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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육우당의 사진과 유품들 2012년 청소년 성소수자 무지개 봄꽃 피우다 캠페인에서 19살에 세상을 떠난 회원 고(故) 육우당과 고(故) 오세인의 유품을 추모 공간에 전시하고 있다.
▲ 故육우당의 사진과 유품들 2012년 청소년 성소수자 무지개 봄꽃 피우다 캠페인에서 19살에 세상을 떠난 회원 고(故) 육우당과 고(故) 오세인의 유품을 추모 공간에 전시하고 있다.
ⓒ 곽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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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당을 처음 만난 건 2002년 겨울 동성애자인권연대(이하 동인련) 송년회 자리에서다. 그는 누구나 추억하듯 '예쁘고 앳된' 모습의 열아홉살 남성 동성애자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12년 4월 25일은 그의 9주기이다. 시인이 되고 싶어 했던 열아홉의 탈학교 청소년 동성애자. 없는 돈을 아끼고 아껴, 틈만 나면 동인련에 후원금을 들고 왔던 친구.

학교에서 아웃팅을 당한 후 자의 반 타의 반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고, 아버지 손에 이끌려 정신과 진료도 받아야 했던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그는 어쩐 일인지 잠을 자도 동인련 사무실 바닥에 돗자리 깔고 눕는 것이 편하다고 했다. 이제는 9년이나 지나 목소리마저 가물가물한 육우당을 여전히 떠올리고 그리워한다.

육우당이 가장 관심을 가졌던 문제는 청소년 보호법상 동성애자 차별 조항 삭제 운동이었다. 2003년 봄, 국가인권위원회가 이 조항에 대한 삭제 권고를 내리자,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은 이에 크게 반발하며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들은 "동성애는 소돔과 고모라의 유황불로 심판"해야 하며, 동성애가 창조질서에 도전하고 에이즈를 퍼뜨리고 있다는 엄청난 저주를 퍼부었다.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기독교인들이 동성애자에게 행사했던 엄청난 적개심과 폭력 앞에 큰 참담함을 느꼈고, 열정적으로 기사를 투고하고 캠페인에 참여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4월 25일, 육우당은 동인련 사무실에서 목을 매어 숨진 채 발견되었다.

"내 한 목숨 죽어서 동성애 사이트가 유해매체에서 삭제되고 소돔과 고모라 운운하는 가식적인 기독교인들에게 무언가 깨달음을 준다면 난 그것으로도 나 죽은 게 아깝지 않아요."

육우당의 유서 중 한 구절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육우당은 처음 만난 청소년 성소수자였다. 그가 죽고나서 청소년보호법의 동성애차별조항은 삭제되었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깨달음을 얻었지만, 여전히 많은 기독교인들은 이전보다 더 노골적으로 성소수자들을 몰아붙이고 있다. 여전히 상황은 어렵지만 그래도 육우당이 살았던 2003년과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여전히 '육우당'은 기억돼야 한다

지난 2011년 12월은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둘러싸고 전국이 시끌시끌했다. 보수 기독교단체를 중심으로 "청소년에게 동성애를 허용하면 안 된다"느니, "애들에게 항문성교를 가르칠거냐"느니, "초등생 엄마에 중학생 아빠가 생길 것"이라며,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임신 및 출산 차별금지를 문제 삼고 나선 것이다.

2011년 청소년 성소수자 무지개 봄꽃 피우다 캠페인 모습 故육우당을 기리며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준비하는 시민참여 거리캠페인. 올해로 네 해째를 맞았다.
▲ 2011년 청소년 성소수자 무지개 봄꽃 피우다 캠페인 모습 故육우당을 기리며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준비하는 시민참여 거리캠페인. 올해로 네 해째를 맞았다.
ⓒ 곽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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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당이 그토록 성토했던 '가식적인 기독교인'들은 성소수자들이 난생 처음 벌인 서울시의회 농성장까지 난입하여 우리를 경멸하고 사회질서를 무너뜨릴 위험세력으로 몰아붙였다. 이들은 9년 전과 꼭 마찬가지로 성소수자들에게는 어떤 사회적 인정도, 권리도 줄 수 없다는 결연한 태도로 우리를 대했다. 9년 전, 한기총에 육우당의 죽음에 대한 사과를 받기 위해 찾아간 자리에서 "부끄러운 줄 알라"며 우리를 경멸한 '가식적인 기독교인', 그들 말이다.

