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연등이 내걸린 담양 연동사. 절집이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주변엔 야생의 차밭이 지천이다.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연등이 내걸린 담양 연동사. 절집이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주변엔 야생의 차밭이 지천이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깜짝 놀랐다. 차나무가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차나무는 파릇파릇 새순을 틔우며 하얗고 소담스런 차꽃까지 붙들고 있었다.

그뿐 아니었다. 사방에 차나무가 자라고 차밭이 펼쳐졌다. 요사채 앞도, 산비탈도, 계곡 주변도 온통 차밭이었다. 가지런히 정렬도 되지 않았다. 아무렇게나 편안하게 뿌리를 내려놓고 있었다. 잡풀을 뽑아준 것 외에 부러 가꾸거나 꾸민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약수터 옆 비탈을 붙들고 있는 차나무의 뿌리는 감탄사를 연발케 만들었다. 뿌리가 무지 굵었다. 지나온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간직한 모양새였다.

연동사 주지 원행스님이 절집 산자락에서 찻잎을 따고 있다. 스님은 폐허만 남은 연동사를 복원, 오늘의 절집으로 꾸민 당사자다.
 연동사 주지 원행스님이 절집 산자락에서 찻잎을 따고 있다. 스님은 폐허만 남은 연동사를 복원, 오늘의 절집으로 꾸민 당사자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연동사의 명물 가운데 하나인 야외법당. 석불입상 앞으로 여행객들이 지나고 있다.
 연동사의 명물 가운데 하나인 야외법당. 석불입상 앞으로 여행객들이 지나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그 사이 주지스님이 차 한 잔을 권했다. 절집 주변에서 맘대로 자란 찻잎을 채취해 덖은 차라고 했다. 비료 한 줌, 농약 한 방울은 차치하고 제대로 된 관리 한 번 받지 않은 야생이 키운 것이라 했다. 그 말에 믿음이 묻어났다. 전기도, 전화도 부러 들이지 않은 절집이었으니까.

차 한 모금 입에 물고 혀를 굴리니 담백한 맛이 입안에 맴돈다. 으레 첫맛은 떫고 쌉사레할 줄 알았는데, 그 느낌도 없었다. 차의 은은한 향과 맛이 깊었다. 표현하기 힘든 오묘한 맛 그 자체였다.

스님은 "연동사가 깊은 산중인데다 계곡을 끼고 있고, 그래서 일교차가 큰 지역의 특성이 차나무가 자라는데 최적"이라고 했다. 찻잎을 따고 차를 덖는 과정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건 그때였다.

연등이 내걸린 연동사 차밭에서 찻잎 따기작업이 한창이다 그 옆으로 절집을 찾은 신도가 계단을 오르고 있다.
 연등이 내걸린 연동사 차밭에서 찻잎 따기작업이 한창이다 그 옆으로 절집을 찾은 신도가 계단을 오르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며칠 전,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전통의 방식 그대로 찻잎을 덖어 수제차를 만들 것이라고. 모든 일 미루고 12일 절집으로 달려갔다.

절집 산비탈에서 찻잎 채취가 시작됐다. 그 일이 만만해 보이지 않았다. 산비탈에 짝발을 딛고 서야 하고, 한 잎 한 잎 따는 게 '뉘 나는(싫증나는)' 일처럼 보였다. 한참을 땄지만 큰 바구니의 밑바닥을 겨우 가릴 뿐이었다.

찻잎 채취는 찻잎을 씻어 비벼먹은 점심공양 이후에도 한참동안 계속됐다. 오후 3시쯤 됐을까. 그때까지 딴 찻잎을 모아 차 만들기에 들어갔다. 찻잎 따는 일에 세 사람이 매달렸지만 겨우 큰 바구니 두 개밖에 안 됐다. 한나절 하고도 이렇게 힘든데, 날마다 찻잎을 따는 건 얼마나 힘들까 싶었다.

연동사 주변 차밭에서 찻잎 채취가 한창이다. 이 찻잎으로 수제차를 만들어 온 김태경 씨가 찻잎을 따서 바구니에 담고 있다.
 연동사 주변 차밭에서 찻잎 채취가 한창이다. 이 찻잎으로 수제차를 만들어 온 김태경 씨가 찻잎을 따서 바구니에 담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연동사에서 찻잎을 채취하다 먹은 찻잎비빔밥. 절집에서 키운 갖가지 야채에다 찻잎을 듬뿍 얹었는데 맛이 별미다.
 연동사에서 찻잎을 채취하다 먹은 찻잎비빔밥. 절집에서 키운 갖가지 야채에다 찻잎을 듬뿍 얹었는데 맛이 별미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찻잎 덖기는 연동사 한켠에 자리한 가마솥에서 시작됐다. 먼저 가마솥의 온도를 430℃까지 끌어올렸다. 달궈진 가마솥에 찻잎을 넣고 몇 차례 저어 건져내 비볐다. 이번엔 가마솥 온도를 400℃로 낮춰 덖고 또 비볐다.

