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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노동과 청년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청년찾기'문화제가 열렸다.
 지난 30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노동과 청년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청년찾기'문화제가 열렸다.
ⓒ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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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처음으로 학자금 대출을 하고 그 비용을 대기 위해 휴학을 했다. 어쩐지 지금 갚지 않으면 '빚쟁이'가 될 것 같은 생각에. 그래도 두 살 터울 형제도 있는데 3학년에 첫 대출이면, 나는 부모님이 고생해주셔서 그나마 이 정도라 생각하면서, 일을 했고. 약간의 잔금을 남기고 다시 복학했다. 그리고 대학에서 노동절을 네 번째 맞고 있다. 이번 노동절에도 청년들의 집회가 열린다고 했다.

대학 초년엔 늘 궁금했다. 왜 '노동절'에 대학생들이 행사를 여는지. '그건 그분들의 문제지, 뭘 굳이 우리가…' 나는 어쩐지, 대학생인 내가 '노동자'나 '비정규직'은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을 가진 것 같다. 그것이 깨진 것은 일을 처음 해보고 나서였다. 어떤 요구를 했다가 월급을 못 받을까 봐 불안해하고, 사장이 덜 지급한 급여를 두고 전전긍긍하는 나는 명실공히 '노동자'였고, 졸업을 해도 잠정적인 그 형태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등록금, 대학 기업화, 비정규직, 정리해고, 청년실업… 모든 문제는 같은 맥락 속에, 한 연장선상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동조합의 장기투쟁 사업장에 발걸음이 갔던 것은 그때부터다. 이날의 전야제도 그랬다.

몸에서 떠나지 않는 향내... 쌍용차 분향소는 오늘도

이른 저녁 대한문 앞에서는 쌍용차 22번째 희생자를 기리는 '범국민추모문화제'가 열렸다.
 이른 저녁 대한문 앞에서는 쌍용차 22번째 희생자를 기리는 '범국민추모문화제'가 열렸다.
ⓒ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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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30일, 청년학생 문화제에 앞서 오후 6시부터 덕수궁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에서 범국민추모문화제가 개최되었다. 4월의 마지막 날인 이날도 분향소 앞에는 조합원과 시민, 학생들을 비롯한 수백여 명의 관중이 모여 절을 올리고 추모에 참석했다.

문화제 무대에 오른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수석부지부장은 "몸에서 향내가 가시질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럴 것이었다. 쌍용차 다큐멘터리 <당신과 나의 죽음>에서는 한 동료의 사망 소식을 접하자 나머지 조합원들이 '담배를 문 채' 상복을 입는 장면이 나온다. 희망광장에서 와락센터 정혜신 박사는 "최근 쌍차 조합원들이 더 이상 죽음에 예전처럼 슬퍼하지 않는 자신들을 보며 정신적으로 붕괴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고 발언했었다. 이창근 실장의 말처럼, 이것은 정말 '일상적인 죽음으로 사람을 무디게 하는' 폭력이 아닌가. 김득중 부지부장은 그러나 꿋꿋이 말했다.

"하지만 이 고통이 비단 쌍차뿐이겠습니까. 해고살인만큼은 막아야 합니다. 노동자를 당당하게 살게 하기 위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노동악법 철폐를 위해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쌍용 투쟁 참여자들은 지겹도록 들었을, 또 조합원들은 수십 수백번 말했을 ‘더 이상 죽이지 말라’는 말. 그러나 지난 겨울 또다시 세 명이 생을 떠났다.
 쌍용 투쟁 참여자들은 지겹도록 들었을, 또 조합원들은 수십 수백번 말했을 ‘더 이상 죽이지 말라’는 말. 그러나 지난 겨울 또다시 세 명이 생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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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더이상 죽이지 마'라고 붉게 쓰인 추모관 앞에서 무용수가 태평소 소리에 맞추어 살풀이를 추었다. 그렇게 죽이지 말라고 했는데도 정리해고는 지난 겨울 동안만 세 명을 떠나 보냈다. 스물두 명, 벼랑 끝에 몰리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는데…. 일상이 되어버린 죽음은 어느덧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는지….

김득중 부지부장은 "더 이상 눈물을 흘릴 수만은 없습니다"고 외쳤다. 태평소 소리가 높아지고 춤사위가 강렬해지자 주위는 더욱 먹먹해졌고, 어디선가 플래시가 연방 터졌다.

청년만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전부 다 아프다'

이윽고 오후 9시, 대한문 맞은 편 시청광장에서는 다시 한번 학생들의 함성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전국학생행진, 대학생사람연대 등을 비롯해 경희대, 고려대, 이화여대, 한신대 등 대학생이 참여한 '430 청년학생투쟁문화제-청년찾기'가 열렸다.

학생들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생활임금(노동), 등록금과 법인화, 학내탄압(교육), 비싼 자취방(주거), 선거철 정치쇼에서 탈피한 청년 주체화(정치)'라는 네 가지 의제를 차례로 외치며 다양한 노래와 연극, 뮤지컬 등을 선보였다.

학생들은 노래 가사를 개사하고 뮤지컬, 연극, 셔플춤 등을 다양하게 선보이며 노동과 주거, 청년문제 해결을 외쳤다.
 학생들은 노래 가사를 개사하고 뮤지컬, 연극, 셔플춤 등을 다양하게 선보이며 노동과 주거, 청년문제 해결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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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을 하고 갚아보니 더욱 와닿는 바이지만, 등록금은 너무 비싸다. 하지만 대학 졸업을 하지 않으면 취직이 되지 않는다. 그마저도 졸업 전까지 스펙을 비용들여 쌓지 않으면 '비정규직'으로 전락할 위험을 갖는다.

