째 수치는 면세점 업계 1, 2위인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이 차지하는 점유율 변화다. 2007년 두 기업의 시장점유율 합은 57.4%였으나 불과 4년 뒤인 2011년엔 79.2%로 급등했다. 이 두 재벌의 지난해 매출 규모도 2009년에 비해 각각 71.4%, 50.0% 급등했다. 반면 2007년 시장점유율 2위였던 관광공사는 고작 4.2%로 급락했다. 군소 면세점들 사정도 마찬가지다. 정확히 공기업 선진화 정책을 기점으로 면세사업의 빈익빈부익부 독과점 현상은 깊어진 셈이다.

 

면세사업 역시 자본주의 논리대로 철저히 효율에 의거한 무한경쟁이 이뤄져야 하고 이런 점유율 변화도 기업의 적극적인 마케팅 노력에 따른 결과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주장은 다른 이면은 철저히, 부러 무시한 언사다.

 

징세권 포기한 예외적 시장... 특혜사업 수익이 재벌들에게만

 

면세사업이 무엇인가. 국가구조의 근간인 징세권을 포기한 예외적인 시장이다. 지금 상황은 세금을 면제해주고 있는 특혜사업의 수익이 고스란히 1, 2위 재벌들로만 돌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반면 관광공사의 면세사업 수익은 관광진흥부문에 재투자되는 선순환 구조이다. 면세사업의 수익이 재벌들과 대주주에게만 돌아가는 구조와는 엄연히 다르다.

 

두 번째 수치는 재벌면세점들의 경쟁으로 인한 부적절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18% vs 82%라는 수치 속에서 면세사업에서 국산품과 외제품 판매비율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전체 면세시장에서 국산품 판매비율은 2010년 기준 18%, 외제품은 82%였다. 18%라는 수치도 국산담배를 포함시킬 경우 가능한 수치이며 토산 기념품 등은 거의 고사 직전이다.

 

지난해 인천공항면세점에서 판매된 국산품만 놓고 보더라도 전체 판매액의 18.4%에 불과했다. 반면 외제품은 81.6%를 차지했다. 결과적으로 2010년에만 1조9천억이 해외상품대금으로 지급됐다. 가히 국부유출이라 할 수 있으며 비판할만한 수치다.

 

대한민국의 관문이자 주권의 상징인 국제공항에 외제품들만 진열되어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어찌 이게 재벌만의 문제라 할 수 있겠는가. 자본주의 생리와 수익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기업의 입장을 고려할 때 이런 비판이 억울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적절한' 자정능력을 포기한 정부에 그 비판의 화살이 돌아가야 하는 게 맞다.

 

2011년 공사의 면세점 시장점유율은 약 4%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보다 관광공사 면세점이 2010년에 판매한 국산품 판매 비중에 주목해야 한다. 타 민간업체와 견주어 월등히 높은 44.4%였다. 관광공사 면세점을 통해 국산품 판매 활로를 뚫어줘야 한다.

 

한때 재벌딸들의 '빵가게' 전투가 언론의 질타를 받은 바 있다. 이제는 면세사업 시장이 재벌딸들의 가혹한 전쟁터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면세사업을 '그네들'의 이전투구장으로 계속 놔둘 수는 없다. 여러모로 득보다 실이 많기 때문이다. 뒤틀린 면세사업 시장을 바로잡을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한국관광공사 노동조합 위원장입니다.


태그:#공기업선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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