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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5일 오전, 김상곤 교육감이 경기도 수원 청명고에서 열린 '경기도 학생인권 조례 공포식 및 학생인권의 날 선포식'에서 학생대표들과 함께 '경기도 학생인권 조례' 공포를 선언하고 있다.
 2010년 10월 5일 오전, 김상곤 교육감이 경기도 수원 청명고에서 열린 '경기도 학생인권 조례 공포식 및 학생인권의 날 선포식'에서 학생대표들과 함께 '경기도 학생인권 조례' 공포를 선언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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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반 기대 반으로 출발했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전국 최초로 시행한 '학생 인권조례'를 이르는 말이다. 김 교육감은 지난 2010년 10월 5일,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를 공포했다. 또 해마다 10월 5일을 '학생인권의 날'로 선포하고 학생인권선언문을 채택했다.

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하는 날, 김 교육감은 학생인권 선언문을 통해 "가정·학교·사회 그리고 국가는 학생이 즐거운 학교, 행복한 교실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여건과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김 교육감은 "오늘은 우리 교육의 새로운 역사가 열리는 날"이라면서 "학생인권조례는 학생들이 건강하고 사회적 역량을 가진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자 기초"라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김 교육감의 이러한 기대와 달리 세간에서는 '교권이 추락한다, 아이들 탈선이 심해진다' 등 갖가지 우려가 쏟아져 나왔다. 이유는 '체벌금지, 두발 길이 규제 금지 등의 내용 때문이다. 체벌이 없으면 아이들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없어 교권이 무너질 수 있고, 두발이 자유화 되면 아이들 탈선이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학생인권조례는 학교 내 체벌 금지, 강제 야간자율학습·보충수업 금지, 두발 규제 금지, 학생 동의 아래 소지품 검사, 휴대전화 소지의 부분적 허용, 인권교육 의무화 및 학생인권 옹호관 설치 등의 조항을 담고 있다.

학생인권조례 시행 후 1년 7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학교 현장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교사 "학생인권 보호차원에서도 교권보호 이뤄져야"

4일 오전, 경기도 안양 부흥 고등학교를 찾아 국어교사인 이윤갑 선생과 학생들을 만났다. 이 선생은 학생인권 조례 시행 이후 두발 단속이 없어져 교사와 학생 모두 스트레스가 줄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윤갑 부흥고 교사
 이윤갑 부흥고 교사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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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인권 조례 시행 이전엔 머리 문제로 아이들과 갈등을 겪었다는 말 같은데?
"그렇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고통스러웠고 교사는 교사대로 힘들었다. 그것 때문에 일거리도 많았고."

- 다른 변화가 있다면?
"학생들을 대하는 교사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게 가장 큰 변화다. 사실, 학생인권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다. 그저 아이들은 교육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교육을 위해서라면 매를 대도 된다고 생각했다. 사랑의 매라고 생각했지 학생인권 침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 학생들은 이런 분위기 어떻게 받아들이나?
"대부분 좋게 받아들인다. 교사들에게 자기주장을 잘 밝히고 그러다 보니 교사와 제자가 인격적 대화를 할 수 있고. 이런 분위기를 확대해서 일부에선 아이들이 버릇없다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이런 소소한 문제 때문에 (인권조례가) 그릇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인권조례 시행 이후, 힘든 점도 있었을 것 같은데? 예를 들면 교사들의 권위가 예전만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 같은 것?
"물론 없지는 않다. 예전엔 일방적으로 복종하던 아이들이 이의 제기를 하고, 지나친 아이들은 자기 권한이 침해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과격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때 교사들 당황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서로가 극복해야 할 문제다. 학생인권조례가 학생들에게 자유와 편안함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교직에 대한 권위를 무너뜨린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극복해야 할 과제다. 나아갈 방향이다. 아이들에게 인권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 했어야 했다.

학생도 자신의 권리를 되찾은 만큼 본분을 지켜야 한다. 교사들도 권위보다는 학생 입장에서 배려하고 교육적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노력이 필요하고. 아쉬운 것은 이런 소소한 문제를 확대해서 학생인권 조례 이후에 교권, 교육 무너졌다고 주장하는 것인데, 이것은 의도적인 것 같다. 교사들이 지금까지 지나친 권위를 누려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인권조례 때문에 교권이 무너졌다고 하기는 어렵다."

- 학생인권과 교권이 부딪히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다면?
"사회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가르치는 입장이기에 지켜져야 할 부분이 있다. 요즘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교사들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 시스템이 없어서 그렇다. 학생인권 보호차원에서도 교권보호가 이루어져야 한다."

- 구체적으로 어떤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인가? 만약 이 선생이 교육감이라면 어떤 시스템을 만들 것인가?
"이를테면 학교 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경우, 교사들이 큰 부담 없이 해결하는 사회적 시스템 필요하다. 지금 같으면 교사는 죄인이 된다. 1차적으로 학교에서 해결 안 되면 사회가 공동 책임을 지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학생 "선생님들이 존중해줘서 좋아... 인권조례 교육 받았으면"

학생들과 인터뷰를 할 때는 이윤갑 선생은 이들이 솔직한 답변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서 자리를 피해주었다. 인터뷰에 응한 학생은 3학년 위소현, 백윤혜 학생이다. 두 학생 다 머리를 길게 길렀다.