그러나 왜 '위험'과 '낙오자의 삶'으로서 비정규직이 존재해야 하는가. 왜 같은 일을 해도 적은 임금에 심지어 노동자로조차 취급받지 못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은 도대체 누가 재단하는지. 그리고 언제든 손쉽게 내려질 수 있는 정리해고의 위험들. 그 피해자들이 바로 옆의 청소노동자이고 재능과 쌍용의 조합원이었다. 남의 문제일 수가 없었다.

연세대 학생들은 영상을 통해 "80년대는 땅 팔아서, 90년대는 집 팔아서, 2000년대는 우리 신용을 팔아서 대학을 다녀야 하는 현실. 이 모든게 20대만의 문제인가? 지역, 학교, 세대를 넘어 보편적으로 가지는 문제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로 절대 떠넘겨질 수 없다"라고 표현했다. 학생들은 "아프니까 학생이고, 아프니까 노동자라는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고 싸워내자"라고 적극 발언했다.

"저 어렸을 때 재능 선생님 오시면 스티커만 붙이고 학습지는 냉장고 밑에 숨겨서 잃어버렸다고 거짓말치곤 했는데. 그때 그 스티커랑 스티커판조차 월 급여 560원 남짓하는 선생님 월급을 쪼갠 거였어요. 노동자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이 이야기는 재능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선생님이 아픈데 저도 아프고, 청소 아줌마도 아프고 우리 엄마아빠도 아프거든요. 아프니까 청춘이라는데, 정말 김난도 교수님 빼고 다 아픈 것 같습니다." (진보신당 도레미실천단장 이유준희)

청년보컬이 광장 옆에 위치한 재능교육 건물을 가리키며 "저질, 저질, 돈만 아는 저질~"이라 노래 부르자 관중의 복창이 이어졌고, 집회 상황을 연출한 연극에서는 홍익대학교 청소노조 부분회장이 직접 등장해 발언했다.

재능의 유명자 지부장, 송경동 시인, 쌍용차의 김정우 지부장과 노래패, 국립오페라단의 노조원들. 지난 3월 이 자리에서 열렸던 '무한점령 프로젝트' 때와 같이 모두 함께 참여하고 있었다. 광장은 노동자와 학생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풍경으로 가득했다.

'청년찾기'에 출연한 희망광장 인사들.(좌측부터 전국학습지노조 재능지부 유명자 지부장, 송경동 시인, 홍익대학교 청소노조 박진국 부분회장)
 '청년찾기'에 출연한 희망광장 인사들.(좌측부터 전국학습지노조 재능지부 유명자 지부장, 송경동 시인, 홍익대학교 청소노조 박진국 부분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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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청년 위하겠다'는 정치, 필요없다"

한편 이날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최근 정치인들에 대한 청년들의 불신이 짙어졌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청년이 투표해야 세상이 바뀐다기에 4년 전 저 정치인만 뽑으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는데, 변한 건 왜 아무것도 없는가"라며 청년의제를 '소모'시켰다고 비판했다. 그들은 "이제는 정치쇼 대신 투표장이나 국회에서 멈춘 우리 권리를 직접 요구하겠다"고 나섰다.

"나만 아픈 것도, 청년이기 때문에 아픈 것도 아니었다. 이것은 시대 모두의 문제이다. 그런데 정말 우리의 무기는 '표'뿐이란 말인가? 우리 모두가 당연히 자신들을 지지할 것이라는 오만한 야권은 패배 속에서도 교훈을 얻으려는 노력이 없다." ('청년찾기' 팜플렛 중에서)

'청년찾기'에 참여한 학생들이 노동자들과 함께 비정규직을 철폐하고 노동권을 보장하자는 '재능OUT' 송을 부르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청년찾기'에 참여한 학생들이 노동자들과 함께 비정규직을 철폐하고 노동권을 보장하자는 '재능OUT' 송을 부르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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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집회에 참여한 대학생 친구 은영(23)은 노동과 청년문제를 아우른 '희망신문'을 직접 만들어 건네주었다. 지난 2010년 쌍용차 소식을 접한 뒤부터 생각을 많이 바꿨다는 그는 "내가 지금까지 뭐 하면서 살아왔나 싶었다"고 말했다.

"그냥 처음엔 '그분들도 많이 힘드시구나' 했어. 그런데 내가 사는 이 사회가 이렇게 사람을 죽이는 사회인데, 이게 제대로 된 곳이냐는 근본적인 물음부터 들더라. 내가 대학에서 겪는 학생문제랑 노동과 교육문제가 절대 따로 떨어질 수 없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던 것 같아."

노동절 행사에 학생들이 참여하기 시작했던 문화는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되어 이제 20여 년을 넘겼다. '투표'만으로 세상이 모두 바뀐다는 환상, 그리고 해고와 비정규직이 게을러서 낙오된 '루저'만의 문제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광장은 오래 전부터 외치고 있다.

청년 노동자 300만 명 중 절반 이상인 비정규직, "자기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던 은영의 말처럼 우리가 고민하는 모든 문제는 연결되어 있다. 광장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언제든 '당신'이 될 수 있어서다.

지난 30일 시청광장에서 열린 <430 청년학생투쟁문화제-'청년찾기'>.
 지난 30일 시청광장에서 열린 <430 청년학생투쟁문화제-'청년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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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430 청년찾기, #희망행동, #쌍용차, #비정규직, #정리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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