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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가 병아리들을 신기한 듯 바라봅니다. 제발, 만지지 마!
▲ 새식구 둘째가 병아리들을 신기한 듯 바라봅니다. 제발, 만지지 마!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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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약. 삐약. 삐삐삐약."
"도대체 어떻게 키울 거야?"
"삐삐약. 삐약. 삐약."
"쟤들 밥은 어떻게 하려고? 무슨 대책이 있어야 하잖아?"
"삐삐삐약. 삐약. 삐약."

지난 4일, 퇴근 후 아파트 문을 열었습니다. 막내 혼자 누룽지를 먹고 있네요. 반가운 표정으로 저를 한번 부르더니 먹는 일에 집중합니다. 항상 열려 있던 안방 문이 굳게 닫혀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나 봅니다. 조용히 다가가 문에 귀를 붙였습니다. 두 아들이 아내에게 혼나고 있습니다.

작은아들이 아내 허락 없이 덜컥 햇병아리를 사왔기 때문인가 봅니다. 정말 가냘픈 병아리 소리가 작은 아파트 벽에 부딪쳐 울림이 커집니다. 그 소리도 무시 못하겠네요. 아내 머리에 쥐가 납니다. 아내의 호통에 아이들은 묵묵부답입니다.

혼날 만합니다. 예정된 일이지요. 학교 앞 문방구에서 한 마리에 오백 원하는 병아리를 두 마리나 샀는데, 돈이 부족해 먹이는 못 샀답니다. 아파트에서 굶길 수도 없고 난감합니다.아이들은 벌써 병아리들에게 이름을 붙였습니다. '정현병아리'와 '은현병아리'입니다. 두 녀석은 자신들의 병아리를 확실히 알아봅니다.

낯선 곳에 왔습니다. 물 한모금 머금고 고개를 들어 올립니다.
▲ 물 한모금 낯선 곳에 왔습니다. 물 한모금 머금고 고개를 들어 올립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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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사는 조가카 친구까지 불러 구경왔습니다. 막내는 멀찌 감치 떨어져있습니다.
▲ 구경 옆집 사는 조가카 친구까지 불러 구경왔습니다. 막내는 멀찌 감치 떨어져있습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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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대에 기댄 아내, 넋 놓고 바라봅니다

저는 아무리 봐도 구별이 안 됩니다. 아이들 말을 들으니, 날갯깃이 약간 흰 쪽이 '정현병아리'랍니다. 반면, 막내는 병아리 근처에 얼씬도 못합니다. 소리만 가만히 듣고 있다 형들에게 병아리 보러가라고 재촉만 합니다. 정작 막내는 엉덩이를 빼고 저 멀리 눌러앉았네요.

작은애가 부둥켜안고 병아리 쪽으로 이끌자 질겁하며 울어댑니다. 그 소리에 병아리들이 더 놀랍니다. 삐약, 삐약 소리를 내지릅니다. 집 안이 온통 아우성소리로 난장판입니다. 아내는 싱크대에 몸을 기댄 채 그 모습을 넋 놓고 바라봅니다. 모든 상황을 포기한 모습입니다.

병아리 모이 만들 작은 절구입니다. 단단한 쌀을 가루로 만들기 쉽지 않습니다.
▲ 절구 병아리 모이 만들 작은 절구입니다. 단단한 쌀을 가루로 만들기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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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구에 쌀을 넣고 힘차게 갈았습니다. 고운가루를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 먹이 절구에 쌀을 넣고 힘차게 갈았습니다. 고운가루를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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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다가가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그래, 모이는 어디 있어?"
"모이는 무슨. 두 놈이 아침마다 쌀 갈아서 먹이기로 했어."
"며칠이나 가나 보자."

아이들은 아내에게 크게 혼나고 난 뒤 나름대로 병아리 키울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아내와 간단한 협상을 마쳤습니다. 병아리 모이는 두 녀석이 책임지기로 했습니다. 작은 절구통에 쌀 한 줌을 넣고 곱게 갈아서 어린 병아리들에게 주기로 했답니다. 절구통에서 쌀가루 만들기 쉽지 않을 텐데 가능할까요?

밤새 울었는지 늦잠을 잡니다.
▲ 늦잠 밤새 울었는지 늦잠을 잡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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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 키우는 목적, 큰애는 '양계업'인데 작은애는?