-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위소현 : "머리를 자유롭게 기를 수 있고 교내에서 운동(집회 등)도 할 수 있고……."
백은혜 : "학생인권 신장 위해 힘을 실어 주는 것이라 알고 있다."

- 학생인권조례 시행 이후 학교에서 무엇이 달라졌나?
위소현 : "선생님들이 우리들 의견을 반영하려고 노력하는 게 보인다. 또 이런저런 규제도 완화됐고, 우리들을 예전보다 많이 존중해 주기도 하고."
백윤혜 : "머리도 기를 수 있고 교복도 비교적 개성에 맞게 자유롭게 변형해서 입을 수 있다."

학교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학생들
 학교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학생들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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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례 시행 이후 학생들이 교사들을 막 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던데?
"우리 학교는 그런 경우가 없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동영상 보고 그런 일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학교는 남학생들도 그러지 않는다. 동영상에서 봐도 중학교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고등학교는 그런 일이 거의 없다."

- 학생인권조례가 생겨서 좋다는 말 같은데, 혹시 아쉬운 점은 없나?
"있다. 인권조례에 대한 교육을 해주면 좋겠다. 지금까지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교육을 받아서 잘 알 수 있으면 좋겠다. 또 교칙 수정할 때 위원을 선정하는데 참여할 수 있는 인원이 한정적이다. 좀 더 광범위하게 의견을 수렴하면 좋겠다. 그래야 모두를 위한 교칙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들 학생 외에 김서희(안양 양명여고 1학년) 학생에게도 인권조례에 대해 물었더니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학생인권을 보장해주는 게 인권조례라고 알고 있다. 인권조례가 생긴 후, 선생님들이 잘 대해 주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자유분방해졌고, 아이들이 선생님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서 좋다."

그렇다면 학부모들은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아들이 고3인 학부모 배아무개씨는 "예전에는 학교에서 여러 가지 규제를 많이 해서 아이에게 잔소리를 많이 하고 다투기도 했고 교사와도 많이 부딪혔다"는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배씨는 "학교에서 아이가 복장과 머리 규정을 지키지 않는다고 자주 부르기도 했다"며 "인권조례가 시행된 뒤, 아이나 교사와 다툴 일이 없어서 정말 좋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번에는 딸이 고3인 학부모 문아무개씨에게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학생인권조례가 나왔을 때 전문을 천천히 한 번 읽어봤다. 세세한 내용까지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아이가 인권조례 때문에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고3이다 보니 진학 문제만 신경을 썼지 미처 그 문제까지 신경 쓰지는 못했다."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논란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지만 기자가 학교 현장에서 만난 교사나 학생, 학부모들은 대부분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논란은 그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보수언론이나 일부 교원단체 그리고 일부 학부모들이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학교에서 혼란이 일고 교권이 추락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2010년 10월 5일 오전, 경기도 수원 청명고에서 열린 '경기도 학생인권 조례 공포식 및 학생인권의 날 선포식'에서 김상곤 경기교육감이 행사에 참석한 학생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10년 10월 5일 오전, 경기도 수원 청명고에서 열린 '경기도 학생인권 조례 공포식 및 학생인권의 날 선포식'에서 김상곤 경기교육감이 행사에 참석한 학생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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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곳은 교육과학기술부다. 교과부는 학생인권조례가 공포된 뒤 적극 대응에 나섰다. 서울시교육청에 '인권조례 학칙개정' 시정명령을 내리고, 대법원에 조례 무효 확인소송을 내는 한편, '초중등교육법시행령' 개정을 완료하였다. 이에 따라 교과부는 서울, 경기, 광주의 인권조례관련조항이 효력을 상실했다고 주장하며, 각급 학교에 학칙을 재·개정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교과부의 이런 조치에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김 교육감은 지난 2일, 교과부가 학생인권조례가 상위법령 위반으로 효력을 상실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근거가 없고 '학생인권조례 무력화'라는 저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교육감은 "시행령에 적시되지 않은 학칙의 내용에 대해서는 학칙의 상위법인 학생인권조례의 규정을 따라야 한다"며 "이번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시행은 학생인권조례와 충돌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은 "학생인권조례가 학생인권에 대한 공론화와 학생인권 존중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 가장 큰 의미가 있다"고 인터뷰를 통해서 강조한 바 있다. 학생인권조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에게도 인권이 있으며, 사회적으로 그것을 존중하고 지켜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2년이 조금 넘게 남은 임기동안 김 교육감은 '학생인권조례'를 어떻게 정착시켜 나갈 것이며, 딴지를 걸고 있는 교과부에 어떤 대응을 할 것인지 관심이 주목된다.


태그:#김상곤, #학생인권조례, #학교, #경기도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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