덖고 비비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가마솥의 온도도 조금씩 낮춰졌다. 380℃, 350℃…. 찻잎을 넣어 덖고 비빌수록 찻잎의 수분이 줄어들면서 색깔도 점점 변색됐다. 차의 형태로 짙어갔다.

찻잎이 타지 않도록 제때 넣었다 빼는 작업이 중요했다. 가열과 건조도 골고루 이뤄졌다. 모든 과정에서 차의 색과 향이 결정되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시쳇말로 화장실 갈 새도 없었다.

자칫 찻잎의 일부라도 탄다면 그 냄새가 모든 찻잎으로 퍼져 몽땅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결코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과정이었다.

김태경 씨가 가마솥에서 1차 덖은 찻잎을 털고 있다. 김씨는 수원에 살면서 주말마다 연동사에 와 야생의 수제차를 직접 만들고 있다.
 김태경 씨가 가마솥에서 1차 덖은 찻잎을 털고 있다. 김씨는 수원에 살면서 주말마다 연동사에 와 야생의 수제차를 직접 만들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덖는 일뿐 아니라 비비는 과정도 심혈을 기울였다. 찻물이 잘 우러나고 그렇지 않고의 차이가 이 과정에서 결정되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밀 때는 직선으로 쭈욱 밀어주고, 당길 때는 살짝 돌리듯이 동그랗게 말아주었다.

파릇파릇하던 찻잎의 수분이 어느 정도 제거되면서 색상이 짙어지자 찻잎을 털어주는 일이 더해졌다. 찻잎을 따던 일이 고달프다 여겼는데, 덖고 비비고 털어내는 과정을 보니 차라리 찻잎 따는 일이 한결 수월해 보였다. 찻잎 하나하나가 아깝다는 생각이 든 것도 이때였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일곱 번, 여덟 번, 아홉 번 덖고 비비는 과정을 거쳤다. 그 사이 처음의 찻잎 모양은 사라지고 없었다. 전통의 수제차가 완성된 것이다.

김태경 씨 일행이 가마솥에서 덖은 차를 털고 또 비비고 있다. 차 만들기는 이렇게 덖고 비비는 과정의 연속이다.
 김태경 씨 일행이 가마솥에서 덖은 차를 털고 또 비비고 있다. 차 만들기는 이렇게 덖고 비비는 과정의 연속이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연동사에서 수제차를 만들고 있는 김태경씨 일행이 가마솥에서 찻잎을 덖고 있다.
 연동사에서 수제차를 만들고 있는 김태경씨 일행이 가마솥에서 찻잎을 덖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이젠 직접 따서 덖은 수제차의 맛을 볼 차례. 찻물을 끓여 뜨거운 물에 바로 찻잎을 넣고 우려낸다. 쓴 맛이 없다. 고유의 차맛 그대로다.

"연동사 수제차는 높은 온도로 덖어서 만든 거잖아요. 그래서 끓는 물을 식혀서 마실 필요가 없어요. 높은 온도에도 잘 견뎌 맛이 중화됐으니까요. 떫은 맛도 없고, 뒷맛은 달고, 맑은 여운이 오래도록 지속되는 건 이 때문이죠."

수제차를 만든 김태경씨의 얘기다. 연동사 수제차가 귀한 대접을 받는 게 이 때문인 듯 했다. 야생에서 자란 찻잎을 하나하나 따서 사람의 손으로 정성껏 덖고 비볐다는 것. 자연 그대로의 야생에다 사람의 정성이 더해진 야생차의 맛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침부터 찻잎을 따서 가마솥에 덖고 비비는 과정을 반복해 만들어낸 야생 수제차. 색깔에서도 수제차의 맛이 묻어난다
 아침부터 찻잎을 따서 가마솥에 덖고 비비는 과정을 반복해 만들어낸 야생 수제차. 색깔에서도 수제차의 맛이 묻어난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야생 수제차를 만든 연동사 풍경. 연동사는 담양 금성산성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아담한 절집이다.
 야생 수제차를 만든 연동사 풍경. 연동사는 담양 금성산성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아담한 절집이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연동사는 '대나무고을' 전남 담양의 담양읍에서 순창 방면에 있다. 24번 국도 타고 금성면 소재지를 지나면 연동사 안내판이 서 있다. 그 표지판을 따라 좌회전, 산길로 1.5㎞ 가량 들어가면 자리하고 있다. 금성산성 주차장에서 연동사 푯말을 따라가도 나온다. 금성산성을 오르다 연동사 푯말을 따라 오른쪽으로 10여 분 내려가도 연동사와 만난다.



태그:#수제차, #야생차, #김태경, #연동사, #찻잎채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