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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유니온스퀘어에서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를 위한 국제 연대 시위가 열린 가운데, 미국 시민인 미쉘 무어(60)씨가 시위대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대를 응원하고 있다.
 지난 12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유니온스퀘어에서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를 위한 국제 연대 시위가 열린 가운데, 미국 시민인 미쉘 무어(60)씨가 시위대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대를 응원하고 있다.
ⓒ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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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럼비 바위는 제주 강정마을에만 있는 게 아니다.

경찰이 제주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건설 반대 시위를 원천 봉쇄한 가운데, 미국·영국·프랑스·독일 등 해외 주요 도시에서 '구럼비를 죽이지 마라'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시위를 막기 위한 경찰의 강경책이 오히려 제주 해군기지 문제를 바다 건너 국제 이슈로 확산시키고 있다. 지난달 28일 미국 애틀랜타에서부터 시작된 '강정마을 국제 연대 시위'가 프랑스와 일본, 영국과 독일 등을 거쳐 다시 지난 12일 미국 뉴욕에서 개최됐다.

한국에서 추방당한 평화운동가, 영국 한국대사관 시위 조직

지난달부터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는 해군기지 건설 반대 시위를 할 수가 없다. 4·11 총선에서 야당이 패배한 이틀 뒤, 경찰이 강정마을 주요 지점에서의 집회를 전면 금지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헌법상 보장된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서귀포경찰서장을 상대로 법원에 효력정지 소송을 냈지만 이 또한 지난 11일 기각됐다.

경찰은 집회 금지 조치와 함께 주민과 시위대를 무더기 연행했다. 종교행사 정도가 허용되고 있지만, 사제들 역시 경찰과 건설사에서 고용한 용역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달 6일 해군기지 건설 반대 투쟁을 벌이던 문정현 신부가 강정마을 서방파제에 있는 7m 높이의 테트라포드(일명 삼발이)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기도 했다.

한 달 동안 강정마을에서 살며 주민들과 함께 투쟁하기로 한 미국 평화운동가 엔지 젤터.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앞에서 평화의 기도를 하고 있다.
 한 달 동안 강정마을에서 살며 주민들과 함께 투쟁하기로 한 미국 평화운동가 엔지 젤터.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앞에서 평화의 기도를 하고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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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경찰은 지난 3월 강정마을에서 시위를 벌이다 연행된 영국의 노벨평화상 후보자 앤지 젤터(Angie Zelter·61·여)씨에 대해 신청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강제 추방 절차를 밟기도 했다. 젤터씨는 또 다른 평화운동가 벤쟈민 모네와 함께 강제출국(출국명령) 당한 이후 모국인 영국과 프랑스에서 강정을 위한 연대 운동을 벌이고 있다.

젤터씨는 영국으로 돌아온 뒤 강정마을에 보낸 편지에서 지난 5년간 강정주민이 벌여온 비폭력적이면서도 헌신적인 투쟁방식에 큰 감명을 받았다며 이제는 지친 강정주민을 위해 밖에서 연대가 시급하다고 호소했다.

"여러분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 달라. 온 세계의 평화와 사랑의 사람들이 여러분과 함께 하고 있다. 저희들은 우리나라에서 전쟁의 준비들을 대항하여 투쟁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평화의 문화를 만들기 위한 전 지구적 운동의 한 부분이다. 우리는 한국대사관 앞에서 촛불집회를 하거나, 항의 편지를 쓸 것이다."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디시 백악관 앞에서 열린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국제 연대 시위.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디시 백악관 앞에서 열린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국제 연대 시위.
ⓒ Shawn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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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젤터씨는 지난 9일 영국 런던에 소재한 한국대사관 앞에서 60여 명의 평화·환경운동가들과 함께 강정마을을 위한 연대 시위를 개최했다. 앞서 젤터씨는 이 연대 시위를 조직하면서 온라인상에 올린 글에서 "(강정) 주민들은 제주도가 평화의 섬으로 남기를 바라며 또한 해안 기지가 건설되는 것을 막고 싶어 한다"며 "강정 주민들에게는 국제 사회로부터의 든든하고 분명한 지지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젤터씨의 강정 연대 시위 계획이 알려지자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 교포들도 강정 주민들과 연대하기 위한 국제 평화 시위를 개최하겠다고 나섰다. 지난달 28일 미국 애틀랜타를 시작으로 같은 달 30일 미국 시애틀, 이달 5일 미국 워싱턴디시, 6일 프랑스 파리와 일본 후쿠오카, 9일 독일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 등에서 시위가 열렸으며, 12일 미국 뉴욕에서 마지막 연대 시위가 개최됐다.