아내와 두 아들이 부족한 협상을 지루하게 이어갑니다. 밤이 깊어갑니다. 마침내 협상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두 아들은 박스 안에 신문지를 잘게 찢어 깔아야 합니다. 물론, 아침마다 쌀 갈아서 병아리 먹이도 줘야 하구요. 똥 싼 신문지도 갈아야 합니다.

또, 절대 병아리는 방에 들이지 않기로 굳게 약속했습니다. 마지막이 중요한데 좀 더(?) 커지면 시골 외할머니에게 병아리를 넘기기로 했습니다. 이 모든 약속을 받은 후, 아내는 박스 안에 있는 병아리를 쳐다봅니다. 멋모르고 물 마시는 병아리가 처량한 듯 아무 말이 없습니다.

철없는 개구쟁이들 손에 목숨을 맡긴 병아리들이 불쌍하네요. 반면, 두 아들 꿈은 원대합니다. 아내의 화가 가라앉자 두 녀석은 아내 옆에 다가와 계획을 늘어놓습니다. 큰애는 병아리를 닭으로 키우겠답니다. 달걀을 많이 낳아 모두 닭으로 만들겠답니다. 일명, 양계업에 뛰어든다는 말이지요.

'아들아, 미안하지만 두 마리 모두 수컷이란다.'

반면, 둘째 계획은 조금 다릅니다. 일단 덩치가 커지면 잡아먹겠답니다. 맛있게 먹은 후, 또 병아리를 사서 키우겠답니다. 물론 먹기 위해서죠. 두 아들이 병아리 키우는 목적이 많이 다르네요. 그 소리 듣고 아내가 헛웃음을 날립니다.

정현병아리입니다. 저는 도대체 구분이 안되는데 애들은 어떻게 단박에 알까요?
▲ 구별 정현병아리입니다. 저는 도대체 구분이 안되는데 애들은 어떻게 단박에 알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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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내가 키우던 병아리는 아버지 손에...

두 아들이 하는 행동을 봐서는 짐작컨대 일주일도 못 넘길 듯합니다. 그 생각을 하다보니 새삼 어릴 적 기억이 떠오릅니다. 저도 학교 앞 공터에서 팔던 병아리를 세 마리 사온 적이 있었지요. 매일 아침이면 가장 먼저 일어나 물과 밥을 줬습니다. 학교를 마치면 곧바로 집으로 왔습니다.

풀이며 벌레를 잡아 병아리에게 먹였습니다. 무럭무럭 자라더군요. 하루가 다르게 덩치를 키워가던 녀석들이 참 신기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마치고 집에 왔는데 닭들이 없어졌습니다. 알고 보니 아버지가 닭을 잡으셨습니다. 저녁상에 오른 녀석들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먹었냐고요? 눈물을 머금고 맛있게(?) 먹었습니다. '악어의 눈물'이라고요? 죄송합니다. 나름대로 생각해낸 두 아들의 계획을 듣고 있자니 밤이 깊어갑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병아리 소리를 더 쩌렁쩌렁 울립니다. 옆집에서 흉보지 않을까요? 잠잘 시간이 되면 병아리들도 잠이 들까요? 온 밤이 지나도록 소리 지르면 어쩌죠? 이어지는 궁금증에 잠이 오질 않네요.

둘째의 충동적인 행동으로 새 식구가 생겼습니다. 아이들은 힘들더라도 병아리를 열심히 키워야 합니다. 똥 치우고 밥도 줘야 합니다. 잠자리를 편히 봐주는 일도 힘들겠지요. 그 일이 생명을 대하는 기본입니다.

잘게 간 쌀을 줬더니 정신없이 쪼아 먹습니다. 제발 외할머니 집에 갈 때까지 잘 지내렴...
▲ 식사 잘게 간 쌀을 줬더니 정신없이 쪼아 먹습니다. 제발 외할머니 집에 갈 때까지 잘 지내렴...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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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질 수 없는 일은 함부로 벌여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겠지요. 장난감은 이곳저곳 팽개쳐 두었다가 눈에 띄면 또 만져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명이 있는 병아리는 함부로 대하면 안 됩니다. 한 생명을 섬기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절실히 느껴야지요.

물론 아내와 제가 녀석들 키우는 고생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면 더욱 좋겠지요. 그 기대, 너무 원대한 꿈일까요? 부디 외할머니 집으로 옮겨질 때까지 목숨 잘 보존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밤도 병아리 소리 자장가 삼아 잠이 듭니다.


태그:#햇병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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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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