결국 성소수자들은 승리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조항들이 몇 번이나 위기를 겪었지만 점거농성과 단호한 투쟁,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연대 덕분에, 거의 훼손되지 않고 시의회를 통과한 것이다. 처음 맛 본 통쾌한 승리였고, 처음으로 성소수자의 권리가 서울시의회라는 공론장에서 토론된 복잡미묘, 싱숭생숭한 순간이었다. 그곳에는 기억해야 할 얼굴들이 있다. 수많은 육우당들, 언젠가 그의 열아홉을 겪어왔고, 혹은 겪고 있거나, 겪게 될 수많은 청소년 성소수자의 얼굴들이다.

이런 과정에서 청소년 성소수자의 현실이 더 많이 드러나게 되었다. 2007년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성소수자의 76%가 자살을 생각해봤고, 실제로 자살을 시도해본 비율도 58%에 이른다. 한국청소년개발원의 청소년 성소수자 실태조사에서도, 78%의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놀림을 받거나, 동성애자임이 알려진 후 부당한 대우를 받은 비율도 51%에 달했다.

욕설, 언어모욕, 폭력, 성적 폭력 등에 적지 않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노출되어 있음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교사들이 성소수자 학생들을 처벌하거나, 동료 학생들이 급식시간에 국을 쏟아버리거나, 집단 따돌림을 시키기도 한다. 굳이 머리가 짧은 여학생에게 '레즈비언 낙인'을 찍기도 하는 등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여전히 인권도 무엇도 없는 야만의 세계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면서 적어도 청소년도 '인간'이라는 법적 보증은 생긴 셈이지만 저절로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인권이 신장되진 않을 것이다. 여전히 '가식적인 기독교인'들은 교육청 앞에서 연일 동성애를 허용할 셈이냐며 학생인권조례 흔들기에 나서고 있고, 이들의 눈치를 보느라 그 무엇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하지만 시작되어야 한다. 각고의 노력 끝에 지켜낸 성소수자 차별금지라는 몇몇 단어들에는 성소수자들이 지켜낸 자기 존재증명의 노력이 담겨 있다.

우리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동성애 혐오에 시달리지 않고 안전하고 편안하게 학교에 다니길 바란다. 이를 위해 학생인권조례가 현장에 잘 정착되고 적용될 수 있도록 제도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차별받은 청소년이 쉽고 빠르게 상담하거나 신고할 수 있는 체계가 인권에 기반을 두고 마련되어야 하며, 학교 현장에 인권이 정착될 수 있도록 인권교육이 확대 정착되어야 한다.

학생 자치를 통해 저마다 차이를 지닌 동료들이 평등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 교사들이 동성애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가지지 않고 성소수자 학생의 적극적인 지지자가 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교육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탈가정, 탈학교 청소년들에 대한 사회적 지지와 자립 생활을 위한 사회적 보장도 정말 필요하다. 청소년의 자립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에서 청소년들은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자신에게 폭력적인 환경 속으로 다시 들어갈 것을 강요받기 때문이다. 교육과정에서 성소수자를 비롯한 다양한 소수자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도록 요구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 공식적인 교육과정이 성소수자를 존중하고 그 권리를 보장한다면 정말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 성소수자를 둘러싼 이러한 과제들을 풀어내는 것은 앞으로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들이다.

육우당이 하늘로 떠난 이후 9년, 동인련은 2009년부터 육우당의 추모주간(4월 25일 전 주)에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 캠페인을 거리에서 벌이기 시작했다. 동인련 행사 중 가장 많은 '시민'을 만나게 되는 에너지 넘치는 이 캠페인은 올해로 네 해째다. 우리가 여전히 차별과 혐오 속에 놓여 있지만, 한편으로는 청소년 성소수자들과 기꺼이 손잡는 사람들도 점점 늘고 있다.

육우당의 죽음 이후 우리는 처음으로 동성애자의 죽음에 사죄하는 기독교인들을 만나게 되었지만, 이제는 천 명에 이르는 기독인들이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지지하는 선언에 동참하고 있다. 우리는 조금씩 더 나은 세상으로 걸어가야 한다. 이것이 육우당이 여전히 기억되어야 할 이유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곽이영씨는 동성애자인권연대 운영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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