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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문 앞 분향소에는 경찰의 침탈 뉴스나 동영상을 보고 찾아오는 분향객이 많다. 22번째 '죽음'을 맞은 이윤형씨가 옥쇄파업에 참가했던 정리해고자였다는 뉴스를 보고 분향소를 찾아왔다가 다큐멘터리를 찍기로 하고, 매일 분향소를 드나드는 하샛별 (28·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다큐멘터리 전공)씨도 그런 경우다. 이제 자신을 단순한 분향객이 아니라, 분향소 가족이라고 불러 달라는 하샛별씨와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필자주>

하샛별씨와 신영철씨는 시민으로 분향소를 매일 지키고 있다.
 하샛별씨와 신영철씨는 시민으로 분향소를 매일 지키고 있다.
ⓒ 이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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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못 받는 세상에서는 힘들고, 어려운 노동을 하는 사람의 존재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청소노동자'를 예로 들자면 학생들은 비싼 등록금을 내고 다니니, 학교 구석구석이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는 것이 그저 당연하다고 생각을 해요. 그렇게 깨끗하게 청소를 해준 청소노동자는 투명인간으로 보이는 것이죠.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도 마찬가지라고 보여요. 돈만 보이고, 노동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죠. 이제 노동이 존중받고, 노동자가 존중받아서 '사람의 노동'이 보이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요."

샛별씨는 인하대 법대에 재학할 당시 '사회과학동아리'에서 활동했다. 우연한 기회에 졸업을 기념하는 의미로 학내 청소노동자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찍게 됐다. 학생과 노동자로 만날 때와는 다르게 직접 만나는 기회가 잦아지니, 청소노동자와 솔직한 삶의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청소노동자는 뜻밖에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이 있었다. 그들을 통해 '노동'을 하고, '몸'을 움직이며 산다는 것, 노동의 중요성을 배웠다. 그때 느낌도 좋았고, 다큐멘터리를 제대로 공부해 보고 싶어서 2012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입학해서 다큐멘터리를 전공하고 있다.

2009년 쌍용자동차 옥쇄파업이 일어났을 때, 샛별씨는 소식지를 통해 평택 소식을 접했다. 그러나 정작 평택을 가지는 못했다. 그저 '대자보'나 교육을 통해 쌍용자동차 옥쇄파업에 대해 알렸을 뿐이다. 대기업 공장에서 옥쇄파업을 결정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아 '노동자'의 절박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용산철거민 사건도 있었던 터라 국가의 폭력이 무섭게 다가왔다. 대한문 분향소에 들를 결심을 한 것은 주말에 보게 된 한 뉴스로 '쌍용차 22번째 희생자 이윤형씨가 옥쇄파업에 동참했던 정리해고 노동자'였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샛별씨는 분향소가 차려지고 4일 뒤인 지난 9일(월) 분향소를 처음 찾았다.

"처음 분양소 왔을 때, 초라해서 슬펐어요!"

하샛별씨가 분양소에 찾아 온 고동민씨를 인터뷰하고 있다.
 하샛별씨가 분양소에 찾아 온 고동민씨를 인터뷰하고 있다.
ⓒ 이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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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쇄파업에 참여했으면 삶에 적극적이었을 텐데 '얼마나 힘들었으면 죽음을 택했을까?' 생각하니, 분향소에 꼭 와봐야겠다 싶었어요. 분향소에 처음 왔을 때는 천막도 없고, 초라해 보여서 슬펐어요. 상주분들 얼굴을 보니 더 할 말이 없어졌어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력한 생각도 들고…. 그저 인천에서 서울로 이사 왔으니, 자주 찾아오자 생각하고 학교가기 전에 또는 수업이 끝나고 거의 매일 들르고 있어요."

샛별씨는 분향소에서 다양한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이 좋아 다큐멘터리로 영상을 담는 일보다 수다를 떠는 일이 더 많아졌다고 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친구가 되고,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면서 다큐멘터리를 찍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분향소의 나날을 다큐멘터리 과정으로 담고 있는데, 사실은 수다 떠는 시간이 더 많아요. 여기 찾아오시는 분들이 금세 친구처럼 친해지고, 있는 그대로의 솔직한 마음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아요."

샛별씨는 초라하기만 하던 분향소가 매일매일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노동자들이 요구하고 싸우지 않으면, 얻어지는 것이 없구나!"라는 사실을 깨우치게 됐다며 "사람들이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함께하면서 조금씩 바꿔갔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샛별씨는 요즘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문제, 재능 해고자 문제 등 노동문제를 인천의 시민교육센터인 '십시일반'과 게시판, 학교 친구들에게 가능한 많이 알리려고 힘쓰고 있다.

"전태삼님이랑 '유가협'에 다녀왔는데요. 태삼님이 7시 대한문에서 문화제가 있다, 꼭 들려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와서 보라'고 알리는 것이 참  중요하겠구나! 생각했어요.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실천하는 것이죠."

"'정리해고'라는 말 자체가 없어져야..."

인터뷰를 끝낸 하샛별씨와 고동민씨의 모습.
 인터뷰를 끝낸 하샛별씨와 고동민씨의 모습.
ⓒ 이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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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분향객이 아니라 분향소 가족으로 소개해 달라는 샛별씨에게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을 묻자, 너무 어려운 질문이라던 샛별씨가 조용히 대답했다.

"일차적으로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분들이 더 이상은 상복을 입는 일이 없었으면 해요. 그러려면 회사가 한 약속이 지켜져야 하는데….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분들이 겉으로는 씩씩해도 얼마나 힘들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김성진 사무장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꼭 복직이 안 돼도 좋다. 그저 마음 편하게 살다가 고통과 아픔 없이 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요.

정상적인 삶과 관계가 단절되지 않은 보통의 삶이 욕심이 되어야 하는 것이 싫어요. 쌍차 문제는 원직 복직을 넘어서 기업이 노동자를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는 권한이 없어야 해요. '정리해고'라는 말 자체가 없어져야죠. 그런 말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잖아요?"

샛별씨의 바람처럼 노동 가치가 존중받는 세상, '사람의 노동이 보이는 세상'은 그냥 오지 않는다. 노동의 가치와 노동자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걸음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천천히 또박또박. 그러나 질기게~ 희망의 고지를 향하여…."

덧붙이는 글 | 대한문 분향소는 49제인 5월 18일까지 이어집니다. 5월 19일에는 시청 광장에서 범국민 추모제가 있을 예정입니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연대와 참여를 바랍니다.



태그:#싸용자동차 해고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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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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