영국 런던 한국대사관 앞에 모인 평화·환경운동가들은 노란색 티셔츠를 맞춰 입고 나와 봄비를 맞으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제주도를 전쟁의 섬으로 만들지 말아요", "제주에 해군은 안 된다. 지구를 지키자", "상처 난 구럼비" 등의 플래카드를 들었다. 또한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열린 연대 시위는 평화를 위한 종이배 접기 퍼포먼스와 풍물놀이로 진행됐다.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디시 백악관 앞 라파예트 공원에서 열린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국제 연대 시위.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디시 백악관 앞 라파예트 공원에서 열린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국제 연대 시위.
ⓒ Shawn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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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에서 시위 금지? '우린 해외에서 한다'

특히 지난 5일 미국 워싱턴디시 백악관 앞 라파예트 공원에서 진행된 연대 시위는 딱딱한 집회 형식을 탈피해 가족과 함께 소풍을 나온 분위기를 연출했다. 어린이날이라는 점에 착안,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어린이 창작활동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나무 밑에 모여앉아 준비해온 도시락을 나눠먹기도 했다.

또한 이날 시위를 위해 참가자들이 사전에 연습했던 '강정댄스'는 백악관을 찾은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구럼비를 죽이지 마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자제 제작한 'I♥JEJU' 티셔츠를 맞춰 입은 이들이 신나게 율동을 선보이자, 관광객들은 박수와 환호성을 보냈다.

지난 12일 오후 뉴욕 맨해튼 유니온스퀘어에서 열린 강정 연대 시위에서는 '보이콧 삼성' 피켓이 등장했다. 강정 해군기지 건설 시공사 중 한 곳이 삼성물산이기 때문이다. 피켓에 적힌 '제주도', '강정 해군기지', '구럼비 바위' 등은 모두 외국인들에게 생소한 단어들이다. 그러나 '보이콧 삼성'이 선명하게 새겨진 피켓을 본 상당수 외국인들은 발길을 멈추고 시위대에 관심을 보였다.

이날 시위 기획자 중 한 명인 김요세피나(38, 패션보석 디자이너)씨는 "'보이콧 삼성'이 목적이 아니라 삼성과 정부가 제주 강정마을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게 목적"이라며 "제주도나 강정 해군기지는 몰라도 삼성을 모르는 외국인은 없기 때문에 삼성 얘기를 통해서 강정 해군기지 이슈를 끄집어내려고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유니온스퀘어를 찾은 외국인들을 붙잡고 "삼성과 한국 정부에 의해서 아름다운 제주도가 파괴되고 있다"며 "그 뒤에는 미국이 있다"고 열변을 토했다.

김씨의 설명을 들은 미쉘 무어(60)씨는 "당신들이 오늘 시위를 통해 삼성의 부도덕성을 알려줘서 고맙다"며 "삼성의 해군기지 건설을 중단시켜야 한다"고 격려했다. 그는 또 "미국이 전 세계에 군사기지를 짓는 것을 중단시키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며 "미국은 패권주의를 위해 너무 많은 돈을 쓰고 있고, 해당 국가나 지역에서도 전혀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2일 오후(현지시간) 관광객들로 붐비는 미국 뉴욕 맨해튼 유니온스퀘어에서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를 위한 국제 연대 시위가 열렸다.
 지난 12일 오후(현지시간) 관광객들로 붐비는 미국 뉴욕 맨해튼 유니온스퀘어에서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를 위한 국제 연대 시위가 열렸다.
ⓒ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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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일부 외국인들은 '보이콧 삼성' 캠페인에 대해 의아해 하기도 했다. 시위에 참여한 이효정(31, 유학생)씨는 "미국 시민들이나 관광객들은 '왜 삼성을 보이콧해야 하느냐'며 놀라워하다가도 강정 해군기지에 대한 설명을 해주면 대체로 이해하는 분위기"라며 "그러나 어떤 시민은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높이고 있는 삼성을 한국에서 온 너희들이 보이콧하면 너희 정부로부터 소송을 당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고 전했다.

뉴욕을 끝으로 젤터씨가 제안한 강정마을과의 국제 연대 릴레이 시위는 막을 내렸다. 그러나 강정 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위한 해외 연대 시위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젤터씨는 강정마을에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경찰에 체포됐을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제가 처음 체포되었을 때, 저는 제 자신의 이름을 '전쟁이 아닌 평화를 위해 구럼비를 지키자'라고 했고, 두 번째에는 '전쟁을 준비하는 것으로부터 구럼비를 지키자'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경찰이 나의 국적과 신분증을 요구할 때에도 저는 '현재 강정에서 살고 있는 세계시민'이라고 대답했다."

젤터씨는 물론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교민들이 제2, 제3의 국제 연대 시위를 준비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강정마을에서 집회의 자유를 봉쇄한 경찰의 강경책이 오히려 세계의 시선을 강정으로 돌리고 있는 셈이다.


태그:#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앤지 젤터, #구럼비, #보이콧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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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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